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 발칸전쟁 (1)
1912년 3월.
영국의 로버트 스콧이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대가로 바친 끝에 기어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고, 뒤늦게 남극점에 도착한 아문센이 스콧 탐험대의 시신을 회수하고 돌아와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의 칭송을 듣고 있을 때.
리비아에선 오스만군과 이탈리아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군은 여전히 데르나에서 버텨 볼 요량인가 보군. 아랍 기병대는 아직인가?”
“곧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스마일 엔베르 베이.”
일개 장교에게서 어느새 이름 뒤에 군사령관을 뜻하는 베이를 붙일 수 있게 된 이스마일 엔베르는 리비아의 항구 도시 데르나(Darnah) 인근의 오스만군 캠프에서 부관의 보고에 지도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지난 전투는 아쉬웠지.”
3월 3일, 이스마일 엔베르는 이탈리아군이 참호를 파기 전에 1,500명의 리비아 지원병들과 포병 전력을 동원해 데르나 탈환을 시도했지만, 한 끗 차이로 아쉽게 물러나야만 했다.
당시 병력은 이쪽이 앞섰지만, 이탈리아군이 오스만군보다 우월한 무기를 앞세워 지원군이 올 때까지 데르나를 방어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패배했다고 기죽을 엔베르가 아니었다.
어차피 전황도 오스만 제국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이고, 기회만 있다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군은 무선 통신, 장갑차, 비행기 등 이번 전쟁에 여러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데르나와 트리폴리 등 해안가 도시들을 장악하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정작 내륙으론 전혀 진격하질 못하고 있었다.
오스만군의 반격도 반격이지만, 리비아 현지인들이 적어도 같은 무슬림이란 동질감이 있던 오스만군에 협력하며 이탈리아군에게 적대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농담이나 헛된 희망 따위가 아니었다.
이스마일 엔베르가 싸워 본 이탈리아군은 무기를 제외하면 오스만군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이탈리아군의 신무기들은 아직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전쟁 수행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고.
이번에, 이번만큼은 지겨운 패배가 아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승리하면 자신의 명성을 온 유럽에 떨치는 것은 물론, 오스만 제국 또한 유럽의 환자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엔베르 베이.”
이스마일 엔베르가 입꼬리를 올리며 언제나 그렇듯 야심 찬 미래를 꿈꾸는 사이, 한 젊은 장교 한 명이 엔베르에게 경례를 올리며 다가왔다.
“아, 친애하는 토부룩(Tobruk)의 영웅께서 오셨군.”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하하, 쑥스러워하긴. 그래, 무슨 일인가? 케말.”
엔베르의 말에 케말이라 불린 장교가 자세를 편히 했다.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훗날 아타튀르크(Atatürk)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지는 처칠을 미스터 갈리폴리로 만든 장본인이자 튀르키예 독립전쟁의 영웅, 그리고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국부다.
그는 현재 오스만군 소령으로 군사학교 동기이자 친구인 엔베르 밑에서 훗날의 명성은 결코 우연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듯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큰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무스타파 케말은 작년 1911년 12월 22일에 일어난 토부룩 전투에서 오스만군 200명을 이끌고 2,000명의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을 한 줄 추가함과 동시에 이탈리아군의 내륙 진출을 방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각지에서 이탈리아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그래, 공세를 멈추고 거점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는군.”
“흠, 이탈리아인들이 전쟁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은데.”
“나도 동의하네.”
엔베르와 케말이 보기에 이탈리아군은 아직 여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에티오피아에서의 패배로 국가 위신이 대폭 깎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았다.
“무슨 꿍꿍이지?”
“어쩌면 별다른 성과가 없는 내륙 공세를 포기하고 해안가 방어에 집중하려는 것일지도 모르지. 지원군을 기다리면서 말이야.”
아니면, 해군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육지에선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바다에서만큼은 오스만 해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세를 이어 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탈리아 해군은 지난달 2월 24일에 베이루트 전투에서 오스만 해군을 압살하고, 이후 전쟁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오스만 제국을 압박하기 위해 로도스를 포함한 도데카니사 제도를 점령하기도 했으니, 케말의 우려엔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제길, 독일이나 영국이 방관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탈리아 해군이 저리 날뛰지도 못했을 텐데…….”
“후우, 또 그 소리인가?”
또다시 시작된 친구의 투정에 케말은 걱정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혁명으로 술탄을 내쫓고 권력을 잡은 뒤, 이스마일 엔베르는 우호적이었던 독일과 영국이 자원과 이권을 탐할 뿐 정작 오스만 제국은 무시한다며 불만을 내뱉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무스타파 케말이 변해 가는 친구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엔베르, 여기서 독일과 영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봤자 상황만 복잡해질 뿐이라네. 게다가 영국은 그렇다 쳐도 독일은 우리 오스만과 이탈리아를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 아닌가.”
“하! 그래, 노력‘만’ 하는 중이지.”
애초에 이탈리아는 독일의 동맹이었다.
그리고 독일은 자신의 동맹국이 겉으론 우호를 표방한 오스만을 공격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물론, 실제론 독일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이탈리아가 멋대로 전쟁을 시작한 것에 가까웠으며 그 속내엔 더욱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이스마일 엔베르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그저 독일이 자신과 오스만 제국을 기만한다고만 생각했다.
“엔베르, 설마 인제 와서 독일과 영국을 적대라도 할 생각인가?”
물론, 엔베르보다 훨씬 상식적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은 이런 엔베르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러곤 뭐, 러불동맹에 붙기라도 하려고? 엔베르, 이 친구야. 난 자네가 프랑스는 몰라도, 무능하고 무도한 저 러시아인들과 손잡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으리라 믿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네. 난 그저…….”
“엔베르 베이!”
그때였다.
정곡을 찌르는 케말의 지적에 엔베르가 말꼬리를 흐리며 말을 하려던 찰나, 병사 한 명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로 이리 소란인가?”
“밖으로, 밖으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아주 큰 일이 났습니다!”
병사의 창백한 얼굴에 엔베르와 케말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웅성웅성
두 사람이 서둘러 막사 밖으로 나오자 그곳엔 오스만 병사들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심각한 얼굴로 독일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봐, 이게 대체 무슨…….”
[치─치직──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엔베르가 병사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말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튀르크인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방금 세르비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 치지직──선전포고했습니다. 발칸 동맹이란 이름의 연합을 결성한 발칸 4개국은 오스만 제국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나 거부를…….]“이 개자식들이!”
쾅!
엔베르가 독일과 영국에 대한 불만도 잠시 잊은 채 솟구쳐 오르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앞에 있던 의자를 걷어찼다.
죄 없는 의자가 땅바닥을 구르는 가운데 케말이 다급한 얼굴로 엔베르를 말렸다.
“엔베르, 화는 나중에 내도 늦지 않네. 우리는 당장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
오스만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든 발칸 국가가 오스만 제국을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유럽 인구 상당수는 기독교인이라 징집이 힘들었고, 그리스 해군 때문에 아나톨리아와 중동 지역의 병력을 동원하기도 어려울 터.
늦기 전에 자신들만이라도 서둘러 귀환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 리비아는…….”
“리비아는 포기해야 해. 우린 리비아와 발칸에서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는 없어.”
무스타파 케말의 말대로 오스만 제국은 더는 이탈리아와 리비아를 두고 싸울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아니, 이젠 리비아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조국, 오스만 제국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 * *
쾅! 콰광!!
이스마일 엔베르와 무스타파 케말을 비롯한 리비아의 오스만 병력이 서둘러 철수 준비를 시작했을 때, 발칸 동맹은 선전포고와 함께 오스만 제국 영토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첫 스타트는 누가 발칸의 프로이센 아니랄까 봐 호언장담한 대로 정말 60만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한 불가리아군이었다.
“불가리아의 아들들이여, 계속 전진, 전진, 또 전진해라. 튀르크 놈들에게 자비는 사치니, 무자비하게 모조리 짓밟아 버려라!”
“대불가리아에 영광 있으라!”
불가리아의 차르이자 총사령관인 페르디난트 1세를 대신해 불가리아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미하일 사보프(Михаил Савов) 중장의 호령 아래 불가리아군이 함성을 지르며 국경을 넘어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오스만 제국은 급히 약 11만의 동부군을 편성하여 불가리아군에 맞섰지만, 수적으로도 열세였던 데다가 발칸 동맹 내에서 훈련도와 무장 상태가 가장 좋았던 강군인 불가리아군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전쟁은 이탈리아와 전쟁 중이었던 오스만 제국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쟁.
차라리 불가리아 하나 만이라면 오스만 제국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막아 보겠지만, 애석하게도 오스만 제국의 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불가리아에 이어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각자 북쪽과 남쪽에서 오스만 제국 영내로 거침없이 진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자, 세르비아의 전사들이여. 우리들의 잃어버린 성지, 코소보를 되찾자!”
“Живела Србија(세르비아 만세)!”
약 25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 세르비아는 명장 라도미르 푸트니크(Radomir Putnik)의 지휘 아래 몬테네그로 군, 불가리아가 파견한 병력과 함께 스코페와 코소보로 진격했다.
이에 오스만 제국군은 약 20만의 서부군을 편성해 세르비아군에 맞섰지만, 이쪽도 동부군과 마찬가지로 세르비아군에게 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1897년 전쟁에서의 수모를 갚을 때가 왔다. 가자, 그리스여. 주의 가호는 우리에게 있나니!”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보단 적은 약 12만의 병력을 동원한 그리스 왕국 또한 콘스탄티노스 왕세자의 지휘 아래 에페이로스와 테살리아로 진격했다.
그리스 육군은 병력 부족이 발목을 잡아 살짝 고전하긴 했지만, 오스만 제국에 적대적인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름 수월하게 오스만군 거점을 점령해 나갔다.
게다가 그리스엔 영국 해군에서 직접 훈련을 받은 상당한 전력의 현대화된 해군이 있던 상황.
그리스 해군은 훗날 그리스 제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Παύλος Κουντουριώτης) 제독의 지휘 아래 출항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봉쇄하고 에게해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오스만 제국 또한 그리스 함대를 막기 위해 서둘러 자신들의 함대를 보냈지만, 오히려 엘리 해전(Battle of Elli)과 렘노스 해전(Battle of Lemnos)에서 패배하고 에게해를 그리스에 역으로 헌납해 버리고 말았다.
오스만 제국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처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해도 병력은 적은데, 지켜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오스만 제국으로선 이제 크림 전쟁 때처럼 열강들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정작 열강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한스 폰 초이 외무장관, 독일 제국은 외교적 합의를 통한 발칸전쟁의 조속한 종결 원해.] [프랑스, 전쟁을 강경하게 비판. 동시에 프랑스는 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다!] [영국, 오스만 제국을 지지하지만 평화롭게 전쟁을 끝내는 것이 우선.]발칸 동맹을 주도한 러시아는 제외하더라도 독일과 영국, 프랑스는 겉으로는 전쟁 그만하고 말로 해결하자고 외쳤지만, 그 속내는 다 따로 있었다.
독일과 영국은 한스의 주도 아래 발칸 동맹에 심은 스파이인 그리스를 이용해 발칸 반도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또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전쟁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고 판단했기에 자칫 잘못했다가 열강 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발칸에서의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게 열강들의 각자 셈을 하는 가운데 오스만 제국은 점점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스 해군으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가 사실상 단절된 상태인 데다가 지상에선 유럽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콘스탄티노플 인근으로 후퇴해 차탈카(Çatalca)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불가리아의 공세로부터 간신히 버티는 지경까지 왔다.
결국, 1912년 6월, 오스만 제국은 열강들의 중재를 받아들여 전쟁을 끝내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
“하, 평화 조약? 이건 항복이야! 이 빌어먹을 정부 놈들을 내 가만히 두나 봐라!”
“엔베르 베이, 진정하십시오!”
물론, 아직 전쟁을 끝내기 싫어하는 자도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