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 보좌관 (2)
“축하한다. 한스. 이제 공식적으로 제국의 관료가 되었으니, 더욱 분골쇄신해서 나와 독일 제국을 위해 힘쓰도록 해라.”
“예, 폐하. 절 믿어 주신 폐하의 신뢰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빌헬름 2세는 한스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잘하라는 마음을 담아 한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처음 신임 외무장관인 하인리히 폰 치르슈키가 한스를 보좌관으로 삼고 싶다고 했을 땐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슬슬 관료로서 경험을 키워 줘야 하지 않겠냐고 뷜로 총리가 덧붙이자 빌헬름 2세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한스가 나중에 나의 비스마르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다만, 한스가 지금은 죽고 없는 비스마르크보다 경험과 연륜으로 밀릴지 몰라도 적어도 빌헬름 2세에겐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보단 나았다.
한스는 비스마르크처럼 자신에게 따박따박 대들지도 제멋대로 굴지 않았으니까.
카이저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었다.
‘여기서 더 분골쇄신했다간 내가 지쳐 죽지 않을까?’
물론, 한스는 내심 속으로 그리 투덜거렸지만.
이미 독일 제국을 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뛰어다니고 있던 한스였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더 노력했다간 그땐 정말 과로사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스, 이리 와. 우리가 널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
“선물이요?”
“그래. 샴페인도 터트리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그건 우리에게 아직 이르다더라.”
한스가 전력으로 과로사 엔딩을 거부하는 사이, 루이제와 요아힘을 비롯한 빌헬름 2세의 자식들이 한스의 취업을 축하하며 선물을 건넸다.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테 황후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선물을 열어 보는 한스의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음?”
그때 빌헬름 2세는 무언가 위화감 같은 것을 느꼈다.
“도나.”
“예?”
“어째 한스와 루이제가 평소보다 유달리 가까워 보이지 않소?”
“제가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요? 게다가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친했잖아요.”
“으음…….”
아우구스테 황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빌헬름 2세는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아우구스테 황후는 한스와 루이제의 관계에 대해 진작에 눈치챈 지 오래였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아직 남편에게 말하진 않았다.
빌헬름 2세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걱정이었고, 무엇보다 한스와 루이제가 자신들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밀이라고 해 봤자 카이저 빼고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로서 딸의 자그마한 비밀 정도는 지켜 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도와주는 것은 괜찮겠지?’
황후는 그리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남편 카이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젠 애들도 컸으니, 조금은 거리를 두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소? 남들이 괜한 오해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카이저가 오늘따라 유달리 한스에게 들러붙고 있는 루이제의 모습에 어째선지 자신의 벌목용 도끼가 마려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아우구스테 황후에게 그리 속닥였다.
방금까지 무척이나 장해 보였던 한스가 왠지 모르게 몹쓸 도둑놈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덤이었다.
“오해라니 무슨 오해요?”
“그…… 둘이 깊은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오해 말이오. 물론 한스가 감히 내 귀여운 루이제에 흑심을 품진 않겠지만, 다른 자들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잖소.”
“흐음, 한스 정도면 루이제의 남편으로 괜찮지 않아요? 오히려 전 두 사람이 이어진다면 무척이나 기쁠 거예요.”
“푸흠?! 뭐, 뭐, 뭐요? 남, 남편?!”
빌헬름 2세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버벅대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한스와 루이제를 바라봤다.
‘한스가 루이제의 남편? 그러니까 내 사위가 된다 이 말인가? 한스 정도면 괜찮…… 아니, 아니지!’
빌헬름 2세는 무심코 아들 같은 한스라면 사위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루이제는 아직 아빠의 콧수염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나의 천사란 말이다.
그런데 루이제가 결혼이라니, 그 상대가 아무리 한스라고 해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빌헬름 2세는 땀을 흘리며 아우구스테 황후에게 말했다.
“도나, 아직 루이제의 결혼 이야기를 하긴 이르잖소.”
“폐하,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왕실 여성의 결혼은 빠르잖아요. 루이제도 5, 6년 후엔 결혼 적령기인데 지금부터 미리미리 생각해 놔야죠.”
“끄응……. 그, 그건 그렇지만.”
카이저는 딸이 머지않아 자신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지만, 아우구스테 황후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시대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최소 성인이 되는 만 18세에서 아무리 늦어도 20대 초반 사이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당장 카이저 자신의 여동생들도 그랬고, 루이제라고 이런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물론 부모 곁을 떠나기 싫어 아예 결혼하지 않는 공주들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빌헬름 2세는 루이제를 평생 독수공방시키기는 싫었다.
“그리고 한스 정도면 충분히 사윗감으로 괜찮지 않아요? 무척이나 똑똑하고 예의 바른 애라는 건 이미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또 그동안 독일 제국에 공헌해 온 것도 있고요. 게다가 루이제와 한스가 결혼하면 한스가 정말 우리 가족이 되는걸요?”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무엇보다 루이제와 한스가 결혼하면 루이제를 멀리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잖아요?”
아우구스테 황후가 한스와 루이제 사이를 응원하는 이유기도 했다.
이는 딸 가진 왕비들이라면 누구나 가진 고민이었으니까.
이 시대 유럽 왕실의 공주들은 자신들의 신분에 맞게 타국의 왕족이나 고위 귀족들에게 시집갔고, 그것은 곧 부모와 사실상 영원히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 돌아가신 시어머니인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또한 딸들을 먼 곳으로 시집보낼 때 굉장히 비통해했으며 아우구스테 황후 또한 원 역사에서 빅토리아 루이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와 결혼할 때 하나뿐인 딸이 떠난단 사실에 매일같이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한스와 루이제가 결혼한다면 루이제가 시집을 가더라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헬름 2세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스와 루이제가 결혼하면 그건 귀천상혼이지 않소.”
그랬다.
빅토리아 루이제와 한스는 신분이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났다.
특히 독일 제국은 귀천상혼의 본고장답게 이 부분에서 무척이나 엄격한 나라였으니, 카이저의 우려는 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테 황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게 뭐가 어때서요? 우리가 자식들이 적으면 모를까, 아들도 많은데 딸 하나 귀천상혼한다고 대체 뭐가 대수겠어요?”
귀천상혼의 문제점은 왕위계승권이 박탈된다는 것인데, 아우구스테 황후의 말대로 카이저 부부는 아들만 여섯이었기에 루이제가 귀천상혼한다고 해도 왕가의 피가 끓어질 일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황위를 물려받을 황태자는 이미 격에 맞는 여인과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상태이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귀천상혼은 다른 유럽 왕실 내에서도 많이 하는 짓이라 빌헬름 2세만 인정한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미래의 일이지만, 실제로 루이제의 오빠 중 하나인 오스카 왕자가 무려 어머니의 시녀였던 이나 마리 폰 바세비츠와 뜨거운 연애 끝에 귀천상혼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빌헬름 2세가 오스카 왕자를 호적에서 파내거나 딱히 불이익을 주진 않았으니까.
빌헬름 2세가 귀천상혼으로 역정을 낸 건 어디까지나 빌헬름 황태자의 장남인 빌헬름 왕자 때였는데, 이건 왕자가 왕실의 장손이었던 데다가 네덜란드에 망명한 이후에도 빌헬름 2세가 제정복고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컸다.
“그, 그래도 이런 문제는 루이제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지. 이 문제에 대해선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아우구스테 황후의 기세에 밀려 할 말이 궁해진 빌헬름 2세는 그리 말하며 대화를 끊었다.
그리곤 한스를 향해 눈을 찌푸렸다.
그래. 나중에 한스가 자신의 사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 나중이다.
만약 지금 루이제에게 손을 대었다간 빌헬름 2세는 친히 자신의 쇠도끼를 휘두를 의향이 있었다.
부르르르─
“한스, 왜 그래?”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요.”
“어디 찬바람이라도 들어오나? 난로에 장작을 더 때라고 해야겠다.”
루이제의 말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저가 자신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 * *
1906년 2월.
독일 제국에 내가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의 후임인 하인리히 폰 치르슈키 외무장관으로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정식으로 공표되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여론은 나쁘지 않네.’
내 활약도 활약이고, 그동안 평판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내가 나이가 어리긴 해도, 장관도 아니고 보좌관 정도면 그렇게 큰 논란거리도 아니었고.
덕분에 대부분의 독일인은 내가 외무장관의 보좌관이 된 것을 그럭저럭 납득은 하는 분위기였지만…….
“황인종 꼬맹이가 기어코 제국 정부에 발을 들이는구나!”
“그건 예전부터 그렇지 않았어. 그리고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이젠 슬슬 인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웃기는 소리! 인제 와서 그놈 편이라도 들 생각인가?!”
다만, 융커들은 여전히 융커였다.
이젠 인정해 줄 건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자들도 많이 늘었지만, 융커 상당수는 여전히 내 존재를 불편하게 여겼다.
결국, 내가 점점 높은 자리로 갈수록 이들이 귀찮게 구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 숙명.
그렇기에 나 또한 내 입지를 지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정치적 힘을 키워야 해. 융커들이 함부로 나를 건들지 못하도록.”
정치적 힘을 키우기 위해선 아군을 지금보다 더 많이 만들어야 했다.
물론 부와 권력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내겐 인맥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니까.
“일단, 내각은 지금 관계를 유지만 해도 충분하겠지.”
뷜로 총리는 말할 것도 예전에 러일전쟁 문제를 함께 논의했을 때 내 편을 들어준 것을 계기로 친해진 포사도프스키 부총리와 이번에 날 자신의 보좌관으로 선택한 치르슈키 장관은 명백한 내 아군이라 할 수 있었고, 다른 장관들과의 관계도 딱히 나쁘진 않았다.
다만, 현 프로이센 전쟁장관인 칼 폰 아이넴(Karl Wilhelm Georg August von Einem)는 빼고.
그는 전형적인 융커라 날 고깝게 보는 편이었다.
그래도 아이넴은 원 역사에서 MG08과 현대식 중포를 도입하는 등 독일군의 혁신을 주도하던 사람이고, 카이저랑도 가까워서 굳이 나를 괴롭히려고 하진 않을 거다.
“다음은 군부인데…….”
일단 해군 내에서의 내 이미지는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덕분에 꽤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해군장관인 티르피츠가 나랑 친하기도 하고.
하지만 문제는 역시 육군이었다.
육군 내에서의 내 인맥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슐리펜, 루덴도르프, 레토포어베크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슐리펜 백작은 알다시피 은퇴했고, 루덴도르프와 레토포어베크는 아직 일개 중령과 소령에 불과했다.
이대론 내가 비행기나 전차를 도입하려고 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군부 내의 아군들을 최대한 빨리 늘려야 했다.
“그 밖에도 정계나 재계에도 인맥을 만들어 놓긴 해야 하는데…….”
재계야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은행가인 JP모건과의 친분도 있고 하니, 이를 이용해 어찌어찌 인맥을 만들어 볼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계는…… 흠, 이 시기에 과연 내 아군이 될 가능성이 크면서 동시에 유능한 인물이 과연 누가 있을까?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문뜩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서독의 초대 총리이자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인물이니만큼 능력은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고 무엇보다 이 양반, 프로이센식 군국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융커를 끔찍하게 싫어 한다.
즉, 나와 성향이 비슷하단 소리다.
피차 융커를 적대하는 처지에 이를 이용해 내 사람으로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역시 아직은 무리지.”
현재 아데나워는 올해 쾰른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정계에 이제야 막 입문한 정치 병아리였기 때문에 그를 아군으로 삼는 것은 너무 일렀다.
아쉽지만, 아데나워는 나중을 기약하자.
“정치 문제도 문제지만, 그 전에 우선 몰트케부터 만나러 가 봐야지.”
마침 슐리펜 백작이 약속한 대로 몰트케의 참모총장 취임을 축하하는 축하연에서 나를 그에게 소개해 주기로 했다.
솔직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여 주었던 무능함을 생각해 보면 그리 크게 기대는 안 되었지만, 그래도 참모총장인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
“오, 우주의 기운이 그대를 환영하고 있군.”
“……예?”
그러나 독일 제국의 신임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남작, 그대의 영혼이 밝게 빛나는 것이 느껴져. 이 만남이 우리의 카르마에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길.”
“???”
이상한 쪽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