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 아프리카의 사자 (2)
부우우웅──
1913년 12월 12일.
깊은 뱃고동 소리와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바다를 배경으로 레토포어베크와 독일군 장교들이 언제 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증원 병력이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항에 도착했다.
잿빛으로 가득한 서부전선과 달리 황금빛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이집트 땅을 처음으로 마주한 독일 병사들은 관광객들처럼 알렉산드리아 구경에 여념이 없었고, 이는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후, 여기가 이집트인가? 벌써부터 사막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군! 어이, 거기 나 사진 좀 찍어 주겠나?”
그중엔 훗날 독일을 대표하는 명장이 되는 여우를 닮은 젊은 소위도 있었다.
“어이, 에르빈. 이집트 관광은 나중에 하고 빨리 이리 와!”
병사들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던 소위는 동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위관부터 영관까지 장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장교들부터 새로 왔다고 신고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집트에 도착한 지 아직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조금은 여유를 줘도 좋으련만.
소위는 아쉬운 마음에 입을 쩝쩝거리며 서둘러 동료가 부른 곳으로 달려갔다.
“알베르트 케셀링(Albert Kesselring) 소위입니다. 6군 휘하 제2 바이에른 포병연대 소속으로 있었습니다.”
“포병 장교가 부족한 참이었는데, 잘되었군. 아프리카에 온 것을 환영하네. 다음!”
오랜 기다림 끝에 앞사람의 차례가 끝나자 마침내 소위의 차례가 되었다.
소위는 다른 장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례를 올리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에르빈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소위입니다! 서부전선에선 제124 보병연대 소속으로 있었습니다!”
“흠, 제124 보병연대면 제13군, 그러니까 뷔르템베르크 왕국군 휘하지? 그쪽 출신인가?”
“그렇습니다!”
젊은 롬멜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 듯 선임 장교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롬멜의 이력을 확인했다.
그리곤 이상한 것을 본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프리카로 오기 전에 부상을 당했군.”
“예, 아르덴에서 넓적다리를 다쳤습니다.”
“프랑스군 다섯 명이랑 홀로 싸우다가 말이지.”
“두 명은 잡았는데, 소대원들이 겁을 먹었는지 사격을 하지 않더군요. 덕분에 나머지 3명이랑 총검으로 싸웠는데 아쉽게도 졌습니다.”
아직도 그때 일에 미련이 남았는지 혀를 차는 롬멜.
물론, 그런 롬멜을 보는 선임 장교의 눈은 미친놈을 보는 것만 같은 눈이었지만.
용감한 병사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지나치게 용감한, 그것도 장교는 골칫덩어리가 되기 마련이니까.
“병사들을 이끄는 입장이니 지나치게 무모한 행동은 삼가게나. 어쨌든 아프리카에 온 것을 환영하네. 다음!”
경고와도 같은 조언과 함께 선임 장교가 다음 사람을 호명했다.
‘난 딱히 무모한 행동 같은 거 한 적 없는데……?’
물론 롬멜은 머리를 긁적일 뿐, 선임 장교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롬멜이란 인간은 무모함 그 자체로 이루어진 인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쨌든 롬멜을 비롯한 새로운 얼굴들이 새롭게 사자 무리에 합류하자 지난 전투의 공적과 더불어 수만에 달하는 병력을 통솔하는 사령관을 일개 소장으로 둘 수 없다는 이유하에 중장으로 진급한 레토포어베크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아직도 야전 병원에서 부상을 회복하느라 골골대고 있을 몬티라면 모를까 사냥꾼이 충분히 모였는데 사냥감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는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곧 1913년 말에 이집트 땅에서 그 깃발을 들어 올린 신생 아프리카 군단이 리비아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 * *
쾅! 콰광!!
“공격! 앞으로!”
“Los! Los! Los!”
화력을 그 누구보다 신봉하는 독일군답게 아프리카 군단의 반격 공세는 맹렬한 포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난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아스카리와 그런 아스카리에게 질 수 없다는 듯 투지로 불타오르는 독일 병사들은 장갑차를 비롯한 새로이 지원받은 장비들을 앞세우며 해안선을 따라 이탈리아군을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독일 놈들이 온다!”
“후, 후퇴! 후퇴에에에!!”
“도망치지 마라! 맞서 싸워! 싸우란 말이다!”
그리고 구초니와 장교들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무시하던 흑인 병사들 하나 제대로 못 이겼단 생각에 사기가 떨어질 때로 떨어진 이탈리아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것을 넘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등을 보이고 도망쳤다.
이럴 땐 보통 부사관들이나 경험 많은 선임 병사들이 젊은이들을 다독이겠지만, 그들 또한 오래전 아드와 전투와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는지 빌빌거리기는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저기 이탈리아 놈들이 도망칩니다. 족장!”
“모조리 죽여라. 저놈들을 죽일 때마다 독일인들이 주는 황금도 늘어나니!”
그러나 독일군에게 도망친다고 끝이 아니었다.
레토포어베크에게 고용된 베르베르인들이 열기와 모래로 가득한 사막 저편에서 말과 낙타를 탄 채 몰려와 도망치는 패잔병들의 목을 노렸으니까.
“베르베르 놈들이 몰려온다!”
“도망쳐!”
덕분에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베르베르인의 반란과 저항에 시달려 온 이탈리아 왕국군은 틈만 나면 자신들을 노리는 유목민들의 공격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베르베르인들이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군을 사정없이 두들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담당 일진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보급 열차가 당했다고?!”
“예, 아무래도 독일에 고용된 베르베르인들 짓으로 보입니다.”
“이 빌어먹을 사막 야만족 새끼들이 이젠 열차 강도질까지 하는군!”
그리고 베르베르인들 때문에 돌아 버릴 것만 같은 것은 도움은커녕 짐만 되는 파스타들 때문에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한 프랑스군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프랑스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베르베르인들과 숱하게 충돌을 일으켰고, 그 악역은 무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선 사막에서 베르베르인들과 드잡이질을 벌였던 오랜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부대들이 용맹하다지만 대다수가 보병인 이상, 말과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재빠르게 오가며 게릴라전을 벌이는 베르베르 기병을 상대하긴 어려웠으니까.
“구초니 사령관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이대로 가면 전선 유지는커녕 전선이 붕괴할 것은 자명한 사실.
결국, 보다 못한 프랑스 장교들은 구초니와 이탈리아 장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 드리고 싶진 않지만, 트리폴리로 후퇴해야 합니다.”
“후퇴라고? 망할 깜둥이들이나 모래나 퍼먹는 사막 유목민들에게 겁먹고 도망칠 순 없소!”
“그 유목민들의 공격으로 아군의 보급로가 끊기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 사막에서 보급이 끊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령관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Maledizione(제기랄)…….”
이마를 짚은 구초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래서야 이탈리아 왕국군 최악의 흑역사인 아드와 전투의 재래가 아닌가.
자신은 완전히 아드와 전투 당시 이탈리아군을 이끌었던 에리트레아 총독 오레스테 바라티에리 꼴이었고 말이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지.’
목표였던 이집트 땅은 밟아 보지도 못한 채 제 땅만 적에게 내주게 생겼으니까.
구초니 본인조차 부정하고 싶은 패배에 본국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생각만 하면 후퇴 같은 건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이탈리아군의 상황은 너무나도 암울했다.
해로에 이어 육로의 보급로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까.
이탈리아 전선의 병사들이야 목적의식이 뚜렷하니 카도르나의 무지성 돌격 명령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잃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북아프리카 전선의 병사들은 그런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국민감정이 최악인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싸우는 것과 영국령 이집트를 점령하기 위해 독일군과 싸우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병사들의 의욕이 높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당장 내 부하들보다 유색인종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식민지 부대가 더 투지가 높은 상황이니.’
구초니로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프랑스군조차 후퇴를 입에 담고 있다.
이대로는 답이 없으니, 트리폴리까지 물러나 재정비한 뒤 방어를 굳히든, 반격에 나서든 하자고 말이다.
그렇기에 구초니로서도 이 이상 고집을 피울 수도 없었다.
여기서 고집을 부리다가 프랑스군이 더는 못 해 먹겠다고 빠지기라도 했다간 그땐 정말 파국이니까.
“후……. 알겠소. 트리폴리까지 병력을 물리고 재정비에 들어갑시다.”
결국, 구초니는 프랑스인들의 말에 따라 후퇴를 결정했다.
무능한 주제에 똥별답게 고집은 세서 참모들이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지 않는 카도르나와 달리, 그나마 구초니는 말은 통하니 그와 같이 싸우는 프랑스군으로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 이젠 아예 트리폴리까지 내쫓겼다고!”
물론, 구초니가 기어코 트리폴리까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살란드라의 얼굴은 혈압으로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지만.
“……허,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움이 되는 놈들이 하나도 없군.”
그리고 그것은 조금이나마 이탈리아가 협상국의 발목을 잡아 주리라 기대했던 프랑스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이프르에서 다잡은 영국군을 놓친 이후, 프랑스에선 루이 바르투가 물러나고, 외무장관이었던 급진당 출신의 가스통 두메르그가 새로운 총리가 되며 정권이 바뀌었다.
푸앵카레야 총리와 달리 임기가 있는 대통령이니 계속 자리를 유지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프랑스인들이 새로운 전시 총리가 된 두메르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전쟁에서의 승리, 승리, 승리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승리의 여신은 여전히 프랑스에 미소를 지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두메르그가 보기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엿이나 먹으라고 외치며 프랑스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독일군이 토브룩과 벵가지를 넘어 아즈다비야를 점령했소. 사실상 리비아 동부가 협상국에게 넘어갔단 소리지. 이대로 간다면 얼마 안 가 트리폴리에 당도할 것이오.”
그리고 트리폴리마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면 그다음은 프랑스령 튀니지와 알제리다.
그야말로 프랑스로선 혹 떼려다 혹을 붙인 것만 같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손초에선 아직도 어떤 성과도 없습니까?”
“없소. 카도르나가 다시 한번 이손초를 공격하고 있지만, 결과는 지난번과 같으리라 생각하오.”
“망할 이탈리아 놈들……. 어떻게 러시아보다 더 못 싸울 수가 있지?”
“머리에 뇌가 아닌 마카로니로 가득 찬 파스타 놈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협상국의 발목을 잡으랬더니, 정작 우리 프랑스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장관들의 분노에 두메르그는 동감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동맹국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도움이 안 되는 놈들뿐이란 말인가.
독일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최근엔 적어도 밥값은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메르그로선 끔찍한 동맹 운에 욕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차라리 기대도 안 한 오스만이 더 나아 보일 지경이군.’
물론, 페르시아와 시나이 반도에서 죽을 쑤고 있는 것은 똑같았지만, 적어도 오스만은 그 존재만으로 협상국의 목에 걸린 가시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처칠이 해군을 동원해 다르다넬스 해협을 공격한다고 들었다.
두메르그가 봐도 위험이 큰 계획이었던 만큼 이참에 영국이 제 꾀에 넘어가 큰 피해를 입는 것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불리한 전황에 별 영향은 주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되오.”
곧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동계공세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미 나서지 말라고 해도 나섰다가 된통 깨진 러시아군이 이를 막을 수 없으리란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
전황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말이다.
“조프르를 교체합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타겟은 국경전투 이후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