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 동맹국의 몰락 (5)
“드디어 지긋지긋한 방어전에서 벗어나 감히 제국의 영토를 탐낸 파스타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시간이 왔다. 전군 진격하라!”
“황제 폐하 만세! 합스부르크에 영광을!”
1914년 6월 15일.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회첸도르프 원수와 스베토자르 사령관의 명령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만리허 소총과 기관단총, 경기관총 등을 앞세우며 참호와 철조망을 넘어 이탈리아군을 향해 공세를 시작했다.
이제 싸울 적이 이탈리아 하나만 남은 오스트리아군은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긁어 와 끝장을 보겠다는 심정으로 전투에 나섰고, 이를 증명하듯 해안 방어용으로 사용하던 스코타 420mm 곡사포까지 끌고 와 이탈리아군을 맹포격 했다.
“젝트, 공세를 시작해라.”
“예, 마켄젠 사령관님.”
게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이번엔 친구들도 데려왔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와 차남의 끈끈해도 너무 끈끈한 우정 문제 탓에 최근 심기가 불편한 마켄젠 원수와 그의 영원한 콤비 한스 폰 젝트가 지휘하는 독일군, 그리고 불가리아군이 그들이었다.
“아오스타 공작님, 트렌티노 방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 트렌티노가 문제가 아니야! 독일군이 이손초 강을 건너고 있단 말이다!”
독일군은 그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이탈리아군이 절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치고받았던 험난한 북쪽의 알프스와 트렌티노 방면이 아닌, 완만한 언덕 지대인 이손초 강 방면으로 진격했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지대에 흐르는 이손초 강 유역은 오래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요새화가 이루어진 곳인 데다가 이탈리아 쪽으로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는 북쪽의 트렌티노 지역을 점령하는 게 더 중요했기에 이탈리아군도 방어로 일관해 온 곳.
쾅! 콰광!!
“전함이다! 연합군 전함이 우릴 포격한다!”
“레지아 마리나는 대체 뭘 하는 거야?!”
그러나 그것도 오늘부로 끝이었다.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레벨 업을 잔뜩 하고 온 마켄젠의 독일군은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아들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무자비하게 이탈리아군 방어선을 짓밟았으니까.
이를 막아야 할 이탈리아 해군은 시칠리아에서 연합군 해군에게 심하게 얻어맞고 로마 앞바다나 지키고 있는 판국이었고.
“허…….”
이탈리아에 있어선 원 역사의 카포레토 전투(제12차 이손초 전투)의 재림이었고, 이탈리아군 총사령관이자 이손초에서 수십만의 병력을 그저 돌격, 돌격, 돌격시킨 남자 루이지 카도르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적병으로 새까맣게 물든 전선의 모습에 허망한 탄식을 터트렸다.
그의 뇌는 이미 생각을 포기한 상태였고, 두 눈은 어딜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공허했다.
“사령관님, 트렌티노 방면에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손초 강을 건넌 독일군이 전차를 앞세워 우디네로 전진해 오고 있습니다. 아오스타 공작께서 지원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서 명령을!”
빗발치는 보고에 현실을 부정하고 있던 카도르나가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 자신의 손에 이탈리아 왕국의 운명이 걸려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친사촌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 그리고 이탈리아군에서 정말 몇 안 되는 유능한 장군인 불패의 원수,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Principe Emanuele Filiberto, Duca d’Aosta)마저 도움을 청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탈리아를 지키기 위해 각성할 때였고, 그의 몸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잠재력을 끌어 올려야 할 때였지만…….
“막, 막아라. 병사들을 계속 들이부어서라도 막아!”
안타깝게도 카도르나란 똥별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는 그저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애꿎은 병사들을 끊임없이 축차 투입하고 투입했을 뿐.
이탈리아를 구할 수 있는 신묘한 계책 같은 건 전혀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뻔했다.
“후퇴! 후퇴에에에!!”
전투가 시작된 이래 정체되어 있던 이탈리아 전선의 붕괴였다.
이탈리아군이 아무리 용감하게 싸운다 한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라면 모를까 독일 제국의 전쟁 기계들까지 막기엔 역부족이었으니까.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목전으로 다가오자 이탈리아 정치인들의 셈 또한 복잡해졌다.
* * *
“……더는 틀렸습니다. 이젠 항복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의회에서 누군가가 허탈하면서도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알다시피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하고 난 이후로 끊임없이 나오던 말이었지만,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 누구도 더는 그 말에 반박하거나 멱살을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스만이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협상국은 우리 이탈리아를 끝내기 위해 이손초 강을 넘어 우디네를 점령한 뒤, 피아베강으로 진격해 오고 있어요.”
독일군이 피아베강을 돌파하면 코앞에 있는 베네치아가 위험해진다.
“그리고 베네치아가 점령당하면 볼로냐, 피렌체, 이곳 로마까지 독일군이 순식간에 밀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야말로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알라리크의 이탈리아 침공이란 악몽이 20세기에 재현되는 순간.
“사코 디 로마를 일으켰던 란츠크네히트의 후손들이 오고 있습니다. 최악을 맞이하기 전에 오스만이 그랬던 것처럼 평화협상에 나서서 영토를 최대한 보전해야 해요!”
“하지만 국왕 폐하께선 아직도 항전을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랬다.
할아버지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처럼 리소르지멘토의 완전한 완성을 꿈꾸며 이탈리아를 전쟁에 끌어들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전선의 비보에도 불구하고 항복은 절대 불가하다며 항전을 외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복하면 자신의 왕좌가 날아가고 말 테니까.
최악의 경우 사보이아 왕가 자체가 로마노프처럼 나라에서 쫓겨나 왕좌도 잃고 나라도 잃은 떠돌이 신세가 될 테니까.
물론, 얼마 전에 항복한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5세는 왕좌를 지켰지만, 그와 이탈리아의 난쟁이 국왕과는 사정이 정반대였다.
메흐메트 5세는 이스마일 엔베르 때문에 억지로 전쟁 참전에 동의했던 데다가(그마저도 처칠 때문이었다) 오스만이 항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처음부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던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왕좌를 계속 지키고 있게 할 정도로 한스 폰 초이와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제는 호구가 아니었다.
물론 퇴위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와 달리 지금은 1914년이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장남인 움베르토는 10살짜리 꼬맹이였던지라 선택 자체가 불가했다.
사실상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왕위를 두고 협상국과 협상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결국 답은 ‘싸운다’ 단 하나뿐이었다.
물론, 일상이나 마찬가지던 주먹다짐도 잠시 멈추고 휴전할 정도로 이 답도 없는 전쟁에서 빨리 이탈하고 싶은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소문에 따르면 아예 국왕이 로마를 버리고 남부로 내려가 항전할 거란 소리도 있소.”
“사보이아 국왕이 남부에? 게르만 놈들에게 끌려 내려오기 전에 나폴리 사람들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싶은 모양이군.”
“살란드라 총리는 대체 이 와중에 뭘 하는 겁니까?”
“아직도 칩거 중이오. 어쩌면 연합군에게 붙잡히기 전에 해외로 도망치려고 짐을 싸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살란드라는 국왕이랑 같이 프랑스랑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를 이 X 같은 전쟁에 끌어들인 장본인 아니오.”
“에휴, 졸리티 총리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답 없는 국왕과 방안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가 된 총리에 의회에 모인 의원들과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지만.
“결국, 우리에게 선택지는 하나뿐이군요. 국왕을 끌어내립시다.”
“뭐, 뭐요?”
결국, 누군가가 속으로 모두가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기어코 내뱉었다.
“니티 장관, 그 무슨 망발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국왕 폐하를 끌어내리자니요!”
정치가들의 경악 어린 목소리에 국왕 퇴출을 입에 담은 장본인이자 급진당 출신의 이탈리아 왕국 최초의 공화주의자 총리, 그리고 현재는 농상부장관을 맡은 프란체스코 사베리오 니티(Francesco Saverio Nitti)가 콧방귀를 뀌었다.
“킁, 인제 와서 충신인 척하지 마시오. 어차피 다들 생각은 했을 것 아니오. 이대로 국왕이 저리 고집을 피우는 것을 그냥 두고 보느니, 오스만 제국이 이스마일 엔베르를 쳐낸 것처럼 국왕을 쳐 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이탈리아 정치인들과 의원들은 니티의 촌철살인 같은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이탈리아를 존속이라도 시키려면 난쟁이 국왕이랑 제 책임을 무기력하게 방기하고 있는 하루빨리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내는 게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오. 개인적으론 이참에 이탈리아에 공화국을 만들고 싶지만, 그건 힘들 것 같으니 왕실 인물 중 그나마 나은 사람을 앉혀야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미국이 들어왔긴 했지만, 협상국을 주도하는 기존의 빅3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차이는 있지만, 모두 군주제 국가였고 공화국엔 관심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나 또한 니티 장관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탈리아 왕국의 신하로서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국왕을 퇴위시키는 것뿐이에요.”
“오를란도 장관…….”
법무부 장관이자 원 역사에서 이탈리아 총리이자 빅4의 일원으로 파리 강화 회의에 참여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Vittorio Emanuele Orlando)까지 비티의 말에 동의하고 나서자 머뭇거렸던 정치인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오를란도 또한 살란드라처럼 전쟁에 찬성한(사실 여기 있는 정치인이 대부분이 그랬다) 인물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는 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지금의 이탈리아엔 평화가 필요했다.
자신들을 대신해 전범이란 이름의 희생 제물이 되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사람도 말이다.
“그럼, 어쩌실 겁니까?”
빨리 결정하라는 니티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의회에 모인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벌컥!
“큰, 큰일 났습니다! 시칠리아에 있던 레토포어베크와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 레조 칼라브리아(Reggio Calabria)에 상륙했습니다!”
“!!!”
그러나 그들에겐 처음부터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이탈리아의 몰락은 이미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왔으니까.
* * *
쾅! 쾅쾅!!
“아하하하하!! 모두 날 따라와라!”
“……저 인간 또 시작이네.”
“거기!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따라와라. 칼라브리아 따윈 후딱 점령해 버리고 마켄젠 영감님보다 우리가 먼저 로마의 정복자가 되는 거다!”
“네네, 알겠습니다. 롬멜 중위님”
카이저마리네와 로얄 네이비, 그리스 해군의 맹렬한 포격으로 레조 칼라브리아가 초토화되는 것을 배경으로 언제나처럼 미친 듯한 돌격을 선보이는 롬멜의 모습에 그를 뒤따라가던 독일 병사들과 아스카리 병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북아프리카에서나 여기서나 참으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한결같은 인간이다.
더 웃긴 건 저러고 전공은 무진장 얻어 낸다는 것이다.
당장 롬멜은 메시나에서 레조 칼라브리아로 건너오기 얼마 전엔 레토포어베크 사령관의 추천으로 푸르 르 메리트 훈장까지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지금도 롬멜과 그의 부대는 연합군의 대규모 기습 상륙작전에 혼비백산해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는 이탈리아군을 짓밟으며 혼자서 1개 사단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이것 참 믿음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또라이 같으면서도 여우처럼 교활한 상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삐이이이──!!
“Go! Go! Go!”
“갈리폴리 때도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롬멜의 부대가 여느 때처럼 앞에 놓인 것을 모조리 박살 내며 진격하는 사이, 너무나도 쉬운 상륙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영국군을 비롯한 후속 병력도 차례로 레조 칼라브리아에 상륙했다.
“중대장, 우리 이제 어떻게 합니까?”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다. 병장. 가서 백기나 가져와라.”
그리고 병력 대부분이 북쪽 이탈리아 전선에 가 있는 마당이라 싸우고 싶어도 병력이 없었던 이탈리아군은 연합군에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한숨 쉬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지키는 것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