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 동맹국의 몰락 (6)
“레토포어베크가 레조 칼라브리아를 점령했소. 살레르노와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의 도시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었단 뜻이지.”
“…….”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빈정거리는 니티의 목소리가 불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에 잠겨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암울한 분위기 이탈리아 의회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이탈리아답지 않게 머리를 싸매거나 착잡한 표정만을 지을 뿐, 더는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 침묵만을 유지했다.
레조 칼라브리아 상륙의 성공.
그것의 의미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뻔하고 또 끔찍했기 때문이다.
“곧 이곳 로마에 연합군이 밀어닥칠 것이오. 그리고 우린 이를 막을 병력도 없소. 우리 군대는 죄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독일군을 막기 위해 북쪽에 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북쪽의 전황도 좋지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독일 연합군은 독가스까지 동원해서 진격해 오고 있는데, 이탈리아군은 이에 대항할 방독면조차 부족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부에서 정부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남부인들이 분리 독립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정당도 사상도 달랐지만, 고집만 부리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끌어내고 협상국과 평화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니티와 함께 주장하고 있는 오를란도가 이어 말했다.
당장 이탈리아 북부와 이탈리아 남부의 관계는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여기 있는 모두가 알 정도로 최악 그 자체다.
특히 이탈리아 통일 당시 남이탈리아는 주세페 가리발디와 그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에 의해 강제로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인 사르데냐-피에몬테에 합병되었기에 아직도 분리 독립을 외치는 자들이 존재했다.
오를란도의 주장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가 이탈리아 왕국이 리소르지멘토 이전으로 돌아가 버리리란 우려의 표정이 모두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미 졸리티 전 총리와 로마 수비군이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의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채 어물쩍거리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니티와 오를란도가 졸리티 전 총리를 찾아가 자신들끼리 일을 진행한 결과였다.
“하지만 국왕을 퇴위시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전선에서 군대가 돌아와 국왕을 복위시킨다면…….”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카도르나 그 무능한 작자는 걱정할 필요조차 없고, 아오스타 공작이 우리 편에 서기로 했으니.”
“아, 아오스타 공작께서 말이오?”
그 말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진 모르지만, 피아베강에서 독일군을 저지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도 국왕 퇴위와 휴전에 동의했다.
물론, 그가 무엇을 노리고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낼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더 늦기 전에, 그리고 이탈리아가 쪼개지기 전에 국왕을 끌어내리고 이 전쟁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프랑스는 전쟁에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기적으로 굴었던 이탈리아가 탈주하는 것에 욕이란 욕은 다 내뱉겠지만, 미안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이탈리아는 제 목숨을 챙기는 것도 간당간당했으니까.
“혹시 아직도 반대하는 사람 있소?”
대답은 없었다.
이에 누가 공화주의자 아니랄까 봐 어쩐지 신난 표정인 니티가 외쳤다.
“그럼, 뭘 기다리고 있소? 궁전으로 갑시다!”
* * *
주화파들의 행동은 빨랐다.
이탈리아 정치인들과 의회의 의원들이 국왕 퇴임에 침묵으로 동의하자 곧 졸리티와 니티, 오를란도가 포섭한 로마 수비군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있는 퀴리날레 궁(Palazzo del Quirinale)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쿠데타였지만, 로마에 있는 그 누구도 이를 가로막지 않았다.
“무능한 국왕을 내쫓자!”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
오히려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합류하면 합류했지.
그만큼 이탈리아인들은 성과없는 전쟁에 지쳐 있었고, 그만큼 무의미한 전쟁을 고집하고 있는 난쟁이 국왕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전쟁을 가장 원했고,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며 이탈리아를 전쟁으로 끌어들였던 장본인들이 다름 아닌 이탈리아 국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이탈리아는 패배했고, 누군가는 이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국민이 생각하기에 그 책임은 나라의 국가원수인 국왕이 져야 했고, 자택에 틀어박혀 있다가 문을 박차고 쳐들어온 병사들에게 체포된 살란드라가 져야 했다.
국가 지도자란 이럴 때 국민을 대신해 책임을 지라고 존재하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폐하, 로마 수비군이 배신했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이, 이 반역자들이!”
한편, 의회가 기어코 자신을 쳐 내기 위해 움직였다는 소식은 레토포어베크와 연합군이 기어코 아프리카에 발을 디뎠단 보고에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귀에도 전해졌다.
당장 궁전 밖에서 분노로 가득 찬 함성이 들려오고 있는데,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로마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겐 화낼 시간 따윈 없었다.
쿠데타군은 자신을 왕좌에서 끌어내기 위해 궁전으로 달려오고 있고, 근위대가 이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이는 얼마 안 가 뚫리고 말 테니까.
그리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자신은 딸의 결혼식을 기다리며 훗날 전 유럽에 덴마크산 로마노프 우유를 공급할 꿈을 꾸고 있는 차르처럼 되고 말겠지.
‘그것만은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대로 왕위에서 물러날 순 없었다.
이딴 식으로 추하게 할아버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만들어 낸 이탈리아 왕국을 말아먹을 순 없었다.
“교황, 교황 성하께 중재를 부탁드리자. 그분의 말이라면 반역자들도 어쩌지 못하고 멈출 것이다.”
제257대 교황 비오 10세(Pius X).
검소하고 고결한 인품으로 전 세계 가톨릭교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라면 쿠데타군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폐하, 교황 성하께선 이미 의회와 폐하의 퇴위에 지지 의사를 표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너무나도 냉혹했다.
비오 10세는 결국 실패했지만, 대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정도로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오죽하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기 위해 자국으로 돌아가는 신학생들에게 ‘그대들이 고백하는 신앙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애긍심과 동정심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을 정도일까.
그런 교황이 평화를 위해 전쟁을 끝내려는 의회의 반란을 지지하면 지지했지, 이탈리아를 전쟁에 빠트린 장본인 중 하나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지지할 리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비오 10세는 가톨릭 전통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불릴 정도로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인물.
교황을 바티칸의 죄수로 만들어 베드로 대성당에 처박히게 만들고 예수회 추방과 라이시테로 가톨릭과 교황의 권위에 빅엿을 날린 프랑스와 손을 잡은 사보이아 국왕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이대로 반란군에 손에 붙잡혀 차르처럼 끌려 내려오란…….”
콰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들기는 소리치고 있을 때 궁전의 정문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정문이 뚫렸다!”
“서둘러 국왕을 체포하라!”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함성과 거센 목소리.
근위대는 백기를 휘날리며 항복했고, 퀴리날레 궁의 정원은 쿠데타군과 로마 시민들의 군홧발로 짓밟혔다.
“아, 안 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이마가 훤히 드러난 머리를 붙잡고 절규했다.
이제 더는 도망갈 곳도 없다.
난쟁이 국왕의 32년 빠른 마지막이었다.
* * *
레토포어베크의 이탈리아 본토 상륙이 잘 먹혀도 너무 잘 먹힌 모양이다.
이렇게 빨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퇴위당하고 이탈리아가 두 손을 들고 살려만 달라고 외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덕분에 난 베를린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로마를 향해 달려와야만 했다.
과연, 후퇴할 때 가장 용감해지는 게 이탈리아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운이 따라 준 것인지.
어쨌든 우리 독일로선 환영할 일이었고, 나는 바로 기차를 타고 항복이나 다름없는 휴전 협정에 도장을 찍기 위해 공의회로 유명한 트리엔트(Trient, 이탈리아어로 트렌토)로 향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런던에 가자마자 다시 대륙으로 날아와야 했던 그레이 장관, 오스트리아-헝가리 외무장관 베르히톨트, 이탈리아에서 추방되어 빈에 있던 넬슨 토마스 페이지(Thomas Nelson Page) 주이탈리아 미국 대사도 함께 말이다.
참고로 페이지 대사는 미국에서 유명한 작가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쓴 소설이란 것은 노예제를 미화하고 흑인을 백인 여성들을 강간하는 쓰레기들로 만든 것뿐이었지만.
고향을 알아보니, 역시나 믿고 거르는 남부 출신이더라.
“반갑습니다. 여러분.”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하지만 페이지 대사와의 불편한(그리고 대사에게도 불편했을) 시간은 회담장에 도착하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교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스트리아인답게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베르히톨트 장관은 어디다 너무나도 황송해서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가톨릭교도가 아닌 그레이와 페이지조차 고개를 숙였다.
그럴 만도 했다.
현 교황 비오 10세는 평범한 교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가톨릭 전통주의의 상징으로 20세기 가톨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동시에 오래전부터 수많은 기적을 행해 온 일명 ‘살아 있는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들은 것만 해도 평생 팔을 못 쓰던 남자의 팔을 낫게 해 준다든가, 종기로 몸이 뒤덮인 소녀의 몸을 만졌더니 종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든가 하는 믿지 못할 일화들이 가득했으니까.
‘심지어 예언자의 능력도 있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예언하기까지 했다든가?’
물론, 그런 신비스러운 면을 제외하더라도 그 인품과 능력만으로도 역대 교황 중 손에 꼽힐 인물이란 것은 틀림없겠지만.
당장 그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교황 한번 만나 보려다 실패했던 적도 있었으니.
“그나저나 성하를 로마가 아닌 트리엔트에서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사람이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교황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설마 이탈리아 이것들이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했다는가 하는 귀찮은 일을 만든 것은 아니길 바란다.
“허허, 이탈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온 것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저 노인의 호기심이 동했을 뿐이지요.”
“호기심……말입니까?”
“후작에 관한 이야기는 저 또한 많이 들었거든요.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잠시 독대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필 오늘, 하필 이런 자리에서?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안 온다.
심지어 비오 10세는 얼마 안 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1914년 8월 20일에 선종한다) 사람이다.
“장관, 무엇을 망설이는 겁니까? 교황 성하와 독대라니,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닙니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져 있던 사이, 옆에 있던 베르히톨트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난 가톨릭교도도 아닌데, 내가 교황이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라고?
“뭐, 잠시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레이 장관님.”
“어차피 회담 준비엔 시간이 걸리니 잠깐 갔다 오시지요.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물론 어디까지나 ‘거절할 수도 없다’에 가까운 것 같지만 말이다.
“후…….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결국, 난 양해를 구한 뒤 여전히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교황을 따라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교황이 나를 데려간 곳은 트리엔트 대성당(Kathedrale Trient).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하기 위한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린 유서 깊은 장소이자 작년에 비오 10세가 부성전으로 승격한 곳이었다.
“가톨릭교도도 아닌 제가 여기에 들어와도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후후,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잘못된 교리를 믿고 있는 자들이라 할 지라도요. 주께선 그 누구라도 사랑하는 법이시니까요.”
“그랬으면 좋겠군요.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엔 더더욱이요.”
내 말에 동감이라는 듯 교황이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 역사에서 비오 10세는 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안 가 선종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전부 보진 못했지만, 여기선 불행히도 두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았을 테니.
“다시는 이런 비참하고 슬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안타깝게도 주께선 인류에게 다시 시련을 주시는군요.”
“성하?”
“후작, 이 전쟁이 나기 전 나는 보았습니다. 참혹한 전장과 전쟁의 불길로 타오르는 유럽의 모습을.”
알고 있다.
아까도 언급한 비오 10세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말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말이었다.
“수십 년 뒤, 꺼진 재에서 불꽃이 다시 일어 유럽 전체를 불태우는 것을. 동쪽과 서쪽에서 피어난 악의와 증오가 선한 이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교황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는 결국, 이번 전쟁처럼 그대에게 달려 있을 테지요.”
두 번째 대전쟁의 예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