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 트랙터 프로젝트 (1)
1906년 4월 22일, 필립 마운트배튼 공의 증조할아버지로 영국 왕실에 대머리 유전자를 퍼트린 장본인인 요르요스 1세의 연설과 함께 파나티나이코 경기장(Παναθηναϊκό στάδιο)에서 1906 아테네 중간 올림픽의 개회식이 열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5월 2일이 되어 같은 장소에서 폐회식이 열리며 중간 올림픽이 끝났다.
아무래도 전생 시절 하계 올림픽이 적어도 2주 동안은 치러졌던 데 비해 중간 올림픽은 일주일 조금 넘는 기간에, 종목 수도 훨씬 적은 탓에 더 짧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중간 올림픽은 원 역사처럼 성황리에 끝이 났고 우리 독일 제국도 펜싱 선수 구스타프 카시미르(Gustav Casmir)가 사브르 개인전과 팀전에서 활약해준 덕분에 금메달 4개,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하면서 20개 국가 중 전체 순위 7위로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금메달 하나는 무려 줄다리기 경기에서 획득했지.’
실제로 초창기 올림픽에서 줄다리기가 공식 경기 중 하나였다는 소리를 나도 듣긴 했다.
다만, 진지하게 보려고 해도 다 큰 아저씨들이 안간힘을 쓰며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에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겠더라.
어쨌든 경기 면에서 괜찮은 성과를 내며 나름 체면치레를 했고, 올림픽 중계 효과로 라디오 홍보도 되었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였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도저히 얼굴에서 찝찝함을 숨기지 못했다.
하필이면 프랑스가 금메달 15개를 획득하며 중간 올림픽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독영협상의 복수라도 하려는 것인지 내 앞에서 보란 듯이 금메달을 꺼내 들며 깐죽거리는 프랑스 외교관들을 봤을 때 참 6주 마렵더라.
분명 프랑스엔 별다른 악감정은 없었을 텐데, 어느새 나도 독일인이 다 된 모양이다.
“하하, 보게나. 남작. 내가 우리 그리스 선수들도 만만치 않을 거라 말했지?”
“전하, 솔직히 그리스가 3위를 차지한 것은 물량발이지 않습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셔야죠.”
나는 금메달 15개를 획득한 프랑스, 12개를 획득한 미국에 이어 금메달 8개를 획득하며 잘난 척하는 콘스탄티노스 왕세자를 향해 입술을 비죽 내밀며 핀잔을 주었다.
미국은 미래에도 올림픽 강국으로 이름 높은 나라니 이해가 가는데, 솔직히 그리스는 인정해 주기 어려웠다.
우리 독일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많아 봐야 선수를 40명에서 70명 출전시켰을 때 그리스 혼자 300명 넘게 선수들을 출전시켰단 말이다.
나도 올림픽이 그리스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기분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노스 왕세자는 뻔뻔했다.
“꼬우면 선수를 더 출전시켰어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을 말이라서 그렇지.
‘뷜로 총리에게 스포츠 장려 운동이라도 하자고 말해야지 원.’
하여튼 올림픽이 막을 내린 뒤, 난 콘스탄티노스 왕세자와 조피 왕세자비에게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보자며 작별 인사를 한 뒤 독일로 돌아와 다시 외무장관의 보좌관으로서 업무에 매진했다.
특히 1906년은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난 해라 귀찮은 일을 모조리 나에게 떠넘기고 있는 치르슈키 외무장관을 대신해 위문편지를 작성하는 일 하며 구호물자 목록을 작성하느라 꽤 정신이 없었다.
당장 아테네 중간 올림픽이 열리기 며칠 전인 1906년 4월 7일에 올림픽 이야기를 할 때 언급했듯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나폴리가 파괴되었고, 4월 18일엔 샌프란시스코를 초토화했던 그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다.
또한, 8월 16일엔 칠레 발라파이소에서 발라파이소 지진이 일어나 3,800여 명이 사망하고, 2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9월 18일엔 홍콩에서 태풍과 쓰나미로 만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정말이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가리지 않고 자연재해가 일어나니 여러모로 다사다난한 해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내 귀에 꼭 나쁜 소식만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1906년 10월.
드디어 나와 슐리펜 백작, 그리고 루덴도르프의 주도로 진행되던 전차 개발 계획이 참모본부에서 통과되며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것이다.
* * *
“슐리펜 백작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 남작. 오랜만에 보는군. 보좌관이 되고 나서 어째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어?”
“요즘 일이 많아서요. 그러고 보니 슐리펜 작전은 진척은 있었습니까?”
“흐음, 기본적인 것은 대략 구상이 끝났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야.”
슐리펜이 그리 말하며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침을 튀겨 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째 이 영감님은 은퇴하고 나서 말이 많아진 것 같다.
슐리펜은 아내를 일찍 잃었고, 자식들도 장성해서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니, 어쩌면 외로워서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거노인 말동무해 준다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자.
“남작, 오늘도 마하트마의 기운이 충만하군.”
“몰트케 참모총장님, 아이넴 전쟁장관님, 그리고 루덴도르프 중령님.”
내가 슐리펜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머지 사람들이 도착했다.
나와 슐리펜, 몰트케, 아이넴, 루덴도르프 이 다섯은 트랙터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로 빌헬름 2세와 뷜로 총리를 포함해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이들이었다.
“쯧, 본래라면 외무청 사람인 자네가 이런 자리에 있어선 안 되는데. 참 안 끼는 곳이 없구만.”
“제가 전차를 만들자고 말한 장본인이니까요. 불만스러워도 이번만 참아 주세요. 게다가 아이넴 장관님도 전차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셨잖습니까?”
“……알고 있네. 어디까지나 원칙이 그렇다는 거지.”
나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아이넴 전쟁장관이 그리 툴툴대며 자리에 앉았다.
사실 아이넴 정도면 그나마 선녀이다.
그는 저번에도 언급했듯이 군 혁신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으니까.
그러나 몰트케 같은 경우는 전차는 물론, 전차 논의 중에 곁가지로 나온 장갑차나 수송 트럭 등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이게 왜 필요하냐는 반응이었다.
빌헬름 2세도 몰트케와 다를 건 없었다.
“한스 솔직히 자동차 같은 건 장난감 아니냐? 물론 하인리히 녀석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지만, 그래도 이걸 굳이 국가 예산을 들여서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구나.”
“폐하, 제가 언제 폐하를 실망시킨 적이 있습니까? 이번에도 폐하의 믿음에 반드시 보답할 테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 이는 독일 제국에 필요한 일입니다.”
“흐으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결국, 빌헬름 2세는 내 기나긴 설득 끝에 전차 개발을 승인했다.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었긴 했지만.
하지만 결과가 나오면 분명 카이저도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아, 몰트케 같은 경우엔 그래도 설득이 따로 필요하진 않았다.
애초에 전차 개발은 슐리펜이 은퇴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아 놓은 상태였기 이제 막 참모총장이 된 데다 군에서의 인망과 영향력도 은퇴한 슐리펜에 한참 못 미치는 몰트케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차의 구상자인 나, 고문 자격으로 참가한 슐리펜 백작, 육군참모총장 몰트케, 전쟁장관 아이넴, 그리고 실무자인 루덴도르프의 주도로 독일 제국 전차 개발 프로젝트인 ‘트랙터 프로젝트(Traktor Projekt)’가 발족했다.
참고로 프로젝트 이름은 전간기에 베르사유 조약으로 전차 개발에 제한이 걸리자 독일군이 이를 조약을 우회하기 위해 전차를 트랙터란 이름으로 개발했던 데에서 착안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농기구 이름을 갖다 붙이냐며 내 작명 센스를 까 댔지만.
그러나 전차 개발을 은폐하기 위해선 차라리 이렇게 전혀 상관없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낫다는 내 궁색한 변명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남작님, 손님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시계가 3시 정각을 알림과 동시에 참모본부 장교의 말과 함께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도착했다.
내가 안으로 들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벤츠, 다임러, 2년 후에 MAN으로 이름을 바꾸는 아우스부르크-뉘른베르크 연합 기계공작소 유한회사, 아우디의 전신인 호르히, 밀덕들에겐 오펠 블리츠로 유명할 오펠, 하노마크 등등 독일 내 자동차 기업 관계자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이곳에 왜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 모인 자동차 회사들에 전차의 시제품을 생산하게 만들고, 경합을 벌이게 해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회사에 전차 생산을 맡길 계획이었다.
원래 경쟁이 있어야 열의도 생기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니까.
공산주의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겸사겸사 컨베이어 벨트 도입을 이들에게 추천해 자동차를 많이, 그리고 싸게 만들어 독일 제국의 자동차 산업을 크게 일으켜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전차를 하나하나씩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급용 수송 트럭 등 자동차는 앞으로 군에서 많이 쓰일 예정이니, 어찌 되었든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긴 해야 할 테니까.
“안녕하십니까, 신사분들. 저희의 이름을 아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이기에 먼저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전 한스 폰 초이 남작이고, 여기 계신 분들은 차례대로 헬무트 폰 몰트케 육군참모총장, 카를 폰 아이넴 전쟁장관, 전 육군참모총장이신 알프레트 폰 슐리펜 백작, 그리고 참모본부 기동과 소속의 에리히 루덴도르프 중령입니다.”
갑작스러운 거물들의 등장 때문일까?
군 사업 관련해서 일이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이 자리에 나온 기업가들과 엔지니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중령인 루덴도르프는 몰라도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인사들은 죄다 귀족에다가 장관급 인사들이었으니까.
그들이 보기엔 입사 면접을 보러 왔더니, 면접장 안이 고위 임원들로 가득한 것과 마찬가지지 않을까?
하지만 보안을 위해선 함부로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미안하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을 불러 모았는지도 궁금할 것입니다. 또 사전에 알려 주지 않았는지도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독일 제국 내에서도 우리 다섯 사람과 총리 각하, 그리고 카이저 폐하께서만이 전모를 알고 있는 기밀 프로젝트이기에 최대한 보안에 만전을 기울여야 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독일 제국 내에서 카이저를 포함해 고작 일곱 명만이 모든 일의 전모를 알고 있다는 말에 웅성거림이 일어나는 사이, 참모본부 장교들이 그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이건……?”
“보시다시피 기밀 유지 서약서입니다. 여기에 서명하시는 분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만약 이를 어기고 외부에 기밀을 유출할 시 프로이센 비밀경찰과 즐거운 일대일 심문이 기다리고 있으니 괜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은 그 생각 버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 경고에 자동차 회사 관계자들이 심각한 얼굴로 기밀 유지 서약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그들은 이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펜을 꺼내 들고 서약서에 서명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알아챈 것이다.
정부와 군이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다면, 분명 큰 이득과 명예를 손에 넣을 기회가 되리라고.
이윽고 방 안에 있던 모든 이가 서명을 마치자 나는 모든 서약서를 걷어 들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본 프로젝트, 일명 트랙터 프로젝트의 목적은 자동차를 베이스로 한 새로운 전쟁 병기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혹시 장갑차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누군가가 침묵을 깨며 질문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것은 장갑차보다 더 튼튼하고 위력적인 병기입니다. 저는 이것을 ‘전차(Panze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차……?”
“처음 들어 보는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나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물론 생소하실 겁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전쟁에도 사용된 적 없는 최신 전쟁 병기이니까요. 일단 전차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기본적인 요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기관총을 포함한 총탄을 가볍게 막아 내는 장갑.
둘째, 토치카 파괴를 위한 대포와 적 보병을 막기 위한 기관총 등의 무장.
셋째, 원활한 험지 주행을 위한 무한궤도.
“이 세 가지야말로 전차의 존재 의의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부터 각자 전차의 시제품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중 가장 뛰어난 전차를 만든 회사가 전차 생산을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내 말에 손들이 사방에서 위로 무수하게 올라갔다.
손을 든 사람들의 눈은 성공에 대한 야심으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