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 혁명의 적
“한스 폰 초이를 없애자니……. 룩셈부르크 동지, 지금 그를 암살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에 웅성거리는 스파르타쿠스 연맹.
그야 그저 그런 정치인도 아니고, 외무장관이자 카이저의 사위를 암살하자는 이야기니, 아무리 혁명에 미친 스파르타쿠스 연맹이라도 동요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로자,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닙니까?”
로자 룩셈부르크와 최후까지 함께한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이번만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잘못하면 스파르타쿠스 연맹은 물론, 독일 내 사회주의 세력이 완전히 쓸려 나갈 수 있다.
한스 폰 초이란 이름엔 그만한 무게가 있었으니까.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대로 그는 독일 제국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오, 대전쟁에서 독일의 승리를 주도해 온 인물이니까.
당장 거리로 나가 베를리너들에게 한스 폰 초이가 무슨 일을 했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스 폰 초이 후작이 전쟁에서 뭘 했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독일 제국이 협상국을 주도하는 것도, 지금까지 별다른 잡음 없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한스 폰 초이 후작님 덕분이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독일인들은 카이저가 내정은 잘해도 외정, 특히 외교 면에서 형편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비스마르크 사후 그들이 본 것이 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한스 폰 초이가 나타난 이후 어떤가?
외교 못하던 독일 제국은 외교 잘하는 독일 제국이 되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당장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늘 결말이 좋지 않았던 영국과의 동맹이 성공했던 것도 한스 폰 초이 덕분 아닌가.
물론, 요즘 영국이 대사고를 자주 치긴 했지만, 그래도 영국과의 동맹이 없었으면 독일이 여기까지 오긴 어려웠단 것이 정설이었던 만큼 그 업적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한스 폰 초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에서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한스 폰 초이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자가 괜히 황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카이저의 사위가 된 게 아닙니다. 독일 제국 내에서 한스 폰 초이 위치는 이미 비스마르크 이상이에요.”
즉, 한스 폰 초이만 사라지면 굳건해 보이는 독일 제국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것이란 소리다.
“당장 비스마르크 시절의 독일과 그가 쫓겨난 이후의 독일을 비교해 보십시오.”
늙은 비스마르크가 젊은 빌헬름 2세에게 쫓겨날 때만 해도 그의 독선적인 태도에 질릴 대로 질린 대다수의 독일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이후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철혈재상을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했다.
비스마르크를 쫓아낸 카이저는 독일의 외교와 평판을 순식간에 박살 냈고, 독일은 유럽의 왕따가 되어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 상태가 지금까지 유지되었다면 아마도 프랑스의 자리엔 독일이 있었으리라.
“한스 폰 초이의 경우엔 더 심할 것입니다. 작금 독일의 위치는 그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고, 조정자인 그가 사라지면 절대로 유지될 수 없으니까요.”
당장 한스 폰 초이가 만든 작금의 외교 관계가 비스마르크 체제처럼 완전히 박살 날 것이다.
갈등을 중재할 사람이 없으니 폴란드 등 동유럽 신생국들과의 관계도 악화할 것이고, 영국과의 동맹도 흔들릴 것이다.
한스 폰 초이가 사라지면 그가 억누르고 있던 프로이센 융커들이 날뛰기 시작할 것이고, 독일은 외교를 못 하는 지경을 넘어 외교를 저 스스로 망치던 수준으로 돌아가 버릴 테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스 폰 초이가 사라지면 독일 제국이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는 사민당, 그 수정주의자들을 후원하는 등 사회주의자 간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혁명 때문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재 로자 룩셈부르크와 스파르타쿠스 연맹이 문을 박차고 나온 사민당은 현재 독일 제국의 승리를 위해 성내평화정치(Burgfriedenspolitik)란 이름으로 파업을 중단하고,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다.
이도 모자라 로자 룩셈부르크의 고향인 폴란드는 물론, 발트해 건너 핀란드에까지 베른슈타인의 그 역겨운 수정주의를 전염시키며 독일의 영향력을 퍼트리는 데 그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또 그놈의 한스 폰 초이가 있었다.
“투쟁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파업하지 않는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사민당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한스 폰 초이는 권력을 미끼로 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옳소!”
도저히 올바른 마르크스주의자라 볼 수 없는 사민당의 행태에 불만을 가진 스파르타쿠스 연맹 일원들이 룩셈부르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물론, 스스로 노동자 친화적이라고 여기는 한스가 들었다면 어이없단 표정을 짓겠지만.
실제로 한스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공장 한정이었지만, 주5일 8시간 노동을 칼같이 지키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휴가도 꼬박꼬박 챙겨 줘서 호평이 많았다.
DRR의 경우엔 아예 독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직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 연맹의 눈에는 한스는 분열을 선동하는 개자식이오, 독일판 스톨리핀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오히려 스톨리핀보다 질이 더 나빴다.
스톨리핀이 공포로 사회주의자들을 억눌렀다면 한스 폰 초이는 사람들을 교수대에 목을 매달지만 않을 뿐, 세 치 혀와 뱀과 같은 교활함을 이용해 사회주의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제국주의자와 반동들의 음모에 혁명은 동력을 잃을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스 폰 초이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룩셈부르크 동지의 말이 맞습니다!”
더 이상의 반대는 없었다.
음모의 불꽃은 피어올랐고, 스파르타쿠스 연맹은 목표를 정했다.
“혁명의 적, 한스 폰 초이에게 죽음을!”
“카이저의 개에게 죽음을!”
모든 것은 혁명을 위하여.
* * *
“요즘 독일 내 사회주의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더군.”
“갑자기 사람을 불러내더니 그 무슨 소리이십니까?”
“프로이센 비밀경찰이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했네.”
내 물음에 베트만홀베크 부총리가 안경을 쓰윽 올리며 말했다.
부총리는 비밀경찰을 총괄하는 내무부 장관도 겸직하고 있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러시아에 난리가 터지니 철모르는 것들 설쳐 대는 거지. 아직 무슨 짓을 꾸미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당분간은 바르샤바에 있지 말고 베를린에 있게나. 어차피 바르샤바의 일도 얼추 정리되어서 이젠 아랫사람들에게 맡겨도 될 정도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나야 루이제와 프리데리케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으니 좋았다.
물론, 바르샤바에서 같이 고생하고 있는 아달베르크 왕자와 외무청 직원들은 나도 데려가라고 절규하겠지만.
“그리고 폐하와 총리께도 한 말이지만, 경호도 배로 늘리게. 당장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많은 일을 누가 한단 말인가?”
무언가 눈이 짜게 식는 말을 들은 기분이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부총리도 내 몸을 걱정해서 하는 말일 테니까.
그나저나 사회주의자들이라.
아무래도 사민당에서 떨어져 나간 독립사민당이나 스파르타쿠스 연맹이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아 사고를 치려는 모양이다.
에베르트 당수와 베르슈타인 의원에게도 한번 알아보라고 연락을 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러시아 임시정부가 공세를 시작했다고?”
“예, 우리가 그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되었습니다.”
“체펠린 백작이 좋아하겠군. 요즘 비행선 안 쓴다고 자꾸 구시렁댔거든.”
“그 영감님이야 언제나 그렇죠. 어쨌든 카이저께서 허락을 내리시면 바로 시행할 예정입니다.”
“그래, 겁 없는 러시아 임시정부에 뜨거운 맛을 보여 주자고.”
“물론입니다.”
나와 베트만홀베크 총리는 서로를 향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어디 지지율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 봐라.
* * *
“전진! 전진! 자유 조국을 위해 독일군을 조금이라도 우리 영토에서 밀어내야 한다!”
1914년 3월 1일.
폭풍과도 같았던 2월이 끝남과 동시에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동부전선에선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젠장, 차르도 쫓겨났는데, 왜 이 빌어먹을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거야?”
“싸우라고 할 거면 신발이라도 주고 싸우라고 하던지!”
혁명이 전쟁을 끝내리라 기대했던 병사들의 얼굴엔 실망감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임시정부에 대한 분노만이 감돌았다.
어디 러시아 제국이 망했다고 없던 방한복이 하루아침에 생기고 신발이 없어 맨발로 눈밭을 거니는 일이 없어진다든가? 전혀 아니었다.
혁명이 터져 무능한 차르가 쫓겨나고, 러시아 제국이 사라졌다고 한들 러시아의 암울한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차라리 자그마한 승리라도 거뒀으면 모를까 여전히 독일군에게 얻어맞는 것은 똑같았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1914년이 되자 독일군은 병사들에게 신형 철모를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동부전선에서 전차를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쿠르르릉──
“씨발, 저게 뭐야?!”
“괴, 괴물이다!”
2호 전차 아이젠한스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러시아 대지를 질주하며 러시아군에 육박했다.
전차를 처음 보는 촌뜨기 이반들은 패닉에 빠진 채 도망치기 바빴다.
결국, 공세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바뀌지 않았고, 임시정부가 바라던 승리도 없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전선에서 패배가 계속되고 병사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게오르기 리보프와 케렌스키는 여전히 영토를 조금이라도 회복해 전후 영토 할양을 최소화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임시정부의 일각을 차지한 부르주아들 또한 전쟁을 멈추기보단 계속하길 원했다.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은가!”
“임시정부는 전쟁을 끝내겠단 약속을 지켜라!”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잃는 것보다 우리 아들과 아버지들이 집으로 돌아오길 원한다!”
가뜩이나 들끓던 러시아 민중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임시정부는 분명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든가?
그런데 왜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가?
왜 우리의 남편과 아들, 형제들은 집으로 돌아오질 못하고 있는가?
“이 모든 게 임시정부가 무능한 탓이다!”
계속되는 의문은 임시정부에 대한 분노로 뒤바뀌었고, 한때 러시아를 바꿀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임시정부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임시정부를 성토하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습니다.”
“브루실로프 사령관은 대체 뭘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큰 것을 요구했습니까? 조금이라도 전선을 밀어달라 한 게 다이지 않습니까?!”
“브루실로프 사령관은 충분한 보급물자 없이는 공세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군율 유지를 위해 사형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부하의 보고에 초조한 얼굴의 케렌스키는 눈을 찌푸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 총사령관 자리를 맡겼으면 그 정도는 알아서 대처해야지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말만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케렌스키는 이대로 브루실로프를 총사령관에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하! 케렌스키 국방장관은 내가 무슨 소설 속에 나오는 리 제독인 줄 아나 보군.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상황에 대체 어떻게 공세를 하라는 건가? 이러다간 나중엔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내라고 하겠어!”
물론, 최전방의 브루실로프도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케렌스키의 억지와 같은 공세 요구에 분통을 터트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애애애애애앵───!
“케렌스키 장관님, 얼른 피하십시오. 독일군의 공습입니다!”
“뭣?!”
그러나 케렌스키는 브루실로프와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독일 제국 항공대 신형 고타 폭격기와 큰 것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체펠린 백작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괴물, 체펠린 슈타켄(Zeppelin-Staaken) 폭격기를 동원해 페트로그라드를 폭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페트로그라드를 공포에 빠트렸던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순간이었고, 임시정부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도 덩달아 커지며 페트로그라드는 자유의 물결이 흘러넘쳤던 지난날들의 모습이 무색하게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정신없을 그때.
“제기랄, 레닌 동지 이게 맞는 겁니까?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니고, 우리의 손으로 차르를 독일로 빼돌리다니요!”
“트로츠키 동지, 이게 다 혁명을 위해서일세.”
레닌은 한스의 명령에 따라 차르 일가를 러시아에서 빼내 독일로 밀반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