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 국경 전투 (1)
세계대전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그리고 러시아 제국도 아닌 프랑스 제3공화국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지만, 전쟁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에 아직은 세르비아 국경에서 국지전을 벌이고, 도나우(다뉴브)강에 소형 함선들을 보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깔짝거리는 것으로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헝이 세르비아 공세를 준비하는 사이, 프랑스는 1913년 7월 16일 벨기에 주재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벨기에를 향해 통보를 전했다.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프랑스군을 벨기에에 주둔시키겠습니다.”
최후통첩도 아닌 그저 일방적인 통보를 말이다.
“……혹시 상한 달팽이라도 먹었소? 아니면 어디 몸이라도 아픈 게요?”
물론, 벨기에 총리 샤를 드 브로크빌(Charles de Broqueville)의 반응은 ‘이 바게트 새끼들이 뭘 잘못 먹었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진심이었고, 얼마 안 가 프랑스가 정말로 벨기에에 군대를 끌고 오려 한다는 걸 깨달은 브로크빌 총리는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절대 불가요! 우리 벨기에는 중립국이고, 앞으로도 계속 중립을 지킬 것이오!”
“총리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프랑스는 우리의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뭐요? 대사! 대사─!”
물론, 벨기에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를 거절할 게 분명하다는 것을 모를 프랑스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번 통보는 형식상의 문제에 불과했고, 통보를 전달했다는 소식이 프랑스군 참모본부에 전해지자마자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국경에 대기하고 있던 벨기에 진격 명령을 내렸다.
“전군은 신속하게 벨기에 국경을 넘어 브뤼셀을 함락시키고 서부 요새지대를 점거한다. 비브 라 프랑스!”
“비브 라 프랑스!!”
그리하여 프랑스가 통보를 전달한 지 몇 시간도 안 지나 오귀스트 뒤바이(Auguste Dubail)가 이끄는 프랑스 제1군과 노엘 드 카스텔로가 이끄는 프랑스 제2군(Noël de Castelnau)을 통틀어 40만에 달하는 프랑스군이 일제히 벨기에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전 유럽이 전쟁으로 들썩이는 가운데 일찌감치 선포한 중립만을 믿고 있던 벨기에군이 대지를 푸른색으로 물들인 프랑스의 대공세에 얼굴이 창백함을 넘어 사색으로 물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쾅! 콰광!
“비상, 비사아아아앙───!!!”
“모두 무기들로 집합해! 바게트 놈들이 우리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
“에이 썅,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라고! 진짜 프랑스군이 국경을 넘어 침공해 오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빨리 지원 보내 달라고오오오!!!”
프랑스 국경지대에 주둔 중인 벨기에군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졌다.
유럽을 집어삼킨 전운은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듯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던 와중 갑자기 눈앞에 포탄이 떨어지고, 셀 수도 없는 프랑스군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으니, 정신이 안 나가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보고! 코르트레이크(Kortrijk)로 프랑스군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몽스(Mons)가 포위당했습니다! 서둘러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곧 함락될 것입니다!”
“프랑스군이 플로헝빌르(Florenville)를 통과! 왈롱 남부가 위험합니다!”
벨기에군은 당연하겠지만, 프랑스의 침공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리에주(Liège)와 나뮈르(Namur)로 대표되는 벨기에의 강력한 요새 지대들은 어디까지나 혹시 모를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건설된 것이었지, 프랑스군의 침공을 상정하고 건설된 것이 아니었기에 저들을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말이다.
게다가 병력과 장비 또한 당연하게도 벨기에군이 절대적인 열세.
그야말로 벨기에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었고, 덕분에 브로크빌 총리를 비롯한 벨기에 정부는 종말의 날을 마주한 사람들처럼 대체 이 사태를 어찌하면 좋을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모두 진정하도록!”
그러나 아직 벨기에에는 명군 알베르 1세(Albert I)가 있었다.
콩고인들의 손목이나 자르던 숙부와 달리 재능과 리더십을 갖춘 훌륭한 왕이었던 알베르 1세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 조국의 운명을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벨기에는 결코 저 비열한 프랑스인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지금도 국경의 마을과 도시에선 벨기에의 군인들이 프랑스군의 침공에 맞서 분전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가 나약한 소리를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폐하, 하지만 우리 벨기에의 전 병력을 다 긁어모아도 고작 10만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국경을 프랑스군은 40만이 넘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알베르 1세는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벨기에 혼자선 무리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네. 브로크빌 총리!”
“예, 폐하.”
“지금 즉시 영국과 독일에 구원 요청을 하도록 하게.”
“독일에도 말입니까?”
브로크빌 총리의 말에 알베르 1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가 벨기에를 침공한 이상 지금 벨기에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벨기에의 중립 보장을 한 영국과 영국의 동맹이자 프랑스의 적인 독일 제국뿐이었다.
애초에 지금 프랑스가 뜬금없이 벨기에를 침공한 이유도 어디까지나 독일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던 만큼, 그들도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군과 독일군이 지원군을 보내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 그 전에 프랑스군을 막아야겠지. 르망 중장!”
“옛, 폐하!”
알베르 1세의 호명에 벨기에 장성 사이에서 나이 든 노장이 힘찬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제라르 마티외 조제프 조르주 르망(Gérard Mathieu Joseph Georges Leman).
벨기에 육군 사관학교 교장으로 원 역사에서 1914년에 리에주 요새 사령관을 맡아 독일군의 발목을 최대한 붙잡으며 독일군의 벨기에 침공 계획을 망치고, 협상국이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준 벨기에 최고의 명장이자 리에주의 영웅.
그리고 알베르 1세에게 있어선 군사학을 가르친 스승이자 가장 신뢰하는 장군이기도 했다.
“남은 병력을 모아 지원군이 올 때까지 프랑스군의 침공을 저지해야 하네. 힘든 상황이고, 어려운 임무지만, 어떻게든 최대한 버텨야 하네. 가능하겠나?”
“일단, 국경의 마을과 도시들은 포기해야 합니다.”
르망 중장이 벨기에 국경지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긴 이미 프랑스군이 밀어닥친 상황이라 막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기에 소장은 헨트(Gent)와 브뤼셀, 나뮈르와 리에주를 잇는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그건 샤를루아(Charleroi)를 비롯한 왈롱 대부분을 포기하자는 것 아니오!”
프랑스식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출신 당부터가 가톨릭 당이었던 브로크빌 총리와 왈롱 출신 정치인, 관료들이 르망 중장의 말에 웅성거리며 동요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고향을 침략자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수도 브뤼셀을 전방 방어선으로 삼겠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프랑스군은 우리가 이렇게 말로 떠들고 있는 시간에도 계속 끊임없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생각하면 브뤼셀이 최선입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네.”
알베르 1세가 르망 중장의 편을 들어주며 말했다.
“우선, 정부를 브뤼셀에서 안트베르펜으로 이전하도록 하세나. 피난민들 또한 최대한 북쪽으로 피신시키고.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있어 최선이네.”
“알겠습니다. 폐하.”
알베르 1세의 설득에 브로크빌 총리와 벨기에 관료들이 침음성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벨기에 전부를 프랑스군에게 넘겨줄 순 없으니까.
“르망 중장, 서둘러 움직이게. 방어하도록 임명받은 위치를 자네의 사단과 함께 끝까지 지키게나.”
“예, 폐하. 이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프랑스 침략자들로부터 조국 벨기에를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르망 중장이 결연한 얼굴로 경례를 올리며 외치자 알베르 1세는 믿는다는 얼굴로 그의 경례를 받아 주었다.
그렇게 벨기에군은 르망 중장의 지휘 아래 밀려오는 프랑스군을 향해 저항 의지를 불태우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나섰다.
그들의 목표는 영국과 독일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
그러나 시간이 걸리리란 벨기에의 예상과 달리 독일군이 벨기에로 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대, 대공 전하! 프랑스군이 방금 벨기에 국경을 넘었습니다!”
“오, 주여…….”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군의 벨기에 공세가 막 시작되었을 때.
벨기에의 작은 이웃인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궁전은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 소식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대의 말이 맞았소, 후작. 저 프랑스인들이 정말 벨기에를 침공해 버렸어!”
작년에 만 18살의 어린 나이에 룩셈부르크 여대공으로 즉위한 마리 아델라이드(Marie Adélaïde Theresia Hilda Wilhelmina)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향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저 또한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지만, 프랑스는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타국을 침공한다는 최악의 선택을 해 버렸습니다.”
이에 전쟁이 나자마자 룩셈부르크를 찾아온 나는 정말이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결코 벨기에로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독일 제국에 자신들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란 명분으로 이곳 룩셈부르크에도 더러운 군홧발을 들이밀 것이 분명합니다!”
내 말에 마리 아델라이드 여대공과 룩셈부르크인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프랑스가 정말 룩셈부르크까지 공격할 확률은 낮았지만, 이미 벨기에 침공이란 초유의 사태를 두 눈으로 본 이상 이들로선 자신들도 공격받으리란 우려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룩셈부르크의 지정학적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그렇기에 나도 이곳에 직접 발길을 들이민 것이지만 말이다.
“그, 그럼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소?”
“제국군에게 길을 열어 주십시오. 그럼 독일 제국이 룩셈부르크를 대전쟁이란 전화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마리 아델레이드 여대공은 대답을 망설였다.
이는 사실상 룩셈부르크 대공국이 중립을 포기하고 독일 제국의 편에 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마리, 이미 프랑스는 중립을 표방한 벨기에를 짓밟았단다. 룩셈부르크도 더는 중립만 믿고 숨어 있을 순 없어.”
“……루프레히트 오라버니.”
“그러니 나와 독일을 믿으렴.”
그러나 여대공 설득을 위해 부른 여대공의 8촌 친척인 루프레히트(Rupprecht Maria Luitpold Ferdinand) 바이에른 왕세자의 자상한 목소리에 마리 아델레이드의 얼굴은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신하들과 속닥거리며 꽤 오랫동안 의견을 나누더니, 결국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결정을 내렸다.
“후우……. 알겠습니다.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독일 제국을 환영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오늘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후작.”
나는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며 예를 표한 뒤, 왕세자와 함께 룩셈부르크 궁정을 떠났다.
그리고 가면을 벗고 루프레히트 왕세자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루프레히트 왕세자님.”
“수고라고 할 것도 없네. 순진한 마리를 속이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생각보다 재밌었으니. 그나저나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군.”
“프랑스가 저리 날뛰는 이상, 룩셈부르크로서도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마리 아델레이드 여대공은 독일에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너무 우호적이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룩셈부르크를 점령한 독일군과도 친하게 지내서 민심을 잃고 대공위를 여동생에게 물려줬어야 했을 정도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인 건가?”
“예.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벨기에의 구원 요청이 당도하는 대로 벨기에 국경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알렉산더 폰 클루크(Alexander Heinrich Rudolf von Kluck)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1군과 카를 폰 뷜로(Karl Wilhelm Paul von Bülow)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2군이 벨기에에 진입할 것이다.
물론, 나와 루프레히트 왕세자가 괜히 룩셈부르크에 온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프랑스를 위해 준비한 선물 또한 그것뿐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