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 윌슨을 잡아라 (1)
“미국이 이 이상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뷜로 총리님. 윌슨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뷜로 총리와 나, 그레이 장관이 미국에 대한 대처를 논의하기 위해 밀실에 모인 가운데 마지막 한 명인 로이드 조지가 윌슨에 대한 악감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에겐 더는 우드로 윌슨에 대한 그 어떤 호의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영국과 미국의 싸움은 격화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14개 조 평화 원칙인지 뭔지 말도 안 되는 짓거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게 X발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난 이제 윌슨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워워, 진정하세요. 총리님.”
보다 못한 내 말에 로이드 조지가 콧김을 거세게 뿜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분노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14개 조 평화 원칙, 그중에서도 그 유명한 민족자결주의는 아무래도 원 역사와 달리 우리 적들이 아닌 영국, 그리고 다민족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안 좋은 쪽으로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기에 로이드 조지에겐 윌슨의 도발로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조차도 윌슨이 영국 엿 먹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우리 독일이야 원 역사나 지금이나 딱히 민족자결주의로 타격을 입을 나라도 아니라서 상관없지만.’
윌슨은 사실 우리 독일이 아니라 영국을 견제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젠 모르겠다.
“저도 이번 일에서 영국이 옳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로이드 조지 총리님. 하지만 이대로 무작정 미국의 말에 반대만 한다면 우리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에게도 곤란한 일만 생길 뿐입니다.”
“후, 그건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나도 이런 일로 미국하고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요! 그러나 윌슨이 고집을 꺾지 않으니 우리라고 뭘 어쩌겠습니까?”
그 말대로였다.
우드로 윌슨은 자존심 때문인지 국가의 외교적 위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와 달리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대체 윌슨이 프랑스에 북아프리카를 남겨 주는 것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군. 솔직히 이런 식으로 영국과 마찰을 빚는 것은 미국에도 아무런 이득이 없질 않나.”
“뷜로 총리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윌슨 대통령이 도덕주의자라서 그런다고 하기엔 뭔가 이야기가 맞질 않고요. 이건 결국 식민지를 누구에게 주느냐 문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윌슨이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이건 아직 제 개인적인 사견에 불과하지만, 윌슨 대통령이 프랑스와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닐까요?”
“뭐?”
“뭐라구요?!”
오랜 고민 끝에 도출해 낸 추론에 뷜로 총리와 로이드 조지 총리가 경악 어린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내 말은 우리 동맹이 적과 내통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겁니까?”
“일단은 정황뿐입니다. 하지만 그 정황만으로 의심할 정도는 되더군요.”
이 발언이 가져올 파장이 두려운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그레이 장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내가 말했다.
말 그대로 실질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이번 일에 석연찮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애초에 윌슨 대통령이 프랑스에 자비를 베풀겠다고 북아프리카를 남겨 주려고 하는 것부터가 이상합니다. 왜 굳이 북아프리카일까요? 자비를 베풀 거면 배상금을 줄여 주는 등 다른 방법도 많은데요.”
그러나 정작 윌슨은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던 이 시기 미국 사람답게 프랑스가 미국에 끼친 피해와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프랑스에 1,000억 프랑 이상의 배상금을 받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1,000억 프랑은 달러론 대략 170억, 마르크론 약 700억 정도 된다.
베르사유 조약 때 프랑스가 강요한 1,320억 마르크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여전히 천문학적인 액수인 것은 틀림없었다.
‘솔직히 전부 받아 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돈이지.’
빚도 어느 정도 현실적이어야 갚을 마음이 드는 거다.
게다가 너무 많은 배상금은 도리어 경제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케인스주의의 창시자이자 영국 재무성 대표로 이번 회의에 참석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후 베르사유 조약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 사태가 발생한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의 경제 악화는 유럽의 경제에 손해가 되면 손해가 되었지, 이득이 되진 않을테니까.
어쨌든 윌슨의 행동은 모순되었고 로이드 조지는 노련한 정치인답게 내 말속에 숨겨진 뜻을 바로 알아챘다.
“그렇다면 장관의 말은 지금 윌슨 대통령이 프랑스에 북아프리카를 남겨 주겠다고 보장을 했단 소리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로이드 조지 총리님. 다만 미국이 프랑스에 북아프리카를 보장했다면 그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요?”
윌슨이 미쳤다고 아무런 대가 없이 프랑스 좋은 일만 시켜 줄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서로 대가를 주고받은 거래가 있었고 그 속에 이번 일의 진실이 숨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쟁 때 미군은 북아프리카를 너무 수월하게 점령했지요. 서부 전선에서 보인 추태와 달리 말입니다.”
짧은 고민 끝에 가장 먼저 진실에 도달한 그레이 장관이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북아프리카를 지키는 프랑스군이 레토포어베크에게 얻어맞고 아무리 본국의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이었다지만 그들은 너무 쉽게 무너졌고 너무 쉽게 항복했다.
서부 전선에서 보인 프랑스군의 투지와 프랑스가 알제리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젠장, 무기 없다고 우리에게 징징거리기까지 한 놈들이 웬일로 잘 싸우나 했어. 윌슨 이 망할 양키놈이 북아프리카를 쉽게 점령하기 위해 북아프리카를 보장해 버린 거요. 우리에게 말도 없이!”
“예, 제 생각도 같습니다. 당장 미군이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 미군은 발랑시엔에서 별 성과도 없이 큰 피해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른 미군의 부진에 윌슨은 초조해졌겠지. 당장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군을 실전에 빨리 투입했을 정도잖나.”
“맞습니다, 뷜로 총리님. 우리가 아는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애스퀴스…….”
그래, 영국의 전 전시 총리이자 영국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가 윈스턴 갈리폴리 처칠 경과 함께 내각째로 몰락해 버린 애스퀴스가 한 짓과 비슷했다.
아니, 어떤 의미론 더 비열했다.
애스퀴스는 자국 병사들의 목숨을 칩으로 걸었다면 이건 동맹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행위니까.
사실 윌슨이 북아프리카의 빠른 점령을 위해 우리와 미리 합의하고 프랑스와 거래를 했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윌슨은 북아프리카 점령을 오로지 미군의 단독 공적으로 돌리고 싶었는지 독단적으로 일을 저질렀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윌슨 이 개자식, 우리에게 말도 없이 이딴 짓을 저질러?”
“이 일을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됩니다!”
덕분에 로이드 조지와 그레이는 핏발 선 눈으로 윌슨에 대한 분노를 토해 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여러분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우리가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며 윌슨을 압박할 순 없습니다.”
“미국을 아예 적으로 돌리고 싶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황 증거뿐이다.
윌슨과 프랑스가 정말 손을 잡았다는 그 어떤 실질적인 증거가 없었다.
‘아니, 증거가 있어도 문제야.’
이건 윌슨 하나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과 독·영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 낼 문제였지.
당장 우리 독일과 영국이 미국을 배신자라고 비난하면 미국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저 유럽 새끼들이 우리를 나쁜 놈 만든다고 생각하겠지.
순수 악이 아닌 이상 자기가 나쁜 놈이 되길 바라는 이는 없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막기 위해 자기합리화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하는 생물이었다.
진실이 드러나면 윌슨은 끝장이 나겠지만 유럽은 미국을 비난할 테고 미국은 유럽을 비난할 것이다.
이 악순환을 폭소와 함께 좋아할 사람은 패전국들이나 슬슬 시베리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레닌밖에 없을 거다.
“그래도 이걸 이대로 묻어 버릴 순 없습니다. 우드로 윌슨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윌슨에 대한 증오와 원망만이 로이드 조지 총리가 외쳤다.
그래, 그 말대로 윌슨이 정말 프랑스랑 몰래 뒷거래를 했다면 이건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내 개인 감정은 둘째치고 이건 배신이잖아.’
한번 선을 넘은 자는 계속 선을 넘는 법이다.
배신자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식으로 미국과 척을 지는 일을 최소화하면서 윌슨은 쫓아낼 수 있을까?
제일 쉬운 것은 비선 실세 공격이지만 아쉽게도 윌슨은 아직 반신불수가 아니었고 둘째 부인이자 영부인 직무 대행 사태의 주인공인 이디스 윌슨이랑 재혼도 아직 안 했다.
미 해군에서 터진 동성애 스캔들인 뉴포트 스캔들?
그건 1919년에 일어난 일인데다가 어차피 해군 장관 조지퍼스 대니얼스랑 지금은 해군 차관보인 FDR에게만 비난이 쏟아진 일이라 윌슨까지 쳐내기엔 너무 약하다.
“그럼 방법은 결국 하나뿐이군요.”
“제가 생각하는 그것입니까?”
“예, 그레이 장관님. 프랑스와 접촉해야겠습니다.”
윌슨이 프랑스와 비밀 거래를 했다면 우리라도 못 할 것은 없다.
우드로 윌슨을 잡기 위한 독·영 합작 작전의 시작이었다.
* * *
1915년 2월 25일.
순식간에 2월도 끝을 향해 가는 가운데 나와 그레이 장관의 앞에 한 남자가 섰다.
“스페인 이래로군요, 카요 씨.”
“그렇군요.”
푸앵카레와 두메르그에 의해 사면되어 프랑스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비밀 접선 요청에 따라 베를린까지 달려온 조제프 카요였다.
“그나저나 저 아니, 우리 프랑스 정부에 무슨 볼일이 있으시길래 이리 은밀하게 접촉을 하신 겁니까? 지금 여러모로 바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프랑스 정부에 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묻고 싶은 것……말입니까?”
내 말에 카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프랑스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한 비밀 거래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의 동공은 숨길 새도 없이 격하게 흔들렸다.
역시 빙고였던 모양이다.
“무,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지 마시죠.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윌슨 대통령과 프랑스가 북아프리카를 두고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블러핑이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으로 얻어 낸 가능성이 큰 정황뿐이니까.
“으으음…….”
하지만 지금 카요의 반응으로 추측은 드디어 확증되었다.
역시 그도 비밀 거래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페인 때야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망명 중이었으니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프랑스로 복귀한 뒤 화평파의 거두로서 정부에 복귀한 지금은 아닐 테니까.
어쨌든 윌슨 이 새끼가 정말 저질렀다.
아주 거하게 저질러 주었다.
우리에게 한마디라도 이야기했으면 별문제 없었을 것을 혼자서 일을 벌인 끝에 강화 회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난 야근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갔는데!’
이 원한 절대 잊지 않으리라.
“……프랑스에 무엇을 원하십니까.”
블러핑이 잘 먹혀들어 갔는지 모든 사실을 들켰다고 착각한 카요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프랑스도 이 상황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최악의 경우 미국만 믿고 있었다가 프랑스에 그 화가 돌아와 저들만 독박을 쓸 가능성도 있었으니.
그리고 그건 프랑스와 또 다른 거래가 가능하단 소리였다.
나와 그레이 장관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카요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협력을 원합니다.”
“협력…… 말씀입니까?”
“예, 프랑스 쪽에서 윌슨과의 비밀 거래를 공개 발표하세요. 그러면 영국과 독일은 프랑스에 알제리를 보장해 주겠습니다.”
“!”
그레이 장관의 말에 동그랗게 떠지는 카요의 눈.
윌슨을 잡기 위해 영국이 통 크게 양보를 했다.
물론 그 양보는 영국이 가장 원하던 곳이 모로코였기에 생겨날 수 있었던 일이지만 말이다.
영국으로선 모로코만 얻는다면 지브롤터 해협의 완전한 통제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모로코의 가치에 비하면 솔직히 알제리는 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다만 카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답게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침묵과 함께 고민에 빠졌다.
이에 내가 말했다.
“물론 프랑스에도 쉬운 선택은 아니란 것은 압니다. 미국과 윌슨 대통령을 배신하는 일이 되니까요.”
물론 그 배신은 윌슨이 먼저 시작했다만.
“하지만 미국은 프랑스에게 알제리를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영국이 반대하고 있고 우리 독일도 미국이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게다가 저는 프랑스가 미국에 지킬 신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미국이 강화 회의에서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프랑스가 1,000억 프랑 이상의 배상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 얼, 얼, 얼마요? 천, 천억이요?!”
끔찍한 숫자에 카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물론 나와 영국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받아 낼 생각은 없었지만, 미국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카요의 마음을 180도를 반전시키기엔 충분했다.
윌슨으로선 어차피 프랑스가 배상금 건에 대해 알 리가 없으니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지른 것이겠지만 그것이 역으로 그의 발목을 잡은 꼴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연락하고 바로 답을 드리겠습니다.”
윌슨,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분노가 눈동자에 일렁이는 카요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의 장담대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프랑스 정부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대답은 ‘Oui’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