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 동맹국의 몰락 (4)
오스만 제국의 운명을 가를 무스타파 케말과 이스마일 엔베르 간의 내전이 끝났다.
패배한 이스마일 엔베르는 얼굴을 푹 숙인 채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고, 승리한 무스타파 케말은 조국의 대지에 흐르는 형제들의 피와 비참하게 몰락한 친구의 운명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에게 쉴 시간은 없었다.
오스만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무스타파 케말은 이제 오스만 제국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진 채 협상장으로 향해야 했으니까.
“케말 파샤, 부디 이 오스만 제국을 부탁하네.”
“예, 폐하. 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맡은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자신의 대에서 오스만 제국을 끝낼 수 없다는 듯 메흐메트 5세의 절실한 목소리에 케말은 그리 대답하며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다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잔더스 장군님.”
“자네가 약속을 지켰으니, 나도 약속을 지켜야지.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초이 장관에게 최대한 잘 말해 볼 테니.”
잔더스의 호의적인 미소에 케말은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믿을 만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든든한 법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한스 폰 초이 후작이 아니다.
그쪽은 독일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걱정되는 것은 오히려 다른 나라들, 특히 영국과 그리스다.’
오스만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인 영국은 독일과 달리, 오스만 제국과 직접 총을 맞대고 싸운 국가이자 애초에 신뢰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이었고, 기어코 코스탄티니예를 차지한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놈의 메갈리 이데아를 완성하겠다고 바다 건너 아나톨리아에까지 침을 흘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케말은 반드시 두 나라의 욕심으로부터 조국의 영토를 최대한 보전하겠단 각오를 다지고 협상 장소인 오스만 제국의 잃어버린 수도 코스탄티니예로 향했다.
* * *
“키프로스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리스의 정당한 영토입니다. 그러니 영국은 키프로스에 계속 눌러앉을 생각 말고 족히 키프로스를 반환하십시오!”
“키프로스는 1878년 베를린 회의 이후 우리 영국이 실질 지배하고 있는 섬입니다. 베니젤로스 총리. 그리고 우리 영국이 보기엔 키프로스와 그 주민들에겐 아직 우리 영국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주천지 복잡기괴라.
몇 번이고 마음에 되새기게 되는 진리 어린 명언이 다시금 실감 되는 모습에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오스만 제국과의 평화교섭을 위해 오랜만에 궁전에서 벗어나 코스탄티니예까지 찾아온 것은 좋았다.
그런데 베니젤로스와 그레이 이 인간들은 왜 오스만 제국의 항복을 받으러 와 놓곤 왜 지들끼리 싸우고 있는 걸까.
상식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 할 광경이다.
당장 반대쪽에 앉아 있는 미래의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도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으니 말 다 했다.
“자자, 두 사람 다 그쯤 합시다. 우린 오스만 제국의 항복을 받으러 온 것이지 키프로스가 누구 땅인지 논하러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문제는 나중에 영국과 그리스 두 나라가 알아서 처리하고 지금은 눈앞의 일부터 처리합시다.”
“쯧, 알겠습니다.”
“정말이지 여기저기 피곤한 일뿐이군요.”
보다 못해 한 소리 하자 그제야 떨어지는 베니젤로스와 그레이.
트러블메이커들이 조용해지자 내 눈동자는 이제 아무 말 없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케말에게 향했다.
“죄송합니다. 케말 파샤. 잠시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샜군요.”
“아, 아닙니다.”
“어쨌든 본론부터 말하자면 코스탄티니예와 키프로스를 포기하고, 에게해의 섬들을 그리스에 할양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케말은 고민하는 표정이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이미 이 정도는 각오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유럽 영토와 섬들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튀르키예계 주민들의 안전 보장은 물론, 이슬람 건축물과 오스만 제국의 유산 보호, 그리고 이슬람 유물의 양도를 약속해 주십시오.”
“쯧, 알겠소. 그 대신 오스만 제국도 아나톨리아 내 그리스계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시오.”
케말의 요구에 베니젤로스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리스가 순순하게 동의하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메갈리 이데아를 주장하며 아니톨리아까지 욕심내기엔 그리스의 역량이 부족했고, 베니젤로스도 매우 이를 잘 알았다.
당장 그리스 육군이 코스탄티니예를 불가리아군이 올 때까지 방어선에 계속 들이박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는 꼴을 두 눈 뜨고 보았을 테니까.
‘여기선 괜히 욕심내며 행패를 부려 우리와 척지는 것보단 제일 중요한 코스탄티니예를 확실하게 확보하는 게 그리스에는 더 이득이지.’
지금까지 그리스가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그리스가 딱히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 독일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니.
물론, 베니젤로스 정도가 되니까 말이 통한 거지 다른 이들이었으면 계속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당장 콘스탄티노스 국왕도 아나톨리아까지 진출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하는 얼굴이었으니까.
물론, 그가 튀르키예 독립전쟁 당시 여기 있는 케말에게 털려서 왕위에서 완전히 쫓겨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헛된 꿈이지만.
애초에 그리스는 해군은 오스만보다 강하다고 자신이 있게 말할 수 있겠으나 육군은 아니었으니.
“그럼…… 이걸로 된 겁니까?”
그리스가 영토 욕심부리리라 생각했던 케말이 살짝 허망한 얼굴로 물었다.
이에 이번엔 그레이 장관이 대답했다.
“예. 우리 영국 또한 예멘과 오만, 트루셜 스테이트(오늘날의 아랍 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와 페르시아에 대한 우리 영국의 이권만 보장받는다면 영토에 대해선 더는 별말 안 하겠습니다.”
그레이 장관의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무스타파 케말 파샤.
여기서 중동 이권은 우리 독일이 몽땅 먹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건 어디까지나 오스만 제국령에 속해 있는 지역, 그리고 오스만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아라비아반도 내륙이다.
그레이가 언급한 예멘 만과 페르시아만, 오만만에 인접한 이 해안가 국가들은 애초에 오스만 제국의 영토도 아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영국의 보호령이거나 영향권 아래 있던 지역들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레이 장관의 말은 결국 여기서부터 여기는 우리 거니까 손댈 생각 말라고 오스만뿐만 아니라 공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지역들에도 석유가 있는 만큼 욕심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께서 이미 집어삼킨 것을 어찌하겠나.
이미 주인이 있는 이상 억지로 뺏어 올 수도 없는 노릇인데.
“물론, 이것으로 완전히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독일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함께 논의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전쟁 전에 그랬듯이 우리를 대신해 중동을 관리할 오스만 제국을 독일의 충실한 노비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다시는 딴생각 품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친독을 주입해 주마. 크헤헤.
짝!
“자, 이야기는 얼추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서명을 해 볼까요?”
내가 손뼉 치며 말하자 그레이, 베니젤로스, 무스타파 케말 파샤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차례대로 서명했다.
참고로 배상금은 그냥 석유 및 자원 채굴권 같은 이권과 지분으로 받기로 했다.
어차피 전쟁 전에도 프랑스에게 돈을 빌리던 처지였던 오스만에 돈이 없다는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확실히 받아 낼 거다.
너흰 돈 많잖아.
쓱쓱──
그렇게 1914년 6월 10일.
오스만 제국이 공식적으로 협상국에 항복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러시아에 이은 동맹국의 네 번째 이탈자였다.
* * *
[오스만 제국, 협상국에 항복!] [오스만 제국의 신임 총리 무스타파 케말 파샤, 동맹국과 단교 선언. 프랑스와 이탈리아 맹비난!]“오스만 제국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했군요.”
그리고 한스 폰 초이는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기는커녕 오스만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유지해 주었다.
이유야 뻔하다.
유럽에 공화국 따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독일인들의 오만함, 그리고 오스만을 내세워 메소포타미아와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탐욕이다.
그 어느 것도 우드로 윌슨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쉽군요. 오스만과의 전쟁에 우리 미국이 이바지한 것이 없어 독일 제국의 제국주의적인 확장 행보를 그냥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하지만 이대로 독일 제국이 오스만 제국을 통해 아라비아반도에 잠들어 있는 석유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 미국의 경제와 이익에 반하는 일입니다.”
엘레노어 윌슨과 지난 5월에 결혼식을 올리며 대통령의 예비 사위에서 진짜 사위가 된 맥아두 재무장관이 말했다.
석유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영국이란 강력한 경쟁자에 위협받고 있는 미국 석유 산업이 독일이란 막강한 경쟁자를 맞이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를 책임지는 재무장관으로선 절대 바람직한 미래가 아니었다.
“예, 게다가 독일은 아제르바이잔을 영향권 안에 넣으며 바쿠 유전을 손에 넣은 것은 물론, 남미의 베네수엘라 석유에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질은 나쁘지만, 매장량만은 세계 최고 수준인 그 베네수엘라 석유 말입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멍청한 행동 때문에 말이다.
윌슨으로선 대체 왜 그딴 짓을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참으로 궁금할 지경이었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고 세계평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독일 군국주의자들의 끝을 모르는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방관할 수 없습니다.”
독일이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라비아 석유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머나먼 아라비아에까지 영향력을 뻗치기엔 힘이 부족한 상황.
그럼, 이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아랍인들을 이용합시다.”
“아랍인들 말입니까?”
“이번 평화협정의 결과로 아랍인들이 가진 독립의 꿈은 무산되었죠.”
그러니 자유를 사랑하는 미국이 전후 욕심 많은 유럽 제국주의자들 대신해 그들의 등을 살짝 밀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우드로 윌슨은 그리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검은 황금의 땅에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이었다.
* * *
“오스만 제국과의 드디어 전쟁이 끝났군.”
“우리는 오스만과 딱히 전투를 벌인 적은 없지만요.”
“그래, 대신 영국 친구들만 고생했지.”
한편 오스만의 항복 소식은 시칠리아의 레토포어베크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레토포어베크와 아프리카 군단이 휴식을 마치고 다시 진군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탈리아 전선 쪽은 준비가 되었다던가?”
“예, 사령관님. 마켄젠 사령관이 동부전선에서 병력을 이끌고 보이나 사령관과 합류했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공세를 시작할 것입니다.”
“좋아, 이탈리아 전선에서 공세가 시작되면 이탈리아의 이목이 그쪽으로 끌릴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독일군, 그리고 함께 온 불가리아군을 합쳐 백만에 가까운 병력이 로마를 향해 공세에 나서니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저 공세를 막지 못하면 이탈리아 왕국은 말 그대로 끝장이니.
아마 그 어느 때보다도 총력을 다해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후방 즉, 이탈리아 남부의 경계는 허술해지겠지.”
그리고 레토포어베크는 그 빈틈을 찔러 들어갈 것이다.
이탈리아로선 그야말로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을 테고.
이탈리아도 시칠리아섬에 있는 자신이 위협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정문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뒷마당까지 신경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고 아프리카 군단이 이탈리아 본토에 발을 딛는 순간 이탈리아 내부의 화평파들도 더는 참지 못할 것이다.
딱 한스 폰 초이 장관이 좋아하는 계획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예, 사령관님.”
레토포어베크는 부관과 참모들을 대동한 채 박사 밖으로 나갔다.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 태양 아래 도열해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레토포어베크에 집중되었다.
검은 피부를 지닌 아스카리도.
롬멜을 비롯한 하얀 피부를 지닌 독일군도.
그리고 남이탈리아 상륙에 함께하기로 한 그리스군과 영국군도 모두 레토포어베크가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게 말하진 않겠다. 제군들.”
그리고 레토포어베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린 이탈리아로 간다!”
“와아아아아아!!”
시칠리아의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아프리카 군단의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오스만에 이어 이탈리아 왕국을 끝장내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탈리아가 항복하면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프랑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