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 카이저라이히
“눈이 부시군. 너무나도 눈이 부셔.”
두 번째 파리 코뮌의 광풍이 끝남과 동시에 봄이 찾아온 1915년 4월 3일.
클레망소 내각의 해군장관이었지만, 두메르그에게 협력해 외무장관으로 직을 옮기게 된 조르주 레이그는 포츠담 상수시 궁전으로 향하는 계단 위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오늘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
그러나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은 새로운 시대, 프랑스에는 끔찍할 수밖에 없는 독일 제국의 시대를 찬양하듯 야속할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무장관 같은 건 맡지 않는 건데 말입니다.”
“하하, 어쩔 수 없지요. 누군가는 조약에 서명해야 하니.”
“동감이오.”
전권대사로 레이그를 따라온 카요와 군에서 퇴역한 지 오래됐지만, 프랑스 군부를 대표해서 포츠담까지 온 조제프 조프르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레이그, 카요, 조프르 이 세 사람은 오늘 프랑스 제3공화국의 대표로 베를린 강화 회의의 결과물에 서명하러 왔다.
물론, 마음 같아선 오고 싶지 않았다.
그 누가 미래 영겁 두고두고 프랑스의 몰락을 상징하게 될 조약에 서명하고 싶겠는가?
적어도 프랑스의 피가 흐르는 자 중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전쟁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누군가는 패전도 모자라 파리 코뮌의 광풍까지 스치고 지나간 프랑스에 평화를 가져와야만 했다.
조제프 카요는 전쟁 때부터 독일·영국과 화해할 것을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장했던 인물로서, 레이그는 외무장관이자 지중해 함대를 사지로 내몬 장본인으로서, 조프르는 프랑스의 전 총사령관으로서 전쟁 발발과 프랑스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청해서 욕받이 역할을 맡았다.
“이것 참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군요.”
“레이그 장관님…….”
다만, 각오와는 별개로 세 사람은 쉽게 계단을 올라가지 못했다.
하필이면 프랑스식 이름을 달고 있는 상수시 안에 기다리고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갑시다. 협상국 대표들이 우리가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러나 애석하게도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레이그, 카요, 조프르는 한숨을 쉬며 계단의 끝에 있는 노란 벽과 옥색 돔형 지붕 상수시 궁전을 바라봤다.
세 사람은 궁전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것을 끝낼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 * *
드디어 이날이 왔다.
훗날 상수시 조약이라 불릴 조약이 체결되는 순간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대전쟁이 완전히 끝난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랑스와의 전쟁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고, 이탈리아와의 조약(쇤부른 궁전에서 체결될 예정이었다)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상징성, 그리고 조약이 가지는 의미는 당연히 오늘 조약이 훨씬 컸던 데다가 우리 외교관들 사이에서도 이탈리아와의 조약은 어디까지나 덤 취급이었다.
실제로 다들 베르사유 조약은 알아도, 그 뒤에 체결된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를 완전히 끝장낸 생제르맹 조약이나 헝가리인들이 아직도 치욕으로 기억하고 있는 트리아농 조약에 대해선 잘 모르지 않나.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조약은 단연코 후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오늘 유럽은, 세계는 빈 체제와 벨 에포크로 대표되던 옛 시대와 완전히 결별하고 상수시 체제 아니, 카이저라이히란 이름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죠. 빨리 시작합시다.”
“하하하하! 물론입니다, 뷜로 총리님.”
독일인들이 이번 조약에 가지고 있는 기대만큼이나 뷜로 총리 또한 몸이 달아오른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어서 서명할 것을 재촉했다.
그 말대로 프랑스에서 온 손님들도 도착했겠다, 더는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다.
나는 한번 심호흡한 뒤 대표들을 향해 천천히 운을 떼었다.
“그럼, 조약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프랑스는 협상국에 끼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450억 프랑을 배상한다.
2. 프랑스는 알자스 전역과 로렌의 절반을 독일에 할양한다.
3. 프랑스는 릴 일대와 아르덴 일부를 벨기에에 할양한다.
4. 프랑스는 모든 식민지를 포기한다. 다만 알제리는 프랑스가 본토로 취급하는 점 등(물론 적당히 갖다 붙인 이유였다)을 들어 프랑스에 보전해 준다.
5. 프랑스 육군을 20만 명(알다시피 파리 코뮌 당시 재무장을 허가해 준 병력이다)으로 제한한다. 또한 프랑스는 국경지대의 모든 요새와 방어선을 철거한다.
6. 프랑스 육군이 보유하고 있는 중포와 전차를 협상국에 양도하고 화학 무기, 전차, 항공기, 중기관총의 생산 및 보유를 제한 및 금지한다.
7. 프랑스 해군은 보유하고 있는 군함을 배상함으로 협상국에 양도한다. 또한 새로운 군함 건조 또한 제한한다.
8. 프랑스는 러시아, 이탈리아 등 구 동맹국 국가들과 그 어떤 동맹 관계도 맺을 수 없다.
이 밖에도 전범재판(다만 푸앵카레 등은 협상국에 협력하고 페탱, 포슈 등 군부의 주요 인사들도 해외로 탈주한 바람에 흐지부지될 확률이 높았다)이나 윌슨이 남기고 간 국제연맹 창설 등 여러 조항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다들 얼른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니까.
“총리님, 가장 먼저 조약서에 서명하는 영광을 양보하진 않으시겠죠?”
“당연하지. 오늘을 위해 만년필까지 특별 주문했다네.”
조약 내용을 들은 레이그와 카요, 조프르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뷜로 총리가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만년필을 들어 보였다.
그러곤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이름을 조약서에 새겨 넣었다.
“자, 서명하게. 장관.”
“예, 총리님. 아주 기쁜 마음으로 서명하겠습니다.”
나 또한 뷜로 총리에 이어서 내 이름을 조약서에 써 넣었다.
“자, 다음은 영국의 차례입니다.”
“후후, 기다렸습니다.”
내 말에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방긋 웃으며 펜을 꺼내 들고 자신의 이름을 조약서에 적었다.
에드워드 그레이 장관도 그 뒤를 이어 서명했고, 슈튀르크 총리와 베르히톨트를 비롯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대표단 또한 영국 다음으로 서명했다.
“……후우,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싶군.”
윌슨 대신 유럽에 남은 브라이언 외무장관과 미국 대표단 또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다는 듯 중얼거리며 서명을 마쳤고 벨기에, 일본 등 협상국의 나머지 대표들도 차례대로 조약서에 서명했다.
“이제 프랑스의 차례입니다.”
“……알겠습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패전국이자 오늘의 주역이라 할 수 있던 프랑스의 차례가 되었다.
물론, 프랑스인들의 표정을 밝지 못했다.
조약에 서명하게 되면 프랑스의 식민지는 윌슨을 잡는 데 협력한 대가로 겨우 보전에 성공한 알제리를 제외하곤 모조리 날아간다.
로렌도 반 이상이 우리 독일에 넘어가고, 릴과 아르덴 일부도 벨기에에 넘어간다.
450만 프랑에 달하는 배상금을 25년에 걸쳐 갚아야 할 것이고, 해군 함선들을 배상함으로써 내놔야 하는 것은 물론, 군비 제한과 국경 비무장화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프랑스가 독일에 강요한 베르사유 조약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처사다.
그러나 그것을 알 리 없는 프랑스인들에겐 암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당장 전쟁과 제2차 파리 코뮌으로 인해 나라는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도 또한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 상황에 절망하지 않는 프랑스인은 아무도 없었다.
“후우…….”
그렇기에 레이그와 카요도 조프르도 펜을 잡은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굳혔는지 숨을 들이켜며 펜촉을 조약서에 대었다.
스윽──슥───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수시 조약이 체결되었다.
“자, 서명하시오.”
“알,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인 4월 17일.
이탈리아 대표들 또한 울상으로 쇤부른 궁전에서 강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대전쟁이, 세계전쟁이 전쟁 발발 2년 만에 완전히 끝났다.
물론, 이것이 마지막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 * *
“독일 제국 만세!”
“제국과 카이저를 위하여!”
“꼴 좋다, 프랑스 놈들아!”
상수시 조약이 체결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베를린 강화 회의의 결과가 드디어 발표되자 독일인들은 환호성을 터트리고, 술맛이 참 달다는 듯 건배를 외치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그만큼 많은 희생 끝에 얻어 낸 승리의 결과는 참으로 달콤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다신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모두가 염원했다.
“이젠 전쟁이 없겠지?”
“암, 이렇게 크게 한바탕 싸웠는데, 설마 유럽에 또 전쟁이 일어나겠어? 당장 이번 전쟁 별명이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잖아.”
“하긴, 프랑스 놈들도 세 번(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세계대전)이나 얻어터졌으면 이젠 까불지 않겠지.”
독일 여기저기에서 다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낙관적인 말들이 울려 퍼졌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믿어야만 했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전쟁을 또 한 차례 치러야 한다면 그때는 그들부터가 먼저 미쳐 버릴 테니까.
“그나저나 식민지를 조금 더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동유럽이나 오스만까지 생각하면 충분한 것 같긴 하면서도 좀 아쉽기도 해.”
다만, 모두가 승리를 찬양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더 커다란 독일 제국을 원하는 사람들은 영토와 식민지를 생각보다 적게 차지한 것에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매해 발행되는 식민지 기념 메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끊이질 않는 소요 때문에 식민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무시하다는 하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인간이란 한 가지를 가지면 더 많이 가지고 싶은 법 아니겠는가?
[치직─! 안녕하십니까, 친애하는 독일 제국의 국민 여러분.]“어? 한스 폰 초이다.”
“외무장관께서 웬일로 직접 라디오에 나온대?”
그리고 이러한 욕심쟁이들의 아쉬움을 모를 한스가 아니었고, 이를 달래주기 위하여, 그리고 독일 제국의 시대를 위하여 동맹들과의 오랜 교섭과 협상 끝에 준비한 것이 있었다.
“관세 동맹?”
집에서, 공장에서, 맥주홀에서, 참호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호기심 어린 기대가 떠올랐다.
관세 동맹은 독일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이자 그들의 영광과 관련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834년, 프로이센 주도하에 독일 국가들 사이에 관세 동맹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엔 북독일연방, 그리고 독일 제국으로 이어졌다.
독일인들로선 가슴이 두근두근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라디오의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침착하면서도 자부심이 느껴지는 인기 좋은 외무장관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적에 대한 증오만이 존재하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잿더미가 된 유럽을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자식들에게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하여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그리고 그 끝엔 독일 제국이 주도하는 유럽연합이 있었다.
한스가 계획한, 독일이 나아가야 하는 최종 목표였다.
마침 우리의 주인공이 전생에 보아 온 유럽연합의 별명도 독일이 다 해 먹는다고 하여 제4제국이 아닌가.
물론, 실제론 농담이나 비아냥에 가깝고 현실과는 거리가 먼 소리였지만.
[유럽의 평화를 위해, 번영을 위해 하나로 끈끈히 뭉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관세 동맹은 이를 위한 첫발자국입니다.]그러나 제2제국엔 이를 현실로 만들 힘이 있었다.
이를 썩혀 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짝수 제국 후배가 보여 준 길을 자기식대로 걷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미 독일의 우방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발트, 캅카스 3국, 핀란드, 오스만 제국은 물론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이 관세 동맹에 가입 의사를 보내왔습니다.]다들 알다시피 죄다 독일 제국의 위성국, 또는 친독 국가, 그리고 이번 전쟁을 통해 독일의 영향력에 놓인 국가들이다.
균형의 수호자를 자칭하는 영국으로선 한숨이 나올 일이었지만, 독일이 전쟁의 승리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이상 예정된 일이었기에 혐성력이 넘치는 섬나라 사람들로서도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영국은 이번 전쟁에서 여러모로 독일에 빚을 많이 졌으니까.
그러니 영국인들은 친척과 얼굴을 붉히는 것보단 그들이 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식민지를 양보받는 대가로 일단은 입을 다무는 길을 택했다.
[독일 제국은 유럽의 새로운 수호자가 될 것입니다. 유럽을 이끌어 가는 새로운 인도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직 시작일 뿐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위해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와아아아아아!”
한스의 연설에 독일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카이저라이히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