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 결투
“리히트호펜,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전선에서 약간 후방에 있는 독일 제국 항공대 사령부에 항공대 사령관 에른스트 폰 회프너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모장인 헤르만 폰 데어 리트 톰센도 소리만 안 질렀지,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소식을 듣고 베를린에서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내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설마설마했는데 만프레트 이 새끼가 기어코 사고를 쳤다.
결국, 참지 못하고 동료를 시켜서 제멋대로 르네 퐁크에게 결투장을 보낸 것이다.
“……질 생각도 죽을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올 테니 보내 주십시오.”
“그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자네의 몸은 이미 자네만의 것이 아니란 걸 왜 모르나!”
그러나 우리의 붉은 남작께선 붉은 혜성이라도 빙의했는지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없이 퐁크와 싸우고 오겠다는 말을 메아리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물론, 카이저와 팔켄하인으로부터 대체 파일럿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쪼이고 있는 회프너는 뒷목을 잡고 돌아 버리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이젠 무를 수도 없습니다.”
이에 내가 한숨 쉬며 말했다.
“퐁크는 결투를 받아들였고, 어떻게든 전황을 반전시키려는 프랑스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미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간의 자존심과 명예가 달린 문제입니다.”
게다가 프랑스가 노리는 것처럼 결투의 결과가 전황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전쟁에서 ‘붉은 남작’이 가지는 가치는 그 정도였다.
“결투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투의 승리자가 붉은 남작이 되어야 할 것은 따로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하늘에서의 승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장관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장 첩보에 따르면 프랑스는 퐁크에게 최신 기체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 그러니 우리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죠.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제가 라이트사로부터 가지고 온 것이 있습니다.”
“한스……!”
그런 감격했단 얼굴로 보지 마, 임마.
사고 친 만큼 결투 날까지 뼈 빠지게 굴려 줄 테니까.
* * *
리히트호펜이 퐁크에게 결투를 신청한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914년 11월 4일.
붉은 남작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과 신총 르네 퐁크 중 누가 대전쟁 최고의 파일럿인지 결정지을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반드시 이기고 살아 돌아와라. 르네.
기느메르를 비롯한 동료들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린 르네 퐁크는 조종대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자신은 절대 질 수 없었다.
어머니, 전우, 상관, 그리고 전 프랑스 국민이 자신이 붉은 남작에게 승리하길 기대하고 있다.
당장 포슈 사령관에 클레망소 총리까지 결투에 나가는 자신을 독려하기 위해 직접 전선까지 찾아왔을 정도다.
보통 그런 관심은 병약 미소년이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요소에 더해 사교적이기 까지 한 기느메르가 독차지했기에 내심 이를 질투했던 퐁크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되었다.
‘모두가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
그리고 그것은 퐁크가 타고 있는 쌔끈한 신형기만 봐도 증명할 수 있었다.
부우우우웅───
SPAD S.XIII.
프랑스군이 노획한 아들러 전투기를 분해해 얻어 낸 데이터로 개발한 최신형 전투기로 아들러 전투기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괴물이다.
다만, 개발이 너무 늦게 끝난 탓에 프랑스 육군 항공대는 이 신형기를 몰아볼 기회조차 없었지만.
그만큼 프랑스군은 독일 제국군의 신화에 먹칠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기체 성능이 아들러 전투기에 뒤지지만 않는다면 퐁크는 붉은 남작을 확실하게 관 속으로 보낼 자신이 있었다.
타다다다다다───
“왔군.”
멀리서 들려오는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에 퐁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곧 새하얀 구름 사이로 날개부터 동체까지 붉은색으로 도색된 전투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군에겐 악마나 다름없는 붉은 남작의 비행기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순 없다.
퐁크는 SPAD S.XIII의 성능을 믿으며 속도를 높였다.
“…….”
퐁크와 리히트호펜.
공화국과 제국, 보주(Vosges) 지방 출신의 노동자들의 아들과 명문 귀족 리히트호펜 가문 출신의 도련님은 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하늘 위에서 서로를 향해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기동했다.
그리고 계기판에 놓아 둔 시계의 두 바늘이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부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이 탄 비행기가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조국과 명예를 짊어진 기사들의 결투가 그 막을 올렸다.
* * *
타다다다다다──!!
“큭, 역시나 신형기를 가지고 나온 건가?”
먼저 기세를 잡은 것은 퐁크 쪽이었다.
황새 비행대의 상징인 새하얀 황새가 그려진 퐁크의 SPAD는 기존의 SPAD와 달리 아들러 전투기의 속도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고, 덕분에 리히트호펜은 입술을 굳게 깨물며 하나하나가 유효타인 총알을 피해 기수를 꺾어야만 했다.
“쯧!”
그러나 혀를 차는 것은 퐁크 쪽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남작은 그 명성답게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총알을 피해 내며 침착하게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리히트호펜의 가슴은 뵐케의 복수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지만, 에이스 오브 에이스답게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가축을 노리는 늑대처럼 빈틈을 노려 그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언젠가 찾아올 한순간의 기회를 노렸고, 계속 얽혀 오는 퐁크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애썼다.
부아아앙──타다다다다다!!
물론, 퐁크라고 이런 리히트호펜의 속셈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관총 위에 달린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리히트호펜에게 아예 반격의 여지 자체를 주지 않기 위해 집요하게 그를 노렸다.
슝! 슈슝!
“크윽!”
리히트호펜은 매서운 맞바람을 맞아 가면서도 조종대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으며 날아오는 총알을 피했지만, 퐁크의 사격 실력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치명상은 모두 절묘하게 피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리히트호펜의 기체에 총알이 스치거나 뚫고 지나가는 흔적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러나 리히트호펜은 버텼다.
전투기 동체와 날개에 구멍이 늘어 가고, 총알이 얼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꿋꿋이 버텼다.
딱 한순간.
인간의 집중력의 한계가 찾아오고 퐁크가 실수하는 그 한순간만을 기다리며 계속 버텼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고 바로 달려 나가 응징하기로 유명한 붉은 남작의 모습이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
“죽어어어어!”
퐁크의 집중력과 리히트호펜의 인내심.
둘 중 먼저 끊어진 것은 전자였다.
계속 총을 쏘고, 또 쐈는데도 아직도 버티고 있는 적 전투기에 초조함을 느낀 퐁크는 마침 붉은 남작의 위를 잡자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들다 속도를 너무 내고 말았다.
곧 기수를 올릴 때를 놓친 퐁크의 기체가 내려와도 너무 내려왔고, 리히트호펜은 그토록 기다리던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을 빛내며 페달을 밟았다.
“!!!”
리히트호펜의 기체가 퐁크를 스쳐 지나가며 엄청난 속도로 고도를 높였다.
아들러 전투기가 아무리 성능 좋은 기체라고 해도 낼 수 없는 상승 속도였다.
무엇보다 고도.
리히트호펜은 멈추지 않고 계속 고도를 높였다.
아무리 하늘에서의 전투에서 적의 위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그렇다고 너무 고도를 높였다간 기체의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리히트호펜의 기체는 계속 높이, 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고도 15,000피트, 16,000피트, 17,000피트.
그리고 기어코 18,000피트를 돌파해 20,000피트(6,000m)의 고고도에 섰다.
퐁크의 SPAD 전투기로선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높이였다.
그러나 리히트호펜의 붉은색 전투기는, 한스가 라이트사를 닦달해 가져온 리히트호펜 만의 특별기 ‘로터아들러(Roteradler)’는 20,000피트의 하늘 위에서도 여전히 잘 움직였다.
로터아들러가 퐁크의 맹공에서 리히트호펜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뛰어난 기동성과 내구성은 물론, 우월한 상승 속도와 고고도 전투 능력을 갖춘 덕이었다.
“끝이다.”
사냥꾼과 사냥감은 이제 바뀌었다.
지금까지 퐁크가 리히트호펜을 사냥했다면 이제는 리히트호펜의 차례였다.
곧 리히트호펜이 탄 비행기가 목표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발톱을 드러내고 퐁크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어 신총의 목숨을 끊기 위해 쏜살같이 하강했다.
“이이익!”
그러나 퐁크도 프랑스 최고의 파일럿.
서둘러 기체를 반전시킨 그는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리히트호펜을 향해 기수를 올리고 속도를 높이며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
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여기서 단 한 발로 리히트호펜의 목숨을 끊을 수 있을 테니까.
“윽?!”
그러나 리히트호펜은 뵐케가 남긴 금언의 첫 번째 항목을 충실히 따라 태양을 등지고 하강하고 있었다.
덕분에 퐁크는 눈이 부셔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었고, 뉴타입의 경지에 오른 사격 실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리히트호펜─!!”
“퐁크으으!!”
타다다다다다다!!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을 그리며 발톱을 내민 채 독수리처럼 쏜살같이 하강하는 리히트호펜.
아래로 위로 대각선을 그리며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황새처럼 부리를 활짝 벌리고 발악하는 퐁크.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전투기 동체와 날개가 총탄으로 갈기갈기 찢기고, 스친 총알에 고글이 깨지고, 뺨에 피가 흘렀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타앙!
“컥!”
“윽!”
그리고 두 사람의 기체가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스치고 지나갔을 때, 서로의 총알이 서로의 몸에 박혔다.
리히트호펜은 순간 몸을 비틀어 총알이 팔에,
“쿨럭!”
퐁크는 가슴에 맞고 말았다.
길었던 결투의 승부가 난 순간이었다.
“씨발…….”
퐁크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멀어지는 리히트호펜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붉은 남작의 전투기는 엔진을 맞았는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적어도 혼자 죽진 않는다는 생각에 퐁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펄럭!
“…….”
붉은 남작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며 낙하산을 매고 밀려오는 팔의 격통을 참아 가며 유유히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탈출해 버렸다.
“개 같은 독일 놈들, 전쟁 한번 X같이 하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퐁크는 모든 프랑스 병사들이 한 번쯤은 외쳤을 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곧 그가 탄 기체가 지면에 추락하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 * *
[에이스 파일럿 르네 퐁크, 붉은 남작과의 결투에서 사망.]“신이 프랑스를 완전히 버렸군.”
푸앵카레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신문을 접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인기는 많이 없었지만, 프랑스 최고의 파일럿이란 것에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퐁크가 마지막으로 하늘의 전설을 쓴 붉은 남작에게 사망했다.
퐁크가 붉은 남작을 죽여 독일 제국의 사기를 떨어트리길 원했던 클레망소와 페탱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고, 가뜩이나 클레망소의 폭주 때문에 미쳐 돌아가던 파리의 분위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승리자 붉은 남작은 낙하산을 타고 유유히 연합군 진영으로 착륙해 멀쩡히 살아남은 것은 물론, 기어코 격추 수 80을 달성해 불멸의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필요한 지지자들을 전부 모았습니다. 각하.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두메르그의 침울한 목소리에 푸앵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마음이 착잡해졌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이상 프랑스의 청년들이 죽어 국가의 미래가 사라지고, 조국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 전에 이 전쟁을 끝내야 했다.
“고위 장교단에 대한 포섭은 어떻게 되었나?”
“일부 장성들이 우리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으로 페탱을 비롯한 과격파들도 쉽게 움직이진 못하겠지요.”
“때가 되었단 소리군.”
“예, 각하.”
“가스통. 내각불신임을 시작하게.”
푸앵카레의 명령에 두메르그와 화평파 인사들이 허리를 숙였다.
프랑스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