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 서부전선 이상없다 (2)
영국군이 벨기에에서 전사자 명단을 계속 늘려 가며 몸으로 현대전이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면, 프랑스군은 엔 강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시체의 산을 쌓아 가고 있었다.
삐이이이이이────!!
“돌격! 돌격해라!”
“머뭇거리지 마라! 엘랑 비탈의 정신으로 이번에야말로 조국을 침공한 보슈 놈들을 몰아내는 거다!”
이제는 듣기만 해도 경기가 날 정도로 익숙해진 호루라기 소리 아래 프랑스 병사들이 또다시 독일군 참호를 향해 돌격했다.
“적 병력 접근 중!”
“Feuer!”
타다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 쾅! 콰광!!
그리고 또다시 독일군의 기관총 포화 앞에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예정된 결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반복될 일이었다.
물론, 프랑스군 수뇌부 또한 적 참호에 이런 식으로 계속 공세를 가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무수한 시체뿐이란 것 정도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도 그 무지막지한 방어력에 혹해 참호전 교리를 일찍 받아들인 상태였으니.
그러나 원 역사에서 왜 참호전이 전쟁 내내 악명을 떨쳤겠는가?
막대한 희생이 따를 것을 알면서도 공세를 멈출 수 없어서다.
프랑스 장성들, 특히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하루라도 빨리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영토를 되찾고 싶어 했고, 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계속해서 전력을 불려 나가고 있는 연합군에게 암도 당하고 말 테니까.
게다가 당장으로선 적 참호를 돌파할 방법 또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것을 제외하곤 방법이 없었다.
전쟁 좋아하는 유럽인들에게조차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대전이란 것은 이제 막 몸으로 실감하기 시작한 생소한 것에 불과했으니.
그나마 중포의 대규모 포격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나 이마저도 중포 수가 요구량보다 턱없이 부족하다던가 미숙한 포병 교리 때문에 여기저기서 삑사리가 난다든가 하는 불상사를 겪고 있었다.
거기다 적군인 독일군은 우월한 장비와 전술을 앞세워 오려면 오든가 하는 식으로 프랑스군에게 소모전을 강요해 오는 상황.
결국, 부족한 만큼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무수한 시체 주머니들로 돌아왔다.
게다가 프랑스군 같은 경우, 일찌감치 카키색 군복의 영국군과 녹회색 군복의 독일군과 달리 여전히 파란색 상의와 붉은색 하의로 이루어진 화려한 군복을 입고 있었으니.
덕분에 프랑스 병사들은 적의 손쉬운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군복을 손수 흙먼지로 더럽히는 지경까지 왔다.
“제발 저놈의 군복 좀 교체합시다!”
“하지만 제정 시절부터 내려오는 프랑스 대육군의 전통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나서도 그런 소릴 할거요?!”
물론, 프랑스군 장성들도 여전히 사고방식이 19세기에 머물러 있던 보수적인 장성들을 제외하고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이미 전쟁 전부터 군복 교체를 건의해 왔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워낙 갑작스럽게 발발한 데다가 한두 벌도 아니고, 군복 전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프랑스군은 군복 문제 말고도 협상국이 차지한 바다를 되찾는 문제부터 기관단총에 대항하기 위한 신무기 개발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론 안 된다!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해!”
프랑스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선 어떻게든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반전시켜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얼마 안 가 위대한 프랑스가 무너지고 말 테니까.
* * *
“모두 자리에 앉게나.”
전황이 좋지 않은 탓인지 국경 전투 때보다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조제프 조프르의 목소리와 함께 마찬가지로 그리 밝지 못한 얼굴의 장성들과 참모들이 의자에 앉았다.
“현재 전황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것이다.”
“…….”
“우리는 이 전쟁에서 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말이지.”
조프르의 어두운 목소리에 프랑스인들은 계급을 가리지 않고 침음성을 흘렸다.
그 말대로 현재 프랑스의 상황은 도저히 좋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가믈랭, 동부전선의 상황은 어떤가?”
“좋지 않습니다. 세르비아가 무너지면서 발칸 전선의 협상국 병력이 동부전선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독일군이 동프로이센에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규모만 최소 야전군 4개 규모라 하더군요.”
국경 전투 때의 공훈으로 중령으로 진급한 모리스 가믈랭이 말했다.
“머지않아 동부전선에 독일 제국의 대공세가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군은 높은 확률로 이 공세를 막지 못할 것이다.
가믈랭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포슈 등과 함께 러시아군을 시찰하며 그들의 수준과 실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게다가 러시아 제국이 어디 멀쩡한 나라던가?
언제 내부에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나라다.
그렇기에 혁명하면 누구보다 전문가라 자부할 수 있던 프랑스는 이대로라면 너희 망한다며 차르와 러시아 정부에 자그마한 개혁이라도 할 것을 조언했지만, 우리의 니키는 언제나 그렇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가뜩이나 차르가 모스크바로 천도하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린 판국인데, 또다시 러시아 제국이 대패를 당하면 답이 없습니다.”
“동부전선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우리 프랑스군의 부담이 더욱 커질 테니.”
러시아가 완전히 무너지면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프랑스 또한 그날로 끝이고 말이다.
가뜩이나 벨기에 전선에서도 영국이 본격적으로 캐나다군과 인도군을 비롯한 자치령군과 식민지군을 투입하면서 영국군의 전력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참으로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엔 강에선 제대로 된 공세는커녕 고작 1km를 전진하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고.”
“그래도 페탱 장군이 베르됭 방어선을 잘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독일 제국이 미래인이라는 치트키를 쓴 바람에 원 역사처럼 교환비를 극적으로 줄이지는 못했지만, 프랑스군의 떠오르는 신예 페탱은 프랑스에 가장 뛰어난 명장답게 독일의 압박을 잘 견뎌 내고 있었다.
“방어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니 이러는 것 아닌가!”
그러나 공격적인 조프르는 페탱이 방어에만 급급하고 공세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불만 어린 표정으로 목청을 높일 뿐이었다.
“우리에겐 반전이 필요해. 작금의 답답한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반전이!”
이는 비단 조프르 개인의 의사만이 아니었다.
푸앵카레를 비롯한 프랑스 정부에서도 무언가를 보여 달라며 계속 그를 압박하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현재 동맹국의 상황은 빈말로도 도저히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프랑스부터가 본토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격받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영국군과 독일군, 얼마 전에 새롭게 참전한 포르투갈군, 콩고에 주둔 중이던 벨기에군이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공격 중이다.
극동에선 인도차이나가 공격받고 있고 누벨 칼레도니아 같은 태평양 식민지들도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해적 놈들과 그 사생아들에 의해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게다가 오대양 전역에서 협상국 해군이 공적에 목말라 프랑스군 수송선을 보이는 족족 사냥하고 있으니, 빵값 못하고 있는 해군에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고려 중이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다른 동맹국들의 상황은 또 어떤가?
오헝군을 상대로 용감히 잘 싸우던 세르비아는 베오그라드와 함께 무너졌고, 세르비아가 멸망하자 몬테네그로도 두 손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40만이 넘는 병력을 한 달도 안 되어 날려 버린 것도 모자라 발트함대가 전멸당한 것은 물론, 수도까지 공격당했다.
물론, 수도가 폭격당한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프랑스는 런던(베를린을 폭격하기엔 멀어서 어쩔 수 없었다)에 대신 복수를 했으니, 아무것도 못 한 채 징징거리는 러시아보단 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동맹국의 불리한 상황은 파리 시내에서 카이저와 함께 인형 화형식의 주인공으로 각광받고 있는 한스 폰 초이 후작의 시퍼런 견제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군을 늘리려 애쓰던 프랑스 외교관들의 발등에 도끼를 찍었다.
“이탈리아는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짜증 나지만 그렇네.”
당장 전쟁 전에 삼국동맹을 탈퇴하고 동맹국 편들기로 비밀 협약을 맺었던 이탈리아가 미적거리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이탈리아가 대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이탈리아 총리 조반니 졸리티는 기세를 몰아 중립을 목놓아 외치기 시작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탈리아의 여론은 여전히 전쟁에 참전해 미회복 영토를 되찾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네. 역사적 우파와 살란드라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졸리티는 머지않아 총리 자리에서 밀려나고, 주전파인 안토니오 살란드라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면 이탈리아도 더는 미적거리지 않고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릴 것이다.
“게다가 푸앵카레 대통령이 늙은 델카세를 몰래 콘스탄티니예로 보내 오스만 제국과 접촉 중이라고 하더군.”
“예? 오스만 제국은 친독‧친영 국가 아닙니까?”
처칠의 전함 NTR 사건 이후 친영파의 기세가 줄긴 했지만, 아직까진 그랬다.
게다가 한스 폰 초이는 전쟁을 부담스러워하는 오스만 제국의 심리를 꿰뚫어 그들에게 참전을 강요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 심지어 전쟁이 끝나면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때 빼앗긴 아르다한과 카르스까지 오스만 제국에 돌려줄 것을 약속까지 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오스만 제국이 가뜩이나 사이도 안 좋은 러시아 제국의 동맹인 프랑스 편으로 참전하려 할까?
가믈랭을 비롯한 프랑스 참모들은 친애하는 대통령의 생각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그게 무슨 헛짓인가 싶었지. 그러니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가능성이 있어 보이더군. 혹시 자네들 아흐메드 제말 파샤라고 들어 본 적 있나?”
“……누구요?”
“이스마일 엔베르 파샤, 메흐메트 탈라트 파샤와 함께 오스만 제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세 파샤 중 한 사람이라네.”
아무래도 세 파샤의 우두머리 격인 엔베르나 총리인 탈라트 파샤에 비해선 이름값이 떨어져 그다지 유명하진 않은 인물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우리 프랑스를 좋아하지.”
“허.”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원 역사에서도 프랑스 편으로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골수 친불파 인사였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길 이스마일 엔베르가 영국과 독일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예? 이스마일 엔베르라면 친독파의 대명사 같은 인물 아닙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네만…… 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아니겠나?”
솔직히 오스만 제국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여전히 가능성만 있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독일과 영국의 석유 생산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물론, 알제리의 프랑스, 리비아 이탈리아와 함께 영국의 젖줄인 수에즈를 끊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나 오스만을 확실히 끌어들이기 위해선 프랑스로서도 지금까지의 패배는 어디까지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며 연합군에게 크게 한 방 먹여 주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하지만 정치적 목적의 무리한 공세가 도리어 아군의 전황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물론, 나도 그 점은 유의하고 있다네. 가믈랭 중령. 그렇기에 우리는 준비를 충분히 한 후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격에 나서야 할 것일세.”
“모든 수단이라 하시면……?”
“지금 우리 화학자들이 조국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네.”
조프르의 음산한 목소리에 가믈랭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듯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 프랑스 장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화학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리 무능한 자라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 그건 헤이그 협약 위반 아닙니까? 정부에서도 동의한 겁니까?”
“할 걸세. 위대한 조국 프랑스가 다시 한번 적도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단 국제법을 어겼단 오명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다들 잘 알 테니.”
“오명 정도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용한 최루탄은 어디까지나 비살상 무기니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전 세계가, 아니 우리 후손들조차 우리를 악마라 비난할 것입니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장성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큰 목소리로 외쳤지만, 조프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조국 프랑스를 구하기 위한 길일세.”
이미 벨기에 침공을 결정한 그 날부터 조국 프랑스를 승리시키기 위해서라면 조프르는 그것이 설령 신이 용서하지 않을 일이라도 벌일 각오가 되어 있었으니까.
“사령관님, 극동에서 급보입니다. 하노이가 일본군에게 함락당했습니다!”
“!!!”
그리고 지금 프랑스는 찬 바게트 따뜻한 바게트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