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 전쟁 그 후 (5)
“……우리는 정말 졌군.”
파리로 돌아온 샤를 드골은 아직 코뮌의 여파를 수습하지 못한 파리의 모습에 어깨를 힘없이 툭 떨궜다.
룸메이트였던 투하쳅스키가 매정하게 우크라이나로 가 버린 이후에도 계속 탈출을 시도했던 드골이지만, 그가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독일이 그를 포로 신분에서 해방해 주고 나서였다.
그리고 그가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들은 소식은 상수시 조약이 체결되었단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드골의 이성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했지만, 충격으로 가파르게 뛰어오르는 심장은 그것을 부정했다.
그러나 과거의 번영은 온데간데없이 불탄 건물과 전투의 흔적으로 가득한 파리의 모습과 도시의 상태와 별다를 게 없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에 드골은 눈물을 흘리며 드디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패배했다.
한때 그 무엇보다 위대했던 국가는 처참하게 몰락했고, 대육군의 명예와 위신은 바닥에 처박혔으며 남은 것은 협상국에 갚아야 할 빚더미와 폐허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수용소에서 무의미한 탈출 소동이나 벌이며 허송세월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카르투 중령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프랑스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군.”
드골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조르주 카르투 중령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 또한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파리의 모습에 도저히 말을 잇기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대로 울상을 지으며 주저앉아 있기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이겠지.”
짧고도 비통한 침묵이 지나자 카르투는 슬픔을 떨쳐 버리려고 애쓰는 것이 절로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군과 인생의 선배로서 삶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절망한 후배 앞에서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드골에게 힘이 되어 줘야 했다.
그것이 선임이자 연장자의 의무이니까.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고, 집이 무너졌다면 다시 지으면 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프랑스도 옛 모습을 되찾아 다시금 잿더미에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프랑스가 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게 어디 있겠나?”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났다.
보불전쟁의 비참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시 일어섰다.
대전쟁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은 조국보다는 우리 일부터 걱정하세.”
“……예.”
당장 상수시 조약으로 인한 군비 제한과 정부의 대규모 군비 감축으로 인해 장교들이 군을 강제로 떠나는 중이라 두 사람 또한 군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머나먼 조국의 앞날까지 걱정하기엔 지금은 눈앞의 현실부터가 너무 막막했다.
* * *
“……프랑스가 결국, 발에 무거운 족쇄를 차게 되었군.”
드골과 카르투가 애써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밥그릇 걱정부터 해야 하는 자신들의 현실에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 오스만 제국의 임시 수도에서 진짜 수도가 된 앙카라에선 무스타파 케말이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동자로 전쟁의 결말을 보고 있었다.
“만약 오스만 제국이 빠르게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프랑스처럼 아니, 프랑스보다도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겠지.”
시골로 유배되어 감시 속에서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스마일 엔베르를 몰아내고, 협상국에 항복하기로 선택을 내린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케말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오스만 제국의 총리로서 조국을 재건하는 무거운 과업을 떠맡았다는 증거였고, 그만큼 케말에겐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역시 제일 중요한 건 경제 재건과 민족 문제야.”
케말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전자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후자 또한 오스만 제국이 다민족 국가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봐야 할 문제였다.
그나마 민족 문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은 그 대부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본국으로 이주했기에 걱정거리가 하나 줄었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오스만 제국엔 아직 쿠르드인이나 대전쟁을 틈타 독립을 노렸던 아랍인들이란 크나큰 우환거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엔베르처럼 피를 보는 강압적인 방식은 쓸 수 없다.’
오스만의 주인님인 독일 제국과 독일의 외교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스 폰 초이 공작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야 독일 덕분에 살아난 오스만 제국이 다른 민족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간 그 똥물이 독일의 얼굴에도 튈 게 뻔한데, 이걸 방관할 독일 제국이 아니다.
그러니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오스만 제국이란 하나의 상징을 앞세워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며 그들을 제국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의미론 정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물론, 오스만 제국을 부정하며 하나 된 튀르키예 민족을 재창조했던 튀르키예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라면 극혐할 선택지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오스만 제국의 총리인 무스타파 케말 파샤였고, 오스만 제국의 미래를 위해선 튀르키예 민족주의는 한쪽 구석으로 치워야만 했다.
“쿠르드인 문제는 이스메트(이뇌뉘)에게 맡기면 되겠지.”
왜냐하면, 그는 쿠르드계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민족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원 역사에서도 소수 민족에 관한 법을 만들자고 케말에게 제안했을 정도였다.
다만, 당시 케말은 이뇌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오히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튀르키예인이니, 우리 민족이고, 우리 국민인데, 왜 따로 구분함?’이라고 되물으며 말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선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 문제는 결국 아랍인들인데…….”
반란을 꾸몄던 후세인은 유폐(무함마드의 후손이라 죽일 순 없었다)되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아랍인들은 가슴 속에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중동 석유는 오스만 제국의 경제 재건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했던 만큼 케말과 오스만 제국으로선 그들을 회유하든 인구수로 누르든 해서 오스만 제국에 동화시키고,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아라비아반도 내부로 진출해야 했다.
‘물론, 자원엔 한계가 있는 만큼 석유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케말은 석유로 얻어 낸 이득을 오스만 제국의 다른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미래 자원 부국들에 내려질 자원의 저주를 생각하면 그의 혜안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요즘 따라 미국인들의 모습이 안 보이는구나.”
“네, 형님. 듣기론 대통령이 사고를 치고 쓰러지는 바람에 현 정권이 몰락했다는군요. 튀르크 놈들에게 맞서기 위해선 미국인들의 무기가 필요한데, 이걸로 미국과의 끈이 완전히 끊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부흥을 꿈꾸는 케말의 꿈 앞에는 아직 그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동생아. 미국인들은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다. 내 그들의 눈에서 검은 황금에 대한 어마어마한 탐욕을 보았다. 그들은 절대 이 아라비아 땅을 포기하지 못해.”
“서방의 다른 이들처럼 말이군요.”
“그래, 그리고 그들의 탐욕은 우리 사우드 가문이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아라비아의 주인이 될 힘이 되어 주겠지.”
사막 너머 리야드의 오아시스에 몸을 숨긴 채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사우드 가문이란 장애물이.
* * *
프랑스는 패전의 치욕과 빚더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무스타파 케말의 지휘 아래 조국 재건이라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패전국인 이탈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무능한 정부는 물러나라!”
“그래,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 조국 건설하자!”
“뭐? 아니, 이 빨갱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조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탈리아는 혼돈과 파괴가 넘쳐흐르는 카오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항복 이후 퇴위당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대신 그의 사촌이자 병사들의 존경을 받던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가 의회와의 거래로 왕위에 오를 때만 해도 이탈리아인들은 상황이 나아질 거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베를린 강화 회의의 결과가 발표되고, 증오스러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심장에서 쇤부른 조약을 체결한 순간 이탈리아인들은 깨달았다.
애초에 기대를 품지 않았다면 이토록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베네치아를 포함한 베네토 지역과 애써 얻은 리비아 식민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땅이 되었고, 소말릴란드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식민지들은 욕심 많은 할머니 영국이 뜯어 갔다.
거기에 프랑스보단 적긴 했지만, 그래도 무거운 배상금도 내야 했고, 이탈리아의 자랑 레지아 마리네는 프랑스 해군처럼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스가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이탈리아인들로선 실망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이게 나라냐!”
“매일매일이 맘마미아다, 개새끼들아!”
“제발 좀 뒈져라!”
이탈리아 전역이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증오로 활활 타올랐다.
이탈리아의 고질병인 지역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고, 전 세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의 난동은 불길에 기름을 드럼통째로 부었다.
“이대론 안 된다! 이탈리아는 변해야 한다. 분열되어 난장판이 된 이탈리아를 하나로 만들고,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지도자 아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두체! 두체! 두체!”
그리고 여기에 파시즘이란 새로운 뉴페이스까지 태동하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 두체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은 얼마 전에 전투 파쇼를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파시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 무솔리니가 아니었다.
그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전쟁영웅,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까지 비행기를 몰고 가 전시 선전물을 떨어트리고, 무사 귀환에 성공하며 ‘빈에서의 비행’이란 전설을 쓴 이 광기 어린 예술가는 고대 로마에 미쳐 있었고, 로마 제국의 영광을 이탈리아에 재림시키겠단 사명에 빠져 있었다.
그는 스스로 두체라 자칭하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로마식 경례를 받았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으으……. 지금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겉으론 단눈치오를 지지했지만, 속으론 단눈치오에 대한 격렬한 질투심에 휩싸여 있던 무솔리니가 그의 이념, 저서, 심지어 연설도 베낄 정도로 단눈치오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용맹한 시민이여, 나를 따르라! 내 너희에게 로마의 영광을 다시금 보여 줄 것이다! Eia, eia, eia! Alala(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투 함성, 단눈치오에 의해 이탈리아 군에서도 사용되었다)!”
“Alala!”
단눈치오 특유의 예술가적 광기까지는 따라 하지 못했지만.
하여튼, 원래도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 정치판은 이제는 통제조차 안 되는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고, 이탈리아인들은 이를 끝낼 초인을 원했다.
“기다리자. 지금은 단눈치오에게 밀리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를 이탈리아의 두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초인을 자처하는 자가 등장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 * *
“수고 많았네, 뷜로. 자네는 내 최고의 재상이었어.”
“저 또한 폐하를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1915년 6월 5일.
뷜로 총리가 드디어 그가 손꼽아 기다리던 은퇴를 하는 날이 되었다.
“테오발트, 이제 자네가 총리일세.”
“예, 총리님. 총리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제국을 위해 분골쇄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총리로 내정된 인물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기 총리로 물망에 올랐던 베트만홀베크였다.
“이걸로 한스, 자네와도 작별이군.”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총리님.”
“나야말로 고맙지. 자네 덕분에 이리 명예롭고, 영광스럽게 은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 자네 고향 일에 대해선 유감을 표하네.”
뷜로가 힘내라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지난 6월 1일, 일본이 안남병합과 더불어 한일병합을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6년을 더 생존한 조선 왕조도 문을 닫았다.
덕분에 왕실과 연이 깊은 민영환이나 의친왕 등이 보내온 편지엔 일본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끝내 조선이 망했다는 씁쓸함 또한 담겨 있었다.
“그나저나 몰트케도 은퇴한다고?”
“예, 이미 폐하께 사직서도 제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숙부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니,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기 전에 집에서 마하트마와 영적으로 교류하며 평화롭게 살아야겠다나?
하긴, 몰트케가 여러모로 고생하긴 했다.
굳이 붙잡을 이유도 없겠다, 그도 이만 보내주도록 하자.
“그럼 외무장관, 수고하도록 하게. 앞으로 눈도 못 뜰 정도로 바빠질 테니까.”
“하하. 예, 총리님.”
우리는 서로를 향해 미소 지으며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벨 에포크와 대전쟁으로 대표되던 시대와의 완전한 작별이오, 불안한 평화 속에서 광기로 얼룩질 시대 전간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