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 국경 전투 (5)
파리는 빛의 도시란 이명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두웠다.
거리의 분위기도 사람들의 얼굴도 어두웠다.
[독일군이 조국 프랑스의 영토에 다시금 발을 들이다!] [위기에 처한 프랑스. 보불전쟁, 그 악몽의 재림인가?]독일 제국군.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흑사병과도 같은 악귀들이 1870년 보불전쟁 이래, 또다시 프랑스의 영토를 더러운 군홧발로 짓밟았다.
독일군은 프랑스군의 분전도 무색하게 스당을 순식간에 점령했고, 이젠 엔 강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이미 몇몇 비관주의자들은 곧 독일군이 파리에 들이닥치리라 떠들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남쪽으로 피난하기 위해 벌써부터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비겁자와 달리 프랑스인 대다수의 얼굴은 어두울지라도 결코 절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푸앵카레 대통령, 위대한 조국 프랑스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이여, 일어나라! 카이저의 하수인들이 그대의 가족과 조국을 노리고 있다!]프랑스인들은 조국의 위기에 주저앉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조국을 구하겠다며 무기를 쥐는 것을 택했고, 전쟁을 비난했던 프랑스 좌파들조차 스스로 전장으로 떠나길 자청했다.
“자동차, 트럭, 마차, 오토바이나 자전거라도 상관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사들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빨리 전선으로 수송하라!”
그리고 이는 독일 총사령부의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어 가는 프랑스의 총동원령과 맞물려 큰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프르는 눈앞에 위기에 각성이라도 했는지 사람이 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조리 징발해서 따끈따끈한 신병들을 끊임없이 전선으로 실어 날랐다.
“전선으로! 전선으로! 전선으로! 조국 프랑스를 지키러 가자!”
“비브 라 프랑스! 비브 라 레퓌블리크!”
일어서라,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저 들판의 흉포한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가?
적들이 우리 지척까지 다가와 우리의 자식들과 아내의 목을 베려 하는 소리로다.
그러니 무기를 들라, 시민이여.
대열을 갖추고 전진하라.
놈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실 때까지!
바야흐로 전 프랑스가 보불전쟁의 치욕을 다시 한번 반복할 수는 없다는 듯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는 이미 그 어느 곳보다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던 전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 * *
“포슈 장군님. 정찰병들이 독일군의 선봉을 발견했습니다.”
“……올 것이 왔는가.”
무더운 여름 태양조차 힘을 쓰지 못하는 어두운 아르덴 숲에서 페르디낭 포슈은 부관의 보고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포슈는 본래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스텔노가 지휘하는 프랑스 제2군 소속 20군단의 지휘를 맡아 2군 휘하의 다른 군단들과 함께 벨기에 공세에 참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초콜릿 병사들이라면 무시하던 벨기에인들은 예상 못 한 끈질긴 저항을 이어 가며 프랑스군의 전쟁 계획을 어그러트렸고, 독일군은 가짜 슐리펜 계획을 이용해 프랑스군을 함정에 빠트리며 유유히 국경을 넘어왔다.
포슈와 그의 군단은 조프르 총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이곳 아르덴으로 급히 재배치되었다.
“하느님이 나와 프랑스에 너무나도 많은 시련을 주시는군.”
나이로 인해 퇴역하기 전에 독일 제국에 1870년의 복수를 할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린 것과는 별개로 이번 전쟁이 절대 쉬우리라 생각하진 않았던 포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뼈아팠다.
룩셈부르크는 독사 같은 한스 폰 초이에 넘어가 독일군에게 국경을 열어 줬고, 독일군은 국경 방어선을 식전 운동을 하듯 손쉽게 무력화하며 아르덴 숲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 벨기에에 발목이 잡혀 있는 아군의 분단과 포위.
만약 독일군이 벨기에에 있는 아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면 프랑스군 전력의 3분의 1이 날아가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단 하나.
포슈와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던 1870년 스당 전투의 재림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것만은 반드시 막고야 말겠다!’
“군단장님?”
“모두 집중하도록.”
부관의 의아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포슈는 결연한 얼굴로 눈앞의 장군들과 참모들을 향해 말했다.
그 목소리에 실린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던지라 프랑스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없이 자신들의 군단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독일군이 오고 있다. 그들은 국경에서 그리했듯이 우리를 짓밟고, 벨기에의 아군을 끝장내기 위해 이곳 아르덴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해 오고 있다.”
“…….”
“우리가 저들을 저지하지 못하면 위대한 조국 프랑스는 다시 한번 저 게르만과 훈족의 더러운 혼종 놈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물론, 독일군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로이센 장교단의 뛰어난 전술적 능력은 이미 유럽 전체에 정평이 나 있는 상태였고, 분하지만 현 독일군의 전쟁 기술과 장비 또한 프랑스군보다 앞섰으니까.
그러나 군인에게는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물러설 수 없는 전장이 존재했고, 지금이 바로 그곳이었다.
“나의 의무는, 우리의 의무는 최대한 버티는 것! 그러니 프랑스의 아들들이여,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그들은 지나갈 수 없다(Ils Ne Passeront Pas)!”
“비브 라 프랑스! 비브 라 나시옹!”
20군단 장교들과 참모들이 일제히 경례를 올리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덴 숲속에서 막으려는 프랑스군과 지나가려는 독일군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쾅! 콰광!! 타다다다다다다다!!
“공격을 멈추지 마라! 여기서 우리가 물러나면 조국이, 시민들이 위험해진다. 오늘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적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총알과 포탄을 퍼부어라!”
1913년 7월 22일.
고요했던 아르덴 숲은 그 적막함은 온데간데없이 인간들의 투지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사방에선 끊임없이 포성과 기관총 특유의 소름 끼치는 총성이 울려 퍼지고, 병사들은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어두운 숲속에서 피와 비명을 토하며 끊임없이 쓰러졌다.
“프랑스의 아들들이여. 조국의 운명이 우리들의 어깨 위에 달려 있다. 적의 포탄에 몸이 찢어지더라도, 적의 총칼에 내장을 쏟아 낼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마라. 절대 적을 이 너머로 보내지 마라!”
“그들은 지나갈 수 없다─!!”
포슈의 피를 토하는 것만 같은 외침 아래, 프랑스군이 끊임없이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을 던졌다.
물론, 독일군도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기관단총을 앞세우며 적 참호를 향해 끊임없이 공세를 가했지만, 포슈의 프랑스군은 국경의 프랑스군과 달리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공세가 생각보다 너무 지지부진하군.”
견고한 프랑스군 방어선에 독일 제4군을 이끌고 포슈의 20군단을 비롯한 프랑스군과 정면으로 충돌 중인 3군 사령관 막스 폰 하우젠(Max Clemens Lothar von Hausen)은 답답한 전황에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물론, 그에게도 할 말은 많았다.
아르덴 숲이란 이름의 이 끔찍한 마경도 문제였지만, 하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이런 울창한 숲속에선 독일 제국의 우월한 항공 전력도, 포병을 대규모로 동원한 화력 공세도 힘을 쓰기 힘들었으니까.
이에 반해 프랑스군은 세계 최초의 현대식 야포인 자국의 M1897 75mm 야포를 대량으로 끌고와 돌격해 오는 독일군을 향해 포탄을 끊임없이 퍼붓는 중이었다.
비록 M1897 야포는 낮은 부양각 때문에 적 참호를 공략하는 것엔 큰 위력을 내지 못했지만, 곡사포가 활약하기 힘든 이런 숲속에선 돌격해 오는 독일군을 산산 조각내기엔 매우 효과적이었다.
“엔 강에서의 공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던가?”
“그쪽도 잘 풀리진 않는 모양입니다.”
하우젠의 물음에 3군 참모장 막시밀리안 폰 횐(Maximilian Ritter von Höhn)이 대답했다.
스당을 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뻗어 나가던 독일군의 공세는 엔(Aisne) 강에서 저지당했다.
엔의 프랑스군은 이 이상은 영토를 넘겨줄 수 없다며 참호 속에서 필사적으로 독일군에 맞서 싸웠고, 프랑스의 젊은 영웅들은 그 누구 보다 앞장서서 병사들을 이끌었다.
“자자, 적들도 지쳐 가고 있다. 너희 자신을 믿고 끝까지 버텨라!”
“예! 페탱 대령님!”
그리고 그중 가장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던 인물이 그 유명한 필리프 페탱(Henri Philippe Benoni Omer Joseph Pétain)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 프랑스의 수반으로 나치 독일에 부역한 것 때문에 21세기에도 여전히 프랑스 내에서 뜨거운 감자 취급받는 페탱이지만,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페탱은 프랑스의 수호자 그 자체였다.
그는 대부분의 프랑스군 고위 장교들과 달리 젊은 시절부터 엘랑 비탈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외친 인물답게 무모한 공격이 아닌 효율적인 전투를 추구했고, 이는 곧 전과로 돌아왔다.
“우리도 질 수야 없지.”
“가자, 제군들. 프랑스를 지켜 내자!”
이러한 페탱의 분전은 전선의 병사들과 다른 장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페탱의 뒤를 따르듯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나섰다.
젊은 날의 샤를 드골(Charles André Joseph Marie de Gaulle)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으아아악!”
“드골 중위님!”
“중위님이 총을 맞았다!”
“부상병! 부상병!”
다만, 그는 너무 몸을 아끼지 않은 나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에 총을 맞고 후방으로 실려 갔지만.
아르덴에서 엔 강까지 프랑스군은 결코 후손들처럼 6주만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처절하게 싸웠다.
이에 독일군 사령관들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 이상 진격하는 것은 어렵겠군. 횐,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하지. 어차피 우린 우리 목표를 다 이루었으니.”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들의 분노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 어떤 미련도 없이 공세를 이어 나가는 것을 관뒀다.
프랑스인들의 분전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 * *
“네덜란드에서의 일은 잘 풀리셨습니까? 장관님.”
“예, 빌헬미나 여왕과 네덜란드 의회는 참전은 거부했지만, 연합군의 물자와 병력을 네덜란드를 통해 수송하는 것엔 동의했습니다. 그레이 영국 외무장관이 암스테르담으로 달려와 압박을 가하니 저쪽도 더는 버티질 못하더군요.”
아무래도 안트베르펜 만으론 물류를 전부 감당할 수 없는 이상 네덜란드의 항구가 가장 시급한 것은 영국이니까.
물론, 네덜란드가 협상국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일찌감치 중립을 선포한 벨기에가 공격받은 것에 대한 네덜란드인들의 불안도 크게 한몫했지만.
“그거 잘되었군요. 다만 영국 해군장관과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으, 그 인간 이야기는 하지도 마세요.”
러시아 흑해 함대가 모로코 때처럼 흑해 밖으로 나올 수 있으니, 영국 지중해 함대 전력 일부를 콘스탄티니예에 주둔시키겠단다.
물론,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단박에 거절했지만 말이다.
당장 오스만을 겨우 달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여기서 영국 함대가 콘스탄티니예에 눌러앉으면 튀르키예인들이 어찌 생각할지 불 보듯 뻔했다.
‘처칠 이 새끼는 정말 미스터 갈리폴리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난 건가?’
“그래도 만약의 일이지만, 러시아 흑해 함대가 정말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를 돌파하려 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예. 그래서 우리 순양함들을 콘스탄티니예에 주둔시키는 것으로 영국, 오스만 정부와 합의를 봤습니다. 그나저나 엔 강과 아르덴은 소강상태에 들어간 모양이군요.”
“뭐, 조금 더 진격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까요.”
내 물음에 팔켄하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독일군을 막아 냈다고 눈물을 흘리며 호들갑을 떠는 모양인데, 우리로선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 일이었다.
애초에 우리는 원 역사처럼 마른강으로 진격해 파리를 노릴 생각도, 27년 빠른 낫질을 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예전에 한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와 독일 제국은 서부전선보다 동부전선을 먼저 끝낼 생각이었고, 이 때문에 서부전선에 배치한 병력이 원 역사보다 적었을뿐더러 프랑스는 러일전쟁의 전훈으로 참호전 교리를 이미 습득한 상황이다.
‘원 역사보다 기동성이 많이 늘었다곤 해도 지금은 아직 무리지.’
게다가 파리까지 달려 봤자 어차피 프랑스는 항복은커녕 원 역사처럼 여차하면 보르도로 튈 준비를 할 것이고, 여기서 무리하게 공세를 이어 나가 봤자 병력 피해와 보급 소요만 늘 뿐이다.
물론, 독일군의 전력을 온전히 쏟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슬슬 러시아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곧 동부전선이 시작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선 서부전선보단 이쪽이 더 중요했던 만큼 괜히 프랑스 6주 하겠다고 성급하게 굴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우리가 프랑스 영토 일부를 점령한 이상 오히려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프랑스이니까.
‘카이저마리네 또한 영국 해군과 함께 이미 제해권을 장악하며 프랑스 해군을 항구에 반강제적으로 몰아넣은 상황이니.’
즉, 공세를 막았다고 해도 프랑스가 승리했다며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너무나도 멀었다는 소리다.
우리는 패배하지도 않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은 상황이니까.
게다가 늦어도 올해 말에서 내년 초에 기갑부대도 편제와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전선에 투입될 예정이니까.
그렇기에 앞으로 남은 일은 영국군, 벨기에군과 함께 벨기에와 프랑스 동부에서 프랑스군을 천천히 밀어내며 그들의 목을 조이는 것뿐.
“장관님, 참모총장님. 안트베르펜행 특별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서부전선은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