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 갈리폴리
쾅! 콰광!!
“쏴라! 쏴!”
“상륙부대가 안전하게 해안가에 상륙할 수 있도록 오스만 해안 요새를 정리해야 한다!”
1913년 12월 15일.
튀르키예인들은 겔레볼루(Gelibolu)라 부르는 갈리폴리 반도의 오스만 제국군 해안 요새를 향해 영국 해군의 포격이 쏟아졌다.
“영국 놈들이 헛짓하는군.”
그러나 소장이란 원치 않았던 진급과 함께 갈리폴리 반도를 반드시 사수하라는 어려운 임무를 떠맡은 무스타파 케말과 오스만군은 영국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만반의 대비를 갖춘 상태였다.
사실 영국의 계획을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긴 했지만.
당장 처칠이 갈리폴리를 공격할 거라고 대놓고 광고를 한 상태였으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 시대엔 흔한 일이었다.
“이만하면 되었겠지. 전군 상륙을 개시하라!”
어쨌든 함포 끝에 오스만 해안 요새가 침묵하자 해안포와 오스만 방어 병력에 충분한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한 중동 원정군 사령관, 이안 해밀턴(Ian Standish Monteith Hamilton)이 마침내 상륙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수송선에서 보트와 함께 해수면으로 내려진 영국 병사들은 해안가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케말 파샤,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좋아. 포병대 사격을 개시하라!”
그러나 영국군의 예상과 달리 오스만 해안포들은 멀쩡했다.
케말이 미리 로얄 네이비의 포격을 피해 대포들과 방어 병력을 뒤로 물려 놓았기 때문이다.
오스만 해안포들이 고정형이 아닌, 이동형 곡사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쾅! 콰광! 쾅!!
“포격이다!”
“뭐야? 케밥 놈들 해안포는 정리되었을 거라며?!”
포탄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옆에 있던 보트들이 높다란 물보라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리자 영국군 병사들의 얼굴이 물보라만큼이나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그들이 살기 위해선 그저 앞을 향해 정신없이 노를 젓는 수 말곤 방법이 없었고, 영국군 보트들은 흔들리는 파도와 쏟아지는 포화에도 불구하고 갈리폴리 해안가에 거의 당도했다.
“파샤, 영국군이 상륙하고 있습니다!”
“후……. 모두 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잊어라. 우리가 무너지면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그리스와 불가리아, 영국의 노예가 되는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제군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닌 죽기 위해 싸워라!”
“옛! 파샤!”
타다다다다다다!!!
다시 한번 마음속에 각오를 새긴 오스만군이 모래사장에 발을 디딘 토미들을 향해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오스만 병사들은 침략자이자 자신들을 이 빌어먹을 전쟁에 끌어들인 영국군에게 자비 없이 총탄을 퍼부었고, 오스만 제국 최후의 명장 무스타파 케말은 부하들을 끊임없이 독려하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엄, 엄마!”
영국군 병사들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비명과 피를 흩뿌리며 해안가에 쓰러졌다.
몇몇 운 좋은 이들은 간신히 바위 뒤에 엄폐했지만, 그들도 겁에 질려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대장님, 총알이 떨어졌습니다!”
“모두 돌을 들어라! 우리 57연대는 서서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이곳을 지킨다!”
수천에 달하는 영국군 병사가 모래사장을 피로 물들이는 가운데 오스만군의 총알이 먼저 떨어졌다.
그러나 총알은 떨어졌을지라도 오스만군의 투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총알이 떨어지면 돌로, 돌이 떨어지면 총검과 군도를 들고 영국군을 향해 돌격했다.
원치 않았던 전쟁이지만, 오스만 제국군은 지금만큼은 불편한 기억과 감정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로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또 싸웠다.
“알라 후 아크바르!!!”
“또 온다!”
“막아! 막아!”
“망할, 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여길 공격하자고 한 거야?!”
영국군은 오스만 제국군의 저항을 뚫기는커녕 역으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독일제 기관총이 그들을 향해 끊임없이 불을 뿜었고, 고개를 들면 독일군이 직접 교육한 오스만 저격수들이 그들의 머리를 노렸으며 독일인들이 정성스레 건설한 요새들 또한 계속 영국군을 향해 포탄을 흩뿌렸다.
물론, 독일이라고 설마 자신들이 가르친 오스만군과 자신들이 건설한 요새가 동맹인 영국군을 괴롭힐 줄 상상이나 했겠는 만은.
“씨바아아아알!!”
멋모르고 갈리폴리에 끌려온 호주군과 뉴질랜드군, 통칭 안잭군(Australia and New Zealand Army Corps, ANZAC) 병사들의 울분 섞인 욕설이 갈리폴리 반도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런던에서 위스키를 즐기며 승전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처칠에게도 전해졌다.
* * *
“지금 몇 명이 죽었다고?”
“8, 8천 명입니다. 장관님. 상륙 개시 하루 만에 8천 명의 안 잭 군 병사들이 전사했습니다.”
처칠이 쓰고 있던 안경을 비서의 목소리만큼이나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분노를 담아 책상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콰왕!!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잘 익은 토마토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처칠의 고함에 비서가 겁에 질린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물론, 그의 죄라곤 그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고한 것과 상관이 윈스턴 처칠이란 괴팍한 인간이란 것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처칠은 지금 비서의 우울한 기분 따위를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 윈스턴 처칠의 계획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박살 나고 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튀르크 놈들 따위에게!
“보고에 따르면 오스만군의 저항이 너무 격렬하다고 합니다. 이대로 라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라고…….”
“젠장, 적은 오스만 제국이다. 이집트에서도, 페르시아에서도 제대로 못 싸우고 빌빌거리고 있는 유럽의 환자란 말이다!”
그런데 왜 갈리폴리만 이 꼴이 되었단 말인가.
처칠로선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직, 아직이다. 아직 방법은 있다. 오스만 놈들이 육지에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해군으로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하는 거야.”
그리고 콘스탄티니예를 점령한다.
그러면 흘린 피를 되돌릴 순 없더라도 목표는 달성할 수 있다.
처칠은 그리 희망을 품으며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다르다넬스 봉쇄 함대 사령관인 카든(Sackvile H. Carden) 제독이 이미 시도해 봤습니다만, 해협에 기뢰가 너무 많아서 진입할 수 없다고 합니다.”
“뭐?!”
“히익?!”
늙은 불독처럼 우거지상을 지으며 갑자기 소리를 지른 처칠에게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찍은 비서.
그러나 처칠은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엉덩이를 쓰다듬는 비서를 향해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그깟 기뢰가 무서워서 진입을 못 한다고? 기뢰가 문제면 소해정을 보내 기뢰를 제거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당장 카슨에게 전해. 멍청하게 있지 말고 움직이라고!”
“예, 옛! 장관님!”
비서가 헐레벌떡 나가자 처칠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처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물론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 * *
“갈리폴리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군요. 후작님.”
“처칠 그 머저리가 불쌍한 병사들만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애스퀴스 내각도 이젠 정말 얼마 못 가겠네요.”
어떻게든 정권을 유지하려던 애스퀴스 내각 최후의 발악이 결국, 갈리폴리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최악의 트롤러 윈스턴 갈리폴리 처칠.
성능 한번 욕이 나올 정도로 끝내준다.
자기가 몸담은 내각을 무너트리는 것은 물론, 그렇게 지키려고 애를 쓰던 영국의 주도권도 저 스스로 우리에게 넘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합시다.”
“예.”
어차피 이프르 때와 달리 영국이 갈리폴리에 잃는다 한들 전쟁의 흐름을 바꿀 위기까진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이집트를 지켜낸 이상 솔직히 오스만 제국은 게임체인저의 역할은 고사하고, 귀찮은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으니까.
기껏 신경 써서 개발한 중동 석유가 아깝긴 하지만, 해운이 막힌 것도 아니니 텍사스 석유와 미리 얻어 놓은 베네수엘라 석유도 있고, 페르시아 석유도 아직은 멀쩡하니 괜찮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플로에슈티 유전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한스 폰 초이 후작님과 율리우스 폰 발트타우젠(Julius Von Waldthausen) 대사님?”
“그렇소.”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죠.”
시종의 안내에 따라 나와 발트타우젠 대사는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왕좌에 앉은 늙은 국왕과 그와 대비되는 건장한 중년의 남성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폐하. 독일 제국 외무장관 한스 폰 초이 후작이라고 합니다.”
“먼 곳에서 왔는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후작. 자, 그럼 우리 루마니아에 무슨 제안을 가져왔는지 한번 들어 봅시다.”
* * *
카롤 1세(Carol I).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방계 중의 방계로 하필이면 나폴레옹이랑 재위 기간이 겹쳐서 나보에게 신명 나게 얻어맞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먼 친척이라는 누상촌 돗자리 장수나 다름없는 혈통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루마니아 왕이 되기 전까진 그리 넉넉지 못한 생활을 보내기도 했고.
그러나 한편으론 루마니아 공국의 지배자였던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가 귀족들의 반란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운 좋게 루마니아 공작이 된 이후엔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초대 루마니아 국왕의 즉위한 것과 더불어 루마니아의 근대화를 주도하면서 루마니아를 크게 발전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외교적으론 명실상부한 친독파이기도 하지.’
물론, 루마니아인들은 친불, 친러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롤 1세가 전제군주나 마찬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는 아직도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게다가 지금 루마니아의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인물은 오늘내일하는 카롤 1세가 아니라 그의 옆에 서 있는 조카 페르디난드 1세(Ferdinand I)니까.’
카롤 1세의 후계자이자 조카, 그리고 루마니아의 왕세자인 페르디난드 1세는 원 역사에서 숙부의 죽음 이후, 호엔촐레른 본가를 등지고 협상국 편으로 참전했을 정도로 루마니아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이다.
내가 며칠 전에 루마니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제 서야 국왕을 만나게 된 것도 이 양반이 손을 썼기 때문이고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직접 들었거든.’
페르디난드 1세의 아내이자 루마니아 왕세자비인 에든버러의 마리(Marie Alexandra Victoria)에게서 말이다.
페르디난드 1세가 신하들과 함께 내 방문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사이 나도 마냥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
참고로 에든버러의 마리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차남인 에든버러 공작 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알프레드의 딸이기에 조지5세&빌헬름 2세의 사촌, 그리고 루이제와 루이제와 결혼한 나에겐 당고모님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루마니아 내의 친영·친독파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지.’
다만, 이쪽도 루마니아의 이익을 중시하던 인물이라 영국과 독일이 싸웠던 원 역사에선 영국 편을 들어서 독일을 지지했던 어머니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마리야의 뒷목을 잡게 했지만.
여기서 웃긴 것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은 이름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정작 출신지는 러시아로 무려 알렉산드르 2세의 딸이었다는 거다.
정작 그녀가 고향인 러시아가 아닌 독일을 지지했음에도 독일 내에서 평판은 적국의 황녀란 점 때문에 미묘했지만.
어쨌든 나는 카롤 1세와 페르디난드 1세에게 반드시 루마니아의 참전을 받아 내야만 했다.
그리스는 여전히 어떻게든 콘스탄티니예 먹겠다고 머리를 들이박고 있고, 영국은 갈리폴리 하고 있으니 이젠 정말 발칸의 맹견인 불가리아를 푸는 것 말곤 밖에 답이 없었으니까.
당장 동부전선에서도 우리 황태자님과 루덴도르프가 루마니아의 참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느라 공세를 미루고 있었고 말이다.
그나마 폴란드군과 리투아니아군이 전선에 투입되긴 했지만, 아직은 그렇게 수가 많지 않고.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그러니 루마니아야.
이제 그만 튕기고 우리와 함께하자.
너희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