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 호랑이와 독수리
-나는 또다시 보았습니다. 수십 년 뒤, 꺼진 재에서 불꽃이 다시 일어 유럽 전체를 불태우는 것을. 동쪽과 서쪽에서 피어난 악의와 증오가 선한 이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트리엔트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교황의 말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탈리아와의 휴전 협정 내용이 잘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휴전 협정이라고 해도 전투 행위 중지와 이탈리아군의 무장 해제, 연합군 주둔 등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오스만과 달리 이탈리아는 말석이라도 열강이고, 또 오스만 때 끼지 못한 것이 분했던지 미국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영토 문제랑 배상금같이 중요한 것은 나중에 프랑스까지 끝내고 강화 회담에서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오스만 때처럼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이바지한 게 없어서 일어날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밖엔 안 된다는 것이 내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첫 번째 대전쟁을 예언한 비오 10세가 모두가 바라지 않을 두 번째 대전쟁을 예언했다.
나에겐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부부. 아부부부.”
“프리데리케, 너에겐 이런 전쟁을 겪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요람에 누워 손을 뻗는 프리데리케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바라본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 세계대전 앞에 제1차가 붙은 것처럼 어떤 의미론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잔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실제로 일어난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러나 인류의 첫 번째 세계대전은 그 과정과 판이하게 결말이 달라졌고, 그렇기에 속으론 막연히 기대도 했었다.
‘첫 번째는 못 막았지만, 두 번째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그러나 교황의 말은 내 기대를 산산 조각냈다.
비오 10세가 진짜 예언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일단 내 존재가 비상식적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동쪽과 서쪽이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역시 프랑스와 소련일까?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쪽이란 동쪽이란 단어가 너무 포괄적인 데다가 역사가 바뀐 지금, 전쟁이 끝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조차도 모르니까.
어쩌면 동쪽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게 소련이 아니라 일본일 수도 있다.
서쪽도 의외로 프랑스가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해 공산화된 스페인이 소련과 손을 잡고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머리 싸매고 누가 검정인지 고민해 봤자 의미가 없어. 그러니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야겠지. 그렇지, 프레디(Freddie)?”
“아부?”
독일 제국을 지키고, 가족을 지킨다.
그리고 오스만과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코앞으로 다가온 카이저라이히를 지킨다.
전쟁이 끝나고 미래가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모르지만, 가슴에 새긴 그 목표만 명심한다면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으리라.
* * *
파리의 분위기는 빛의 도시라는 이명에 걸맞지 않게 그 어느 때보다 우중충했다.
물론 전쟁이 시작되고 밝은 적이 거의 없었다지만, 지금 파리 시민들의 얼굴엔 절망, 절망, 그리고 절망만이 가득했다.
[오스만 제국의 새로운 지배자, 무스타파 케말 파샤. 협상국과 강화 및 전쟁 이탈 선언.] [이탈리아 항복. 남쪽 국경이 위험해지다!] [프랑스 제3공화국에 희망은 있는가.]오스만 제국이 항복했다.
이스마일 엔베르를 비롯한 세 파샤는 모든 권력을 잃었고, 새롭게 오스만의 권력자가 된 무스타파 케말 파샤는 갈리폴리의 영웅이란 명성이 허무하게 바로 협상국에 두 손 들고 항복했다.
이탈리아 왕국 또한 마찬가지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신하들의 손에 의해 왕위에서 끌려 내려왔고,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프랑스를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냅다 협상국에 항복하는 것은 물론, 독일군에게 프랑스 국경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줘 버렸다.
프랑스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적의 수는 계속 늘어만 가는데 별 도움이 안 되었다지만, 동맹국이 하나둘씩 항복해 버린 끝에 이젠 홀로 남아 전 세계와 싸워야만 했다.
더는 승리에 대한 미약한 희망을 믿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매일같이 들려오는 비보에 이미 정신이 한계에 달해 있던 프랑스인들은 가장 프랑스다운 행동으로서 자신들의 심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란 말도 이제 지겹다!”
“그냥 영독과 화해하고 전쟁을 끝내자!”
“더는 희망이 없는 전쟁에서 우리 아들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전쟁에 지쳐 강화를 요구하는 반전주의자들의 시위.
쿵쿵!
“나와라. 마리 퀴리!”
“이 폴란드의 창녀 년!”
“대,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전 프랑스를 위해 제 재산까지 바쳤는데…….”
“시끄러워! 독일에 붙어먹는 것들은 다 죽어 없어져야 해!”
죄가 없는 자들에 대한 이유가 없는 분노와 폭력.
“으악!”
“그, 그만둬!”
“닥쳐, 이 더러운 한스 폰 초이의 졸개 놈들!”
“우, 우린 조선인이 아니라 베트남인인데…….”
“황인종 새끼들이 그놈이 그놈이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해진 인종 차별.
“러시아 임시정부와 다를 바 없는 무능한 공화정부 쫓아내고 사회주의 조국 건설하자!”
“파리 코뮌이여, 다시 일어나라!”
“저 낙후된 러시아도 해냈다. 프랑스야말로 진정한 혁명의 종주국이란 것을 보여 주자!”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준동.
“평화를 말하는 자들은 모조리 민족 반역자들이다. 타협은 없다. 최후의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한다!”
그리고 덩달아 날뛰는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 등 파시즘의 새싹들.
“나약한 민주 정부 따윈 필요 없다!”
“왕정복고 가즈아아아!!”
무덤으로 들어가긴커녕 아직도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왕당파들까지.
프랑스는 말 그대로 전쟁으로 미쳐 가고 있었다.
더불어 연합군의 파리 공격은 그런 광기에 더욱 장작을 집어넣었다.
콰앙!
“포탄이다!”
“도망쳐!”
랭스를 점령한 독일군이 포신 길이 34m, 구경 211mm, 유효 사정거리 130km에 달하는 일명 ‘파리 대포(Paris-Geschütz)’라 불리는 초장거리 열차포 2대를 동원해 파리에 포격하기 시작했다.
폭격에 맛 들인 영국이 숨만 돌리려고 하면 날려 보내는 폭격기만 해도 머리가 돌 지경인데, 이제는 포탄까지 파리에 떨어지니 파리 시민들의 상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악화했다.
그러나 미쳐 돌아가는 파리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나 이탈리아와 달리 프랑스 정부는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참전에 이어 니벨 공세의 대참패로 결국 몇 달도 안되 알렉산드르 리보가 쫓겨난 뒤, 푸앵카레 대통령의 임명으로 총리로 임명된 프랑스의 호랑이,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 덕분이었다.
“우선, 확실히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몇 주 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총리 취임 연설에서 클레망소는 흉흉한 분위기에 눌려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정치인들과 장군들을 향해 맹세하듯이 말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위대한 프랑스에 항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전쟁, 전쟁, 또 전쟁뿐입니다!!”
프랑스의 전쟁 수행 능력이 바닥나기 시작한 이 시기엔 여러모로 믿기 힘든 말.
그렇기에 대다수의 프랑스 시민들은 클레망소의 말을 그저 늘 있는 정치인들의 지켜지지 않을 약속으로 생각했지만, 클레망소는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서 이를 증명했고, 자신이 왜 호랑이라 불리는지도 증명했다.
삐이이이이───!
퍼펑! 펑! 펑!
“폭동을 일으킨 자들을 모두 체포하라! 적과의 평화를 말하는 겁쟁이들도, 소요를 일으키는 공산주의자들도, 분란을 일으키는 극우들도 모조리 체포하라!”
파리 시내에서 프랑스 국가 헌병대(Gendarmerie nationale)와 경찰들이 이전과 달리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때려잡기 시작했다.
전선에서 독가스 공격에 앞서 적 방독면을 벗기기 위해 사용하는 최루 가스가 시위대를 향해 살포되었고, 체포된 이들은 강제 징병 되어 전선으로 끌려갔다.
클레망소가 어지러운 정국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극약 처방이었다.
“클레망소, 이건 아무리 그래도 아닐세. 이건 너무 심해!”
물론 반발도 있었다.
당장 클레망소를 총리로 임명한 푸앵카레부터가 클레망소의 과격해도 너무 과격한 행동에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
“나약해지셨군요. 각하.”
“뭐, 뭣?”
“옛날의 각하셨다면 앞장서서 독일에 맞서 싸우자고 외치셨겠죠. 하지만 지금의 각하께선 계속된 패배에 지치신 모양이군요.”
“클레망소, 자네!”
“지금까지의 총리들은 각하께서 실권을 행사하시는 것을 방치했던 모양이지만 전 아닙니다. 그러니 제3공화국의 대통령답게 전쟁은 총리인 저에게 맡기시고, 각하께서는 대통령으로서 굳건히 서 있기만 해 주십시오. 부디 말입니다.”
그러나 클레망소의 대답은 푸앵카레의 실권을 뺏는다였다.
클레망소보다 훨씬 더 강경한 반독주의자였던 푸앵카레라면 모르겠지만, 니벨 공세의 충격적인 결말 이후 희망 없는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지친 푸앵카레는 지금 프랑스에 필요 없었으니까.
대통령마저 실권을 빼앗긴 채 방구석 늙은이로 전락하자 더는 그에게 반발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클레망소의 칼날은 이제 정부안에 숨어 있는 내부의 적(클레망소 기준으로)들에게 향했다.
“클레망소 씨. 이것이 당신의 선택입니까?”
“……조제프, 자네의 사상, 자네의 목소리는 프랑스에 독이 되고 있어. 그러니 프랑스에서 떠나 주게.”
“변했군요. 폭력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장하던 그 클레망소와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래. 난 달라졌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고, 또 지켜 내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야.”
독일과 화해와 평화를 주장하다 대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암살당한 장 조레스의 의지를 이어 화평파 지도자로 활동하던 조제프 카요(Joseph Caillaux)가 반역죄를 선고받고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추방되었다.
전쟁 초부터 내무부 장관을 맡아 온 인물이자 카요와 함께 화평파의 거두였던 루이 밀비(Louis-Jean Malvy)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조제프 카요는 드레퓌스 사건 때부터 클레망소와 뜻을 함께해 온 동지이자 그의 1기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은 가까운 인물이었음에도 조르주 클레망소는 그를 냉정한 얼굴로 내쳤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동지와 친구들이라도 사기를 떨어트리는 자들은 과감히 잘라 내야만 했다.
물론 이 또한 많은 비판과 불만이 따랐지만, 클레망소는 개의치 않았다.
“훗, 호랑이가 죽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인가.”
“페탱 장군님?”
“이제야 제대로 된 총리가 나왔군. 그놈의 문민통제를 이유로 전권을 회수당한 것은 아깝지만, 그라면 괜찮겠지. 자, 뭣들 하고 있나? 싸우러 가세나!”
그리고 페탱과 포슈를 비롯한 장성들과 병사들은 클레망소를 좋아했다.
그야 파리에 틀어박혀 있던 이전의 총리들과 달리 직접 전선까지 나와 병사들을 독려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 총리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물론, 겁쟁이나 탈주하는 병사들에겐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을 명령할 정도로 가차 없다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다들 사기 유지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탈영병 하나를 용서하면 그다음부턴 줄줄이 탈영을 시도할 테니까.
과격하고 잔혹하더라도 지금의 프랑스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조치였고, 덕분에 동맹국이 줄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 또한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역시 프랑스는 쉽게 쓰러트리지 못할 것 같군요.”
그리고 클레망소의 스팀팩 처방으로 인해 프랑스군의 기세가 다시 오르자 팔켄하인을 비롯한 연합군 총사령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러시아도 오스만도 이탈리아도 쓰러졌다.
이제 프랑스, 프랑스만 쓰러트리면 이 전쟁도 끝난다.
하지만 프랑스는 최종보스답게 사천왕 세르비아, 러시아, 오스만, 이탈리아가 차례대로 무너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협상국으로선 결승점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운동화의 끈이 풀린 것만 기분이었다.
“펀스턴 사령관, 이제 약속 시간이 되었소.”
이럴 땐 기분 전환이 필요한 법.
그리고 때마침 미국 원정군 총사령관, 펀스턴이 팔켄하인에게 약속한 날이 마침내 도래했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미군의 공세를 요구하는 바요.”
“하하하! 맡, 맡겨 주십시오. 엉클 샘의 진정한 힘을 프랑스인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겠습니다.”
물론, 얼마 전 총사령관으로 복귀한 펀스턴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려 왔지만.
그러나 약속을 무를 수도 없는 데다가 오스만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항복하자 백악관의 인내심 또한 한계에 도달한 상황.
파릇파릇한 대전쟁 뉴비인 미군이 전장에 나설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