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 최후의 싸움 (6)
푸앵카레와 두메르그의 부탁으로 카요가 협상국과 접촉하는 순간에도 서부전선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당연했다. 외교 협상은 어디까지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니까.
모로 가로 서울이란 말이 있듯이 평화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든 프랑스를 전부 불태운 끝에 전쟁을 끝내든 전쟁이 끝나는 것은 똑같다.
다만, 참호에 흐를 피가 달라질 뿐.
“헤이그 사령관님, 아군이 베르크(Berck)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좋아, 르 트레뽀르(Le Tréport), 그리고 디에프다!”
해군의 지원을 받는 영국군의 진격은 오늘도 계속되었다.
영국은 이제 르아브르로 가기 위한 관문인 디에프까지 단 60km를 남겨 두고 있었고, 영국 해군의 함포 사격 때문에 영국군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고 있는 프랑스 육군은 여전히 브레스트의 우리 함대는 대체 뭘 하는 거냐며 이를 갈았다.
“지크 하일! 지크 하일!”
“크론프린츠(Kronprinz, 황태자) 빌헬름에게 영광을, 독일 제국에 승리를!”
“파리가 멀지 않았다!”
빌헬름 황태자와 독일 북부집단군은 아라스를 돌파했다.
치즈 구멍 같은 포탄 구덩이들과 고철로 변한 전차 잔해로 가득한 전장을 배경으로 빌헬름 황태자가 이끄는 북부집단군 병사들은 또 한 번의 승리를 자축했고, 포슈는 피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등을 돌려 후퇴해야만 했다.
“맥아더 준장님, 발랑시엔에 이어 캉브레 점령에도 큰 전과를 올린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 모든 것은 저 맥아더가 아닌 병사들의 피와 땀이 어린 희생 덕분입니다! 전 그저 몽스의 미국 원정군 사령부가 더 적은 피해로 승리를 얻어 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네? 그럼, 이번 공세에서 발랑시엔 못지않은 큰 피해가 나온 것이 사령부의 무능 때문이란 겁니까?”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미군 또한 기어코 캉브레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대가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우드로 윌슨과 미국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로 미 육군과 해병대 장병들은 피로 얼룩진 혈전 끝에 캉브레에 성조기를 휘날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맥아더는 자신의 능력과 병사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종군 기자들을 쥐락펴락하며 사령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맥아더는 이를 어디까지나 병사들이 더욱 적절한 지휘를 받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여겼지만, 몽스의 미국 원정군 사령부의 별들은 맥아더의 병사들을 누구보다 아낀다는 듯한 행동을 그저 정치적 쇼라 여길 뿐이었다.
어쨌든 북프랑스 전선에서 프랑스는 계속 밀려나며 영토를 잃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프랑스군에겐 피를 토할 것 같은 일이건만, 불행히도 연합군의 진격은 북쪽만이 아닌 동쪽에서도 계속되었다.
“티에리! 샤토 티에리가 보인다!”
“수고했다. 제군들. 이제 파리까지 100km도 안 남았다!”
루프레히트 왕세자가 이끄는 중부집단군은 페탱의 기어코 마른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나폴레옹 시절 그들의 선배들이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샤토 티에리(Château-Thierry)를 점령하며 파리에서 80km 떨어진 곳까지 도달했다.
“날씨 한번 죽이네.”
“전쟁 중만 아니면 저 백사장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길 텐데.”
“하하! 전쟁만 끝나면 실컷 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지금은 툴롱을 누구보다 먼저 점령하는 것이 우선이다!”
“네, 롬멜 중위님!”
레토포어베크가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은 니스에 이어 칸을 점령하며 툴롱과 마르세유를 위협했고, 마켄젠도 그르노블을 돌파하고 리옹으로 진격했다.
“독일군이 온다! 독일군이 온다!”
“당장 짐 싸!”
“길은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덕분에 프랑스 지중해 함대의 분전 덕분에 짐을 쌀 시간을 벌 수 있었던 툴롱, 마르세유 주민에 이어 툴루즈와 클레르몽페랑, 부르주 등 아직 전화가 미치지 않은 지역의 주민들도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클레망소를 비롯한 프랑스 정부에겐 전혀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남프랑스의 피난민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파리도 마찬가집니다. 정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오를레앙과 르망으로 피난을 떠나는 시민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전쟁 전에 비축해 놓은 자원들이 결국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 특히 철 부족이 심각합니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전차와 대포를 비롯한 무기 공장들이 완전히 멈추고 말 것입니다.”
이어지는 보고에 가뜩이나 전선이 계속 밀리고 있어 기분이 매우 안 좋던 클레망소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군 병력까지 치안 유지에 동원했음에도 여전히 불안 요소가 가득 넘쳐나는 것이 현 상황이다.
여기에 피난민들의 존재는 상황을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파리를 봉쇄하시오.”
“예?!”
그러나 측근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음에도 클레망소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총리님, 정부가 파리를 떠날 거란 소문이 이미 일파만파로 퍼진 지 오래인데, 정작 피난민들을 막겠다고 파리를 봉쇄했다간 난리가 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소. 이 이상 시민들이 파리를 빠져나가게 놔둔다면 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병사들이 사기와 전의가 흔들릴 것이오. 그러니 최소 정부를 옮길 준비를 마칠 때까진 파리 시민들은 전선의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용감하게 파리에 남아 주어야만 하오.”
클레망소는 지중해 함대의 최후에 대한 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라스와 샤토 티에리가 점령당했음에도 아직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도 이 고비를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시발, 이건 그냥 다 같이 죽자는 거잖아!’
‘클레망소는 미쳤어. 진짜 프랑스인 전부가 죽을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생각이야!’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클레망소 내각의 관료와 정치가, 클레망소의 측근들조차 어떻게든 전쟁을 이어 나가려는 클레망소를 전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클레망소는 더 이상 프랑스를 구해 줄 호랑이 총리가 아니었다.
저건 전쟁이 만들어 낸 괴물이었다.
“클레망소 총리에게 불만이 많은가 보군.”
“가스통, 나는…….”
“괜찮네. 자네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야. 그저 내 이야기를 잠깐이라도 좋으니 들어 주게.”
그리고 푸앵카레와 두메르그는 클레망소와 프랑스 정치인들 사이에 생긴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클레망소에겐 미안하지만, 파리가 불타는 것보단 이편이 더 나을 테니까.
* * *
1914년 10월 28일.
베르크, 아라스, 캉브레에 샤토 티에리와 칸, 리옹까지 잃은 프랑스군은 이제 아미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랑스 하늘을 지키는 황새 비행대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뒤덮은 철새 떼처럼 떼로 몰려오는 연합군 전투기들은 물론이고, 파리를 불태우려는 폭격기들을 막느라 쉴 시간은 물론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었지만, 이들은 최정예답게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쿨럭쿨럭!”
설사 병마가 몸을 갉아먹는 중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조르주, 괜찮아?”
“괜찮아. 나보단 조국을 더 걱정해.”
황새 비행대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답게 조르주 기느메르가 동료 조종사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점점 심해지는 지병으로 인해 각혈하면서도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물론,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프랑스군을 덮친 독일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의사도 당장 비행을 멈춰야 한다고 진지하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병세는 이미 위험 수준을 넘은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그가 어떻게 쉬겠는가.
프랑스가 위태롭고, 파리가 위태롭고, 가족들이 위태로운데.
매일같이 자신에게 눈물 묻은 편지를 보내오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싸워야만 했다.
자신만을 믿고 있는 국민과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하늘 위로 날아올라야만 했다.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르네?”
그리고 그런 기느메르를 보다 못한 르네 퐁크는 평소 잘 안 열던 입을 열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말없이 구석에서 군복을 다리기만 하던 그의 평상시 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그도 겉으로는 티는 안 냈지 기느메르를 많이 걱정했다는 뜻이었겠지만.
덕분에 기느메르도 오랜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부우우웅───
“적기다!”
조종사들에겐 여자 친구 목소리만큼이나 익숙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들려온 기느메르와 퐁크를 비롯한 조종사들이 서둘러 막사 밖으로 나갔다.
활주로를 노린 공습일지도 모른다.
황새들은 독일 제국 항공대인지 왕립 항공대인지 모를 적을 떨구기 위해 당장이라도 비행기에 올라타 출격할 생각이었지만…….
“뭐야? 한 대뿐이잖아.”
막사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 허탈하게도 프랑스군 진영으로 향해 접근해 오는 비행기는 단 한 대뿐이었다.
“독일 비행기군.”
“뭘 던지는데?”
그 말대로 독일군 전투기는 프랑스군 진영에 도착하자마자 정체 모를 무언가를 던지더니 대공포가 불을 뿜기 전에 서둘러 자기네 진영 쪽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퐁크 대위님, 대위님 앞으로 왔습니다.”
퐁크는 병사들이 독일 파일럿이 떨어트린 정체불명의 물건을 주워 와 자신에게 건네자 쏟아지는 시선에 부담스러운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렀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쟁 초중반 때만 하더라도 조종사들이 적 진영으로 날아가 선물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꽤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증오와 악밖에 안 남은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인 문화였다.
찌익─
퐁크는 대체 독일 조종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보냈나 의심과 불안, 흥미를 품고 포장을 뜯었다.
“……벽돌?”
그리고 포장지를 뜯자 거기엔 벽돌이 들어 있었다.
“아, 뒤에 있구나.”
순간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던 퐁크는 벽돌(아마도 물건을 정확한 곳에 떨어트리기 위해 들어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뒤로 살짝 보이는 편지지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벽돌을 땅에 던져 버리고, 편지 봉투를 뜯었다.
“…….”
그리고 안에 들어 있던 편지지를 보자마자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쿨럭쿨럭, 뭐야? 독일 놈들이 너에게 뭐래?”
“……결투장이야.”
“뭐?”
“붉은 남작이 나에게 결투를 신청했어.”
퐁크의 말에 기느메느를 비롯한 프랑스 조종사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나가지 마. 퐁크. 그 엿 같은 독일 귀족 놈에게 어울려 줄 이유는 없어.”
“……하지만 붉은 남작을 격추하면 프랑스엔 큰 도움이 될 거야.”
퐁크의 말에 침음성을 흘리는 기느메르.
그 말대로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을 결투에서 쓰러트린다면 아군의 사기는 오를 것이고, 미소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프랑스 국민도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쾌재를 지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파일럿이자 독일 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쟁 영웅을 잃은 독일인들은 절망에 빠질 테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르네 퐁크가 승리할 때의 이야기였다.
독일의 붉은 남작과 프랑스의 신총.
두 사람이 일대일로 싸우면 누가 이길지 기느메르나 다른 프랑스 조종사들로선 도저히 가름할 수 없었다.
물론, 리히트호펜의 실력은 마의 70을 가뿐하게 넘은 79기라는 연합군 조종사들은 물론, 프랑스군 조종사들조차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무지막지한 격추 수로 이미 증명되었다.
그러나 퐁크 또한 리히트호펜과 캐나다산 괴물인 빌리 비숍만이 가까스로 발을 들였던 마의 70에 도달한 괴물.
심지어 시간만 충분했다면 붉은 남작을 뛰어넘을 것이란 말까지 있었던 만큼 사실상 둘의 실력은 동급이라 봐야 했고, 그렇기에 더더욱 승패를 확신하기 어려웠다.
“뵐케의 죽음 이후 리히트호펜이나 임멜만 같은 에이스들은 전선에 안 나오고 있어. 이건 붉은 남작을 떨어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그러나 불확실한 예상과 동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퐁크는 이미 결투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자존심, 명예 그 모든 것은 둘째 치더라도 붉은 남작을 격추할 기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프랑스군 최고의 파일럿, 신총 르네 퐁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