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 러시아 혁명 (1)
“……하여 러시아 임시정부가 수립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바입니다!”
“와아아아아!!”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과 러시아 민중들이 들고일어난 지 이틀 후인 1914년 2월 12일.
러시아 제국의 수도, 페트로그라드는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혁명 세력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총사령관으로서 전선에 나가 있었고, 차르 대신 국정을 맡은 황후는 라스푸틴과 자식들을 데리고 안전한 모스크바에 가 있던 상태라 페트로그라드는 사실상 빈집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트로그라드를 지키는 수비대는 물론, 발트함대 수병들까지 혁명에 동참하자 모두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수도가 민중들에게 장악됐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914년 2월 15일.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등 사회주의 세력이 결성한 페트로그라드 노동자 병사 대표 ‘소비에트’와 자유주의자와 자본가 등 부르주아 위주로 결성된 두마 임시위원회의 협정으로 흔히 러시아 공화국이라 알려진 러시아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인 사회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이 왜 손을 잡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멘셰비키들이 보기에 러시아 제국은 낙후된 봉건국가였고,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라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전에 부르주아 혁명부터 일어나 자본주의 체제를 이룩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역겨운 놈들, 그렇다고 썩어 빠진 자본가 반동 놈들과 손을 잡아?”
물론, 레닌과 볼셰비키는 부르주아 혁명까진 동의해도 그들과는 같은 하늘에 설 수 없는 부르주아와 협력하는 멘셰비키의 행동에 대해 매우 불편해했지만.
하지만 레닌에겐 안타깝게도 지금 볼셰비키는 힘이 없었다.
볼셰비키는 다수파란 뜻과 달리 소수에 불과했고, 노동자들도 과격한 볼셰비키보단 멘셰비키를 더 지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요 간부진 대부분이 혁명 당시 페트로그라드에 없었다는 것이 뼈아프게 작용해 혁명에서도 그리 큰 역할을 하진 못한 상황.
결국, 레닌과 볼셰비키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마린스키 극장의 프리마발레리나이자 황족의 정부로 포탄 방산 비리를 일으켰던 마틸다 크셰신스카(Матильда Феликсовна Кшесинская)의 화려한 저택을 차지하고, 그 안에서 나중을 기약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분란을 일으키기엔 이르기도 했다.
곧 전선에서 군을 지휘하고 있는 니콜라이 2세의 귀에도 페트로그라드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질 테니까.
혁명은 이제야 막 시작되었을 뿐.
차르를 쓰러트리기 전엔 성공했다고 할 순 없었다.
* * *
“페트로그라드에서 뭐가 일어났다고?!”
니콜라이 2세는 방금 자신의 귀에 들려온 따끈따끈한 것을 넘어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은 보고에 경악 어린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혁…… 반란입니다. 폐하.”
순간 혁명이라고 말하려다가 얼굴이 용광로처럼 붉게 달아오른 차르의 분노가 두려워 말을 바꾼 러시아 장교.
물론, 혁명이나 반란이나 니콜라이 2세에겐 어차피 그게 그거였지만.
“반란, 반란이라니!”
그것도 하필이면 전쟁 중에, 더군다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에 반란이 일어났단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니콜라이 2세로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나마 자신이 전선으로 나오면서 황후와 아이들을 모스크바로 피신시켜 놓아서 망정이지, 만약 가족들이 폭도들에게 점거당한 페트로그라드에 있었다면 니콜라이 2세로선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물론, 민중들의 분노에 불이 붙은 이유가 중 하나가 황족이란 작자들이 수도를 떠나 자신들만 안전한 모스크바로 떠난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차르의 업보 그 자체였지만.
하지만, 지금 니콜라이 2세에겐 그딴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머릿속엔 서둘러 반란군으로부터 수도를 되찾겠단 생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건방진 역도 놈들! 브루실로프 사령관, 지금 당장 회군을 준비하시오. 내 지금 군대를 몰고 가서 놈들의 머리통을 모조리 날려 버리겠소!”
“폐하, 진정하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전쟁 중에 내전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 배신자들을 페트로그라드에 그냥 내버려 두잔 소리요?!”
차르의 호통에 브루실로프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고작 수도 한 곳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장 페트로그라드가 들고 일어난 이유가 이유였으니까.
브루실로프로선 앞에 독일군을 두고 뒤에서 분노한 러시아 민중 전체와 싸우고 싶진 않았다.
“적을 앞에 두고 같은 나라 사람끼리 피를 흘리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당장 무력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우선 대화를 시도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폐하, 피의 화요일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발 이번엔 소장의 의견에 따라 주십시오.”
브루실로프가 니콜라이 2세의 흑역사인 피의 화요일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말하자 니콜라이 2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나오긴 했어도, 니키라는 인간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대들의 생각도 브루실로프 사령관과 같소?”
“그렇습니다. 폐하.”
니콜라이 2세가 우물쭈물하며 다른 장성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사령부 내에 똑같은 대답이 일제히 울려 퍼졌다.
“후……. 그대들이 모두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네. 저들의 요구가 대체 무엇인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네.”
결국, 무수한 시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차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브루실로프와 장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차르의 급발진은 막았다.
‘이제 남은 것은 저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는 것뿐인데…….’
브루실로프는 제발 저들의 요구가 너무 과하지 않기를 바랬다.
만약 저 임시정부란 자들이 선을 넘으면 자신도 더는 차르를 말리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그때는 자신도 원하든 원치 않든 선택을 해야 하리라.
* * *
“지금 퇴위라고 말했소? 양위가 아니라 퇴위?”
“그렇습니다. 브루실로프 사령관. 우리는 더는 무능하고, 폭력적인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를 지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낡은 제국은 무너져야 하며 러시아의 모든 것은 러시아 민중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브루실로프의 소박한 바람은 뿔이 난 차르를 대신해 협상장에 들어서자마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처럼 깨지고 말았다.
‘차라리 짓궂은 농담이었으면 소원이 없겠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웬만하면 양위로 최대한 온건하게 사태를 마무리 짓고 싶어 했던 브루실로프로선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였다.
양위 정도라면 차르를 압박하든 해서 어떻게든 받아 낼 자신이 있었지만, 퇴위의 경우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키잔 소리나 다름없었던 만큼 니콜라이 2세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었으니까.
“……설마하니, 그걸 차르께서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라 믿소. 케렌스키 씨.”
“저 개인적으로도 조금 과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민중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사령관께서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임시정부의 대표로 나온 사회혁명당 출신의 법무장관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케렌스키(Алекса́ндр Фёдорович Ке́ренский)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며 브루실로프를 향해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게다가 솔직히 사령관께서도 차르를 쫓아내진 않고선 러시아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허, 지금 나더러 황제와 제국을 배신하란 소리요?”
“제가 알기로 사령관께선 차르보다 러시아에 충성을 바치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령관이 보시기에 러시아 제국이 계속 무능한 로마노프 왕가의 지배를 받는 것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당신들이 전쟁 중인 이 시기에 소위 혁명을 일으키며 적들에게 러시아 땅을 헌납하려는 것은 옳고?”
“그 반대입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러시아 제국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것입니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러시아 제국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사령관께서도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브루실로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복잡한 얼굴로 더는 할 말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아직은 넘어오지 않는가.”
“브루실로프 사령관만 임시정부에 가담한다면 차르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말입니다.”
브루실로프가 회담장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케렌스키와 임시정부 인사들이 아쉬움이 절절 흘러나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참에 브루실로프란 러시아 제국군의 기둥을 임시정부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 기회는 남아 있소.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하면 브루실로프도 현실을 깨닫겠지.”
협상이 파토 났으니, 이제 차르가 페트로그라드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 그 누구보다 지친 최전선의 병사들이 과연 몇이나 인민을 향해 또다시 총을 겨누라는 차르의 명령을 따를까?
이미 페트로그라드를 지키던 병사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두 눈으로 보았던 케렌스키는 고개를 저었다.
* * *
“황명이다! 반란군을 진압하고 수도를 되찾자!”
며칠 후.
전선을 유지할 최소한의 병력을 남겨 두고 급히 페트로그라드로 회군한 차르의 군대에 혁명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장교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달리, 케렌스키의 예상대로 러시아 병사들의 얼굴엔 전혀 싸울 의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젠장, 우릴 프리츠 놈들의 아가리에 밀어 넣을 때는 언제고, 이젠 우리 형제들끼리 죽고 죽이라니.”
“말이 반란 진압이지, 우리보고 피의 화요일을 또 벌이라는 거잖아.”
“더는 못해. 싸우려면 빌어먹을 차르가 직접 총을 들고 싸우라고 하든가.”
병사들 사이에서 그동안 꾹꾹 참아 왔던 불만과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장교들이 지금 뭣들 하는 거냐고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형제들이여, 우리와 함께합시다!”
“더는 차르의 명령 따위는 듣지 말고 인민의 편에 서서 자유와 평화를 되찾읍시다!”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들려오는 적위대와 무장한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툭, 투둑
곧 몇 분도 안 지나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바리케이드 너머로 넘어갔다.
장교들이 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역으로 병사들에게 역으로 살해당하거나 더는 자신들의 위에 서지 말라는 듯 말에서 끌어 내려져 린치를 당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혁명군 쪽에 투항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만 갔고, 심지어 누구보다 충성스러워야 할 근위대 병사들 더는 못하겠다는 듯 혁명군에 합류했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어째서 싸우지도 않고 적에게 항복하는 거야!”
믿었던 병사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자 니콜라이 2세의 동공과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떨려 왔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브루실로프는 그저 어두운 얼굴로 잿빛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브, 브루실로프 사령관.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폐하,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러시아가 더는 폐하를 따르지 않는데, 이 이상 무엇을 하겠습니까?”
니콜라이 2세는 순간 몸에 힘이 빠지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끝났다고? 자신이? 이 로마노프 왕조가?
“아니, 그럴 리 없다. 모스크바, 모스크바로 가자. 그곳엔 아직 나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폐하, 큰일이 났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차리친과 예카테린부르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의 마지막 희망은 타이밍 좋게 막사에 들이닥친 전령의 말에 순식간에 깨지고 말았다.
“모스크바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고? 모스크바의 군대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이냐!”
“모스크바 수비대는 반란에 합류했습니다.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 그리고 황녀님들께서도 크렘린에 억류되셨다고…….”
“허……허허…….”
페트로그라드에 이어 모스크바, 그리고 다른 모든 러시아의 도시가 자신을 버렸다는 소식에 니콜라이 2세는 실성한 사람처럼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브루실로프의 말이 맞았다.
끝났다.
모든 것이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