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 아직은 머나먼 평화 (2)
“어째서냐…….”
1915년 6월 27일.
공화파를 쳐 낼 준비를 마치고, 방아쇠를 당기기 일보 직전이었던 펑궈장과 북양군벌은 난징에 군함과 함께 나타난 낯선 복장의 병사들을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어째서 일본 놈들이 난징에 있는 거냐!”
당혹스러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지난 안남진공 때 자신을 물 먹였던 일본 놈들이 뻔뻔한 얼굴로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에 발을 들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공화파 놈들이 왜노들과 손을 잡은 것이 분명하네!”
북양군벌 원로인 쉬스창의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처럼 공화파와 일본의 결탁이었다.
북양군벌에 맞서기 위해 쑨원과 그 일당들이 일본을 끌어들였다는 펑궈장으로선 화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당장 부대를 집결시켜라. 이렇게 된 이상 내 직접 왜노들과 공화파 한간 놈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자네 미쳤나? 지금 칼을 뽑았다간 일본과의 전쟁이야, 전쟁!”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펑궈장의 외침에 쉬스창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아무린 중국 대륙에선 날고 긴다고 하는 북양군벌이라고 해도 아시아 유일의 열강으로 우뚝 선 일본과의 정면승부는 무리였다.
여기서 분을 못 참고 성급하게 뛰어나가 봤자 순식간에 일본에 짓밟힐 게 뻔할뿐더러 중화민국을 일본에 바치는 꼴밖에 안 됐다.
“오히려 저놈들을 그것을 노리는 것일 수도 있어. 자신들이 공격당했단 명분을 앞세워 중화민국을 집어삼키려고 말일세!”
“크으으으……!”
탐욕스럽긴 해도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펑궈장은 쉬스창의 설득에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의 생각에도 확실히 일본 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일본을 뒷배로 삼은 공화파 놈들에게 순순히 무릎을 굽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북양군벌은 정치 투쟁 과정에서 쑹자오런을 비슷한 공화파 주요 요인들의 피를 묻히며 공화파의 원한과 증오를 산 지 오래였다.
여기서 굽혔다간 자신들의 정치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 인생 그 자체가 끝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난징을 떠야 하네.”
“쉬형, 난징을 떠나 어디로 가잔 말이오?”
현재 난징과 가까운 지역들을 제외한 운남, 광서, 광둥 등의 변경 지역들은 실질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중화민국의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각 지역의 유력자들이 삼국지처럼 군벌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쓰촨으로 가세나, 그곳은 이렇다 할 세력이 없어서 빈집이나 마찬가지지 않나.”
“으으음…….”
난장을 떠나 옛 소열제처럼 쓰촨으로 가자는 말에 펑궈장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그곳은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곳이라 후일을 도모하기엔 안성맞춤인 곳.
선택할 수 있는 곳 중엔 그나마 최선이라 할 수 있었다.
“좋소, 바로 준비하시오.”
“알겠네.”
짧은 고민 끝에 펑궈장이 긍정적인 답을 내놓자 쉬스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북양군벌과 공화파 간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 않고 일단락되는 듯 보였고, 일본의 도움은 원했어도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길 원하지 않았던 쑨원 등 공화파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펑궈장이 난장에서 물러났다고?”
“이러면 곤란한데…….”
물론, 일본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 * *
“펑궈장, 그놈이 그러고도 군인인가? 어떻게 한 번도 싸워 보지도 않고 꽁무니를 빼!”
“진정하시지요, 총리님.”
“가토 상,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대로라면 기껏 개입한 보람도 없이 난징 구경만 하고 돌아오는 꼴만 될 겁니다. 가뜩이나 쓸데없는 짓거리냐고 말들이 많은데…….”
오쿠마 시게노부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나 하라 다카시(原敬) 같은 정치인들도 정치인들이었지만, 이번에도 해군을 밀어주는 내각에 행동에 육군의 불만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쯧, 대일본제국을 위한 길에 손뼉을 치진 못할망정…….’
정말이지 야마가타가 떵떵거릴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참 피곤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이대로 포기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고작 이권 몇 개 먹자고 중화민국에 개입한 게 아니에요!”
오쿠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대륙 진출이었다.
언젠가 저 드넓은 지나를 조선과 안남처럼 집어삼키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것이었다.
하지만 쑨원과 공화파는 급한 불은 껐다는 듯 일본군을 향해 이제 볼일 다 봤으면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고, 이대로라면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오쿠마로선 답답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총리님.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무슨 생각 말입니까?”
오쿠마의 물음에 가토 다카아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나의 고사에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지요. 공화파가 말을 안 듣는 것이 문제라면 이들을 치우고 다른 이들로 대체하면 그만입니다.”
권력에 욕심이 많고, 일본의 말을 잘 들을 자들로 말이다.
그리고 일본에는 다행히도 작금의 지나엔 그런 자들이 한가득하였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쑨원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펑궈장이 그랬듯 일본 때문이었다.
북양군벌이 쓰촨으로 도망치고, 드디어 중화민국을 정상화했다는 사실에 한숨 돌린 것도 잠시, 일본이 공화파의 뒤통수를 아주 기갈나게 후려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편이었던 공화파를 향해 총부리를 돌렸다.
“아버지를 암살한 쑨원과 그 일당들을 모조리 몰아내자!”
“와아아아~!”
그것도 위안스카이의 장남인 위안커딩(袁克定)과 차남인 위안커원(袁克文), 그리고 북양군벌의 핵심 중 한 명인 리위안훙을 앞세운 채 말이다.
‘이 후레자식들 같으니!’
아버지를 닮아 권력욕이 그득한 위안스카이의 망나니 아들들이 위안스카이가 쓰러진 이래 권력층의 말석에도 끼지 못한 것은 물론, 아버지의 부하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신세가 되어 울분에 차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북양의 개’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망이 없던 펑궈장의 밑에 있는 것에 리위안훙이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언젠가는 북양군벌 내에 내분이 터지리란 것도 말이다.
그러나 설마하니 일본의 꼭두각시가 된 것도 모자라 위안스카이를 자신이 죽였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당당히 떠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애초에 쑨원이 병상에 드러누운 채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네를 뭐 하러 힘들여 암살까지 하겠는가.
위안스카이가 떵떵거릴 때라면 모를까 그 어떤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쑨원 선생님, 이 이상은 버티지 못합니다. 일단은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왕징웨이, 지금 난징을 버리라는 소리인가? 중화민국의 수도이자 혁명의 심장인 이곳을?!”
“이대로 있으면 죽을 뿐입니다. 혁명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쑨원은 왕징웨이의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그 말대로다.
애초에 공화파가 일본의 도움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북양군벌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일본이 배신한 지금, 공화파엔 저들을 막을 그 어떠한 힘도 없었다.
“원난(雲南, 운남)으로 가시죠. 원난에 있는 탕지야오(唐繼堯, 당계요)와 차이어(蔡鍔, 채악)이라면 우릴 도와줄 것입니다.”
“후……. 알겠네.”
왕징웨이의 설득에 쑨원은 자신의 이룩해 낸 최대 성과인 중화민국을 등지고, 또다시 망명객 신세가 되어야 한다는 비통한 현실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난엔 마침 그의 동료인 량치차오(梁啓超, 양계초)도 있다.
그러니 일단은 원난으로 가 힘을 모으고 다시 중화민국을 되찾자.
포기하지만 않으면 희망은 언제든 있으니까.
* * *
중화민국의 혼란을 틈타 일본이 기어코 난징에 괴뢰정권을 세우고야 말았다.
내가 가정한 시나리오 중 최악에 가까운 흐름이었다.
물론, 쓰촨에 자리 잡은 펑궈장의 북양군벌과 일본에 뒤통수를 맞고 원난에 자리 잡은 전계군벌의 지도자이자 제1차 호법전쟁을 주도한 탕지야오와 손을 잡은 쑨원이 이를 인정할 리 없었고, 실제로도 일본의 행동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폭거입니다. 일본의 행동을 절대 용납해선 안 됩니다!”
“예, 독일도 중국에 이권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선 독일이 나서 줘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 둘은 일본의 행동에 대해 비난 말고는 적극적인 대처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내 사무실에 아직 주독 영국 대사 윌리엄 고션과 샤프 사건의 여파로 외교관에서 물러난 제라드 전 주독 미국 대사를 대신해 대리대사로 임명된 엘리스 로링 드레셀(Ellis Loring Dresel)이 들이닥친 이유였다.
“저 또한 일본의 이번 행동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만, 두 분도 아시다시피 동양함대를 포함한 극동의 우리 전력 대부분은 소비에트 러시아 견제를 위해 연해주에 집중하고 있어서 중국 문제까지 떠맡을 여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군축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벌써, 그것도 영국과 미국 없이 우리 혼자 일본과 적극적으로 대립하는 건 수지가 맞질 않았다.
‘결국,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은 비난과 가벼운 압박 정도지.’
물론, 우리가 ‘너희 그거 나쁜 짓이야, 떽!’이라고 말하면 강약약강의 나라 일본도 깜짝 놀라며 움츠리긴 할 것이다.
그러나 충무공의 말처럼 일본은 간악해서 신뢰할 수 없는 나라.
반성하는 시늉만 한 채 끝까지 버티려고 할 게 뻔했다.
“하지만 이대로 일본이 중국에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청을 움직여 일본을 압박할 생각입니다.”
“청이라…….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일본이 말을 들어 먹을까요?”
“당연히 들어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 청에 더해 일본 내부에도 손을 쓸 생각입니다.”
“내부 말입니까?”
“예, 지금 일본 정부의 행동은 일본의 단합된 의견이 아닌, 총리대신 오쿠마와 외상 가토의 졸속이고 독단적인 행동에 불과합니다.”
이번 사건은 나나 서구 열강들의 눈으로 봐도 무리수인 행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아직 정상인이 상당수 남아 있는 일본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행동은 언제나 그렇듯 적을 만드는 법이죠.”
협잡질의 시간이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 * *
오쿠마와 가토의 계획은 성공했다.
중화민국의 혼란을 틈타 그 심장부인 난징에 괴뢰정권을 세우는 것에 성공했고, 차후 지나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샴페인을 따르며 일본의 승리를 자축했지만, 그들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로이드 조지 총리, 일본의 이번 행동은 가까스로 얻어 낸 평화를 해치는 행위.] [미국 의회에서 매일같이 이어지는 일본에 대한 규탄. 일본은 당장 중화민국에 손을 뗄 것!] [청 정부, 일본의 중국 침략 행위 절대 용납 못 해. 필요하다면 무력도 사용할 것.]일본의 선 넘은 행동에 열 받은 영국과 미국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일본을 경계하고 있던 청나라의 경우엔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며 난징 정부를 공격할 기미까지 보이고 있었다.
물론, 여기까진 오쿠마와 가토도 예상한 바였고, 그렇기에 그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영국과 미국은 내부의 문제 때문에 목소리만 높일 뿐 행동에 나서진 않을 것이고, 청나라 또한 러시아란 북쪽에서의 우환 때문에 생각이 있다면 쉽게 움직이진 못할 테니.
[한스 폰 초이 외무장관, 일본이 중국에서 보인 모습은 도의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용납받기 어려운 행동.]그러나 설마 독일 제국과 사이(최) 공까지 이번 일에 역정을 터트릴 줄은 몰랐다.
“가토 상, 이거 사이 공작이 이번 조선 합병 때문에 우리 일본에 뿔이라도 난 것 아닙니까?”
“그렇다기엔 조선에 대해서 그 어떤 말도 없었잖습니까. 게다가 혹시 몰라 우리가 보낸 ‘선물’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고요.”
확실히 그건 그랬다.
물론, 한스로선 이 또한 일본에 돈을 뜯는 거라 생각하고 받은 것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일본이 준 금빛 찬란한 선물들은 한스가 임시정부(한일합병 이후 자유정부에서 이름을 바꿨다)에 군자금으로 쓰라고 넘겨주었다.
“어쨌든 독일 제국하고도 척을 지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어떻게든 사이 공작을 달래야…….”
“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오쿠마와 가토가 독일의 역정을 풀기 위해 한스에게 더 많은 선물을 바쳐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오쿠마의 보좌관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그, 그게…….”
“오쿠마, 가토! 당장 나와라!”
“멋대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지금 제정신인 거냐?!”
오쿠마의 물음에 보좌관이 숨을 헐떡이며 대답하려고 했을 때 문밖에서 고함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쿠마와 가토로선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익숙한, 잊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었다.
“칙쇼…….”
대일본제국의 전통, 육군의 반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