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 프라하 회담 (2)
로이드 조지 총리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안다.
아랍 반란.
흔히 맥마흔 선언(McMahon Declaration)이라 알려진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독립을 약속받은 샤리프 후세인과 아랍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대봉기를 일으킨 사건으로, 그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활약한 것으로 유명한 반란이다.
‘문제는 이걸 내가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엔 걸리는 게 너무 많단 말이지.’
왜 영국 얘들은 자꾸 우리에게 골치 아픈 일을 던져 주는 걸까?
처음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협상국의 구멍이 될 줄 알았는데, 요즘 보면 우리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오는 오헝이 영국보다 더 선녀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원 역사와 달리 영국이 아세톤 생산에 차질이 안 생겨서 유대인 국가 건설 지원 건은 이야기조차 안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한스 폰 초이가 설명하자면, 우선 아세톤은 영국에서 주로 포탄의 장약으로 사용하는 코르다이트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이다.
이 아세톤을 생산하려면 목재가 많이, 매우 많이 필요한데 독일과의 전쟁으로 영국의 목재 수입에 차질이 생겼고, 이때 유대인 화학자인 하임 바이츠만(Chaim Azriel Weizmann)이 이를 해결해 주면서 영국 정부는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다.
‘이게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이지.’
문제는 영국이 이미 맥마흔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일대에 아랍인들의 독립 국가를 세워 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에겐 그야말로 영국이 대놓고 이중 계약을 한 꼴.
하지만 영국의 뒤통수는 끝나지 않았다.
영국은 혐성의 여왕답게 처음부터 아랍인과의 약속이든 유대인과의 약속이든 그 어느 쪽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지역을 식민지로 나눠 먹자고 비밀 협정을 맺은 상태였거든.’
심지어 영국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오스만 제국에게도 동맹국 버리고 협상국 오면 팔레스타인을 보전해 주겠다고 하며 무려 사중 계약을 맺었다.
외교 판에서 10년 넘게 구른 나조차도 러일전쟁 때 이중 계약이 한계였거늘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의 단물만 쏙 빼고 자신의 이득만 챙긴 영국의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역시 혐성 그 자체인 영국을 따라가기엔 아직 먼 모양이다.
어쨌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랍 문제는 나에게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이 무턱대고 일을 저지른 끝에 중동이 어떤 꼴이 났는지 내 두 눈과 두 귀로 똑똑히 보고 들었으니까.
“제 생각에 아랍 문제에 대한 선택지는 총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샤리프 후세인의 요구를 들어줘 아랍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쟁 전처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오스만 제국의 중동 지배를 용인하는 것이다.
본래라면 아랍 독립이고 뭐고 그냥 후자를 선택했을 터였겠지만, 오스만이 적이 되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졌다.
젠장, 생각해 보니 이것도 영국 때문이네? 이 오스트리아-헝가리보다 못난 놈들 같으니라고.
‘다만, 오스만이 적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오스만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애초에 그건 오랫동안 오스만에 투자해 온 우리 독일의 노력과 돈, 시간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독일 제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오랜 시간 쌓아 온 영향력을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그냥 독일과 우리가 중동 일대를 나눠 먹으면 어떻겠습니까? 아랍인들에겐 일단 지원해 주겠다고 하고요. 전후 우리가 말을 바꾼다고 한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원 역사에서 사중 계약을 저지른 장본인 아니랄까 봐 참 혐성스러운 제안을 하는 로이드 조지.
물론 각하였다.
“중동지역은 우리 독일의 이권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괜히 그 지역에 끝없는 혼란을 부추기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군요.”
게다가 중동을 나눠 먹으면 우리가 힘들여 건설한 유전도 영국하고 나눠야 한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일을 해 주겠는가?
다만, 로이드 조지도 한번 말이나 꺼내 본 것인지 별다른 반응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인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이대로 아랍 반란을 용인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편이 가장 쉬운 길이겠지만 글쎄요.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군요.”
솔직히 우리 독일에 이득이 되는 쪽은 오스만이 계속 그 지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스만은 적국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우리 영향력이 짙은 나라였고, 종교적으로도 청년 튀르크 혁명 이후 세속주의에 가까워진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샤리프 후세인을 도와 아랍 독립 국가를 건설해 준다고 한들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 갈지가 의문이다.
왜냐하면, 중동전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만 제국 이후 아랍은 단 한 번도 하나로 뭉친 적이 없는, 각자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동맹과 배신을 손바닥 뒤집듯이 저지르는 이합집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샤리프 후세인이 목표인 통일 아랍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얼마 안 가 분열될 것이고,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아랍의 그 개판이 또다시 일어날 확률이 높은 만큼 검은 황금으로 가득한 중동 이권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 독일로선 꺼려지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진 것이 무함마드의 혈통이란 정통성뿐인 하심 가문의 힘으론 아라비아 깊숙한 곳에서 라이징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우드 가문을 막을 수 없어.’
리야드 토후국의 지배자 사우드 가문.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신이자 이슬람 극단주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와하비즘의 총본산이다.
당장 사우디아라비아가 돌아가는 꼴만 봐도 그 위험성은 답이 나오는 수준이고,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상당한 수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도 사우디 출신이거나 사우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계의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 싹을 밟아 놔야 한다.
하지만 하심 가문은 이미 1750년대에 사우드 가문에 한 차례 패배한 적이 있었던 데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또 털려서 아라비아의 지배권을 헌납했던 만큼 이들로는 사우드 가문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무기 등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미군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군처럼 될 확률이 굉장히 높았고.
‘결국은 오스만 제국밖에 없다는 소리인데…….’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사우드 가문과 와하브파가 1805년에 하심 가문을 밀어내고 메카와 메디나를 점령할 정도로 세력이 커진 것을 넘어 중동에서 온갖 깽판을 치자 아라비아의 평화를 위해 이들을 한번 짓밟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오스만이 몰락할 대로 몰락한 데다가 세계대전의 혼란까지 겹쳐서 사우드 가문도 다시 머리를 들고 확장을 꿈꾸는 중이었지만.
“일단, 이 문제는 지금으로선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독일에서도 아직 오스만 제국을 어찌할지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인 만큼, 그 답이 나온 뒤에야 방향을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샤리프 후세인이 원하는 대답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그거야 시간을 끌면 되는 일 아닙니까. 아라비아에 유력 가문이 하심 가문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잘 아는 사람들이 뭘 굳이 그런 걸 묻고 그러나.
“그리고 마침 오스만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콘스탄티니예 함락이 멀지 않았습니다.”
루마니아의 참전 덕에 성능 확실한 불가리아군이 콘스탄티니예 공략에 합류했으니, 오스만 제국으로서도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정보부의 보고에 따르면 갈리폴리 반도를 지키던 무스타파 케말 파샤와 오스만군도 고립되기 전에 아나톨리아로 후퇴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영국에게도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일 것이다.
당장 로이드 조지 총리와 영국인들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면 콘스탄티니예를 비롯한 오스만 제국의 유럽 영토는 누가 가져가는 것입니까?”
“그리스가 될 것 같습니다.”
“호오, 의외로군요. 불가리아의 성격상 그들이 가져가겠다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슈튀르크 총리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감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제2차 발칸전쟁이 터진 것도 불가리아의 영토욕 때문이었으니까.
다만, 이번엔 역시나 세르비아 영토를 소화하느라 불가리아도 정신이 없는 탓에 콘스탄티니예까지 먹을 여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베니젤로스가 불가리아 국왕 페르디난트 1세와 라도슬라보프 총리에게 제발 콘스탄티니예를 달라고 울고불고 애원해서 두 사람이 못 버티고 줬단 말이 있던데, 콘스탄티니예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집착을 보면 왠지 모르게 진실성이 느껴진다.
‘물론, 콘스탄티니예까지면 몰라도 괜히 메갈리 이데아 완성하겠다고 아나톨리아까지 진출하려고 하면 선 넘는 거지만.’
내가 동로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0세기에 그걸 보곤 싶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판도가 예쁘지 않다.
“하여튼, 콘스탄티니예까지 점령당하면 오스만 내부에서도 평화조약을 맺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어디까지나 본의 아니게 전쟁에 끼어든 것이니 말입니다.”
“크흠, 그건 그렇죠. 그럼 다음은 이번에 새로 해방된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대해서입니다만, 독일에선 이 두 나라를 하나로 합칠 예정이라고요?”
“예, 발트 왕국이란 이름으로 통합시킬 예정입니다. 리투아니아와 달리 두 나라 모두 발트 독일인들이 주축이 된 나라이니 말입니다.”
“국왕은 누구로 할 예정입니까?”
“빌헬름 2세 폐하의 오남인 오스카 왕자님입니다.”
“흐음? 아이텔 왕자나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가 아니라요?”
로이드 조지와 그레이 장관이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야 베틴 가문과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폴란드 왕위에 앉게 된 아달베르트 왕자는 그렇다 쳐도, 차남인 아이텔 왕자나 사남인 아우구스트 왕자를 두고 오남인 오스카 왕자가 먼저 거론되는 것은 조금 이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선 저희도 사정이 있어서요.”
나와 뷜로 총리의 한숨으로 가득한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나도 피곤한 사정이 있었다.
* * *
조금 시간을 돌려 1913년의 태양이 지고, 1914년의 태양이 새롭게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황실에 대파란이 발생했다.
당장 바르샤바에서 짧지만, 그렇기에 덧없이 소중한 휴가를 보내고 있던 나와 루이제가 빌헬름 2세의 소환에 무슨 일인지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포츠담으로 달려와야 했을 정도다.
“더는 못 참아. 우리 이혼해!”
그리고 포츠담에 도착한 우리 부부가 맞이한 것은 각자의 아내와 사랑과 전쟁을 찍고 있는 아이텔 왕자와 아우구스트 왕자였다.
“하아……. 왔구나. 얘들아.”
“장모님, 대체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
“보다시피 내 두 아들의 가정이 파탄 나는 중이란다.”
“예?!”
나와 루이제는 아우구스테 황후의 말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세한 사정을 듣자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것을 증명하듯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조피 언니가 바람을 피웠다고요?”
“그래. 본인도 인정했단다. 그…… 관계까지는 맺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아이텔 성격이 어떤지 알잖니.”
루이제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이텔 왕자의 부인인 올덴부르크 여공작 조피 샤를로테(Sophie Charlotte).
올덴부르크 대공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장녀로 아이텔 왕자와는 결혼 초기부터 삐걱대던 사이였다.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도(1906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 하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결혼은 자신들보다 부모들의 의향에 따른 것이었고, 빌헬름 2세의 아들 중 가장 군인적인 성격인 아이텔 왕자는 결혼 생활에 불충한 편이었으니.
게다가 전쟁이 터지고 아이텔 왕자가 전장으로 떠나자 조피 샤를로테의 외로움은 커져만 갔고, 이것이 결국 아내의 바람이란 결말로 끝이 난 모양이었다.
그걸 또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이텔 왕자에게 들켰고.
“나도 예전엔 빌헬름이 공무로 바쁜 것 때문에 외로움을 탄 적이 있으니 조피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이텔이 당장 이혼하겠다고 날뛰니 큰일이구나.”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의 이혼이 어디 쉽게 꺼낼 일도 아니었던 데다가 결혼이 여러모로 정치적 이유를 뛸 수밖에 없는 왕족의 이혼은 더욱 어려웠으니까.
“그래도 아이텔과 조피의 문제는 이해범주 안의 일이지. 아우구스트는…… 하, 입으로 꺼내기도 싫구나.”
그러나 황후의 한탄처럼 아이텔 왕자의 경우는 그나마 선녀였다.
“그 남자가 나보다 좋으면 그 남자랑 살아. 당장 이혼해 줄 테니까!”
“나, 나랑 게오르그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우린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우리 넷째 처남의 동성애 성향이 결국 파국을 불러일으켰다.
아이텔 왕자랑 달리 언젠가 칠 줄은 알았지만.
듣자 하니 휴가를 아내가 아닌 부관이자 좀 진한 관계의 친구인 한스 게오르크 폰 마켄젠(우리가 아는 마켄젠의 차남이다)과 같이 보내다가 걸렸다던가?
덕분에 아우구스트 왕자의 아내이자 아우구스테 황후가 가장 좋아하는 며느리였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알렉산드라 빅토리아는 대폭발해서 당장 이혼하겠다고 방방 날뛰는 중이었고, 황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나와 루이제는 배 속의 아이에게 도저히 보여 주지 못할 막장 드라마에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