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 백기사의 도래 (3)
“외무장관의 몸은 좀 어떤가?”
“아직 회복 중입니다만, 의사의 말론 곧 쾌차해서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후, 한스 그 녀석은 잘나가다 왜 자꾸 이런 일에 휘말리는지 모르겠다니까. 어렸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사고뭉치가 되었어.”
뷜로의 푸념에 베트만홀베크가 동감이라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누구보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닌 것도 모자라 소독도 밥 먹듯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감에 걸리다니.
지난 암살 사건도 그렇고, 사람이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싶다.
‘그나마 악운엔 강해서 다행이군.’
매번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아득바득 살아남으니 말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스를 극한까지 부려 먹을 생각 만만이었던 베트만홀베크로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나저나 독감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긴 극심하군.”
“예, 과거 러시아 독감이 그리워질 정도입니다.”
당장 유명 인사 중에도 독감으로 인해 무수한 사망자가 나올 지경이었다.
특히 비오 10세.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고결한 로마 교황조차 프랑스 독감으로 인해 가뜩이나 좋지 않던 건강이 악화해 결국 며칠 전에 선종해 주의 품으로 가고 말았다.
언제나 평화를 바랬던 그가 결국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으니, 가톨릭 신자가 아닌 뷜로와 베트만홀베크로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나마 지금은 다들 방역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덕분에 확산세가 주춤해진 상황이었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겠죠.”
마치 해안가의 파도처럼 잠잠해졌다가 얼마 안 가 다시 거세게 밀어닥치는 것이 팬데믹이다.
지금 잠잠해진 것은 1차 유행이 끝난 것에 불과하고, 머지않아 2차, 3차 유행이 시작될 것이다.
“심지어 최근 보고에 따르면 일부 프랑스 독감 환자들에게서 피부가 푸른색으로 변해 괴이 되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니 걱정이야.”
“예, 독감이 변이되어 치사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소리니까요.”
게다가 프랑스 독감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 아닌 20세에서 45세의 젊은 환자들의 치사율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악랄한 병이다.
독일군은 물론, 영국군과 미군도 독감 확산을 가까스로 저지해 전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지금엔 더더욱 불안해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해 독일 정부, 아니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없었다.
프랑스 독감 치료제는커녕 백신조차 있을 리가 없던 시대다.
지금으로선 엄격한 방역 기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이것만 잘 지켜도 확진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여름 유행 때 증명된 바였으니까.
“그나저나 프랑스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에겐 참으로 다행히도 좋지 않습니다. 아니, 더 심각하다고 해야겠군요.”
독일은 발 빠른 방역 조치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영국과 미국은 그보다 늦긴 했지만, 어찌어찌 피해를 수습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아니었다.
* * *
“총리님, 전선에서 독일 독감 감염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벌써 확진자 수가 90만을 돌파했고 이젠 100만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
1914년 9월 10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한 클레망소는 측근인 피숑 외무장관의 침통한 어조의 보고에 아무 말 없이 수심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피숑의 보고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클레망소의 표정은 오히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전선의 상황에 대해 잘 알았기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클레망소는 총리였던 리보와 함께 니벨 공세에 책임이 있는 전임 전쟁장관인 폴 팽르베를 자른 뒤 자신이 직접 전쟁장관까지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레망소는 전쟁 중 처음으로 마음이 꺾이는 것만 같았다.
고작 독감 하나 때문에, 망할 독일 독감 때문에 프랑스의 병력이 미친 듯이 깎여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산 초기엔 그저 평범한 독감 증상을 보였던 독일 독감이지만, 이제는 피부를 괴사시켜 치명적인 ‘보랏빛 죽음’을 선사하는 잔혹한 괴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약한 노인들의 치사율이 높았던 러시아 독감과 달리, 독일 독감은 젊은 청년들의 치사율이 높았다.
그리고 그 젊은 청년들은 지금 프랑스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투에서 적과 싸워야 할 병사들이 병상에서 총탄도 아닌, 독감에 의해 무더기로 죽어 나가고 있었단 말이다!
‘신이시여, 어찌 프랑스에 이런 시련을 내리십니까. 당신은 기어코 우릴 버린 것입니까?’
프랑스 제3공화국의 진보 정치인답게 신앙심 같은 것은 그다지 없던 클레망소지만, 지금만큼은 잿빛 하늘 어딘가에 있을 신에게 그리 묻고 싶었다.
연합군이 벨기에 방어선을 돌파해 프랑스에 발을 디뎠을 때도, 이탈리아가 항복해 남프랑스 국경에 위험에 처했을 때도, 북아프리카가 예상보다 너무 쉽게 미국에 점령당했음에도 클레망소의 투지와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저 신이 내린 재앙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사태는 아무리 클레망소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군과 비교해 연합군의 독감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독일군은 팬데믹을 예상했는지, 아니면 돌다리를 두들기다 얻어걸린 것이니 모르겠지만,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되기 전에 방역 조치를 시행해서 독감 확진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영국군과 미군은 방심하고 있다가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해 뒤늦게 부랴부랴 방역에 나서긴 했지만, 운이 따랐는지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은 막았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아니었다.
특히 프랑스는 현재 협상국의 행상 봉쇄와 전쟁 때문에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중이다.
제일 중요한 식량은 유럽 제일의 농업 강국답게 충분히 남아 있었지만, 나머지는 전부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된 방역 조치가 이뤄질 리가 없었고, 프랑스군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클레망소로선 믿고 싶지 않은 참담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프랑스 역전의 용사들이 독일군이나 영국군, 하다못해 양키들조차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따위에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육군만이 아니다.
심지어 대전쟁 내내 집만 지켜 온 해군도 엉망이었다.
현존 함대 전략으로 인해 바다 위보다 항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 탓인지, 수병들이 대거 독감에 걸린 탓에 군함 대부분이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장 피부를 괴사시키는 독감 변이가 처음 보고된 곳도 항구 도시인 브레스트였을 정도니, 그 피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밥값을 하던 잠수함들도 절반 이상이 출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클레망소는 이젠 독일 독감에 걸려 선종한 로마 교황이 죽기 전에 신통력을 발휘해 라이시테의 이름 아래 가톨릭을 탄압한 프랑스의 저주를 내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우끼끼! 우끼끼끼!”
“?”
그때였다.
클레망소가 무거운 침묵 속에서 보고서와 눈싸움을 하며 이 난국을 대체 어찌 헤쳐 나가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 내고 있을 때 창가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뭐야?”
“침팬지가 왜 여기 있어?”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침팬지였다.
왜 동물원이 아니라 엘리제궁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흠, 아무래도 동물원에서 탈출한 모양입니다.”
당황한 장관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눈앞에서 끽끽거리며 정원에 심어진 나무를 타고 노는 침팬지의 모습에 동공이 흔들리고 있던 피숑 장관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사실 그것 말곤 침팬지가 엘리제궁에 있을 이유가 없긴 했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당장 잡아서 동물원으로 돌려보내.”
“예.”
갑작스러운 침팬지의 난입에 화가 난 클레망소의 명령에 경호원들이 서둘러 침팬지를 잡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잡았다, 이놈!”
“우끽?!”
잠시 후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자유를 꿈꾸며 엘리제궁에 무단침입했던 침팬지는 검거되어 다시 동물원으로 끌려갔다.
“이젠 하다 하다 한낱 짐승까지 프랑스를 우습게 여기는 꼴이라니……!”
그러나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에도 클레망소의 분노는 꺼지지 않았다.
그의 눈에 프랑스 정부의 중심인 엘리제궁에서 재롱을 피우는 침팬지의 모습은 마치 축 처진 자신과 위기에 처한 프랑스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꺼져 가고 있던 호랑이의 투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대로 전선의 빈틈을 만들 순 없소. 병력을 더 모집해 전선으로 보내시오.”
“예?”
웅성웅성.
좌절감을 벗어던지고, 다시 호랑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클레망소의 말에 장관들이 아까 침팬지가 나타났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웅성거렸다.
“총리님, 여기서 병력을 더 징집하려면 공장의 기술자들까지 징집해야 합니다. 그러면 군수품 생산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예, 게다가 이미 프랑스의 청년들이란 청년은 이미 군복을 입고 전장으로 나간 지 오래입니다. 정녕 아이들과 총을 들 힘도 없는 노인들까지 전선으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쿵!
“지금 프랑스에 필요한 것은 병력이오!”
그러나 클레망소는 단호했다.
“연합군이 우리 대육군의 전력이 약화한 것을 모를 것 같소? 그들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오!”
저쪽도 의도한 일은 아니겠지만, 융커 숙청으로 인한 내부의 혼란도 팬데믹에 묻혀서 사라졌다.
게다가 연합군 쪽은 독감의 기세가 한풀 꺾인 상황이니, 그 누구라도 이 프랑스를 무너트릴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명심하시오. 프랑스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소. 최후의 프랑스인이 쓰러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또 싸울 것이오!”
클레망소의 호통에 장관들은 그와 눈도 못 마주친 채 고개를 숙였다.
‘프랑스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가?’
그러나 그림자에 가려진 그들의 얼굴과 속마음은 클레망소에 대한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 * *
“장관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예, 이젠 다 나았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팔켄하인 사령관님.”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었지만.
당장 스파르타쿠스 연맹의 습격을 받았을 때보다 독감에 걸려 오락가락했을 때 목숨의 위협을 더 크게 느꼈다.
고열, 인후통, 기침 등 독감 증상만을 동반한 변이 이전의 스페인 아니, 프랑스 독감에 걸려서 망정이지 변이로 치사성이 높아진 지금 걸렸으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목숨을 걱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평소 잔병치레 같은 거의 하지도 않는데, 어째 전생이나 현생이나 내 몸은 전염병에 취약한 것일까.’
그래도 나아서 다행이다.
우리 프레디 시집가는 것도 못 보고 독감에 쓰러질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나저나 사령관님께서 베를린엔 무슨 일이십니까?”
“장관님과 긴히 논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논의요?”
“예, 장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독일군은 빠른 방역 조치 덕분에 독감에도 불구하고, 전력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아니지요.”
“공세를 원하시는 거군요.”
팔켄하인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 독감으로 인한 막대한 비전투 손실로 프랑스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하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파리로 진군해 프랑스를 무너트리고 이 전쟁을 끝낼 때입니다.”
“영국군과 미군의 생각은요?”
“헤이그 사령관과 펀스턴 사령관도 공세에 동의했습니다. 두 사람 다 프랑스의 전력이 복구되기 전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생각하더군요.”
하긴, 영국군과 미군도 독감으로 인해 적잖은 손해를 입었지만, 독감 확산 초기에 감염된 환자들이 많아서 두 달이나 지난 지금에 와선 전력도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다.
‘게다가 재차 독감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프랑스를 밀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영국군과 미군이 찬성했다면 저 또한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장관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두 팔 벌려 찬성하면 찬성했지.
그도 그럴 것이 드디어 이 망할 전쟁을 끝낼 절호의 기회다.
유럽의 그 누가 이런 기회를 놓치려고 하겠나?
그러니 프랑스야, 이제 좀 끝내자. 대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