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 아직은 머나먼 평화 (3)
“어찌 총리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리 과격하게 행동하여 황국의 외교관계를 망치고 있는가!”
“조선과 안남을 제국에 병합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중국까지 손댈 여력이 있긴 합니까? 해군의 그 잘난 88 계획까지 승인한 마당에?!”
“우리 육군은 민의를 무시하는 내각의 무도하고 독단적인 행동을 용납할 수 없소!”
“그, 그것이…….”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육군 장성들의 침 튀기는 외침에 오쿠마는 그 어떠한 변명도 내뱉지 못한 채 입을 우물거렸다.
아침부터 이 무슨 난리인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슬쩍 눈동자를 굴려 옆을 바라보니 가토 다카아키 또한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육군 놈들에게 둘러싸여 말과 고함으로 얻어맞고 있었다.
‘차라리 주먹으로 얻어맞는 편이 속은 더 편하겠군.’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상황에 한숨을 내쉬는 오쿠마.
“오쿠마 총리, 듣고 있소? 듣고 있냐 말이오!”
“이래서 사가 놈들이란!”
그러나 육군 놈들은 단체로 아편이라도 한 것인지 미친개처럼 지치지도 않고 자신들을 계속 물어뜯었다.
오쿠마와 가토가 성공시킨 지나 건에 대해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끌어와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지나 진출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숙원 중의 숙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육군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오쿠마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겨우 정신을 붙잡은 가토가 힘겹게 입을 열며 말했다.
일부 내각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
육군의 반대로 인해 지나 진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가토는 잔뜩 뿔난 육군 장성들을 어떻게든 설득해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우리라고 지나 진출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그 방법이 틀려먹어도 단단히 틀려먹었지 않은가! 이게 지금 난징 하나 먹자고 세계를 전부 적으로 돌리는 것과 뭐가 달라?!”
가토의 용감한 시도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본 오쿠마는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된다. 이 작자들하곤 말이 안 통한다.
육군은 지금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해군에 밀려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뭘 잘못 먹었길래 이러는 거야?’
정말 단체로 약이라도 빤 것일까?
그게 아니고선 지금 이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의회에서도 이번 지나 개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치겠군.”
오쿠마가 육군의 소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보좌관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또 하나의 안 좋은 소식을 전하자 오쿠마는 또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 * *
“독일 제국과 사이 공작이 우리 육군에게 큰 선물을 주었군.”
역시 세계 제일의 육군을 가지고 있는 나라답다.
러일전쟁 이후 모든 정치적 권력을 잃고 방구석 늙은이로 전락했지만, 일본 육군의 아버지답게 아직 육군 내에선 영향력이 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곰방대를 내려놓으며 끌끌 미소 지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네, 데라우치 군. 우리 대일본제국 육군이 언제까지 해군 놈들에게 눌려 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입니다, 각하.”
야마가타와 마찬가지로 조슈 출신의 육군 성골이자 육군대신, 그리고 얼마 전엔 초대 조선 총독으로 임명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사이 공작은 얼마 전 주일 독일 대사 아르투어 알렉산더 카스파 폰 렉스(Arthur Alexander Kaspar von Rex)를 통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 일본의 지나 간섭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며 뜻을 전해 왔다.
해군이 아닌 육군에게만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일본 육군이 나서서 이번 일에 제동을 걸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이번 지나 개입은 어디까지나 해군이 중심이 되어 있고, 난징에 주둔 중인 병력도 해군육전대와 수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말인즉슨 이번 개입이 성공하면 가뜩이나 높은 해군의 콧대가 더욱 높아진다는 소리였다.
“그렇게는 안 되지. 가뜩이나 빳빳한 해군 놈들의 목을 여기서 더 굵어지게 만들 순 없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러일전쟁에서 우리 육군이 추태를 보였다고 하지만, 해군 놈들이라고 딱히 잘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저 뤼순 앞바다에서 마카로프 제독이랑 손뼉치기 놀이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육군만 욕을 먹고, 해군은 자기들이 전쟁을 다 한 것처럼 굴고 다닌단 말인가?
‘더는 안 된다. 더는 저 사쓰마 놈들이 거들먹거리는 것을 볼 순 없어!’
이를 위해선 이번 지나 개입을 무산시키거나 최소 어정쩡하게 끝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만 된다면 작금의 해군 우위에 타격이 있을 것이고, 이를 기회로 육군이 다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야마가타와의 악연 덕에 야마가타의 자식이자 후배라 할 수 있는 육군과도 마찰을 빚어 왔던 오쿠마 그 버릇없는 사가 놈과 외교와 정치에서 군을 배제하려는 가토 다카아키의 수작도 막을 수 있을뿐더러 이번 일을 계기로 독일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뿌리부터가 프로이센군에게 큰 영향을 받은 탓에 친독파가 많았던 일본 육군에 있어서 그야말로 일거삼득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우리 육군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네. 그러니 자네 정치가들도 역할을 다하게나.”
“예, 각하.”
야마가타가 곰방대의 담뱃재를 털어 내며 말하자 황색 군복 일색의 방에서 유일하게 정장 차림을 하고 있던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하라 다카시.
평생을 의회민주주의 실현에 몸 바쳐 온 평민 재상,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대표하는 문민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안 어울리게 육군의 음모에 끼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오쿠마 내각의 무모한 지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지나에 진출해 봤자 열강의 분노만 살 뿐이었다.
오쿠마는 영미가 자기들 문제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겠나?
영국이 대전쟁을 겪고 난 뒤 식민지에서의 소요 때문에 침체에 빠졌다지만, 여전히 그 이빨과 발톱은 날카롭고,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 상태에 빠진 백악관 덕에 잘 움직이지 못하는 미국도 내년 대선이 치러지면 다시 기운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삼국간섭, 아니 그 이상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일본의 몇 안 되는 개념인이자 상식인이었던 하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참으로 육군스러운 생각이지만, 그는 해군이 이 이상 힘을 크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해군의 무리한 건함 계획 때문에 일본 정부 예산의 3분의 1이 잡아먹히고 있다.
그리고 해군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번 지나 개입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로 강해져만 가는 해군의 정치적 힘을 더욱 키울 것이다.
‘어쩌면 88함대가 아니라 1010함대를 만들자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만약 해군대신이자 하라처럼 일본 제국의 개념인이었던 가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郎)가 해군의 목줄을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렇기에 하라를 비롯한 건전한 의회민주주의 정부를 꿈꾸는 일본의 문민 정치가들은 이번만큼은 육군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해군의 힘을 꺾을 때까지만.
애초에 하라 같은 문민 정치인에게 있어 해군이든 육군이든 장차 정치에서 배제해야 할 존재들이었으니까.
‘일본이 제대로 된 입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문민통제를 성공시켜야 해.’
그것을 위해서라면 속으론 경멸해 마지않는 야마가타를 비롯한 군의 원로들에게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일 수 있었다.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대로 군이 정치적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다면 이는 결국 크나큰 우환을 불러올 테니까.
* * *
[일본의 중국 개입으로 인해 안팎으로 거세지는 비판.] [하라 다카시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 오쿠마 총리와 가토 외상의 지나 개입은 일본에 그 어떤 이익 없어.] [덴노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소란을 일으키는 현 내각의 행동에 깊은 우려를 표하다.]“오쿠마 내각이 위기에 몰린 것 같군요.”
“후후, 역시 장관님이십니다. 실력은 여전하시군요.”
“저야 언제나 그렇듯 남들의 뒤를 살짝 밀어 주었을 뿐입니다.”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다는 듯 고션 대사의 입에 발린 칭찬에 나는 씨익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대로 일본이 완전히 중국에서 손을 떼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요. 지금은 적당히 타협안을 제시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중국에서 물러나고, 적당히 이권만 얻어가라고 말입니다.”
쉽게 말해 원 역사의 21개 조 요구 정도로 만족하라는 뜻이다.
물론, 미국의 드레셀 대사는 여전히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미국으로선 일본이 안남을 집어삼키며 태평양에서의 영향권을 늘리며 미국의 이권을 위협하고 있기에 그들이 중국에서 완전히 손 떼기를 원할 테니까.
사실 21개 조 요구 수준의 불평등 조약은 이미 서구 열강들이 오래전 중국에 강요한 것들이라 일본으로서도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겠다는 것보다는 그냥 우리도 서양 열강처럼 대우해 달라는 것에 더 가까웠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드레셀 대사님. 이건 그저 시간 끌기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이 정도야 나중에 언제든 철회시킬 수 있어요.”
실제로 21개 조 요구는 몇 년 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대부분 취소되었다.
영국이나 미국이 혼란을 수습하고, 대충 중국의 인권이나 도덕 등을 이유로 들먹이며 일본을 압박하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장관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드레셀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일본 문제는 얼추 해결되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 개혁에 집중하고 싶은 기분이지만…….
‘아직 마음 놓긴 이르단 말이지.’
나는 오늘 아침에 전달받은 보고서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대전쟁의 잔불은 꺼지지 않았고, 유럽에 평화가 찾아오기엔 아직 멀었다는 증거였다.
* * *
1915년 8월 22일.
중국 개입으로 인한 육군과 정계의 극심한 반대도 모자라 천황까지 적당히 하라고 나서자 더는 버틸 재간이 없던 오쿠마 내각이 중국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물론,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국에서 떠나기 전, 중화민국 정부에 원 역사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21개 조 요구에 서명을 강요했지만, 어쨌든 난징에 세워진 괴뢰 정부가 버림받은 것은 틀림없었다.
“진군을 준비해라, 다시 난징으로 가 리위안훙을 비롯한 배신자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옛, 장군!”
이에 쓰촨으로 도망친 펑궈장과 북양군벌이 난징으로의 귀환을 준비했고,
“한간들을 몰아내고 난징을 되찾자!”
“삼민주의 만세! 쑨원 선생 만만세!”
진짜 중화민국 정부를 자처하던 쑨원과 량치차오 등 공화파 또한 탕지야오와 차이어가 이끄는 전계군벌과 함께 난징으로 달려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껍데기와 한간들만 남은 난징을 노리는 것은 비단 이 두 세력뿐만이 아니었다.
“쑨원 그 백면서생 놈이나 위안스카이의 애완견들에게 더는 굽신거리지 않겠다. 나는 난징을 차지해 중화민국 또한 손에 넣을 것이다!”
루룽팅(陸榮廷, 육아정)이 이끄는 광서의 계계군벌도,
“후난의 아들들이어! 난징으로 가서 한간들을 몰아내자!”
탄옌카이(譚延闓, 담연개)와 청첸(程潛, 정잠) 등이 이끄는 후난의 상계군벌도,
“루룽팅 따위에게 난징을 넘겨줄 순 없다. 그럴 바엔 내가 난징의 주인이 되어 중화민국을 제대로 이끌겠다!”
월인치월(광둥(월)은 광둥인(월인)이 다스려야 한다)의 깃발 아래 광둥성에서 루룽팅의 세력을 쫓아낸 천중밍(陳炯明, 진형명)의 천계군벌 또한 난징 레이스에 참가 의사를 표명했다.
바야흐로 중국에 대군벌시대가 도래한 순간이었다.
“중국을 다시 통일할 절호의 기회가 왔건만……!”
그러나 북쪽의 청나라는 돤치루이의 분한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난징 레이스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청은 지금 남쪽이 아닌 북쪽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우랄산맥 서쪽을 장악한 레닌과 볼셰비키. 이제 시베리아로 총부리를 돌리는가.]볼셰비키의 적군과 코르닐로프의 백군을 비롯한 반 볼셰비키 세력의 전면전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전장이 될 시베리아와 국경을 접한 청도 이 여파에서 무사할 순 없었다.
“마우재들이 벌써부터 몽골과 만주 국경에 들이밀고 있소. 아쉽지만, 남벌은 다음을 기약합시다.”
“크윽……!”
애석하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