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 전쟁 그 후 (4)
“한스, 안 오고 뭐 해?”
“잠깐 외무청에서 중요한 보고서가 와서 읽고 있었어. 곧 갈 테니까 기다려.”
“알았어. 그럼 나 먼저 씻고 있을게~”
들을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소리와 함께 루이제가 서재를 떠나가자 나는 다시 시선을 극동에 심어 둔 정보원들이 보내 온 보고서로 돌렸다.
보고서엔 일본이 중화민국에 찝쩍거리고 있다는 눈이 절로 찌푸려지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이 새끼들도 참 부지런한 놈들이라니까.”
전쟁이 끝났는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 지랄일까.
하긴, 지금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오쿠마 시게노부고 외무대신이 가토 다카아키 즉, 원 역사에서 열강의 반발과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강요했던 콤비다.
어쩌면 중화민국의 정치적 혼란을 이용해 같은 짓을 하려고 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수위가 높은 일을 꾸미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일본을 경계하고 있는 라이미와 양키 친구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문제는 지금 영국과 미국이 지금 좀 아프고 바쁜 상태다.
물론, 영국 쪽은 자업자득에 불과했지만.
‘일본도 이를 알고 지금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겠지.’
물론, 그 전에 조선과 베트남을 병합하려 할 것이다.
중국도 중국이지만, 지금 일본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해 여름쯤에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조선과 베트남의 완전한 식민지 전환이니까.
그리고 중국에 대한 개입은 바로 그다음일 테고.
“X 같은 새끼들…….”
이번 세계에서 을묘국치로 기억될 한일병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자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온다.
이미 이렇게 되리란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각오하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더러운 기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 팻맨 마렵다!
“그러고 보니 원자 폭탄을 만들긴 해야 하는데 말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핵무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포기하기 아까우니.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어.”
그도 그럴 게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역들 상당수가 나치를 피해 망명한 독일 or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이기 때문이다.
‘당장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미국 과학계가 크게 발전한 것은 미국으로 도망쳐 온 독일 과학자들 덕분이란 말도 있을 정도니까.’
이쯤 되면 히틀러는 사실 미국의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맨해튼 계획을 시작을 알리고 간접적으로 공헌한 아인슈타인과 나치 독일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우란프로옉트(Uranprojekt)을 이끌었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이미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요한 루트비히 폰 노이만(Johann Ludwig von Neumann)과 수소폭탄을 만든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은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으로 독일에서 활동했다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도 영입할 수 있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오펜하이머는 대학원생 시절인 1926년에 지도 교수를 독 사과로 죽이려고 시도(농담이 아니라 실화다)했을 정도로 적응을 잘못했던 케임브리지를 떠나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어찌 잘 구슬려 보면 그를 독일의 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언제나 옳은 돈이라든가.
이 밖에도 덴마크 출신이자 지금은 아마 케임브리지에 있을 닐스 보어와 원자력과 맨해튼 프로젝트의 아버지,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도 시도해 볼 만했다.
페르미의 경우엔 이탈리아인이긴 하지만, 아내가 유대인이라 무솔리니 시절 제정된 이탈리아 인종법(이탈리아 내 유대인과 식민지 출신 흑인들에 대한 차별법이다)을 피해 1938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이건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어차피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역들 대부분은 아직 꼬꼬마 상태다.
그러니 핵폭탄 개발에 대해선 적어도 30년대는 돼야 첫 삽을 떠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만들어야 할 것은 많으니까.’
신형 전차, 신형 항공기 개발은 물론이고, 이제는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어엿한 한 명의 건 마이스터로 성장한 휴고 슈나이서와 돌격소총(보급체계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개발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에 대한 논의도 슬슬 해야 했다.
두 번째 세계대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쯥, 이렇게 말하니 완전히 프로이센 군국주의자가 따로 없네.
하여튼, 일본에 대해선 당분간 주의를 해야겠다.
여전히 직접적으로 개입하긴 힘들지만, 그렇다 해도 일본의 행동을 방관만 할 순 없으니까.
“한스~! 아직도 일해?”
“아냐, 다 끝났어.”
서재 밖에서 들려오는 간드러진 루이제의 목소리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성경의 말씀을 실천할 시간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파니(pani, 부인) 스크워도프스카키리. 조국 폴란드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피우수트스키 총리님.”
한스가 2세 생산에 힘쓰고 있을 때, 독립을 쟁취한 폴란드에선 한스가 언급한 과학자들만큼이나, 어떤 사람들에겐 그들보다 더 유명할 여인이 조국이 낳은 위대한 과학자의 귀환을 환영하는 폴란드인들의 성대한 환호 속에서 수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키리(Maria Salomea Skłodowska-Curie).
우리에겐 프랑스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마리 퀴리였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폴란드의 독립을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리 분에 넘치는 환영까지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하, 머나먼 이국에서 여인의 몸으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달성하셨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로선 이마저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피우수트스키의 진심 어린 말에 퀴리 부인이 그동안의 설움과 고생이 생각났는지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사랑했던 남편의 조국인 프랑스를 위해 전 재산까지 바쳐 가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건만, 프랑스가 그녀에게 준 것은 차가워도 너무나도 차가운 매정한 대우와 폴란드가 독일에 붙었단 이유로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뿐이었다.
프랑스를 폴란드에 이은 제2의 조국으로 생각했던 퀴리 부인으로선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다.
결국, 그녀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프랑스를 완전히 떠나기로 결심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도 온 것이었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여전히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그녀를 계속 괴롭히는 바람에 더는 프랑스에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그녀와 그녀의 딸들이 몹쓸 짓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프랑스에 있을 순 없었다.
퀴리 부인이 어린 두 딸을 데리고 23살에 프랑스 유학을 계기로 떠나게 된 고향, 폴란드로 돌아온 이유였다.
그리고 폴란드는 조국으로 돌아온 폴란드의 딸을 환영했다.
지금까지 겪어 온 수모와 모욕이 한순간에 씻겨 나갔을 정도로 성대하게 환영했다.
“우리 엄마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러게…….”
덕분에 그동안 프랑스 정부의 박한 대우 탓에 어머니가 이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던 장녀 이렌 퀴리와 차녀 에브(영어식인 이브로 더 유명하다) 퀴리는 그제야 진실을 깨닫고 입을 떡 벌렸다.
다만, 폴란드의 독립 영웅에서 신생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총리가 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퀴리 부인을 이토록 성대하게 환영한 것엔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했다는 것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알다시피 전쟁이 끝나고 독일 제국은 카이저라이히의 깃발 아래 유럽의 패자로 우뚝 섰고, 폴란드는 발트, 우크라이나 등 독일 덕분에 독립한 국가들처럼 호엔촐레른 국왕을 받아들이고 그 밑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폴란드가 발트나 우크라이나 따위와 똑같은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지.’
당장 우크라이나, 그리고 발트 왕국을 구성하는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가 옛날 옛적 일이긴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처럼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며 떵떵거린 적이 있던가?
없었다.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피우수트스키는 독일이 주도하는 관세 동맹 내에서 폴란드가 큰 역할을 차지하길 원했다.
일인자는 넘보지 못해도 적어도 독일에 이은 이인자, 못해도 삼인자까지는 되고 싶었다.
이는 신생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처한 현실과도 관련이 있었다.
알다시피 폴란드는 대전쟁에서 구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아주 맛있게 집어삼켰고, 자신들의 옛땅을 되찾고 싶어 할 러시아의 빨갱이들과 언젠가는 한번 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폴란드는 기본적인 체급 차이가 너무 큰 만큼 독일의 군사적 지원이 필수 불가결이었다.
그것은 발트, 우크라이나, 심지어 발트해 건너 핀란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독일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을 뜯어 오기 위해서라도 카이저라이히 내 폴란드의 위치를 높여야만 했다.
이를 위해선 위신이, 더 많은 국가적 위신이 필요했다.
‘이미 발트도 우크라이나도 어떻게든 관세 동맹 내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폴란드라고 질 순 없지.’
피우수트스키가 퀴리 부인을 성대하게 환영한 이유였다.
여성 최초로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대과학자인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 폴란드의 위신이 되어 줄 테니까.
겸사겸사 폴란드 과학계에 큰 발전을 기대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자, 가시지요. 국왕 폐하 부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물론,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과학자인 그녀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홍복이었다.
* * *
“핀란드에서 즐기는 다과도 나쁘지 않군요. 특히 이 살미아키라는 게 맛이 참 독특한 것이 마음에 들어요.”
“전 도저히 못 먹겠던데, 선생님 입맛은 여전히 이상하시네요.”
한편,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독립을 즐기고 있는 핀란드에선 아버지 헤센카셀 방백이 핀란드 국왕 카를레 1세가 됨과 동시에 핀란드의 왕세자가 된 프리드리히 폰 헤셀카셀이 그의 스승이자 유명세론 퀴리 부인에 뒤지지 않은 과학자와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프리드리히쇼프에 이어 핀란드까지 헤센카셀 일가를 따라온 니콜라 테슬라였다.
“신이시여,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핀란드의 왕비가 된 마르가레테 공주로선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독일을 떠나면서 드디어 저 괴짜와 작별할 줄 알았는데, 기어코 헬싱키까지 쫓아왔으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은 테슬라를 핀란드까지 데려온 게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자신의 장남과 차남이었다는 것이다.
“하하. 테슬라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오, 모지. 여러모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니, 핀란드에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아, 왕세자님. 왕궁에 비둘기장 지어도 됩니까?”
“……저래도요?”
“크흠, 천재와 괴짜는 종이 한 장 차이인 법이지.”
아내의 싸늘한 눈초리에 카를레 1세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뭐, 성격은 괴팍하더라도 테슬라의 능력은 진짜다.
특히 핀란드는 산림 말고 별다른 자원이 없는 척박한 나라였던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과학 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했고, 이런 면에서 테슬라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생님, 그러고 보니 한스의 부탁으로 또 무언가를 연구 중이라고요?”
“음, 레이더란 것인데, 전파로 멀리 있는 물체를 포착하는 기술입니다.”
“아, 박쥐가 초음파로 먹이를 찾는 것과 비슷한 원리군요.”
“역시 제가 직접 가르친 학생답게 이해가 빠르시군요. 예전에 잠깐 연구해 본 적이 있는데, 예산과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느긋하게 실용화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왕세자님도 막시밀리안 왕자님과 참가하시렵니까?”
“물론이죠, 선생님!”
일개 귀족이 아닌, 핀란드의 왕세자와 왕자로서 행동해야 하는 아들들까지 저 괴짜에게 영향을 받아 버린 것은 조금 곤란했지만.
“이러다 핀란드가 정말로 과학 대국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군.”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