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 러시아 혁명 (3)
[러시아 임시정부,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쟁 지속 결정.] [동부전선의 끝이 다가오려면 아직 멀었는가?] [정부 관계자, 러시아 임시정부의 행동은 결국 최후의 발악에 불과하다 발언.]“러시아 임시정부는 여전히 평화회담에 대한 어떤 답도 주지 않고 있는가?”
“예, 이렇게 될 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평화회담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아무래도 러시아 임시정부는 처음부터 전쟁 중단 같은 건 고려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동부전선이 곧 끝나리란 기대로 물들었던 이들로선 실망스러운 일.
기어코 혁명이 터지고 차르가 쫓겨났단 소식에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던 프랑스와 그 동맹들엔 안도 그 자체였다.
물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안도였던 만큼 그쪽도 위기감이 안 드는 건 아니겠지만.
듣기론 미국과의 마찰로 인해 두메르그가 밀려나고, 알렉상드르 리보가 프랑스 총리가 된 후 일시 중단되었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재개될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니까.
“그래도 차르 일가를 처형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대공(헤센 대공, 알렉산드라 황후의 오빠)은 아직도 불안한지 얼른 누나와 여동생을 데려오라고 난리야.
내 말에 뷜로 총리가 골치 아픈 짐 덩이를 떠맡은 사람처럼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차르 일가 망명에 대해선 독일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일이었으니.
“테오발트, 차르 망명에 대한 여론은 어떤가?”
“독일인인 데다가 어떤 의미론 러시아를 무너트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알렉산드라 황후나 그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대공비, 그리고 어린아이일 뿐인 차르의 자녀들까진 괜찮다는 분위기입니다.”
총리의 말에 베트만홀베크 부총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차르는 안 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래. 적국의 황제가 독일에서 호의호식하는 꼴은 못 보겠다 이거지. 한스 군. 아무래도 차르는 독일에 잠깐 머무르게 했다가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네.”
“예, 우선 덴마크 정부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덴마크는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인 마리야 황태후의 친정인 데다가 중립국이라 차르에 대한 반감이 심하지 않아서 거절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막내 왕자님의 짝사랑 문제도 해결해야지. 적어도 카이저 폐하께선 긍정적이라 다행이구만. 모양새는 좀 안 좋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로마노프 가족이 보기엔 올가 여대공이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기분일 테니.
그래도 어떻게든 좋게좋게 말해 봐야지 어떡하겠나?
당장 요아힘이 하루에도 언제 올가가 오냐고 나에게 몇 번이고 전화하는 중인데.
덕분에 우리 프리데리케보다 요아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지경이라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다가 올가랑 결혼 못 하면 멘탈 나가서 원 역사처럼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건 아닌지 불안해질 지경이다.
“하여튼, 임시정부가 전쟁을 끝낼 의지만 있었어도 일이 한층 편해졌을 텐데 말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러시아 제국이 망했는데도 러시아인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입니다.”
뷜로 총리가 불만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베트만홀베크 부총리.
“다만, 임시정부의 행동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패전과 더불어 막대한 영토를 포기해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요.”
“부총리님의 말이 맞습니다. 물론 임시정부가 전쟁을 지속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엔 다른 이유도 있지만요.”
“다른 이유?”
“부르주아들 말입니다.”
현재 러시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자유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은 전쟁을 당장 멈추기보단 최대한 오래 끌기를 원했다.
그야 전쟁은 돈이 되니까.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자본가인 부르주아들은 계속 이득을 볼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그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전쟁 지속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무슨 빨간맛 마려운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것이 겉으론 자유로워 보이는 러시아 임시정부의 현실이었다.
임시정부의 부르주아들은 원한 것은 어디까지나 차르나 귀족을 치우고, 자신들이 권력을 잡는 정치 혁명이었지, 러시아 전체를 뒤바꾸는 진짜 혁명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이를 증명하듯 실제로 러시아 혁명 후에도 제정 시절보단 나아졌다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고, 토지도 여전히 지주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도 여전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전쟁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소비에트와 러시아 노동자들이 이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결국, 동부전선을 끝내기 위해선 우리가 후원하는 레닌이 권력을 잡는 수밖엔 없겠군.”
“예, 그리고 우린 하루빨리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써야겠죠.”
“못된 장난을 꾸미는 얼굴이구만.”
뷜로가 못 말리겠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못된 장난이라, 그래.
러시아 임시정부에는 확실히 짜증이 날 정도로 못된 장난일 것이다.
“러시아 임시정부가 전쟁을 원하면 질릴 정도로 실컷 시켜 줄 수밖에요.”
레닌에게도 연락해야겠다.
이참에 차르 일가를 데려오는 문제도 해결해 버릴 생각이니까.
* * *
“임시정부는 전쟁 지속 결정을 철회해라!”
“철회해라!”
“우리에게 약속한 빵과 평화는 어디로 갔는가!”
“갔는가!”
“후……. 아직도 저러고 있군.”
법무장관 겸 이번에 전쟁 지속이 결정됨에 따라 국방장관도 겸임하게 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는 러시아 임시정부가 청사로 삼은 겨울궁전 앞에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르는 노동자들의 모습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임시정부라고 어디 쉬운 생각으로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거늘.
물론, 전쟁 계속을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정부 내 다수를 차지하는 부르주아들이었지만, 케렌스키 또한 이대로 전쟁을 끝내면 안 된다는 생각은 그들과 같았다.
그러나 저 밖의 시위대는 러시아가 처한 자세한 상황도 모르면서 그저 단편적인 정보만을 듣고 무조건 임시정부 잘못이라며 자신들만을 탓하고 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당장 평화를 위해 독일에 그 많은 영토를 넘기면 과연 저들이 입을 다물까?”
케렌스키가 보기엔 아니었다.
그때 가면 저 시위대는 말을 바꿔 이번엔 자신들을 독일에 어머니 조국의 신체를 조각내서 팔아넘긴 패륜아에 매국노라 매도할 것이다.
케렌스키론 여러모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
자신들을 조금만 믿어 주면 좋을 텐데, 왜 그러질 못한단 말인가?
“고민이 많은 얼굴이군요. 케렌스키 장관.”
케렌스키가 안타까움에 고개를 저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코르닐로프 장군.”
라브르 게오르기예비치 코르닐로프(Лавр Гео́ргиевич Корни́лов).
차르가 퇴위한 후 러시아 임시정부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브루실로프의 직속 부하이자 군부의 유력자 중 하나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하하, 군부 장성이 국방장관을 찾아올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재 전선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가져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또 시위대입니까? 정말이지 페트로그라드가 언제 조용해질지 감도 안 오는군요.”
“상황이 나아지면 곧 진정될 것입니다.”
“후후, 과연 그럴까요?”
코르닐로프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케렌스키.
이에 코르닐로프가 말했다.
“저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
“블라디미르 레닌, 그 독일과 붙어먹은 배신자가 빵, 평화, 토지를 외치며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페트로그라드의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필요하다면 군의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이대로 그와 그 무리를 놔두면 차후 반드시 러시아와 임시정부에 큰 화가 될 것입니다. 그 전에 불온한 싹은 빠르고 확실하게 짓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르닐로프의 속삭임에 흔들리는 케렌스키의 눈동자.
하지만 케렌스키는 이내 유혹을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젓곤 코르닐로프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장군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사실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삼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할 순 없습니다. 이는 임시정부의 이념에 반하는 일이니까요.”
“하하, 장관의 뜻이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저 또한 조국의 어지러운 상황을 우려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죠.”
케렌스키의 선을 긋는 태도에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한발 물러서는 코르닐로프.
그러나 케렌스키를 향해 인사하고 등을 돌린 그의 얼굴은 케렌스키와 임시정부를 향한 조소와 비웃음, 그리고 야심으로 가득했다.
레닌에 이어 위태로운 임시정부를 무너트리고 러시아를 차지하려는 또 한 명의 야심가의 등장이오, 혼란스러운 러시아가 더욱 혼란으로 향하게 되는 도화선에 불이 붙은 순간이었다.
* * *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인민들을 압제로써 지배해 온 차리즘과 낡디낡은 봉건 제국은 무너졌고,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농노들은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한편, 그 시각 베를린 시내의 아파트에선 비밀스러운 모임에 참가한 이들이 러시아에 일어난 혁명에 순수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제정이 무너지고 들어선 것이 부르주아 정권인 것에 볼 수 있듯이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은 만큼 혁명이 완성되었다곤 할 수 없고 또 계속해야겠지만, 파리 코뮌 이래 인터내셔널이 거둔 가장 고무적인 성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럼 룩셈부르크 동지, 드디어 세계혁명의 봉화에 불이 붙은 것입니까?”
누군가의 두근거림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초조함과 긴장으로 가득한 목소리에 모임을 주도한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카를 리프크네히트, 세계 여성의 날을 만든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등과 함께 창설한 독일 공산당의 전신, 스파르타쿠스 연맹(Spartakusbund)의 일원들은 환희로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드디어 그들이 그토록 바라고 꿈꾸던 날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선지자 마르크스가 예언한 전 세계를 붉게 물들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때가 찾아온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커녕 자본주의 체제조차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러시아가 그 시작점이 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지만,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습니다.”
독일 제국 정부를 도와 전쟁에 협력하자는 사민당의 문을 박차고 나와 전쟁 반대를 외치고 군국주의와 카이저를 비판하다 투옥까지 되었지만(다만 재판이 흐지부지돼서 금방 풀려났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에 대한 열의는 아직 식지 않았다.
이번 러시아 혁명은 세계혁명을 시도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
이를 수포로 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독일 제국에서 혁명이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누군가의 힘없는 말처럼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원래부터 억지로 이어붙인 걸레짝이나 마찬가지였던 러시아와 달리 독일 제국은 굳건한 것을 넘어 유럽 제일의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거듭되는 승전 덕에 황실과 정부에 대한 지지는 점점 그 몸집을 불려 가고 있는 염전 사상과는 별개로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으니, 이런 상황에서 혁명으로 독일 제국을 뒤집어엎자는 것은 바위에 계란을 부딪히자는 정도가 아니었다.
“힘든 일인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세계혁명 또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당장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당시 유럽의 군주들은 혁명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같은 일을 독일 제국이라고 못할 것 같습니까?”
아니, 자신이 아는 독일 제국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러시아에 일어난 혁명이 다른 나라, 특히 말이 독립국이지 독일의 속국으로 전락한 동유럽 일대에 혁명의 불길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동지의 뜻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견고해진 제국을 대체 어떻게 무너트려야 한단 말입니까?”
“독일 제국이 견고하다 한들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튼튼한 건물은 이를 지탱하기 위한 지지대가 있는 법이고, 이 지지대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독일 제국을 견고하게 만드는 기둥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각오를 마친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한스 폰 초이를 없애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