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 백군을 부탁해 (1)
“격조했습니다, 폐하.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그래, 하늘에 계신 주께 감사하게도 헝가리인들과 매일 갑론을박을 펼치는 것만 빼면 건강하다네. 그나저나 공작 자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이번에 자네가 가져온 소식이 반갑지 않으니, 나로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군.”
오랜만에 빈을 찾은 나를 향해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유야 당연히 내가 빈을 방문한 이유기도 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사면 요청 때문이었다.
“폐하, 폐하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다는 것은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닐세, 공작. 그들은 제국군을 배신한 탈영병이자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반역자들이며 제국과 황제를 배반한 배신자란 말일세.”
“하지만 폐하, 지금은 그 배신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는 공산주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선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사면해 줘야 한다.
지금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지옥으로 변한 시베리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우리가 들어줄 수 있다면 충실한 동맹이 되어 줄 테니까.
“이보게, 공작. 나도 웬만하면 자네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네.”
하지만 아무래도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그리 쉽게 용서해 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을 사면해 줘 봤자 우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이득이 될 것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제국의 분열을 바라는 이들의 기세만 높여 주는 일이 될 뿐이지.”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폐하.”
“흐음?”
“왜냐하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사면은 폐하께서 가지신 고민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 그 반역자들이 말인가?”
황제의 의문스러운 목소리에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린 중요한 대목이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채 천천히 날카롭게 나를 바라보는 황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폐하께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용서하신다면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헝가리인들을 견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오…….”
헝가리라는 단어에 흐린 날의 먹구름처럼 칙칙하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눈동자에 흥미가 감돌기 시작했다.
황제로선 구미가 안 당기려야 안 당길 수가 없을 거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나를 맞이할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려 봐라.
그만큼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헝가리인들은 현재 황제와 신하가 아니라 원수지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유야 다들 알다시피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주도하고 있는 오헝 내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때문이었다.
‘제국 내 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연적으로 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제국 내 다른 민족들에게 나눠 줘야 하니까.’
그리고 헝가리는 이를 전력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특히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 제독에서 역사가 바뀌며 바다 있는 나라의 해군 제독이 된 호르티 미클로시(Vitéz Nagybányai Horthy Miklós)가 최근 헝가리 정계의 스타로 떠오르며 여러모로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귀찮게 만들고 있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로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그의 머리숱이 준 것을 보니 틀림없다.
“폐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체코슬로바키아는 산업화도 잘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지역입니다. 게다가 헝가리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지요.”
이는 체코슬로바키아 중 슬로바키아가 성 이슈트반 왕관령, 즉 헝가리인들의 지배를 받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헝가리인들은 슬로바키아인들에게 그리 좋은 주인님이 아니었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자비를 베푸시고, 그 대신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지를 얻으십시오, 폐하. 제가 장담하건대 폐하가 가시는 길에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흐으으음…….”
내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진 프란츠 페르디난트.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후, 정말이지 자네에게 못 당하겠군. 좋네. 호르티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볼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까. 총리와 상의한 뒤 좋은 대답을 들려주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폐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결정에 나는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황제가 말한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사면이 결정되었다.
*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우리를 사면해 준단 말이오? 정말로?”
“그렇습니다, 가이다 사령관.”
1916년 3월 24일.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 외교관이자 상관인 한스를 대리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머무르고 있는 바이칼 호수까지 찾아온 오스카 트라우트만(Oskar Paul Trautmann)의 대답에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사령관 라돌 가이다(Radola Gajda)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사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있어선 혹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협상국이 대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도 물을 건너갔고, 체코 군단의 편의를 봐줬던 러시아 임시정부는 몰락했으며 새로운 러시아의 주인이 된 볼셰비키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위험시하며 그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 이젠 러시아 내전에 휘말려 시베리아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가이다와 군단원들에겐 한숨만 나올 일이었다.
당장 세상의 그 어떤 이가 자신들과 상관없는 남의 나라 내전에서 고생하고 싶어 하겠는가?
적어도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세계대전이 몇 달 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는 지긋지긋한 전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제께서 장군을 비롯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직접 사면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군단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까?”
“…….”
“제가 단언하건대 이건 여러분께 주어진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 대신 우리에게 협력해 주셔야겠습니다만.”
“하, 그래. 친애하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폐하께서 맨입으로 반역자들을 용서해 줄 리가 없지.”
한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장교였던 가이다가 살짝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기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과 그 동맹인 독일군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병사들에게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항복은 아예 받지도 않았고, 포로로 붙잡는 즉시 군인으로 죽을 자격도 없다는 듯 교수대에 바로 목을 매달아 버렸다.
물론,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입장에선 당연한 행동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다들 알다시피 태반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출신 탈영병들이자 적에게 붙어 옛 전우들에게 총구를 돌린 배신자들이었으니까.
슬라브인들에게 여러모로 관대한 편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조차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사면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대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대전쟁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둘러싼 상황도 바뀌었다.
“게다가 이대로 사면 제안을 거부하고 시베리아를 떠돌아다녀 봤자 결국 미래가 없다는 것은 장군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끄으응…….”
트라우트만의 말에 가이다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그 말대로 이대로 가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 죽음, 그리고 죽음뿐이다.
뒤에선 그들을 찢어 죽일 생각 만만인 볼셰비키들이 쫓아오는데, 앞에 있는 백군이라고 체코 군단에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물자는 하루하루 줄어가는데,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극동은 독일 동방함대를 포함한 협상국이 점령 중이었고, 몽골을 비롯한 러시아-중국 국경에선 셰묘노프가 이끄는 바이칼 카자크들과 청군 간의 충돌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시베리아에 갇힌 채 죽을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잡을 것인지는 장군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후우……. 독일은 우리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무엇을 원하시오?”
독일의 손을 잡겠다는 의미가 담긴 질문에 트라우트만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로 첫 단추는 끼웠다.
물론 아직 끼어야 할 단추가 한가득하지만, 트라우트만의 상관이자 제국 외무청의 주인이 말하길 언제나 시작이 반인 법 아니겠는가?
“우선,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백군에 협력해 적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여 주십시오.”
“알겠소. 하지만 우리가 백군에 가담한다 한들 전황을 바꾸긴 힘들 거요. 백군은 이미 사분오열 직전이니까.”
“예, 우리 독일 또한 그 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대책도 준비했다.
* * *
“어째서냐…….”
4월이 되며 피로 붉게 물들었던 겨울이 끝나고 다시 한번 봄이 찾아왔을 때, 동방함대 소속 드레스덴급 경순양함 SMS 엠덴(SMS Emden)의 갑판에선 한 남자가 낯선 극동의 바다를 바라보며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어째서 이 내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눈과 나무밖에 없는 시베리아까지 가야 하는 거야.”
“크크큭, 만슈타인 소령님. 아직도 그러고 계십니까? 인제 그만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시죠.”
“롬멜 대위, 자넨 시베리아 같은 오지로 끌려가는 우리의 신세가 비참하지도 않은가?”
“전혀요? 오히려 빨갱이 새끼들과 얼른 싸우고 싶어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대전쟁 때 파스타랑 개구리랑은 싸워 봤는데, 이반이랑은 못 싸워 봤거든요.”
“미친 새끼…….”
만슈타인은 감자 칩(의외로 19세기부터 존재한 음식이다)을 와작와작 씹어 먹으며 설렌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롬멜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등을 돌렸다.
자신이 어쩌다 저 미친놈과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을까?
이 모든 게 빠른 출세를 위한 선택이었다지만, 지금에 와선 후회밖에 들지 않는다.
“훅…… 훅…… 우리는 어디까지나 백군을 돕기 위한 ‘군사 고문’으로 시베리아에 가는 것뿐이야, 롬멜 대위. 우리가 적군과 직접 총을 겨눌 일은 거의 없겠지.”
만슈타인이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발터 모델이 언제나처럼 침착한 어조로 롬멜을 향해 말했다.
사막에서 더위를 먹어 머리가 맛이 간 게 분명한 롬멜이나 전차 금단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구데리안 같은 이상한 놈들로 가득한 이 군사 고문단에서 자신처럼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모델 소령님, 언제까지 갑판에서 그러고 계실 겁니까?”
“훅…… 훅…… 근육 단련은 훅…… 훅…… 시간이 있을 때 해 줘야 하는 법이네.”
어디까지나 그나마 말이다.
“시코르스키 녀석은 벌써부터 별을 달았다는데…….”
자신은 세상의 동쪽 끝에서 또라이들과 어울리는 신세라니!
어서 빨리 출세해서 안락한 참모본부로 가고 싶었다. 너무나도 가고 싶었다.
“아아, 출세하고 싶다!”
만슈타인은 벌써 수백 번은 입에 올린 문장을 바다를 향해 다시 한번 외쳤다.
“보게나, 뮐러 함장. 저게 우리 육군의 유망주들이라네.”
그리고 군사 고문단의 총책임자, 한스 폰 젝트는 그런 만슈타인의 모습을 한심하단 눈으로 바라보며 고래를 저었다.
“뭐, 다들 기운차니 좋지 않습니까. 적어도 백군 지휘관 놈들보단 훨씬 낫습니다.”
“역시 그 정도로 엉망인가?”
“하! 말도 마십시오, 젝트 장군님.”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랜 시간 동안 있었던 만큼 백군의 실태 또한 잘 아는 SMS 엠덴의 함장, 카를 폰 뮐러(Karl Friedrich Max von Müller)가 질린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그래도 사람 꼴은 갖추고 있었는데, 이제는 저것들이 장군인지 도적단 두목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겠군. 독일식으로 말이지.”
겸사겸사 한스 폰 초이 장관이 말한 대로 유망주들에게 경험도 쌓아 주고.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는 법이니까.
“후후, 슈페 제독님께서도 기대가 많으십니다. 아, 그리고 ‘의용병’들은 다음 주에서 다다음 주 내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참고하지.”
젝트는 짧게 대답한 뒤 바다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블라디보스토크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