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 동맹국의 몰락 (1)
“지금이라도 협상국과의 평화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시칠리아 함락 바로 다음 날, 이탈리아 의회(Parlamento Italiano)에 모든 사람이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감히 꺼내지 못했던 말이 기어코 울려 퍼졌다.
“북아프리카는 망했습니다. 이손초에선 공세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오스트리아 방어선을 1cm도 밀지 못한 것은 물론 동부전선에서 온 독일군까지 집결하고 있어요. 게다가 이젠 시칠리아까지 레토포어베크에게 점령당하기까지…… 더는 답이 없습니다.”
“하, 하지만…….”
“이 전쟁은 패배했어요. 졸리티 전 총리의 말대로 우리 이탈리아는 이 망할 전쟁에 참전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겨우 리비아와 시칠리아를 빼앗긴 것뿐이질 않소. 본토가 아직 굳건한데 항복을 논하기엔 너무 이르오!”
“이르다고요? 늦었다는 것을 반대로 말한 것이겠죠! 아니면 이대로 러시아처럼 이탈리아가 조각조각 나는 꼴을 봐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아주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들 하셨군요!”
“뭐? 당신 말 다 했어?!”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물건들이 하늘을 날며 이탈리아 의회에 의원들의 고성과 주먹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를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다툼을 말릴 수 있는 사람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똥에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니콜라이 2세처럼 왕좌에서 쫓겨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중인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3세는 물론이고 국왕과 함께 이탈리아의 참전을 주도했던 안토니오 살란드라 총리도 비난을 피해 자택에 틀어박힌 채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미수복지를 회복하자며 그 누구보다 열광적으로 참전을 부르짖었던 이탈리아 국민들조차 끝까지 싸워야 한다, 늦기 전에 항복해야 한다, 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판국이다.
이탈리아 전역이 파벌과 사상, 지역으로 완전히 갈라져 서로의 멱살을 쥐고 술병을 머리에 내리치고 있는 판국에 의회의 다툼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개판이 따로 없군.”
그리고 이손초에서 부상을 당해 얼마 전에 의가사제대를 하고 로마로 돌아온 베니토 안드레아 아밀카레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는 난장판이 된 조국의 모습에 시원하게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이탈리아엔 이 혼잡한 나라를 이끌어 갈 초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물은 나라가 적국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데 자신의 왕좌 걱정이나 하는 중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도 무능하고 멍청해 빠진 의회의 정치인들도 아닐 것이다.
“역시 이 몸뿐인가……!”
젊은 무솔리니는 새하얀 이빨과 함께 야심을 드러내며 입꼬리를 깊이 올렸다.
그 미소엔 이탈리아의 혼란을 끝내고 이탈리아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야심이 서려 있었다.
자신이라고 걸레짝으로 만들긴 했지만, 기어코 러시아를 차지한 대머리 동지 블라디미르 레닌처럼 되지 못할 것은 없었으니까.
물론 사회주의 같은 실패한 이념 따위는 자신의 이탈리아에 필요 없을 테지만 말이다.
무솔리니가 한때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순적인 발언.
하지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무솔리니는 이미 세계대전의 봉화가 하늘 위로 쏘아졌을 때부터 프랑스에 뇌물을 받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전을 강하게 부르짖었고 사회주의와는 점점 거리를 벌려 가며 파시스트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당장은 이 빌어먹을 전쟁이 끝나는 게 우선이겠지.”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 끝나면 난세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난세는 자신 같은 야심가에겐 기회 그 자체.
이탈리아의 영광으로 이끌 초인, 탁월한 영도자(Duce Supremo)가 되길 꿈꾸는 젊은 무솔리니는 어서 빨리 그때가 찾아오길 바라며 매우 기쁜 마음으로 기대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외무장관님.”
내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한 혼란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을 때.
나는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사람과 드디어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쾰른 시의원 콘라트 아데나워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데나워 시의원님. 포츠담까지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 말에 나와의 만남이 가지는 가치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아데나워.
워낙 무뚝뚝한 얼굴이라 잘 티가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의원님의 고명한 명성은 베를린에서도 들었습니다. 서부전선으로 가는 물자가 집결하는 쾰른이 아무 문제도 없이 돌아가는 것의 절반은 의원님 덕분이라고요.”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고명하신 한스 폰 초이 장관님께서 왜 저 같은 일개 시의원을 보자고 하신 건지 슬슬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일개 시의원이라니요. 듣자 하니 차기 쾰른 시장 후보라고 라인란트 사람들의 입을 모아 이야기하던데요.”
원 역사에선 서독 초대 총리까지 되는 거물 중의 거물이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한 양반이네.’
독일 제국 시절에 정치 경력을 시작해 서독 시절까지 살아남아 기어코 독일의 지도자가 되니.
어쨌든 아데나워의 얼굴에 금칠도 적당히 해 주었으니 그의 말대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의원님께서도 얼마 전에 있었던 제 습격 사건에 대해선 들으셨을 겁니다.”
내가 입가의 미소를 지운 채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마찬가지로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데나워.
“예, 빨갱이들이 우리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을 자른 카이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더군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로자 룩셈부르크나 스파르타쿠스 연맹이 아닙니다. 그 뒤에 숨어 제 목숨을 노리고 제국을 흔들려고 한 자들이지요.”
“호오. 설마 프로이센 비밀경찰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이번 암살을 방조했다고?”
운을 띄우자마자 눈을 빛내며 내 의도를 단숨에 파악한 아데나워.
“프로이센 비밀경찰뿐만이 아닙니다. 어디 이번 일을 그들 혼자 했겠습니까? 더 큰 배후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데나워도 그 배후가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융커! 프로이센 융커들이군요! 드디어 그 구시대의 잔재들이 사고를 친 것이군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가능성이 가장 클 뿐이죠.”
“하! 선수들끼리 이러지 마시지요. 장관님께도 융커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니 저를 부르신 것 아닙니까. 장관님과 내각을 대신해 그들을 공격하라고요!”
“예. 물론 저 또한 위험한 역할이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가는 충분히…….”
“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로이센 융커 쓰레기들을 제 손으로 치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데나워가 아까 그 무뚝뚝한 사람은 어디 갔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프로이센이랑 융커를 얼마나 싫어하는 거야?
“언제 시작하실 겁니까? 말씀만 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워워, 진정하세요. 의원님. 이쪽은 아직 증거를 모으는 중입니다. 게다가 융커 전체와 전쟁을 벌일 생각도 없고요.”
“아, Divide et Impera(분열하여 통치하라)! 아쉬운 맛이 좀 있긴 해도 나쁘진 않지요. 확실히 융커 중에도 베트만홀베크 부총리처럼 쓸 만한 사람들도 있긴 하니. 그럼 전 그동안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라인란트를 비롯한 서부의 정치인들과 기업가들, 유력자들을 포섭해 주십시오.”
우리 편의 목소리를 늘리기 위해서 말이다.
자고로 정치란 목소리가 큰 쪽이 유리한 법이니까.
“하하하! 제 전문이군요. 맡겨 주십시오. 다들 융커 놈들이 다신 큰소리 못 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환호를 보낼 테니까요.”
하긴, 라인란트를 비롯한 독일 서부는 오랫동안 권력을 가진 융커들에게 착취당해서 쌓인 게 많으니.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장관님, 실례합니다. 외무청에서 보고가…….”
이야기를 마친 우리 두 사람은 첫 만남 때와 달리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진심 어린 웃음을 지으며 손을 맞잡을 때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아데나워에게 양해를 구하고 보고를 듣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이탈리아 내부에서 화평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보고라면 이미 들었는데요.”
아직은 그 목소리가 행동으로 옮겨질 만한 단계는 아니라 그쪽은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이탈리아가 아닙니다. 오스만 제국 일입니다.”
“오스만이요?”
“예, 잔더스 장군이 연락을 해 왔습니다.”
“잔더스 장군이라면 오스만에 억류된 그?”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수로 연락을 해 온 거지?
그런 의문을 목 안으로 삼킨 나는 보고서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흐음?”
그리고 그곳엔 뜻밖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 *
“오랜만이군. 케말 대령. 아니, 이젠 갈리폴리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 파샤라 불러야겠군.”
“과찬이십니다. 잔더스 장군님.”
“하하, 과찬은 무슨. 어쨌든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기쁘군. 내 언제나 자네가 크게 될 줄 알았거든.”
윈스턴 갈리폴리 처칠 경이 서부전선에서 뺑이를 치게 만든 장본인인 무스타파 케말은 코스탄티니예에서 부르사를 거쳐 앙카라까지 끌려온 잔더스 장군의 칭찬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갈리폴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쟁 영웅이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결국 바다를 건너 아나톨리아로 후퇴해야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의 조국은 한때 영화를 누렸던 수도마저 그리스인들에게 빼앗긴 채 그 존속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니까.
거기다 한때 친구였던 이스마일 엔베르마저 이제는 자신을 눈엣가시 같은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으니 그의 한숨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나를 만나러 온 건가? 옛이야기를 하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
잔더스 장군의 물음에 무스타파 케말은 여러모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는 듯 침묵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하기엔 조국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만큼, 케말은 결심을 굳히고 잔더스 장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파디샤를 은밀히 알현했습니다.”
“파디샤……?”
“예, 저에게 오스만이 전쟁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 달라는군요.”
되돌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기 전에 협상국과의 평화 교섭에 나서 오스만 제국을 존속시켜 달라고 말이다.
“이스마일 엔베르 파샤를 비롯한 세 파샤의 생각은 다른가 보군.”
“세 파샤는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이대로 항복하든, 아니면 항전 끝에 패배하든 그들이 권력자의 자리에서 내쫓기는 것은 필연이니까요.”
당장 튀르키예인들부터 코스탄티니예를 그리스인들에게 바친 세 파샤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자 파디샤 메흐메트 5세가 무스타파 케말을 은밀하게 별궁으로 부른 이유였다.
“소문으로 들었네. 엔베르가 최근…… 많이 과격해졌다지.”
그냥 과격한 수준이 아니었다.
최근 이스마일 엔베르는 패배로 인한 좌절, 무스타파 케말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편집증과 망상증이 심화돼 그가 쫓아낸 붉은 술탄 압뒬하미트 2세처럼 피를 흩뿌리고 있었으니까.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들은 물론 같은 튀르키예인들까지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모조리 ‘청소’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두 파샤도 다를 것은 없었다.
총리인 메흐메트 탈라트 파샤는 이대로 권력을 내려놓고 물러나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엔베르와 같이 반대자들을 총칼로 짓밟았고 프랑스와의 동맹을 추진한 장본인인 아흐메드 제말 파샤는 어둠의 친불파답게 죽어도 프랑스와 같이 죽겠다고 굴고 있었으니.
메흐메트 5세로선 명장이자 자신의 안위보다 오스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케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무스타파 케말 파샤는 파디샤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조속히 전쟁을 끝내 협상국에게 자비를 청하지 않으면 오스만 제국은 산산이 조각나 버리고 말 테니까.
그리고 그 조각을 주워 먹을 게 누구인지는 뻔했다.
그냥 남의 땅을 먹는데 좋은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 반란을 꿈꾸고 있는 아랍인들, 그리고 기어코 코스탄티니예를 점령하며 드라가시스의 한을 푼 그리스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조국과 민족이 외세의 노예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만 한다.
그 결과 코스탄티니예를 비롯한 유럽 영토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한때 친구였던 이스마일 엔베르에게 총을 겨누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튀르키예의 생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이야기는 잘 들었네.”
케말의 사정을 전부 이야기하자 그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잔더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엇을 원하는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