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 베를린 강화 회의 (1)
대전쟁의 정점과 끝이 동시에 존재했던 파란만장한 1914년이 끝났다.
그리고 전간기의 시작이 될 1915년의 아침이 밝음과 동시에 베를린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베를린에 어서 오십시오, 슈튀르크 총리님.”
“아! 오랜만입니다, 초이 장관. 독일과 오스트리아, 두 형제 국가가 마침내 승리의 과실을 함께 거두게 되었으니 기쁘기 그지없군요!”
가장 먼저 베를린에 발을 딛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를 폰 슈튀리크 총리와 베르히톨트 외무장관부터,
“드디어 이날이 왔군요. 여러모로 바쁜 하루가 되겠지만, 어디 잘해 봅시다.”
“하하, 살살 부탁드립니다. 로이드 조지 총리님.”
이런 자리에 빠지면 섭섭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와 그레이 외무장관.
“어서 오십시오, 브로크빌 총리님. 우리 독일 제국은 벨기에 대표단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장관님. 부디 이번 회의에서 우리 벨기에를 잘 부탁드립니다.”
벨기에 총리지만,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진두지휘한 알베르 1세보다 존재감이 떨어졌던 샤를 드 브로크빌을 비롯한 벨기에 대표단.
“콘스탄디누폴리(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 얼마 전 코스탄티니예에서 그리스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래로군요, 베니젤로스 총리님.”
“예, 우리 그리스는 이번 회의에서 입 아프게 떠들 일은 별로 없겠지만, 이번에도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오스만 제국과의 종전 조약인 코스탄티니예 or 콘스탄디누폴리 조약 때 이미 먹을 건 다 먹은 덕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베를린을 찾아온 엘레프테리오스 키리아쿠 베니젤로스 총리와 그리스 대표단.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이 후작님!”
“영광입니다!”
“하…하하…….”
나를 향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기세로 악수를 청해 오는 일본 대표, 사이온지 킨모치(西園寺公望) 전 총리대신과 일본 대표단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 전권 대사.
“크흠…….”
“큼!”
두 개의 중국에서도 각각 청나라 외무대신 루정샹(陸徵祥, 육징상)과 중화민국 외교총장 탕사오이(당소의, 唐紹儀)를 대표로 보내왔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마자 불편한 기색을 전혀 감추지 않았지만.
하여튼, 이 밖에도 포르투갈과 브라질을 비롯한 협상국 내 존재감이 희미한 국가들과 폴란드-리투아니아, 발트, 우크라이나, 핀란드, 조지아 등 우리 독일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신생국들도 대표단을 보내왔다.
“어서 오십시오, 윌슨 대통령님.”
대표단이 대부분 도착했을 때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난다는 듯 그가 마침내 유럽에 도착했다.
“독일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토머스 우드로 윌슨.
신대륙에서 찾아온 거물이 유럽에 발을 디뎠다.
* * *
“모두 반갑습니다. 승리의 소식에 더해 드디어 제가 유럽에 와 이렇게 협상국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기쁘군요.”
“하하, 저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함부르크 항에 발을 딛은 우드로 윌슨을 향해 뷜로 총리와 로이드 조지, 슈튀르크가 마찬가지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와 차례대로 악수했다.
협상국의 주요 구성원인 독일, 영국, 미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지도자들의 만남이오, 빅4라 불릴 거물들의 첫 만남이다.
‘겉으로만 보면 참으로 화기애애한 장면이네.’
당장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험난한 세계대전을 함께 헤쳐 나간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승리의 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와 외교는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법.
네 사람은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에 여념이 없는 기자들 앞에 서서 서로의 손과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엔 정치판에서 구르고 구른 사람들답게 단 한 방울의 진심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으니, 다음은 패전국들이 흘린 잔해를 집어먹기 위한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었으니까.
‘특히 우드로 윌슨은 우리 독일을 사사건건 견제하려 하겠지.’
미국이 이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부터 이미 낌새는 느꼈다.
자칭 평화를 사랑하시는 우드로 윌슨의 눈에는 독일 제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같이 입헌군주제 흉내 내는 전제국가는 세계평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 그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국가일 테니까.
게다가 지나치게 빠른 미군의 실전 투입도 그렇고, 굳이 필요가 없는 북아프리카 진공 등 어떻게든 미국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시도를 내 두 눈에 뻔히 봤는데, 이걸 못 알아채면 외무장관 명찰 떼야 한다.
물론, 우리 독일 제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전쟁을 주도한 이상 우드로 윌슨이 그의 생각과 달리 제멋대로 설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귀찮은 일인 것은 틀림없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미국과 척져선 절대 안 되는데, 정작 미국의 대통령이란 자는 우리에게 까불지 말라고 주먹을 휙휙 휘두르려고 하고 있으니.
아, 루스벨트가 대통령이던 시절이 그립다.
승리한 전시 대통령이 되었으니 우드로 윌슨은 아마 재선에서도 무난하게 당선할 텐데, 그러면 저 양반을 무려 1921년까지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프리데리케가 폴크스슐레(volksschule, 국민학교) 들어갈 나이가 될 때까지 윌슨의 견제를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신분이 신분인 만큼 프리데리케는 물론, 내 자식들이 서민이나 가는 국민학교에 갈 일은 전혀 없겠지만.
“이제야 만나게 되는 군요, 한스 폰 초이 장관.”
상만 해도 절로 피곤해지는 것은 물론, 눈앞에서 서류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악몽이 절로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윌슨이 다른 빅4와 인사치레를 마치고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방금까지 다른 이들을 상대할 때처럼 입가에 ‘나 착한 사람이에요’ 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고명한 명성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후후,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장관. 승리의 설계자라 불리는 장관의 명성은 이미 미국에도 퍼졌으니 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식적인 웃음소리를 터트린 우리 두 사람은 기자들에게 잘 보이도록 힘차게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물론, 속으론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소름 끼치는 요상한 느낌에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다.
이게 바로 본능적 혐오라는 것일까?
윌슨의 주름진 미간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저쪽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윌슨과 나는 포토타임이 끝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맞잡은 손을 얼른 떼었다.
“자, 그럼 베를린으로 가실까요?”
“후후, 물론입니다.”
물론 가식적인 미소는 계속 유지되었다.
아마 강화 회의 내내 그럴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 * *
1915년 1월 18일.
내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제국외무청에 세계 각지에서 온 협상국의 대표들이 패전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집결하며 베를린 강화 회의가 화려하게 그 막을 올렸다.
참고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자 공교롭게도 나에겐 처조부(본인은 인정 안 할 것 같지만) 되시는 빌헬름 1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한 날이기도 했다.
이유야 당연히 우리 장인어른의 고집 때문이다.
파리 점령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난 바람에 베르사유 궁전까지 가서 독일 제국 최초이자 최대의 영광을 재현하긴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대신 강화 회의라도 이날 시작하고 싶단다.
나야 랭스에 이어 또 한 번 프랑스에게 티배깅을 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해 반대를 표했지만, 뷜로 총리 이하 내각 장관들이 전부 동의하면서 다수결의 막강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여튼,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자 외무청 회의실에 모인 수많은 지도자와 외교관들이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얻어 내기 위해 입을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계속 높였다.
“연해주와 인도차이나는 우리 일본 제국의 남아들이 피를 흘린 끝에 점령한 땅입니다. 그러니 우리 일본은 이 지역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바이며…….”
그리고 그중 유독 목소리가 큰 것은 이 기회에 연해주랑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전부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중인 일본 대표단이었다.
“글쎄요. 제 생각엔 일본 측의 요구는 너무 과한 것 같군요.”
“우리 영국 또한 미국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두 지역이라면 모를까 인도차이나 전부를 집어삼키겠다니, 솔직히 말해 일본 제국에 양심이란 게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야심은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이 일본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원치 않은 우드로 윌슨과 로이드 조지란 높다란 벽에 가로막혔다.
사실 윌슨과 로이드 조지의 입에서 일본의 요구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미국이야 원래부터 일본과 태평양 이권을 두고 경쟁하던 사이고, 영국 또한 미국과 비슷한 이유로 말까지 바꾸며 일본의 참전을 저지하려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손, 손나……!”
물론, 일본 대표인 사이온지 킨모치와 마키노 노부아키에겐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인 모양이다.
당장 지금 두 사람의 얼굴은 미국이면 몰라도 일단은 동맹관계인 영국까지 반대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으니까.
지이이이이───
그렇다고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눈으로 내 쪽을 보는 건 그만둬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독일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미쳤다고 일본을 도와주겠나?
게다가 연해주와 인도차이나를 전부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은 이번 회의의 성격상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 회의를 주도하고 결정짓는 것은 결국, 빅4.
독일의 베른하르트 폰 뷜로,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미국의 우드로 윌슨,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카를 폰 슈튀르크 단 네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슈튀르크 쪽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자체가 우리 독일 제국 2중대라 빅4 중에선 존재감이 좀 희미했지만…….’
그래도 다른 국가들보단 발언권이 강했다.
빅4의 힘이 어느 정도였냐면 심지어 정말 중요한 안건 같은 경우 나를 비롯한 외무장관들은 물론, 다른 나라 지도자들조차 전부 패싱한 채 빅4 네 사람만이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밀실에 모여 자기들끼리만 논의하고 결정할 정도다.
물론, 다른 국가들 입장에선 짜증 나는 일일 것이다.
독일, 영국, 미국,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다 해 처먹는 꼴이니까.
그러나 이것이 협상국의 사황, 빅4의 권력이었고, 세계평화를 내세운 강화 회의가 정작 진정한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진 이유였다.
식민지 독립? 영국이 결사반대한다.
인종 차별 철폐? 영국이 결사반대하고 미국도 자국 내 흑인 문제 때문에 은근히 반대한다.
이번엔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민족 자결? 영국이 또 결사반대하고, 민족 갈등 때문에 고통받는 중인 오스트리아-헝가리도 반대할 것이다.
왠지 영국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얘들은 원래 이런 애들이니 신경 쓰지 말자.
하여튼, 같은 빅4의 의견이라도 다른 빅4가 반대 의사를 표하면 그 안건은 그냥 통과될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우리 미국은 일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프리모리예 일대의 소유를 포기하고 군대를 철수시킨다면 통킹과 안남을 영유하는 것을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영국은 미국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영국과 미국이 눈에 불을 켜고 저지하려고 하는 일본의 확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협상국 내에서 숨겨진 오황 취급받는 일본이니까 이리 협상의 여지라도 주는 거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다.
“그, 그건 말도 안 되는 요구입니다. 게다가 우리 일본은 우리가 피땀 흘려 점령한 연해주에서 절대 물러날 수 없습니다!”
물론, 일본은 일본답게 아직 인도차이나+연해주 석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발악했다.
일본 쪽의 반응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영미의 개입은 일본에 있어 과거 랴오둥 반도 먹었다가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압박 때문에 도로 내뱉어야 했던 삼국 간섭의 악몽이 떠오를 테니까.
그러니 저리 발버둥부터 치고 보는 거겠지.
“잠깐, 잠깐만요!”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일본의 발버둥은 다른 나라들의 인내심에도 불을 붙이고 만 모양이다.
“왜 일본이 점령한 프랑스령 광둥 같은 중국의 영토에 대해선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겁니까?”
일본에 할 말이 참 많아 보이는 중화민국 대표 탕사오이가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 중화민국은 광둥을 반환할 것은 물론, 참전의 대가로 서구 열강과 일본이 중국에 강요한 불평등조약을 개정 및 철폐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 전쟁에서 사실상 아무것도 못 한 채 쿨리만 잔뜩 보낸 중화민국이 무슨 염치로 그런 요구를 하는 겁니까?”
“뭐, 뭐요? 그건 따지고 보면 당신네 일본이…….”
“극동은 아무래도 좋소! 우리 아프리카부터 이야기합시다. 우리 포르투갈은 참전에 대한 대가로 프랑스령 기니를 요구합니다!”
“우리 영국은 포르투갈의 요구에 반대합니다. 기니는 응당 우리 대영제국에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 이미 전 세계에 영국의 식민지가 넘쳐나는 상황에 또 식민지를 가져가겠다고? 일본을 탓하기 전에 당신네 영국인들의 양심부터 걱정하시오!”
일본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끝내 회의를 과열시켰다.
여기저기서 삿대질과 고함이 울려 퍼진다.
다들 이젠 남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다.
“후……. 어질어질하구만. 장관, 정리하게.”
“옙.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서로 의미 없는 말싸움만 벌여 봤자 이야기만 복잡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 시장 바닥보다 더 시끄러운 난장판을 정리하는 것은 회의 장소의 주인이자 호스트인 독일 제국의 외교 담당인 내 역할이었다.
‘에휴, 베를린이 아니라 런던에서 강화 회의를 열자고 할걸.’
물론 언제나처럼 늦은 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