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 최후의 싸움 (4)
1914년 10월 5일.
연합군 함대가 프랑스 지중해 함대를 요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뜬금없는 소리이지만 데사우(Dessau)에 있는 전몰장병 묘지에 와 있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나를 이곳까지 불러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모로 바쁜 내 입장 상 베를린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데사우까지 올 여유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한스. 프랑스 독감에 걸렸다더니 다행히 신수는 좋아 보이네.”
“만프레트 너야말로.”
나를 데사우까지 불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친구이자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잠깐, 그 전에 이것 좀 놓고.”
만프레트는 손에 든 꽃을 커다란 무덤 앞에 놓으며 말했다.
아까부터 왠지 모르게 눈에 띄던 무덤이다.
‘오스발트 뵐케(1891~1914)’
내 두 눈이 묘비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나는 왜 만프레트가 머나먼 데사우, 그것도 전몰장병 묘지에서 날 만나자고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여긴 독일 제국 항공대의 에이스 파일럿이자 붉은 남작의 전우, 그리고 친구였던 뵐케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너와 오랜만에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나도 최대한 빨리 부대로 돌아가야 하니 본론부터 말할게.”
뵐케의 무덤에 헌화를 마친 만프레트가 처음 보는 것만 같은 진중한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비행 금지를 풀어 줘.”
“만프레트…….”
현재 붉은 남작을 비롯한 격추 수를 충분히 쌓은 에이스 파일럿들에겐 비행 금지가 내려진 상태였다.
이유는 바로 무덤의 주인인 오스발트 뵐케의 전사 때문이었다.
뵐케는 전국민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붉은 남작 수준은 아니지만, 독일 제국 항공대의 기둥이자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런 뵐케의 죽음에 독일 국민은 물론, 우리 장인어른까지 큰 충격을 받았다.
-에이스 파일럿들에게 비행 금지를 내려라! 이 이상 그들을 잃을 순 없다!
결국, 황명으로 직접 에이스 파일럿들에게 비행 금지 명령을 내린 것은 물론, 그들을 신입 파일럿 훈련으로 돌렸다.
그들이 뵐케처럼 전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 시대의 에이스 파일럿들은 전장의 아이돌이나 마찬가지니.’
그 때문에 그들의 전사가 가져오는 충격 또한 지나칠 정도로 컸다.
당장 뵐케가 전사했을 때도 루프레히트 왕세자가 직접 그를 기리는 연설을 하고, 황족과 귀족들이 대거 참석한 장례식 때도 독일 전역에 조기가 게양되었을 정도다.
‘그렇기에 나도 딱히 반대는 안 했지. 그야 에이스 파일럿 하나가 죽을 때마다 국가적으로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으니.’
그리고 사실 이게 정상이다.
양차 세계대전 모두 여유 따윈 전혀 없이 발버둥 쳐야 했던 원 역사 독일처럼 파일럿들을 끝도 없이 하늘에 밀어 넣는 쪽이 비정상이고 말이다.
물론, 그 덕에 에리히 하르트만이나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같은 격추 수 300대를 넘은 괴물 파일럿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전력에 여유가 넘치는 지금은 비효율적인 일이자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붉은 남작은 아무래도 ‘비행 금지’ 처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부탁이야, 한스. 난 다시 하늘을 날아야 해. 오스발트의 원한을 갚아 줘야 한다고!”
전우였던 오스발트 뵐케의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나도 이야기는 들었다.
뵐케는 만프레트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최고의 파일럿 르네 퐁크의 공격을 대신 맞고 전사했다고.
만프레트로선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복수해 뵐케의 원한을 갚아 주려고 하는 것이겠지.
“만프레트, 미안하지만 그건 내 권한 밖이야. 비행 금지 명령은 황제 폐하의 명령인 데다가 루덴도르프 참모총장과 팔켄하인 총사령관 또한 동의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를 생각해서라도 들어줄 순 없어.”
“한스!”
그러나 내 대답은 ‘안 돼’였다.
자신을 대신해 죽은 친구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만프레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기에 괜히 비행 금지를 풀어 줬다가 붉은 남작이 잘못되는 꼴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뵐케 때도 전 독일이 눈물을 흘릴 수준이었는데, 붉은 남작까지 잘못되었다간 난리가 날 거야.’
그러니 미움을 받더라도 나로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만프레트를 위해서, 또 독일 제국을 위해서.
“……후, 미안하다. 내가 곤란한 부탁을 한 모양이네. 네가 풀어 주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거절하자 만프레트는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웃음 뒤엔 여전히 퐁크에 대한 차가운 복수심이 서려 있었고, 그것은 둔감한 나조차 알아챌 정도였다.
‘이러다 몰래 비행기 몰고 뛰쳐나가는 거 아니야?’
만프레트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카이저도 함부로 못 대하는 천하의 붉은 남작을 어디 가둬 놓을 수도 없는 노릇.
‘라이트사에 연락해 봐야겠네.’
아무래도 대비가 필요할 것 같다.
* * *
“전 함대 출항하라!”
1914년 10월 16일.
오귀스트 부에 드 라뻬헤흐 제독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프랑스 툴롱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지중해 함대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전투를 위해 바다를 떠나기 시작했다.
“파스타 놈들도 항복해서 따분했었는데, 드디어 해전다운 해전을 해 볼 수 있겠군.”
“예, 대함대 녀석들도 부러워할 겁니다.”
프랑스 지중해 함대에 맞서는 연합군 함대는 데이비드 비티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지중해 함대.
“적의 전력이 약하다고 방심하지 말고 철저히 전투에 임해라. 핀란드만 해전 때처럼 카이저마리네의 힘을 개구리 놈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자!”
“야볼!”
프란츠 히퍼 제독이 지휘하는 독일 제1정찰전대.
“대통령 각하와 대니얼스 해군장관께서 우리 전함 9사단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니 모두 분발하도록!”
“Aye, aye, sir!”
휴 로드먼 제독이 지휘하는 대서양 함대 소속 미국 전함 9사단(United States Battleship Division Nine).
거기에 마실 나오는 기분으로 덩치가 큰 동네 형들을 따라온 그리스 함대와 대량의 유보트를 끌고 온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까지.
전함 전력만 총 23척(영국 12척, 독일 7척, 미국 4척)에 달하는 강력하고 거대한 함대였다.
이에 반해 프랑스 지중해 함대의 유의미한 전력은 프리드리히급 전함으로 건조된 당통(Danton), 콩도르세(Condorcet), 디드로(Diderot), 미라보(Mirabeau), 베르니오(Vergniaud), 볼테르(Voltaire)의 당통급 전함 6척뿐.
나머지 전력인 리베흐테급 4척은 연합군 전함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조차 없는 낡아 빠진 구식 전함들이었다.
물론, 유틀란트 해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해전이란 것은 상황과 지휘관의 능력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러나 이건 불리해도 너무 불리했다.
심지어 연합군 함대 쪽엔 따끈따끈한 최신 순양전함인 HMS 타이거(HMS Tiger)와 SMS 데어플링어(SMS Derfflinger)까지 있었다.
당통급 전함들이 지금은 황립 해군에서도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인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와 비슷한 수준이란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바위를 향해 달걀을 힘껏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발, 저게 다 몇 척이야.”
“우린 이제 다 죽었어……!”
덕분에 진을 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연합군 함대를 마주한 프랑스 수병들의 사기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깎여 나가고 있었다.
“모두 두려워하지 마라! 저들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입히지 못하면 마르세유는 물론, 우리 가족들이 있는 툴롱까지 위험해진다. 우리의 조국과 가족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만 한다!”
그러나 라뻬헤흐 제독은 프랑스 해군의 기둥답게 침착한 모습으로 수병들의 마음과 정신을 흔드는 공포를 내쫓으려 했다.
물론, 그도 이번 해전의 끝이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패배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국의 멸망이 목전으로 다가온 이상 언제까지고 항구 뒤에 숨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비록 호랑이 총리의 무자비한 명령에 따른 것이라도 지금은 싸워야만 했다.
‘코레의 리 제독도 13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적을 몰아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싸우자.’
라뻬헤흐 제독은 그 리 제독의 일대기를 유럽에 퍼트린 것이 가증스러운 한스 폰 초이라는 것을 애써 무시한 채 마음을 다잡았다.
“총원, 전투 대형을 갖춰라!”
곧 제독의 명령과 함께 프랑스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디 이번 전투에서만큼은 승리의 여신이 그들에게 미소 짓기를 바라며.
* * *
“발사! 발사해!”
“함장님, 이 이상 공격을 맞았다간 위험합니다! 후퇴해야 합니다!”
“여기서 패배하면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다. 그러니 우린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한이 있어도 X 같은 게르만 놈들 함선을 물귀신을 같이 끌고 간다!”
프랑스 지중해 함대는 분전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전투에 나서게 된 것은 총리의 강압적인 명령 때문이었지만, 프랑스 내에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지중해 함대는 적 함대에 손실을 주고, 연합군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프랑스 해군은 죄다 항구에 틀어박힌 겁쟁이인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군. 레더, 적 함대 사령관이 분명 라뻬헤흐 제독이었나?”
“예, 히퍼 제독님.”
“그의 명성이 헛된 것은 아니었군. 적이지만 존경할 만해. 그렇지만 나를, 우리를 적으로 만난 것이 그에겐 안타까울 따름이군.”
그러나 히퍼 제독의 말처럼 프랑스 해군은 용감하게 싸웠을지언정 연합군 함대에 그렇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함대에 다수 포진된 순양전함의 기동력을 이용해 그들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포탄을 쏟아 내는 연합군 함대에 난타를 당하면서도 계속 함포를 쉴 새 없이 쏘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미라보에 피탄! 유폭했습니다!”
“……신이시여.”
SMS 데어플링어의 포탄이 당통급 4번 함 미라보의 영 좋지 않은 곳에 적중하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베르니오 대파!”
“쥐스티스에 어뢰 적중!”
HMS 타이거가 당통급 5번함 베르니오를 미친 듯이 두들겼고, 리베흐테급 2번함 쥐스티스(Justice)가 전함 7사단 소속 USS 델라웨어(USS Delaware)의 21인치 어뢰에 맞아 크게 기울며 바닷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프랑스 순양함들과 구축함들의 상태도 전함들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노리는 그리스 함대는 단단한 영·독·미 함대 뒤에 숨어 딜을 넣고 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유보트 함대는 바닷속에서 계속 어뢰를 쏘아 대고 있었으니까.
“제독님, 기함인 콩도르세도 위험합니다. 탈출하셔야 합니다!”
“제독은 배를 버리지 않는 법.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수병들부터 탈출시켜라!”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지중해 함대의 기함인 콩도르세마저 연합군의 포화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당통급 특유의 5개나 있는 연돌 모두가 불씨 섞인 검은 연기와 함께 비명을 질러 댔음에도 불구하고, 라뻬헤흐 제독은 도망치지 않은 채 출항할 때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군.’
승리의 여신이여, 그대는 왜 이리 야속한가.
왜 매번 독일과 영국 편만 들어주고, 프랑스의 편은 들어주지 않는가.
라뻬헤흐 제독은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싶은 기분이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그가 지키려고 했던 조국은 자신의 함대처럼 얼마 안 가 무너져 내릴 테니까.
‘클레망소가 우리의 최후에 교훈을 얻어 독감으로 인해 힘든 상황인 대서양 함대엔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군.’
물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전쟁이 글러 먹었다는 증거이겠지만.
“위대한 조국 프랑스여, 영원하라!”
콰왕!!
얼마 지나지 않아 라뻬헤흐 제독의 마지막 외침과 동시에 콩도르세의 함교에 포탄이 작렬했다.
“콩도르세가 당했다!”
“크윽, 라뻬헤흐 제독님……!”
그리고 청년학파로 인해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프랑스 해군을 재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제독이 전사하자 아직 격침당하지 않고 살아 있던 프랑스 지중해 함대의 생존자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당통에서 백기!”
“볼테르와 다른 함선들도 마찬가지로 백기를 올렸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좋아, 우리가 가져갈 게 남았다는 소리로군!”
곧 프랑스 지중해 함대가 전멸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뻐하는 비티의 환성과 함께 프랑스 지중해 함대와 연합군 지중해 함대와의 전투가 끝났다.
연합군이 거둔 또 한 번의 승리요, 프랑스에게 다가온 또 한 번의 패배였다.
“지중해 함대가 패배했소.”
“예? 그럼 라뻬헤흐 제독은…….”
“프랑스의 제독답게 최후를 맞이했다는군.”
“후우…….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래, 그리고 브레스트의 대서양 함대도 얼마 안 가 지중해 함대와 같은 운명을 맡게 되겠지.”
“……대통령 각하, 무슨 뜻으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제 누군가는 클레망소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소리네. 두메르그 전 총리.”
그리고 이 사실은 푸앵카레를 비롯한 전쟁에 지친 파리의 정치인들에게 무겁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