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 백군을 부탁해 (4)
“응애! 응애애애!”
1916년 5월 21일.
아침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쇤하우젠 궁전에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은 아버지를 닮고, 아들은 어머니를 닮는다는 통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를 닮아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프리데리케와 달리, 루이제를 닮아 금색 머리카락을 지닌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기다리던 둘째의 탄생이오,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의 탄생이었다.
루이제는 그 사실이 자못 기쁜지 출산의 고통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환한 얼굴로 웃음꽃을 피워 냈다.
“후훗, 이제 세 명 남았네.”
“……정말 다섯 명이나 낳으려고?”
“정확히 말하면 최소 다섯 명이지. 애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부드러운 미소와 달리 루이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했지만.
쉴 만하면 밀려오는 서류의 파도 속에서 과연 내가, 정확히는 내 몸이 버텨 낼 수 있을까?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다.
버텨 내야만 한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의무를 저버릴 순 없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힘내자, 한스야.
“아빠, 아빠.”
“어이쿠, 프레디도 동생을 보고 싶니?”
바짓단이 끌어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들려온 프리데리케의(이젠 말도 곧잘 하고 나름대로 걸어 다니기도 했다) 칭얼거림에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이윽고 침대 위에서 루이제 품 안에 안겨 있는 남동생과 눈이 마주친(물론 아기 쪽은 아직 눈을 뜨지 못했지만) 프리데리케는 자신의 첫 동생이 신기한지 눈을 반짝거리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나저나 정말 그 이름으로 지을 거야?”
“응.”
나는 아기를 향해 작은 손을 뻗는 프리데리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하르트.”
오랜 고민 끝에 지은 이름이다.
풀네임은 라인하르트 디트리히 카를 폰 초이-크론베르크 되시겠다.
처음엔 지크프리드로 지을까 했는데, 루이제가 바그너 오페라 빠돌이냐고 해서 그건 포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히틀러랑 같은 취급 받는 것 좀…….’
어쨌든 라인하르트도 나름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마침 금발이기도 하고.
물론 우주를 손에 넣을 필요는 없으니, 그저 건강하고 이름처럼 진실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다오, 라인하르트.
똑똑─
“공작님,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외무청에서 보고가…….”
루이제와 함께 아빠 엄마 미소로 라인하르트가 꼬무락거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내 부하들은 눈치가 없다니까, 눈치가.
“후, 하루라도 쉴 틈이 없다니까. 미안, 루이제. 잠깐 확인하고 올게.”
“한창 바쁠 때니까 어쩔 수 없지. 괜찮으니까 다녀와.”
나는 프리데리케를 유모에게 맡기고, 서재로 가 집사가 건넨 보고서를 확인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당연히 지금 가장 핫한 러시아 내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젝트 장군은 잘해 주고 있는 모양이네.”
바이칼 전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적군은 아직도 이르쿠츠크를 점령하지도, 바이칼 호수를 넘어 극동으로 진격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물론, 백군도 역공을 펼칠 여유는 없어서 그저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을 끌고, 끌고, 또 끄는 것이니까.
덕분에 이번 내전에 많은 것이 걸린 트로츠키는 초조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레닌을 대신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이상 적어도 레닌만큼 아니, 레닌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이대로 내전에서 죽을 쑨다면 이는 트로츠키에게 크나큰 정치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아는 트로츠키라면 공세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격을 명령하겠지.’
여기서 공세를 포기하는 것은 결국, 트로츠키가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출했던 타협을 하겠다는 소리고, 시베리아의 반절을 포기하겠단 소리였다.
트로츠키로선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선택지일 것이다.
그리고 트로츠키가 공세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내전이 점점 길어질수록 소비에트 러시아는 피폐해질 것이다.
그것을 다른 볼셰비키들이 참아 줄 리가 없다.
이미 그들은 공산천마 레닌을 쳐 냈다.
여러모로 레닌보다 더 미움을 받을 요소가 많은 트로츠키라고 못 쳐 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트로츠키를 쳐 내면 그의 뒤에 있던 스탈린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겠지.’
쯧, 어째 러시아 문제에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스탈린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한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트로츠키가 망해야 이 귀찮은 러시아 내전도 일단락될 텐데.
나로선 그저 이번 내전의 여파로 러시아가 최대한 피폐해져 강철 콧수염이 러시아의 지도자가 될지라도 쉽게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바랄 뿐이다.
“다음은…… 중국에서의 무기 판매 건이라.”
자칭 몽골의 백색 칸이신 세묘노프 때문에 골치가 아픈 청은 물론, 남쪽의 군벌들도 서로를 조지기 위해 다들 우리 무기를 원하고 있었다.
퀸 장관은 물론, 독일의 군수 업체 사장들이 들으면 참 좋아할 만한 소식이다.
대전쟁이 끝났는데도 무기는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으니.
원 역사에서 루덴도르프가 한 말처럼 평화는 결국, 전쟁 사이의 전간기에 불과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당장 양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끝난 후에도 전쟁과 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으니까.
없던 편두통도 생길 것만 같은 불안한 미래에 한숨 쉰 나는 대충 외무청에 전달할 말 몇 가지를 적고 다시 가족들에게로 향했다.
마침 궁전 앞 정원 쪽에서 자동차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라인하르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신궁전에서 베를린의 쇤하우젠 궁전으로 달려온 우리 장인어른과 장모님일 것이다.
‘또 장난감과 인형을 잔뜩 들고 오진 않았겠지?’
요즘 우리 장인어른이 벌목을 넘어 DIY까지 손을 대서 손주들에게 줄 나무 장난감과 손녀들에게 줄 인형을 양산하는 중이거든.
프리데리케의 것만으로도 이미 방 하나가 꽉 찰 정도인데, 아직 라인하르트는 신생아인 만큼 당장은 봐줬으면 좋겠다.
나는 카이저의 못 말리는 손주 사랑에 미소 어린 한숨을 내쉬며 다시 가족들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나는 동무들에게 실망했소.”
어느새 봄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왔다.
그러나 붉은 군대는 여전히 바이칼 전선을 돌파하지 못했고, 스트레스로 헝클어진 곱슬머리가 한층 더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트로츠키는 오늘도 인민위원들을 모아 놓고 갈굼을 시전했다.
“말해 보시오, 지노비예프 동무. 우리가 언제 바이칼 전선에 공세를 시작했소.”
“……4월입니다, 트로츠키 동지.”
지노비예프가 벌써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훤히 보인다는 듯 똥 씹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에 트로츠키가 다시 그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지금은 몇 월이지?”
“7월입니다, 트로츠키 동지.”
“그래, 7월이지! 심지어 다음 주면 8월이야. 그런데 왜 아직 내 귀에 반동 놈들의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혀 들려오고 있지 않은 것인가! 대체 언제까지 무능하게 굴 작정이야?!”
트로츠키의 히스테릭한 고함에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는 인민위원들.
그 모습은 마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입을 열지 못해 답답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만큼 트로츠키의 발언은 인민위원들 입장에선 억울 그 자체였다.
그야 지금 붉은 군대를 총괄하는 자가 누구인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위대한 영도자이자 국방위원도 겸임하고 있던 레프 트로츠키 동지이시다.
즉, 지금 공세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트로츠키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자아비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은 잘못 없다는 듯 매일 같이 자신들만 갈굴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승리할 수 없어. 저들의 무기가 강하다면 우리는 더 많은 양으로 승부를 봐야 해.”
“하지만 트로츠키 동지, 이 이상 징병을 이어 가선 안 됩니다. 경제는 이미 한계에 달했을뿐더러 인민들의 불만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그러면 친애하는 부하린 동무께선 바이칼 호수를 돌파할 다른 방법이 있으시오?“
“그건…….”
“없다면 입을 다물고 동무의 일이나 잘하시오. 가치 없는 말만 늘어놓지 말고!”
트로츠키의 모욕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부하린.
그러나 트로츠키는 여전히 분이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이번엔 말없이 파이프 담배나 뻐끔거리고 있던 스탈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물론, 트로츠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본 스탈린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쑤까 블리옛을 외치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스탈린 동무, 철도망 수복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소?”
“죄송하지만, 거의 진척이 없습니다. 철도 하나를 고치면 다른 철도 하나가 터져 나가고 있는 바람에 우리로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원인은 다들 알다시피 생존을 위해 백군과 임시 동맹을 맺고 시베리아 전역에서 암약하고 있는 사회혁명당 좌파와 녹군을 비롯한 반볼셰비키 좌파 게릴라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군은 아직도 이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군과의 전투에 집중하느라 적군도 여유가 없었을뿐더러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게릴라들을 찾아 하나하나 수색하고 섬멸하기엔 러시아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베리아라는 땅은 넓어도 너무 넓었으니까.
물론 트로츠키는 이를 이해할 생각도, 이해해 줄 생각도 없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것인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해내지 못해서 당의 행정을 책임지는 서기장이라 하겠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트로츠키의 비난에 스탈린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차피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해 봐야 눈앞의 염소수염의 화만 더욱 돋을 뿐이니까.
‘X 같은 안경잡이 새끼, 언제까지 잘난 척할 수 있나 보자.’
물론, 스탈린의 속은 겉과 달리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트로츠키의 등 뒤에 얼음송곳을 꽂고 싶다는 듯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두 팔 벌리고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내가 직접 나서선 안 돼.’
지금 스탈린은 소비에트의 권력을 구성하는 5인방 중 최약체.
트로츠키는 물론, 볼셰비키 중진인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심지어 부하린보다도 못했다.
여기서 직접 손을 쓰는 것은 하수였고, 트로츠키를 몰아내기 위해선 다른 이들을 움직여야 했다.
“젠장, 매일 자기만 잘난 줄 알지…….”
“차라리 레닌이 있을 때가 훨씬 나았어…….”
뭐,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부하린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날이 오는 것은 멀지 않아 보였지만.
‘물론, 트로츠키를 몰아낸 다음엔 저들도 하나둘씩 처리해야겠지.’
그리고 언젠가 자신만이 남을 때 자신은 러시아의 주인이 되리라.
물론, 그 전에 작금의 내전부터 어떤 식으로든 끝내야겠지만.
* * *
[몇 달째 이르쿠츠크를 넘지 못하는 붉은 군대. 러시아 내전의 향방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후훗, 트로츠키가 꽤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래, 의용병들을 보내길 잘했어.”
“의용병들이라곤 해도 상당수는 대전쟁에도 참전한 경험 많은 군인들이지만요.”
로마노프 황녀에서 우크라이나의 왕비가 된 올가 로마노바는 남편인 요아힘과 함께 신문을 바라보며 우아하면서도 살짝 통쾌하다는 듯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트로츠키는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예전에 그녀와 가족들을 러시아에서 빼내 준 적이 있었기에 살짝 미안한 기분도 들긴 했다.
하지만 그가 공산주의자고 올가가 로마노프 황녀이자 우크라이나 왕비인 이상 두 사람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사이.
그렇기에 올가·요아힘 부부와 우크라이나는 위성국들을 향해 군 경력이 있는 자들을 모아서 시베리아에 의용병 좀 보내라며 외주를 준 독일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올가로선 로마노프를 저버리고 자기들 잇속이나 챙기는 백군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소비에트 러시아가 내전에서 힘을 빼면 뺄수록 우크라이나는 더욱 안전해질 테고, 소비에트로부터 자국을 지킬 힘을 기를 시간도 길어질 테니까.
“그나저나 장인어른이 보내 준 우유 맛있네.”
“그렇죠? 다른 친척들에게도 호평이에요.”
덕분에 많은 투자를 받아 덴마크산 로마노프 우유 제국을 건설하려는 니콜라이 2세의 낙농업 사업도 순풍만범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요아힘으로선 장인이자 친척 아저씨가 정치보다 목장 일과 사업에 더 재능을 보이는 것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 그러고 보니 타티야나에게 혼담이 들어왔대요. 여러 곳에서요.”
“처제도 이제 19살, 성인이니까.”
게다가 니콜라이 2세의 차녀인 타티야나는 자매 중 가장 미인(눈에 콩깍지가 낀 요아힘은 올가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지만)으로 유명했다.
구혼자가 넘치는 것은 당연했다.
“제 생각엔 아마 에드워드나 알렉산다르 왕자 중 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페타르 국왕의 차남 말이구나.”
형이 사도세자가 빙의하기라도 했는지 시종을 때려 죽이는 등 정신 질환을 보여 폐세자가 된 탓에 세르비아의 왕세자가 된 인물이자 원 역사에서 초대 유고슬라비아 국왕이 되었던 인물이다.
세르비아가 망하고, 카라조르제비치 왕가 자체가 세르비아인들의 불만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토템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 지금에 와선 사라진 미래였지만.
“저로선 타티야나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저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럴 거야, 분명히.”
요아힘이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자 올가는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확실히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