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 무너지는 제국 (2)
동계 공세는 계획대로 착실히 진행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최근엔 적인 독일군 장성들에게조차 동정심을 사고 있던 브루실로프는 반격 공세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차르가 여기저기 만들어 내는 구멍을 틀어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는 못 해 먹겠네, 진짜!”
“우릴 전선으로 보내고 싶으면 어디 네놈들부터 앞장서 보시지!”
“전쟁은 이제 싫어! 우릴 집으로 돌려보내 줘!”
결국, 전선에선 패배만을 거듭하는 전쟁에 질린 러시아 병사들이 장교들을 향해 항명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후방에서도 우리가 기차 태워 보낸 레닌이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심히 놀리며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응? 나는 뭘 하고 있냐고?
언제나의 일이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바르샤바로 돌아와 서류에 도장을 찍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언제나의 일 말이다.
다만, 오늘 만난 사람은 상당한 거물이었다.
“그럼, 우리 핀란드 청년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다음엔 헬싱키에서 만나겠습니다. 스톨베리 의원님.”
훗날 핀란드 초대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자 현재는 핀란드 자치의회 의원인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Kaarlo Juho Ståhlberg)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붙잡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번에 러시아의 패망을 느낀 핀란드 자치의회를 대표해 핀란드 독립에 대해 논의하기 바르샤바에 찾아왔다.
동시에 겸사겸사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병사들처럼 독립을 위해 독일군 밑에서 훈련받길 원하는 핀란드 자원병들을 우리에게 맡기고 말이다.
향후 러시아에 독립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핀란드 자치의회에도 무력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나로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이 핀란드 자원병들이 나중에 그 유명한 핀란드 예거가 되거든.’
그리고 이 핀란드 예거들은 훗날 핀란드 군부의 중추가 되는 만큼 전후 핀란드에 우리 독일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안 받아 줄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도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을 지휘하던 지휘관들 대부분이 핀란드 예거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핀란드 예거들은 우파 쪽에서 보낸 친구들이라서 핀란드 내 좌파를 대표하는 핀란드 사민당은 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말이다.
‘당장 스톨베리가 대표로 온 것도 좌파라 우파랑 누굴 보낼지 격한 말싸움 끝에 겨우 타협을 봐서 결정된 것이라니까.’
원 역사에서 적백내전이 일어나고도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식지 않았을 정도로 핀란드 좌파와 우파 사이의 골은 무척이나 깊다.
스톨베리는 우파이긴 해도, 온건하고 진보적인 인물이라 그나마 좌파가 그를 대표로 보내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도 핀란드 내전이 터져 버리면 우리도 곤란하단 말이지.’
무엇보다 내가 마르가레테 공주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
왜냐하면, 전후 세워지기로 협의를 본 핀란드 왕국의 차기 국왕으로 내가 공주의 남편인 카를 폰 헤센카셀 방백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왕자들은 다들 춥고 험한 핀란드 가기 싫다고 핀란드 왕위를 거절했거든.
참고로 빌헬름 2세도, 헤센카셀 방백도 이를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카를 폰 헤센카셀은 헤센카셀 가문의 가주가 아니라서(현재는 그의 형이 가주다) 마르가레테 공주와 급이 안 맞아 결혼할 때부터 말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카를 폰 헤센카셀이 핀란드 국왕 카를레 1세가 되면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니 카이저도 행복하고, 마르가르테 공주 부부도 행복하니 그야말로 만사 해결이다.
원 역사를 참고하긴 했지만, 마르가레테 공주에겐 많은 신세를 졌던 만큼 나로서도 은혜를 갚는 일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공주 부부가 핀란드에 가자마자 핀란드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는 핀란드 내전이 터져 버린다?
아무리 양심이 강철로 이루어진 나라도 얼굴을 못 든다.
물론, 핀란드 내전은 사민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한 것에 꼴 받은 핀란드 우파들이 자신들 기득권을 잃기 싫어서 러시아 임시정부에 의회 해산을 사주하는 바람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사민당 의원들을 압박해서 터진 것이기 때문에 원 역사와 같은 이유로 내전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러시아 임시정부고 나발이고 여기서 핀란드의 독립 여부는 우리 독일의 뜻에 달려 있었고, 이로 인해 다른 동유럽 독립 예정 국가들처럼 핀란드 또한 독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핀란드인 모두 아는 기정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를 환영하는 것은 우파뿐이고, 좌파는 일단 독립이 우선이니까 참고 있는 것에 가까운 만큼 좌우 갈등이 쉬이 해결되지 않으리란 것도 명백한 만큼 해결책을 찾긴 해야 했다.
‘우파는 우리가 목줄을 잡고 있으니, 일단 넘어간다 치고 핀란드 사민당은…… 독일 사민당에게 제어해보라고 해 볼까?’
나쁘진 않은 생각 같다.
독일 사민당은 로자 룩셈부르크 등 반전파가 당을 떠난 뒤에 더욱 정부에 협조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으니까.
물론, 시민들의 지지와 소중한 한 표를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그리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어차피 원래부터 사민당의 빨간물을 빼고(이미 제 손으로 그러곤 있지만) 과격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대되는 착하곤 온건한 사회주의의 얼굴마담으로 삼을 생각이었기도 했고.
“그럼, 그 건은 나중에 에베르트 당수와 이야기해 보도록 하고…….”
“한스!”
만년필을 톡톡 두들기며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갑작스러우면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리고 내 입에선 척수 반사적으로 피곤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아달베르트 왕자님, 또 무슨 일입니까.”
아달베르트 왕자, 아니 차기 폴란드 국왕 보이치에흐(Wojciech)께서 납시셨다.
나의 또 다른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 * *
아달베르트는 요즘 하루하루가 끔찍했다.
얼마 전 아버지와 한스가 자신을 차기 폴란드 국왕으로 내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왕위 같은 것에 전혀 관심 없던 아달베르트에겐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 이유란 것도 참으로 어이없었다.
몇 달 전에 결혼한 아달베르트의 왕자의 아내인 작센마이닝겐의 아델하이드가 작센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폴란드 왕위를 주장 중이었던 베틴 가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델하이드는 종가인 에른스트계고, 폴란드 왕위를 욕심내는 것은 거기서 갈라져 나온 알브레히트계였지만.
하여튼 아버지 카이저께선 폴란드의 왕은 반드시 제 아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작센 국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와의 긴 협상 끝에 베틴 가문 사람과 결혼한 자신을 차기 폴란드 왕으로 확정해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미룰걸!’
물론, 아내 아델하이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기에 결혼 자체에 불만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혼 때문에 관심도 없던 왕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게 다 빌어먹을 전쟁 때문이었다.
하필, 전쟁이 터지고 몇 주 안 지나서 자신이 전사했다고 오보가 나는 바람에 기겁한 어머니께서 빨리 결혼하라고 다그친 탓에 허겁지겁 결혼식을 올려야 했으니까.
‘게다가 폴란드엔 바다가 없잖아!’
세상에 해군이 없는 나라의 왕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인가 말인가.
평생 바다와 해군을 사랑해 온 아달베르트에겐 그야말로 악몽 같은 일이었다.
그의 우상인 리 제독도 이 끔찍한 처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이에 자신을 폴란드 왕으로 만드는 데 한몫한 한스 말하길,
“그러면 차기 폴란드 국왕으로서 피우수트스키 장군과 함께 리투아니아 병합 논의에 참여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라며 아주 기꺼운 얼굴로 자신에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문제를 떠넘겼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합쳐진다면 폴란드는 내륙국이 아닌 바다가 있는 나라가 되니까.
어차피 호엔촐레른 왕가가 보유 중인 옛 폴란드 레갈리아(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폴란드 레갈리아 대부분을 녹여 버려서 떼어 낸 보석밖에 안 남았지만)들을 물려준다고 했을 정도로 아버지 카이저의 뜻이 너무 확고해서 폴란드 왕위를 거절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안타나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원래 한 나라였지 않소. 나 또한 스스로를 폴란드-리투아니아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이고 말이오.”
“하지만 인제 와서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재건하자 한들 우리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이득이 없질 않습니까. 그러니 이 정도의 권리는 약속해 주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젠장,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이중왕국을 만들고 싶다고 아주 대놓고 말하는군! 왕자님, 왕자님도 뭐라고 좀 해 보십시오!”
하지만 이건 함정이었다.
피우수트스키와 리투아니아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후에 리투아니아의 초대 대통령이 되지만, 독재자로 타락한 안타나스 스메토나(Antanas Smetona)와의 도돌이표와 같은 말다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한스의 함정 말이다.
“더는 못 참겠다. 날 바다로 다시 보내 줘!”
“이미 늦었습니다. 왕자님.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시죠.”
“한스으으으으으!!”
두 사람의 반복되는 말다툼에 지친 아달베르트는 결국 폭발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한스에게 매달려 애원하다시피 빌었지만, 한스 이 나쁜 놈은 그저 ‘포기하면 편해’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왕자님이 계셔서 스메토나와 리투아니아인들도 강하게 나오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왕자비님도 열심히 폴란드, 리투아니아인들의 인망을 얻기 위해 돌아다니고 계시고요.”
다만, 이리 말하는 한스는 사실 폴란드-리투아니아 부활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하지만 피우수트스키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재건에 대한 집착이 생각보다 너무 강했고, 덩달아 한스도 귀찮게 했기에 차라리 한스는 아예 이참에 아달베르트 왕자를 끼워 넣어 짐 덩이를 떠넘기는 것은 물론, 폴란드 내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주기로 했다.
아달베르트 왕자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폴란드 내 독일의 영향력도 강해질 테니까.
게다가 마침 피우수트스키의 정적이자 파시즘 수준으로 강경한 폴란드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로만 드모프스키(Roman Stanisław Dmowsk)와 민족주의자들도 프랑스라는 썩은 줄을 잡은 탓에 알아서 치워진 상태 아닌가.
게다가 폴란드인들의 독일 내 구 폴란드 영토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주기 위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부를 할양해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폴란드인들도 지금 만큼은 독일에 협력적이었다.
물론, 폴란드가 조용하더라도 독일이 조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폴란드를 굳이 살려둘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이대로 집어삼키는 것도…….”
당장 전쟁의 승리가 다가오기 시작하니까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한 융커들이 폴란드와의 약속 따윈 어기고, 그냥 우리가 다 먹어도 되지 않냐며 카이저의 눈살마저 찌푸리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융커들만의 의견이었다.
당장 과거 3국 분할 시기라면 모를까 민족주의가 융성한 이 시대에 폴란드라는 절대 작지 않은 영토를 합병하려고 했다간 독일 제국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미 독일 내의 주류 의견이었으니까.
당장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세르비아 일부 영토를 먹었다고 온몸을 비틀고 있는데, 그 세르비아만큼이나 민족주의가 강한 폴란드?
사라예보 시즌 2를 찍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절로 고개가 저어질 일이다.
게다가 독일 국민 대다수 또한 자국 왕자가 폴란드 국왕이 되며 폴란드가 독일의 영향력에 들어오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의외이지만, 이 시대 독일 국민은 정치적으론 온건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당장 사민당이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와 점점 거리를 벌리는 이유 중 하나도 극우든 극좌든 극단적인 사상을 꺼리는 독일인들의 성향 때문이었고 말이다.
독일 사민당은 원래 표 얻으려고 착한 제국주의 소리까지 하는 애들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베르사유 조약과 대공황으로 인해 독일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독일인들도 덩달아 미치기 시작했지만.
군국주의야 뭐 프로이센 패시브 같은 거니 어쩔 수 없고.
물론, 아달베르트 왕자로선 그런 것들은 모르겠고, 바르샤바에서 벗어나 다시 군함들이 있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지만.
하지만 한스도, 아달베르트의 아버지인 빌헬름 2세도 그건 허락해 줄 수 없었다.
차기 국왕을 함부로 내보내기엔 요즘 바다는 무척이나 위험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