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 백기사의 도래 (1)
“프로지트(건배)!”
챙!
몇 번째일지 모를 흥겨운 건배와 동시에 유리잔이 부딪치는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쏘아 올린 작은 총탄에서 시작된 음모가 드디어 일단락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연 조촐한 파티는 어느새 아저씨들의 술잔치로 변했다.
“헤헤…… 꼴좋다, 융커 새끼들아…….”
융커들의 몰락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뿐만이 아니라 두 손으로 이룬 아데나워는 기쁨에 못 이겨 자제를 머릿속에 지운 채 술을 들이부은 결과, 꽐라가 되어 구석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투자는 역시 부동산이지…… 음냐음냐…….”
“재개발 가즈아…….”
융커들에게 몰수한 알짜배기 땅을 그동안의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받은 루덴도르프와 전후 방해 없이 토지개혁과 재개발을 할 수 있단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재무장관 퀸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널브러져 있었다.
“쿨쿨…….”
뷜로 총리의 경우엔 와인 몇 잔에 나이를 못 이기고 의자에서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멀쩡한 것은 보고를 위해 베를린에 온 팔켄하인과 의외로 술이 강한 베트만홀베크, 원래부터 술을 조금 밖에 안 먹는 나 정도밖에 없었다.
“아마 감옥에서 우리에게 이를 갈고 있을 융커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기가 막힐 겁니다.”
“하핫, 내 장담하던데 우리 생각을 할 여력도 없을 거야. 몰수된 땅과 재산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
몇몇 이들은 거기에 더해 목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내란죄 및 반역죄로 체포된 이들의 처벌은 제국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빨리 잠재우기 위해 현재 진행형으로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아돌프 폰 트로타나 발터 폰 뤼트비츠, 볼프강 폰 카프같이 쿠데타를 모의한 핵심들은 말할 것도 없이 사형.
쿠데타 모의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나 단순 가담자의 경우엔 징역형.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의 경우 영국과의 협의대로 가벼운 재판 후 아들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에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가의 가주 자리를 승계하고 캐나다로 추방될 예정이었다.
지은 죄에 비해 약한 처벌이라 느낄 수 있지만,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다들 알다시피 빌헬름 2세와 조지 5세의 친척이기도 해서 과한 처벌은 독일 황실과 영국 왕실의 위신에도 영향이 갈 수 있어 그냥 이 정도로 조용히 끝낸 거다.
물론, 감옥이나 처형장으로 가게 된 융커들은 불만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계급사회의 현실인 것을.
다만, 로이스게라 후국의 군주, 하인리히 27세의 경우엔 얄짤 없이 무거운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도 원래는 로이스게라 후작가의 가주 자리를 가문의 다른 인물에게 승계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대놓고 체포 부대에 총질해서 봐줄래도 봐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제후국 군주들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의 선처를 요청한 것과 달리, 하인리히 27세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더라.
‘그냥 조용하게 체포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만큼 자신의 손에 쥐어진 권력을 놓기란 어려웠고, 그렇기에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이겠지.
결국, 하나 된 독일 제국으로 가는 길이 여전히 길고 험난했다.
“팔켄하인 사령관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사령관님의 빠른 조치가 아니었다면 뤼트비츠를 비롯한 군 내부의 반역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체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총사령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만약 이번 일이 정말 쿠데타로 이어졌다면 공세에 차질이 생기는 수준이 아닐 테니까요.”
“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젠 IF에 불과한 일이지만, 뤼트비츠같은 장군들이 정말 쿠데타를 하겠다고 군을 이끌고 전선을 이탈했으면 베를린뿐만 아니라 전선의 병사들도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프랑스군은 독일 제국의 내전이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빈틈이 생긴 전선을 마구 두들겼겠지.
전쟁의 끝을 바라보기 시작한 지금에 와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한동안 전선이 어수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쪼록 공세엔 큰 차질이 없도록 사령관님께서 신경을 써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다만…….”
팔켄하인이 무언가 고민하는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말하기 힘든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기껏 큰 고개를 하나 넘었는데, 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은 제발 사양하고 싶은데 말이다.
“전선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 최근 이상한 보고들이 계속 귀에 들려와서 말입니다.”
“이상한 보고요……?”
“예, 최근 전선의 몇몇 부대에서 감기나 독감에 걸리는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군요.”
뭐? 독, 독감?
“물론 그저 우연일 확률이 높지만, 겨울이라면 모를까 지금 계절이 계절이지 않습니까.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도 판단이 잘 안 서더군요.”
“…….”
“장관님?”
“자네 괜찮은가?”
팔켄하인과 베트만홀베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독감이란 단어 앞에 제1차 세계대전이 붙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독감, 전염병, 팬데믹, 마스크, 격리……. 윽, 머리가……!’
나는 떠올려 버리고 말았다.
전생 시절 온몸으로 겪었던 공포에 대한 기억을.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그놈을.
역병의 백기사가 오고 있다.
* * *
“거기 정지! 누구냐!”
“쏘지 마! 독일군에서 온 연락병이야!”
“연락병?”
“뭐야, 히틀러 선생이잖아. 오랜만에 왔네.”
독일 제국이 반역자들을 청소하느라 소란스러운 가운데 바이에른 예비 보병 제16연대 소속 아돌프 히틀러 상병은 오늘도 연락병으로서 홀로 위험한 무인 지대를 건너 근처에 있던 미군 부대를 방문했다.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독일군은 다른 연합군 부대와 자주 합동 공격을 펼치니, 예하 부대 간에도 정보를 자주 주고받아야 했기에 서로 간에 연락병들도 자주 보냈다.
다만, 그 연락병들의 절반 이상은 다시는 부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방에 지뢰와 철조망은 물론, 프랑스군 저격병과 정찰대가 깔려 있어 모두가 발을 들이길 두려워하는 무인지대를 오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당장 제16연대의 연락병 중에 전쟁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히틀러 자신밖에 없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신문에서 봤어. 며칠 전에 높으신 양반들이 대거 체포된 바람에 독일이 시끄럽다면서?”
“그래, 부끄러운 일이야. 위대한 독일 제국의 얼굴에 먹칠해도 유분수가 있지. 이참에 늙은 돼지 같은 구시대의 잔재들이 싹 사라지면 좋겠어.”
평소 안면이 있던 미군 병사의 말에 히틀러가 영국군 병사들에게 배운 어설픈 영어로 말했다.
감히 승리의 설계자이자 위버멘쉬에 가장 가까운 이인 한스 폰 초이 후작을 빨갱이들의 손을 빌려 없애려 한 것도 모자라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다니.
그 살만 뒤룩뒤룩 찐 무능한 매국노와 겁쟁이들을 한시라도 빨리 단두대로 보내는 것이 독일 제국에 이익일 것이다.
“……그나저나 예전에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되었어?”
“걱정하지 마, 여기 잘 챙겨 왔으니까.”
미군 병사의 은밀한 목소리에 히틀러는 씩 웃으며 품속에서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오오~!”
그리고 그 위에는 참으로 수상한 동물 캐릭터 그림이 훌륭한 솜씨로 그려져 있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연합군 내에 숨어 있는 털박이들에게 소정의 대가를 받고 퍼리퍼리한 캐릭터 그림을 그려 주는 것에 맛을 들인 상태였다.
자신이 그림을 건네줄 때마다 항상 인정과 존경이 뒤따랐고, 이는 히틀러가 길거리에서 그림엽서를 팔 때도 거의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히틀러가 현대 동물보호법에 큰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동물, 특히 개를 좋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론 이쪽에 이미 소질은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역시 히틀러 선생이야. 실력 하난 확실…… 쿨럭쿨럭!”
여느 때처럼 그림을 받고 기뻐하던 미군 병사가 갑자기 기침했다.
그 모습에 히틀러는 튀는 침을 피하려고 황급히 뒤로 물러서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한여름에 감기라도 걸린 거야?”
“아무래도 같은 막사를 쓰는 놈에게 옳았나 봐. 최근 우리 부대에 여름 감기에 걸린 놈들이 많이 늘었거든.”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옆 부대에 명령서를 전달하기 위해 갔을 때도 꽤 독해 보이는 감기에 걸린 이들이 많이 보였다.
‘설마 나도 옮는 것은 아니겠지?’
히틀러는 불안한 얼굴로 미군 병사에게서 더욱 멀어졌다.
가뜩이나 대규모 체포 건으로 분위기도 어수선해서 기분이 안 좋은데, 바보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리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아직 몰랐다.
연합군 내에 유행의 기미가 보이는 감기는 결코 평범한 감기가 아니란 것을.
* * *
“전선에서 돌고 있는 독감이 평범한 독감이 아닌 것 같다고?”
“예, 총리님.”
다음 날.
다들 숙취가 아직 안 깼는지 머리를 부여잡은 가운데 뷜로 총리가 융커 건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문제가 터졌냐는 듯 침음성을 흘린 눈앞의 보고서를 노려봤다.
나와 팔켄하인이 전선 사령부에 전화를 수도 없이 걸며 만든 보고서였다.
그리고 그 보고서엔 독감에 걸린 자들의 수가 세 자릿수를 넘어 네 자릿수를 향해 간다는 불길한 글이 적혀 있었다.
“확실히 초이 장관 말대로 이상한 일입니다.”
베트만홀베크 부총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몇십 명이면 수준이면 모를까 제각기 다른 부대에서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독일군뿐만 아니라 연합군 전체가 말입니다.”
“첩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프랑스군에서도 비슷한 병세를 보이는 이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절대 독감은 아니란 거군.”
“예, 어쩌면 대규모 유행병의 징조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스페인 독감(Spanish flu) 또는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대전쟁에 의해 탄생해 전 세계에 퍼져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인구 17억 명 중 5억 명 이상을 감염시키고 최소 1,700만에서 5,000만 명의 인명 피해를 낸 20세기 최악의 전염병, 최악의 팬데믹이 오고 있다.
당장 21세기에 전 세계에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를 일으킨 코로나의 별명 중 하나가 ‘스페인 독감의 재림’이다.
직접 코로나에 걸려 보기까지 한 장본인으로서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전생에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그 개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스페인 독감까지 겪어야 한다니…….’
게다가 타이밍조차 부정적인 의미로 환상적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원인이 원인이니 스페인 독감이 발병할 소지는 언제든지 있었지만.
스페인 독감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참호열처럼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참호 생활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니까.
결코 이름처럼 스페인 때문이 아니다.
열강 대부분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독감에 대한 언론 통제를 시행했을 때 중립국이었던 스페인만 독감에 대해 보도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스페인에서 독감이 시작되었다고 착각해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이 붙은 것뿐이다.
‘하여튼, 곤란한 상황이야.’
스페인 독감은 틀림없이 팬데믹으로 이어진다.
전염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치사율도 높다.
미리 예방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원인이 원인인 만큼 이 또한 힘들었다.
후방이라면 모를까 씻을 물을 제공하기도 어려운 최전선의 병사들에게 청결과 위생을 유지하라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했지.’
그래도 일찍 조짐을 발견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더 늦게 발견했으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테니까.
“지금 당장 전선의 병사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격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예? 유행의 징조가 있다고 해도 고작 감기에 그건 너무 과한 일 아닙니까?”
퀸 장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감기나 독감 수준이 아닙니다. 보고에 따르면 전선에서 유행하는 독감은 그 참호열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감염된 순간 그저 기침만 하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란 거군요.”
당장 스페인 독감의 별명 중 하나가 참호열의 별명인 5일 열에서 따온 ‘3일 열’이다.
그만큼 스페인 독감과 참호열은 증세는 물론, 발병 원인도 비슷했다.
거기에 인플루엔자의 높은 전염성이 끼얹어져서 문제지.
“최악의 경우 비전투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위생과 청결이겠지만, 최전선에선 지켜지기 어려운 일이니 최소한의 방역 조치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90만 명 이상의 독일군이 스페인 독감 때문에 병상에 드러누웠다.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방역 조치는 반드시 필수였다.
“저 또한 장관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아픈 병사는 싸울 수 없는 법입니까요. 게다가 융커 숙청으로 군 내의 분위기도 안 좋은데, 여기에 병사들까지 아프면 군의 사기가 크게 요동칠 것입니다.”
“으음, 확실히…….”
팔켄하인의 말에 뷜로 총리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양키 놈들 다음엔 마스크인가…….”
미군에 줄 무기도 모자라 대량의 마스크까지 준비하게 생긴 몰트케의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 가고 있었다.
“좋아. 아직 긴가민가하긴 하지만, 우리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설레발에 불과할지라도 여기선 행동하는 게 났겠지. 폐하께 바로 보고를 올리겠네.”
“우리뿐만 아니라 연합군 전체에 방역 조치를 시행해야 합니다.”
“음, 그 부분의 조율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부총리는 전선뿐만 아니라 후방에도 전염병이 돌 수 있으니 신경 쓰고. 재무장관과 전쟁장관은 오늘 저녁까지 방역 조치로 소요될 예산이 얼마나 될지 보고서를 가져오게.”
“예, 총리님.”
총리의 명령에 나와 장관들이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체 이놈의 일은 언제쯤 주는 것일까.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싶은 대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