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 미군의 시련 (2)
미군이 처음 겪는 대전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무수한 시체 주머니를 양산하고 있을 때,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베를린 경찰청은 전장만큼이나 어수선했다.
이유는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끝나지 않는 내무부의 내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나오질 않는 것을 보니 별로 건진 것도 없어 보이는데, 대체 언제까지 경찰청을 이 잡듯이 들쑤시고 다닐 건지.
물론 한스 폰 초이 장관 암살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은 분명 자신들의 ‘실수’임은 틀림없었지만,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덕분에 프로이센 비밀경찰들은 물론, 전쟁 때문에 인력 부족과 과로에 시달리고 있던 일반 경찰들은 오만한 얼굴로 복도를 지나가는 내무부 관료들을 향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경찰청장 트라우고트 폰 야고프에 이르러선 내무부 관료들로 인해 핏대를 세우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였다.
“이놈의 내사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건가. 자네들 때문에 우리 베를린 경찰청은 업무에 큰 지장을 받고 있어!”
“경찰청의 불만은 이해합니다. 다만, 이번 일에 황실이 엮인 만큼 우리 내무부로서도 최대한 자세하고 신중한 조사를 하느라 내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건에 대해선 빨갱이 놈들이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그 어떤 흔적도 드러내지 않았을 정도로 은밀하고 철저하게 움직인 것 때문이라고 내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아니면 베트만홀베크 부총리는 여전히 암살을 막지 못한 것이 전부 우리 탓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우리는 그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니 청장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는 이미 충분히 했네. 내 이번 일은 폐하께 직접 보고할 테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야고프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내무부 관료들은 어디 마음대로 해 보라는 듯 어떠한 대꾸도 없이 짧은 인사와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야고프의 얼굴은 더욱 붉으락푸르락 해졌지만, 내무부 관료들은 이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금 베를린 경찰청에 있는 이유는 ‘암살을 알아채지 못한 건 스파르타쿠스 연맹이 예상보다 뛰어나서 때문이다’라는 지나가던 개도 믿지 않을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역으로 기세등등하게 굴고 있는 야고프의 목을 죌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으니까.
당장 일부러 시간을 끌며 내사를 한 달이나 질질 끌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용의주도한 야고프의 꼬리를 잡기 위해 의심받지 않고 베를린 경찰청 내부를 들쑤실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내무부 관료들에겐 다행히도 그 한 달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바이에른 여자가 나에게 말하길…… 응?”
“쳇, 잘나신 분들께서 지나가는군.”
“어이, 토마스. 저쪽으로 가자. 또 무슨 꼬투리를 잡고 우릴 괴롭힐지 모르니까.”
복도를 지나가던 비밀경찰들이 내무부 관료들을 보자마자 눈을 찡그리고 혀를 찼다.
당장 한 달 동안이나 저 답답한 양복쟁이들에게 들들 볶였던 비밀경찰들이다.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처사에 내무부라면 다들 치를 떨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듯 걷는 속도를 올렸다.
“흣?!”
“어이쿠, 괜찮으십니까?”
그때 동료들을 따라가던 비밀경찰 하나가 발이 꼬였는지 헛숨을 들이키며 바닥을 향해 쓰러졌다.
마침 옆에 내무부 관료가 그를 잡아 준 덕에 복도에 널브러지는 꼴은 면했지만, 비밀경찰은 너희 도움 따윈 필요 없다는 듯 말없이 손을 툭 쳐 내고 다시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
그러나 내무부 관료는 불쾌하단 표정은커녕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방금 비밀경찰이 손으로 툭 쳐 낸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까지 비어 있던 관료의 오른손엔 작은 쪽지가 들려 있었다.
[일요일, 자정, 베를린 쇠네베르크(Schöneberg) 공동묘지, 에리크 바우어의 묘지 앞에서.]날짜와 장소가 적힌 쪽지가.
* * *
1914년 6월 27일.
미군이 발랑시엔을 향해 진격을 시작한 지 이틀이 흘렀다.
그사이 미군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총 4만의 사상자를 냈지만, 미군의 공세는 발랑시엔을 완전히 점령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개 같군.”
본래 후방에 있어야 할 참모지만, 본인의 고집과 사단 지휘권을 일부 위임해 줄 정도로 자신을 좋게 평가해 준 제42사단 사단장 찰스 T. 메노헤르(Charles Thomas Menoher)의 배려로 전장에 나온 맥아더는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조금 더 고상한 단어도 있겠지만, 도저히 그 말 말고는 눈 앞에 펼쳐진 참상을 표현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국이 벌인 전쟁 중 가장 참혹했던 남북전쟁을 따위로 만드는 서부전선의 모습도, 무자비하다고 말할 수밖에 명령으로 인해 죽어 가는 병사들의 비참한 상황도 전부 개 같았다.
“백악관이 아군 장병들이 무슨 꼴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해지는군.”
아마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안전한 본국에서 보고서에 적힌 숫자나 보며 명령이나 내리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대서양을 건너온 병사들은 무인지대를 건너려다 적의 총탄에 쓰러진 이들처럼 무의미한 돌격 명령에 죽어 나가겠지.
‘이 전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미친 짓을 대체 언제까지 반복할 셈인지…….’
맥아더로선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령부엔 맥아더가 존경하는 퍼싱처럼 유능한 장군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능력은 무능하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똥별들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이 맥아더가 나서야만…….”
“맥아더 중령님, 거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적어도 철모라도 써 주십시오!”
맥아더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의 뒤에 있던 42사단 병사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맥아더는 지금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저격수와 포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철모도 쓰지 않은 채 참호 밖으로 당당하게 머리를 내밀고 전장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심하는 순간 장교, 병사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목숨이 사라지는 서부전선의 끔찍함을 이미 온몸으로 체험한 맥아더의 부하들로선 당연히 기겁할 수밖에 없는 상황.
괜히 퍼싱이 맥아더를 패튼과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맥아더는 아무리 그래도 패튼과 동급이라는 평가엔 절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내 부하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우고 있는데, 장교인 이 내가 안전한 곳에 숨어 있을 수 있을까!”
어쨌든 병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약한 모습은 전쟁에서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자신의 장교가 그 누구보다 용감하고 유능하길 바란다.
그리고 맥아더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위풍당당하게 팔짱을 낀 채 참호 안에 숨어 있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걱정하지 마라. 어떤 프랑스군 포탄도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러니 너희는 이 맥아더를 믿고 용감히 싸워라. 앞으로 나가라!”
“옛! 장군님!”
위대한 전쟁 영웅의 표본 그 자체인 맥아더의 모습에 42사단 장병들이 감명받는 얼굴로 일제히 외쳤다.
그리고 이를 바라본 맥아더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전장을 응시했다.
전쟁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 * *
“4만? 겨우 48시간 만에 우리 장병들이 4만이나 죽거나 다쳤단 말입니까?”
“예, 각하.”
한편 그 시각.
백악관에서 펀스턴이 보낸 보고를 받은 우드로 윌슨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벗었다.
보고서를 전달한 장본인인 개리슨 전쟁장관을 비롯한 내각 장관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얼굴로 곧 날아올 대통령의 호통에 대비했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숫자입니까?! 게다가 그 정도 희생을 내고도 발랑시엔을 점령하긴커녕 아직 발도 못 들였다니……. 펀스턴 사령관은 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각하, 서부전선은 그런 전쟁입니다. 당장 프랑스군도 니벨 공세 당시 하루 만에 10만을 잃었습니다.”
“개리슨 장관,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윌슨의 매서운 눈초리에 입을 다무는 개리슨.
어떻게든 대통령의 분노를 달래 보려고 꺼낸 말인데, 아무래도 화만 더 돋운 모양이다.
그로선 억울한 일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윌슨의 잘못이 제일 큰데…….’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원정군에게 빨리 공세에 나갈 것을 재촉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드로 윌슨이었으니까.
물론, 감히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낼 간 큰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잃어버린 병력은 곧 보충될 것입니다.”
“예, 게다가 추가 증원군도 계속 유럽으로 향하는 중 아닙니까?”
대통령 집무실의 분위기가 싸해진 것을 보다 못한 맥아더 장관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자 브라이언 국무장관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대통령의 좁혀진 미간은 여전히 펴질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을 계속 보낸다 한들 어떤 성과도 없으면 결국 말 앞에 마차를 놓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닙니까?”
쉽게 말해 주객전도였다.
당장 윌슨이 참전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 시민의 생명을 해친 프랑스를 응징하는 동시에 독일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스만은 물론, 이탈리아와의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상황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전선이자 제일 중요한 서부전선에서 빌빌거리면 안 된단 말이다.
그런데 막상 미군의 단독 공세를 시작하자마자 워싱턴 D.C에 도착한 것은 승전이 아닌, 무수한 전사 통지서라니.
이래서야 참전을 한 의미도 없이 독일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꼴 아닌가.
‘가뜩이나 무기 부족 문제 때문에 독일 제국에게 미국 시민의 혈세를 넘겨주며 무기를 대여받는 것을 용인한 것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일인데…….’
게다가 윌슨에겐 다른 걱정도 있었다.
“대니얼스 장관, 해병대를 중심으로 한 모로코 상륙 작전은 잘 준비되고 있습니까?
“그건…….”
“설마 발랑시엔처럼 되진 않겠지요?”
윌슨의 물음에 윌슨의 친구이자 최측근인 조지퍼스 대니얼스(Josephus Daniels) 해군장관이 뜸을 들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모로코 상륙은 독일군이 이탈리아를 우선시하며 방치한 모로코, 알제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마그레브(Maghreb) 식민지들을 미군의 손으로 떨어트려 미국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중요한 작전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간 가뜩이나 불편한 대통령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것이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며 듣기 좋은 말을 했다간 후폭풍을 맞을 테니까.
“상륙 준비는 계획대로 진행 중입니다.”
침묵 끝에 마음을 정한 대니얼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또한,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인 프랑스 해군은 혹시 모를 본토 상륙 대비는 물론,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더는 안전하지 않은 니스, 툴롱, 마르세이유 등 남프랑스의 주요 거점들을 지키기 위해 본토 방어에만 집중하는 중이니, 아군의 상륙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대니얼스는 고개를 저었다.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아프리카를 지키는 프랑스군의 전력은 유럽 프랑스군에 비할 바가 아니긴 하지만, 상륙 작전 자체가 위험도가 클 수밖에 없는 작전이니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 갈리폴리의 재림이 될 수도 있고, 시칠리아와 레조 칼라브리아에 이어 큰 피해 없이 성공한 상륙 작전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상륙 작전이란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북아프리카 프랑스군 휘하엔 독일 아프리카 군단도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고 평가한 구미에나 주아브 같은 식민지인 부대가 있는 만큼 만약 상륙에 성공한다 한들 그 기세를 이어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했다.
며칠 전이라면 모를까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이제는 미군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곤란하군요. 만약 모로코 상륙마저 실패한다면 우리 미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테니까요.”
게다가 2년 후에 있을 재선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피는 피대로 흘렸는데, 정작 거둔 것이 변변찮으면 그로 인한 불만은 윌슨 자신에게 향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
게다가 1916년에 있을 선거에서 맞붙게 될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연방대법관 찰스 에번스 휴즈(Chalres Evans Hughes)는 윌슨 자신도 승패를 점칠 수 없는 만만찮은 상대다.
서부전선에서 빠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이상, 재선에서도 승리를 거둬 자신의 이상을 계속 펼치기 위해서라도 최소 모로코 상륙과 북아프리카 점령만큼은 큰 피해 없이 성공해야만 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군요.”
“조치라 하시면……?”
“마침 전 프랑스 대사인 샤프 대사가 아직 유럽에 있지요. 그를 파리로 보내야겠습니다.”
장관들의 의문에 윌슨은 얼굴에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했다.
“물론, 비밀리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