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 두 번째 코뮌 (2)
두 번째 파리 코뮌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도 전해졌다.
그러나 환호와 폭소가 울려 퍼지리란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크렘린궁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고함에 가까웠다.
“파리 코뮌을 지원하지 않으시겠다니요! 레닌 동지께선 지금 프랑스의 동지들을 저버리시겠단 것입니까?!”
그리고 그 고함의 주인공인 다름 아닌 소비에트 러시아의 2인자, 레프 트로츠키였다.
“지원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오, 트로츠키 동무. 지원을 못 하는 거지.”
“결국은 그게 그것이지요. 친애하시는 인민위원장 동지께선 로자 룩셈부르크 동지와 스파르타쿠스 연맹의 희생을 벌써 새까맣게 잊으신 모양입니다그려!”
트로츠키의 비아냥에 다른 인민의원들과 볼셰비키들이 동감이라는 듯 레닌에게 맹렬한 눈빛을 보냈다.
레닌으로선 한숨이 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동무들의 불만은 이해하오. 나조차도 파리 코뮌을 포기해야 하는 행위에 피눈물이 나올 지경이니. 그러나 다들 머리를 식히고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대체 무슨 식으로 파리를 지원할 수 있겠소?”
지금의 소비에트 러시아는 초강대국 소련이 아니다.
준내전 상태에 빠져 있는 분열되고, 나약한 국가다.
당장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멘셰비키, 임시정부 잔당, 무정부주의자 등의 도전을 겨우 물리쳐 정권을 공고히 한 것도 최근의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우랄산맥 서쪽을 장악한 것에 그쳤을 뿐이다.
중앙아시아에선 러시아 잘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는 영국의 지원과 바스마치 운동의 기치 아래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하는 중이고, 우랄산맥 동쪽 시베리아에선 볼셰비키의 숙적 코르닐로프가 이끄는 소위 ‘백군’이 계속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심지어 무정부주의자들과 임시정부 잔당들 등 볼셰비키의 권력에 도전했다가 패배한 이들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시베리아로 모여드는 중이라 얼마 남지 않은 레닌의 모근 또한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판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 코뮌을 지원할 수는 없었다.
파리가 어디 러시아 옆에 붙어 있는 동네라면 모르겠지만, 모스크바에서 2,500km 거리에 있는 머나먼 빛의 도시를 지원할 여력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없었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파리는 프랑스 한가운데에 있는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오. 우리가 직접 지원하는 것은 물론, 세계 각지에 있는 혁명 동지들을 움직인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뿐더러 너무 늦겠지.”
“…….”
“지금은 우리 러시아의 내부 문제에 집중할 때요. 그러니 파리 코뮌에 대해선 안타깝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소.”
레닌의 말에 회의실에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레닌의 말은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국가 지도자로선 옳다.
그러나 혁명가로선 옳지 않다.
이것은 결국, 또 한 번의 타협이었으니까.
‘역시 트로츠키의 말처럼 레닌 동지를 쳐 내는 수밖에 없나?’
여전히 대부분이 혁명가에 머무는 중인 볼셰비키들의 마음속에서 레닌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또 한 번 크게 성장했다.
“다들 알아들은 모양이니, 다음 안건에 대해 논의합시다.”
그러나 볼셰비키들이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이렇다 할 변명거리를 내놓지 않는 것에 다들 자신의 말을 수긍했다고 착각한 레닌은 그림자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원망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대전쟁 이래 바람 잘 날 없던 러시아에 또 한 번의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코뮌을 진압할 때까지 만이라도 좋습니다. 프랑스군에 대한 무장해제 조치를 해제해 주십시오.”
윌슨 문제로 얼굴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얼굴을 보게 된 카요가 독일, 영국을 비롯한 협상국 대표단 앞에 서서 절절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그것이 파리 코뮌 진압 방법 중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긴 했다.
우리로선 프랑스인들의 증오와 반감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개입을 피할 수 있어 좋고, 프랑스 정부로서도 파리에 연합군을 들인다는 최악의 결말을 피할 수 있어 좋으니.
참고로 두 번째 파리 코뮌을 내버려 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꽤 많은 이들이 혹할 것만 같은 프랑스를 제3공화국과 코뮌으로 분단해 버린다는 선택지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코뮌을 살려 둘 이유 자체가 없는데, 분단은 무슨 분단인가.
어느 쪽이든 나로선 절대 일어나선 안 될 독일의 동서 분단이나 한국의 남북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다.
차라리 왕국과 공화국이라는 영화나 MMORPG에나 나올 법한 식으로 쪼개 버린다면 모를까 흉악한 빨갱이 폭도들에게 숨통을 붙여 줄 이유는 우리 독일에도, 그리고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도 없었다.
‘애초에 프랑스를 쪼개는 것을 다른 나라들, 특히 영국이 동의할 리가 없지. 프랑스가 분단국가가 돼서 약해지면 대륙에서 우리 독일을 견제할 나라가 아예 없어지니까.’
만약 윌슨이 멀쩡했다면 미국도 똑같이 지랄발광을 떨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로선 프랑스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여기엔 지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프랑스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랭스 조약을 어기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걸 프랑스 정부는 인식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로이드 조지 총리님. 그렇기에…….”
“그뿐만이 아닙니다. 과연 프랑스군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을지도 문제입니다.”
바로, 신뢰 문제였다.
당장 프랑스에 이래저래 악감정이 많은 브로크빌 총리와 벨기에 대표단은 카요를 불신이 아주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장 협상국에 원한이 깊은 프랑스군이다.
페탱과 포슈 등 과격파들은 외국으로 튀었다지만, 우리 독일과 영국으로서 괜히 무기를 돌려주었다가 더 큰 환란을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첫 번째 코뮌 때도 베르사유로 도망친 프랑스 정부는 정규군의 충성심을 믿을 수가 없어서 지방군을 모아 코뮌을 진압했을 정도다.
수많은 선택지와 이에 따른 결과들을 끊임없이 고려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우려들이 마냥 기우에 불과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잠시 뷜로 총리, 로이드 조지와 쑥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눈 내가 말했다.
“프랑스군의 임시 재무장을 허락하는 대신 병력은 20만으로 제한하겠습니다.”
제1차 파리 코뮌 때 프랑스가 진압에 동원했던 실질적인 병력이 17만 정도였다는 것을 토대로 산정한 숫자였다.
코뮌 쪽에서 나폴레옹이라도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프랑스군은 연합군의 감독 아래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로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 하니 말이다.
“후……. 알겠습니다.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 협상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긴 고민 끝에 카요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게 최선일 테고,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엔 이를 거절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 * *
“이런 식으로 파리에 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연합군의 감독 아래 급히 편성된 파리 코뮌 진압군 감시역을 맡은 루프레히트 바이에른 왕세자는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프랑스가 항복한 것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프랑스군과 함께 파리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폭동을 진압하러 가다니 이보다 더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후우……. 빨갱이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군.”
다만, 이 상황에 어이없음을 느끼는 것은 비단 루프레히트 왕세자뿐만이 아니었다.
소장 계급장을 달고 파리 코뮌 진압군 사령관을 맡게 된 모리스 가믈랭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루프레히트가 느끼는 감정이 인생의 기묘함에 가깝다면, 가믈랭이 느끼는 감정은 수치 그 자체였다.
루프레히트 왕세자는 엔과 마른에서 독일군 주력을 지휘하며 프랑스 병사들을 도륙한 장본인.
물론, 프랑스군도 외국으로 몸을 피한 페탱의 지휘 아래 루프레히트의 병사들을 수도 없이 고깃덩이로 만들었지만, 루프레히트와 독일군은 승리자였고, 가믈랭과 프랑스군은 패배자였다.
그 둘 사이엔 어마어마한 간격이 있었던 만큼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베이강에게 사령관 자리를 넘기고 싶군.’
사실 그게 더 적절했다.
베이강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의 일이었고 또 말석이긴 했지만, 프랑스 군사위원회에 참석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베이강은 프랑스 정부가 페탱과 더불어 가장 크게 경계하고 있는 포슈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믈랭은 군부의 폭주를 억제했던 카스텔노의 참모답게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푸앵카레와 두메르그가 둘 중 누구를 사령관으로 선택할지는 뻔할 뻔 자였다.
“가믈랭 사령관님, 곧 크레유입니다.”
“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파리에서 30km 정도 떨어진 크레유(Creil)에 도착한 가믈랭이 참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 크레유에 파리 코뮌 진압을 위한 임시 사령부가 설치되었고 가믈랭과 프랑스 장교들, 그리고 루프레히트 왕세자를 비롯해 감시역으로 따라온 연합군 장교들이 나란히 작전 테이블 앞에 앉았다.
“현재 파리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파리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우리 왕립 항공대(프랑스 항공대는 무장해제가 안 풀려서 대신 나섰다)의 정찰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군을 대표해 프랑스군을 따라온 헤이그의 작전 참모이자 영국 원정군 군사 작전 총괄자인 존 데이비슨(John Humphrey Davidson) 소장의 말에 가믈랭이 눈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파리에 틀어박힌 빨갱이들은 항복하긴커녕 싸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연합군의 감시를 받는 것도 모자라 이젠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파리 시민들의 피를 자신들의 손에 묻히게 생긴 프랑스군 장교들에겐 비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1871년 파리 코뮌을 진압할 당시 벌어졌던 ‘피의 일주일’을 생각해 보면 이번 진압도 절대 깔끔하게 끝날 리가 없었다.
“일단 파리를 포위하고, 저들이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기에 프랑스군 참모들은 프랑스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파리 포위 작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포위 작전은 진압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다만,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파리 코뮌의 빠른 진압을 요구받은 연합군 장교들은 포위 작전이 마음에 안 드는 눈초리였다.
“게다가 파리 코뮌이 존속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산주의자들이 세계에 뿌리는 해악 또한 짙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진압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무슨 의미로 그리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드럼 준장님. 이대로 진압을 시작하면 코뮌뿐만 아니라 무고한 파리 시민들의 피해 또한 커질 것입니다. 설마 협상국은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까?”
“전 그저 하루라도 빨리 빨갱이들을 진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이 생기는 것은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뭐요?!”
미군 대표로 이 자리에 온 휴 드럼의 말에 발끈한 프랑스군 장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드럼의 말은 파리 시민들이 얼마나 죽어 나가든 말든 신경도 우린 관심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대로 포위 작전을 한다 해도 민간인 피해는 발생할 수밖에 없소. 그러니 최대한 빨리 파리 코뮌을 박살 내는 게 더 낫지 않겠소?”
그런 태도는 다른 연합군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군에게 파리 시민은 자국의 민간인이지만, 연합군 장교들에겐 얼마 전까지 그들과 싸웠던 적의 일부였으니까.
결국, 그들이 아닌 남의 일이었다.
“이이……!”
프랑스 장교들로선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분노조차 마음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고, 패배한 프랑스의 현실이었다.
“다들 그쯤 하시게나.”
분위기가 과열될 찰나, 이를 진정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숨을 푹 내쉰 루프레히트 왕세자였다.
그는 귀찮은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지만, 프랑스군을 쓸데없이 자극하지 말라는 외무장관의 당부도 있어서 안 나설 수도 없었다.
“코뮌만 확실히 진압할 수 있다면 포위든 돌입이든 무슨 상관인가. 이딴 시답잖은 논의로 날 피곤하게 만들지 말게나.”
“죄, 죄송합니다.”
루프레히트 왕세자의 말에 드럼과 연합군 장교들이 깨갱 하며 바로 뒤로 물러났다.
그는 독일군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장성 중 하나이자 왕족.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가믈랭 사령관. 그쪽이 진압군 사령관이니 진압 방법은 알아서 하시오. 어차피 내 역할은 프랑스군이 괜한 짓을 하진 않는지 지켜보는 것이지, 괜한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니.”
루프레히트의 말에 가믈랭은 고민에 빠졌다.
포위와 돌입.
둘 중 무엇을 선택하든 피해는 발생할 것이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진압을 시작하지.”
“사령관님?!”
결국, 가믈랭의 선택은 돌입이었다.
포위를 선택한다면 피해는 덜 발생할지도 모르지만, 궁지에 몰린 코뮌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당장 1차 코뮌 때도 과격파들이 팔레 루아얄과 튈르리 궁전을 비롯한 프랑스의 유서 깊은 건축물에 일부러 불을 지르는 등 파괴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가.
‘게다가 진압이 길어지면 강화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랑스에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가믈랭으로선 여러모로 ‘다음’을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의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최대한 빨리 코뮌을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드럼의 말처럼 공산주의자들을 오래 놔두면 놔둘수록 그들은 프랑스를 밑에서부터 썩게 만드는 독이 될 테니까.
“더는 이견을 받지 않겠네. 바로 공격을 준비하게.”
“……예. 사령관님.”
가믈랭의 명령에 프랑스군의 장교들이 살짝 축 처진 목소리로 경례를 울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3일 후인, 1915년 3월 15일.
프랑스군의 제2차 파리 코뮌 진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