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 타넨베르크 (1)
“모두 착석하시게.”
1913년 8월 7일.
독일 제국 제8군 참모장 루덴도르프의 말과 함께 8군 참모들이 긴장한 얼굴로 일제히 의자에 앉았다.
루덴도르프는 이내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빌헬름 황태자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황태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를 시작할 것을 명했다.
“모두 러시아군이 몇 시간 전에 겁도 없이 독일 제국의 국경을 넘어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을 것이다.”
루덴도르프는 지휘봉으로 지도 위에 놓인 부대 모형들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보고에 따르면 동프로이센으로 진군해 오는 러시아군은 파벨 폰 렌넨캄프(Павел Фон Ренненкампф)의 러시아 제1군이다. 그들의 진군 속도로 미루어 봤을 때 아마 모레인 9일에 슈탈루푀넨(Stallupönen, 오늘날의 네스테로프)에 도착하겠지.”
그리고 8군의 첫 전투도 그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1군과 함께 동프로이센 공세를 맡은 알렉산드르 삼소노프(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Самсо́нов)의 러시아 제2군은 아직 러시아령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보부에 의하면 12일 이후가 되어서야 진군을 시작할 것 같다더군.”
“예? 그러면 제1군과 제2군이 함께 움직이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젊은 참모 하나가 이해가 안 간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이라면 협공을 위해 동시에 공세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혹시 러시아군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니다. 그냥 러시아 1군과 2군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것뿐이야. 게다가 듣자 하니 러시아 2군은 이른 동원으로 인한 보급 소요 문제 등으로 여러모로 고생 중이라는 모양이군.”
“…….”
8군 참모들은 러시아군의 공세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질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바보 같아졌다.
심지어 정보부가 8군에 보낸 보고서 중엔 러시아 병사들 일부는 총이 없어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는 독일 장교들로선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크흠, 그래도 방심하지 말게나. 러시아군이 우리 독일군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만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니. 괜히 마음 놓고 있다가 러시아군에게 패배하기라도 하면 그만한 수치도 없네.”
“예, 전하.”
빌헬름 황태자가 헛기침하며 바로 주의를 시키자 참모들이 명심하겠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빌헬름 황태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란 이유 하나로 야전군 사령관이 된 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독일군 엘리트들에게 받은 조기 군사교육을 받아 온 인물.
그의 군사적 능력은 실제로 뛰어난 편이었고, 적이 약해 보인다고 방심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면도 있었다.
물론, 그것만 해도 적 사령관인 렌넨캄프와 삼소노프보다는 훨씬 유능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 8군의 목표는 진격해 오는 러시아 제1군과 제2군을 섬멸하고, 동프로이센의 위협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제1군과 제2군을 합쳐 총 40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던 비해 동프로이센을 지키는 8군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6만에 불과했으니.
“헤링겐 사령관의 7군이 있었으면 일이 편해졌을 텐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세르비아에서처럼 갈리치아에서도 일을 망치면 곤란해지는 건 우리니까.”
독일 참모들의 우려는 타당했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독일군에게 참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은 갈리치아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승리한 탓이 컸으니까.
“확실히 우리 8군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아니, 독일 제국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빌헬름 황태자와 루덴도르프는 자신이 있었고, 이미 러시아군을 맞이할 작전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호프만 중령, 자네의 작전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게.”
“옛, 루덴도르프 참모장님.”
루덴도르프의 호령에 참모들 사이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스 호프만(Max Hoffmann).
제8군 소속 장군참모로 원 역사에서 타넨베르크 전투를 독일 제국의 승리로 이끄는 데 가장 많은 공을 세웠던 장본인이다.
호프만의 두뇌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짝반짝 빛났고, 호프만과 이웃사촌이기에 예전부터 그를 알고 지내던 루덴도프르는 호프만이 제출한 작전 계획서를 보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를 채용했다.
“우선, 8군이 러시아 1군과 2군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이 자리에 계신 참모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에 전 1군과 2군을 각개격파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각개격파……?”
“아, 러시아 2군이 오기 전에 러시아 1군을 섬멸하자는 건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에 호프만 중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삼소노프와 러시아 2군은 겁먹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차후의 계획을 위해 1군과 2군을 한꺼번에 섬멸해 동프로이센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길 원하는 루덴도르프와 호프만이 보기에 러시아군의 날개를 어느 한쪽만 부러트리는 것은 불완전한 승리에 불과했다.
“우리는 러시아 1군과 2군을 동프로이센 깊숙이 끌어들일 것입니다.”
호프만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친 러시아인들을 하나씩 사냥할 것입니다.”
그의 두 눈동자는 과거 독일 기사단과 폴란드, 리투아니아 간의 전투가 벌어진 타넨베르크를 향해 있었다.
* * *
1913년 8월 9일.
빌헬름 황태자가 지휘하는 독일 제8군과 렌넨캄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제1군의 첫 전투는 루덴도르프가 예상했던 대로 슈탈루푀넨에서 일어났다.
“전하, 러시아군이 물러나기 시작했다는 보고입니다.”
“음, 그러면 우리도 굼빈넨(Gumbinnen, 오늘날의 구세프)으로 후퇴하도록 하지.”
독일군은 슈탈루푀넨에서 러시아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그러나 그다음엔 마치 힘이 달려서 더는 싸울 수 없다는 듯 그대로 후방의 굼빈넨으로 후퇴했다.
“렌넨캄프 사령관님. 독일군이 슈탈루푀넨을 버리고 굼빈넨으로 퇴각하고 있습니다.”
“뭐? 하핫, 하긴 사람이 부족해 여기저기 병력을 분산 배치한 마당에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 좋아, 그럼 우리도 슈탈루푀넨을 점령한 뒤 독일군을 쫓아 굼빈넨으로 향한다.”
슈탈루푀넨 공격에 실패한 것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하들을 갈굴 때는 언제고, 독일군이 후퇴했단 소식에 희희낙락한 렌넨캄프는 독일군을 쫓아 바로 굼빈넨으로 갈 것을 명했다.
그리고 3일 후인 1913년 8월 12일.
독일군과 러시아군은 약속이라도 한 듯 굼빈넨에서 다시 한번 부딪혔다.
호전적인 헤르만 폰 프랑수아(Hermann Karl Bruno von François) 보병대장이 지휘하는 독일 제1군단은 진격해 오는 러시아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다.
너무 용감하게 싸워서 러시아군이 밀려 도망칠 정도였다.
쾅! 콰광!
“쏴라, 쏴! 이대로 러시아군을 내쫓아 버리는 거다!”
“군단장님, 우리 적당히 싸워야 하는 거 잊으셨습니까? 이러다가 렌넨캄프가 꼬리 말고 도망치겠습니다!”
“음? 아, 그랬지. 포격 중지! 중지!”
프랑수아 대장의 명령에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멈춰선 독일군 대포들.
그리고 독일군이 공격을 멈추자 러시아군은 무사히 전장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들을 일부러 살려 보내 준 것도 모른 채.
“그럼, 병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게. 부관.”
“예, 군단장님.”
부관이 프랑수아에게 힘찬 경례를 올리며 명령을 전하기 위해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부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프랑수아 대장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오히려 무언가가 굉장히 찝찝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작전 때문이라지만, 러시아 놈들에게 우리 독일의 영토를 내줘야 한다는 건 참 마음이 불편한 일이군.”
프랑수아 대장은 그리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비단 프랑수아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독일 제국 장성들은 작전상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자국의 영토를 적에게 내주는 것을 상당히 꺼린 편이었으니까.
다만, 프랑수아 대장의 태도는 다른 이들에 비해선 굉장히 정중한 편이었다.
그는 동프로이센과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룩셈부르크 출신이었으니까.
하지만 동프로이센를 기반으로 두고 있는 프로이센 융커들은 프랑수아 대장과는 달랐다.
그들의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어떤 의미론 말이다.
* * *
“이대로 러시아군이 동프로이센을 제집처럼 휘젓고 다니게 둬도 괜찮은 것입니까?”
“애초에 굼빈넨을 포기하면 쾨니히스베르크가 위험하잖소!”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전선 전체가 정체된 상황이니…….”
‘돌아 버리겠군.’
팔켄하인은 러시아군이 동프로이센에 발을 들였단 소리를 듣자마자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융커들의 목소리에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분명 작전상 필요한 일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이 동프로이센 융커들은 동프로이센 일부 지역을 잠시나마 러시아군에게 내주는 것조차 참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루덴도르프와 호프만의 작전을 재고하는 것이…….”
“제8군의 작전은 이미 충분히 검토를 마쳤고, 나와 참모본부에서도 타당하단 결론을 내렸소. 정 내가 이를 재고하길 원한다면 조금 더 논리적인 반론을 하길 바라오.”
“하지만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과감한 작전이 과연 잘 통할지도…….”
팔켄하인의 빈정거리는 어투에도 불구하고 융커들은 얼굴을 그 고집이 어디 안 간다는 듯 물러나지 않았다.
‘망할 고집불통들 같으니라고.’
이 피곤한 양반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존 프렌치와 드잡이질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허허, 언제부터 프로이센 융커들이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나.”
융커들의 훈수에 시달리던 팔켄하인이 그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말을 속으로 곱씹고 있을 때, 귀에 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작전실에 울려 퍼졌다.
“슐, 슐리펜 각하?!”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슐리펜이었다.
팔켄하인은 슐리펜의 깜짝 등장에 놀라면서도 작전실 입구에서 자신에게 윙크하고 있는 한스 폰 초이 외무장관을 보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참 적절할 때 나타나는 청년이다.
이쯤 되면 많고 많은 그의 별명에 ‘해결사’란 별명을 하나 더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
“아니, 각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들이 내 계획을 망치려 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지.”
“예, 예?! 그 무슨…….”
“고작 마을 몇 개 잃었다고 동부전선의 향방을 결정지을 중요한 작전을 망치려고 하는 게 내 슐리펜 계획을 망치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나? 나 때 같았으면 자네들 모조리 모가지였어!”
“끄, 끄응…….”
슐리펜의 꼰대력 넘치는 일갈에 융커들은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아무리 목소리 높은 그들이라도 독일 제국군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대선배인 슐리펜에게 강하게 나설 수는 없었다.
“참모총장님, 동부전선에서 들어온 보고입니다.”
팔켄하인이 살짝 고개를 숙여 슐리펜에게 감사를 전하는 사이, 부관이 그에게 급히 보고서를 전했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본 팔켄하인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 * *
“생각보다 독일이 여유가 많이 없는 모양이군.”
“아무래도 병력이 우리에 비해 부족하니까요.”
독일군이 굼빈넨에서 철수하자 렌넨캄프는 좋다 하고 굼빈넨을 점령했다.
“그러면 여기서 방어를 굳히며 일단 재정비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그대로 굼빈넨에 눌러앉았다.
굼빈넨은 쾨니히스베르크를 비롯한 동프로이센 전체로 뻗어 나가기 쉬운 전략적 요충지다.
독일군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고, 이곳을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분명 다시 굼빈넨을 탈환하려 하겠지.’
그렇기에 렌넨캄프는 굼빈넨에서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하며 독일군의 반격에 대비하고자 했다.
물론, 독일군의 반격이 없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그러나 제1군의 목표인 동프로이센 최대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를 점령하기 위해선 많은 보병과 중포가 필요했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굼빈넨에서 눌러앉은 렌넨캄프의 판단은 틀리다곤 할 순 없었다.
가끔은 올바른 선택지라도 그것이 꼭 정답인 법은 아니라서 그렇지.
“자,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려라. 우리는 지금부터 동프로이센으로 진군한다.”
“원래 계획보다 상당히 늦었는데, 제1군은 괜찮을까요?”
“렌넨캄프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우리 일에 집중하세나.”
한편, 렌넨캄프와 러시아 제1군이 굼빈넨을 점령한 이튿날인 13일.
삼소노프가 이끄는 러시아 제2군이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국경을 넘었다.
2군은 국경을 넘자마자 오스텔스부르크(Ortelsburg, 오늘날의 슈치트노)를 비롯한 국경지대의 마을들을 점령하고, 23일엔 동프로이센 깊숙이 진군해 독일 제20군단을 밀어내고 란나(Lahna, 오늘날의 위나)를 점령했다.
그러나 삼소노프는 몰랐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호랑이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