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1
21화 : 한스 폰 초이
빅토리아 아델레이드가 사망하기 며칠 전.
“마르가레테. 네게 부탁이 있단다.”
빅토리아 황태후가 사랑하는 막내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지금부터 딸과의 약속을 깨야 한다는 죄책감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그런데도 이래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나는 한스에게 프리드리히쇼프 성과 내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이란다.”
“예? 어머니, 하지만······.”
“그래. 원래는 마르가레테 네가 물려받을 예정이었지.”
정말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표정에 마르가레테 공주가 고개를 숙였다.
섭섭하지 않다고는 못한다.
그만큼 마르가레테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프리드리히쇼프 성을 자신이 간직하길 원했으니까.
“이유를 들려주시겠어요?”
그렇기에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를.
“···난 한스, 그 아이를 높게 평가한단다. 그 아이라면 분명 독일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지. 하지만 인종이란 쇠사슬은 언제나 족쇄가 되어 그 아이의 앞길을 가로막을 거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보수적인 나라다.
황인종이 설 자리는 이 나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융커들이 한스를 가만히 두지 않겠지.’
독일은 프로이센에 의해 돌아가고, 프로이센은 융커에 의해 돌아간다.
그 융통성없는 군국주의자들은 언제고 기회만 되면 한스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다.
빅토리아 황태후로서는 그것을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한스에게 자신을 지킬 무기 정도는 주고 싶었다.
“난 한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단다. 마르가레테. 그러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이 성을 비롯한 약간의 재산밖에 없구나.”
“어머니···.”
“너에겐 정말 미안하구나. 마르가레테. 하지만 부디 내 말에 따라주길 바란다.”
마르가레테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이다.
마르가레테로선 아쉽긴 하지만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고 싶었다.
‘게다가 한스 그 아이라면 어머니의 유산을 함부로 다루지는 않을 테니까.’
“고맙구나. 마르가레테.”
“그럼 지금 바로 한스에게 알릴까요?”
“아니, 아니다. 유언장을 적어줄 테니 내 장례식이 끝난 직후, 모두의 앞에서 발표하거라.”
굳이?
마르가레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런 것은 깜짝 선물로 주어야 하는 법이란다.”
그리 말하는 어머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의 얼굴은 마치 그녀의 남동생처럼 짓궂은 악동처럼 보였다.
***
그리고 현재.
“하하하하! 축하한다. 한스. 이거 한순간에 부자가 된 것도 모자라 성까지 가지게 되었구나.”
“부탁이니 놀리지 말아 주세요. 폐하.”
에드워드 7세가 내 반응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쪽은 생각지도 못한 빅토리아 황태후의 ‘자그마한 선물’에 위가 쓰려올 지경이었는데 말이다.
“한스. 그리 부담스러워하지 말거라.”
“마르가레테 공주님. 제가 프리드리히쇼프 성을 물려받아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원래라면 마르가레테 공주가 물려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나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준 마르가레테 공주의 유산을 뺏은 것 같아 마음이 좀 안 좋다.
“나는 신경 쓰지 말렴. 그리고 한스, 너라면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을 아껴줄 테니까.”
‘제가 그 큰 저택을 물려받아서 대체 어디다 쓰라고요!’
독일의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베를린, 그리고 카이저가 있는 포츠담이었다.
나중이면 모를까 신궁전을 떠나서 머나먼 프리드리히쇼프에 사는 건 나에게 어떠한 이득도 없었다.
게다가 그런 크기의 저택이면 관리하는 것도 큰일이고 말이다.
“그러면 이러면 어떻겠나요.”
“황후님.”
내가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아우구스테 황후가 말했다.
“한스는 아직 미성년. 그러니 성인이 될 때까지만 프리드리히쇼프 성을 마르가레테 공주께서 맡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
오. 괜찮은 생각이다.
“황후 마마,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공주님. 어린 저에겐 저택을 관리하는 일은 아직 어렵습니다.”
“고맙구나. 한스. 그럼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프리드리히쇼프는 내가 소중히 관리하고 있으마.”
마르가레테 공주가 내심 기뻤는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머지 재산은···.”
“아, 그건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돈은 많은면 많을수록 좋다.
이것은 21세기에도 통하는 진리다.
“크흠, 축하한다. 한스.”
“폐하.”
“설마하니 어머니가 이런 ‘깜짝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뻘쭘한 얼굴로 다가온 빌헬름 2세가 여동생 마르가레테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르가레테. 나에겐 그래도 미리 말했어야지.”
“어머니가 큰 오라버니에겐 반드시 숨기라고 당부를 하셨어요. 그편이 재미있을 거라고요.”
“그래. 확실히 놀라긴 했다. 재미있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만.”
빌헬름 2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빅토리아 황태후가 내게 유산을 물려준 일을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애초에 마르가레테 공주가 물려받을 재산이었으니까.’
빌헬름 2세 입장에선 누가 물려받든 그게 그거일 거다.
“빌리. 넌 뭐 없느냐?”
“외숙부. 무슨 뜻입니까?”
에드워드 7세의 뜬금없는 소리에 빌헬름 2세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 배불뚝이 아저씨는 또 왜 이래?
“한스도 이제 나름 성을 가진 영주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그에 걸맞은 작위라도 내려주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예? 작위요?”
빌헬름 2세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망치로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로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그 ‘성’하고 내가 물려받은 ‘성’하고는 전혀 다른 거잖아!’
“작위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이르지 않나요?”
아우구스테 황후도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르다니 주긴 줄 생각이었구나.’
하긴 이래 봬도 궁에서 지내는 몸이다.
황제 부부로선 날 언제까지 평민인 채로 놔둘 순 없는 노릇이긴 하다.
“뭐, 마침 기회가 기회니 괜찮지 않으냐. 아니면 내가 줄까?”
“한스는 영국인도 아닌데 왜 외숙부가 나섭니까.”
에드워드 7세의 말에 발끈한 빌헬름 2세가 고래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설마 진짜 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한스에게 남작위를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아니 그냥 기사 작위 같은 거 줄줄 알았더니, 남작? 남작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거창하잖아!’
융커들이 칭키 따위가 무슨 독일 제국의 남작이냐고 난리 치는 꼴이 눈에 선하다.
이거 받아도 되는 걸까?
“호, 남작이라. 그 정도면 적당하지. 자자, 모두 주목하시게!”
에드워드 7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왕족들과 귀족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을 향했다.
설마 여기서 작위를 받으라고?
아무리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르잖아!
“외숙부님. 진심이십니까?”
빌헬름 2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이목이 한데 모인 상황.
빌헬름 2세로서도 이렇게 된 이상,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후우, 누가 검 좀 빌려주게.”
빌헬름 2세의 말에 근위대 장교 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검을 꺼내 카이 저에게 바쳤다.
무슨 상황인지 알면 아마 기겁할 거다.
“한스 초이. 무릎을 꿇거라.”
“···예. 폐하.”
나는 빌헬름 2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척이나 뻘쭘한 상황이었지만, 명령을 안 들을 순 없었다.
그러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사람들의 얼굴이 아주 가지각색으로 변했다.
대부분 경악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뷜로 총리는···.
저 멀리서 아예 넋이 나간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미안하긴 한데 이번엔 내 탓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나중에 뭐라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한스 초이. 그대는 짐과 독일 제국에 영원히 충성을 바치겠는가.”
“···예. 폐하.”
“또한 그대는 제국의 귀족으로서 그대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독일 제국의 황제이자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인 나 빌헬름 2세의 이름으로 그대 한스 초이에게 폰(von)을 사용할 권리와 크론베르크 남작의 작위를 수여한다.”
빌헬름 2세가 검 등으로 내 양쪽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카이저를 구한 동양인 소년인 한스 초이가 독일 제국의 한스 폰 초이 남작이 되는 순간이었다.
***
“저 녀석은 무슨 숨만 쉬면 일을 벌인단 말인가···!”
뷜로 총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했다.
또 다. 또 한스 초이가 사고를 쳤다.
아니, 이젠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기어코 카이저가 한스에게 귀족 작위까지 줘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황태후의 장례식장에서!
“최근엔 조용하더니 결국 대사고를 치고 말았어!”
물론 이게 한스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뷜로로선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건은 이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솔직히 뷜로도 내심 고소하긴 했다.
빌헬름 2세와 빅토리아 황태후의 화해?
그건 어디까지나 황실의 일이니 뷜로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한스가 황태후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때도 뷜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자 중엔 자기 애완동물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 정도가 뭐가 대수란 말인가.
하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이번 일은 독일 제국 전체에 크나큰 파란을 몰고 올 폭탄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뷜로는 카이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서둘러 빌헬름 2세에게 향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재수 없는 아시안 꼬맹이가 어머니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제국의 귀족까지 되다니.”
카이저에게 향하는 도중 장례식에 참석한 귀부인들과 한스의 뒷담화를 까고 있는 샤를로테 공주의 말에 뷜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저 여자가 남을 헐뜯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한스라는 게 문제였다.
‘내일이면 독일 상류층 전체가 오늘 일에 대해 알게 되겠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저 여자는 대체 생각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더더욱 발걸음이 조급해진 뷜로 총리는 한스에 대한 이야기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빌헬름 2세에게 다가갔다.
“폐하.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뷜로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이저는 올 것이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뷜로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내 한적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빌헬름 2세가 먼저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난 이럴 생각이 없었네.”
“폐하?”
“한스 녀석도 원하지 않았지. 그런 떨떠름한 얼굴로 작위를 수여 받은 건 그녀석이 아마 최초일걸세.”
“하아, 그럼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뷜로의 피곤이 절로 느껴지는 한숨에 카이저가 얼굴을 찡그렸다.
“왜긴 왜야. 망할 뚱보 에두아르트 때문이지!”
“에드워드 7세 폐하 말입니까?”
“외숙부가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네. 난 한스에게 벌써 작위를 줄 생각이 없었어.”
주더라도 성인이 될 때쯤에 주려고 했었지.
빌헬름 2세가 씩씩대며 덧붙였다.
“어쨌든 줄 생각은 있으셨군요.”
“흠흠. 나름대로 내 대자 같은 녀석이니 말일세.”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뷜로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 제국의 귀족들이, 특히 융커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융커들은 한스를 그저 방관했다.
한스가 궁에 들어온 것에 명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또 아직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이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변했다.
융커들은 황인종 따위가 자신들과 같은 선상에 서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스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흐음, 그러나 그들이 과연 그리 과격하게 나오겠나?”
“폐하?”
그런데 빌헬름 2세의 생각은 뷜로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물론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져 나오겠지. 그러나 이는 결국 나의 결정. 그들이 나에게 대놓게 반기를 들 거라곤 생각하지 않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건 조금 위기감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뷜로는 그리 말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 조용해질 것이네. 그리고 그동안 한스가 괜히 책잡힐 일만 안 하면 걱정할 일도 없지 않은가.”
뷜로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이저를 보고 생각했다.
‘그 한스가 가만히 있는다고?’
뷜로는 고개를 저었다.
조용하게 지내기는 이미 틀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