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 프레지던트 휴즈
1916년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에 빼앗긴 정권을 되찾은 공화당에선 화려하고 거창한 축하 파티가 열렸다.
그만큼 공화당은 이번 승리에 쾌재를 불렀다.
1912년 대선 당시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음에도 태프트와 루스벨트의 갈등으로 인해 표가 갈리는 바람에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하는 꼴을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던 공화당이다.
그리고 오늘 민주당으로부터 빼앗긴 정권을 드디어 되찾았으니, 이 좋은 날 파티를 안 열려야 안 열 수가 없었고, 덕분에 공화당원들은 금주법을 주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샴페인을 거하게 터트리며 위장에 술이란 술을 다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런 떠들썩함 속에서도 모두의 주목을 받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선거에서 득표수와 선거인단 양쪽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미국 제29대 대통령 당선인이 된 찰스 에번스 휴즈였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미스터 휴즈.”
“예!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이걸로 민주당 딕시 놈들도 제 주제를 깨달았겠죠.”
“하하하, 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입니다.”
주변에서 쉴새 없이 쏟아지는 칭찬과 아부 속에서 휴즈는 입가에 계속 미소를 띠며 지지자들과 악수했다.
물론, 아내 플로렌스가 말아 주는 폭탄주를 연거푸 들이마신 탓인지 깔깔거리며 웃음을 연신 터트리고 있는 부통령 당선인 하딩과 달리 정치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가식적인 미소였다.
그야 외모와 달리 사람 자체가 허술한 하딩과 달리, 휴즈는 뉴욕의 변호사로 시작해서 대법관을 거쳐 대통령까지 올라온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인물.
뻔히 보이는 아부 따위에 헤실거리기엔 쌓아 온 연륜이 연륜이었다.
‘그래도 몇 시간 째 이러니 피곤하긴 피곤하군.’
조금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휴즈는 보좌관을 향해 눈짓으로 신호를 지었다.
“미스터 휴즈, 잠시 귀 좀…….”
“음? 알겠네. 곧 가지.”
보좌관이 휴즈에 신호에 급한 안건이 생겼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귀에 은밀히 속삭이는 척을 했다.
이에 심각한 표정을 지은 휴즈는 사람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잠시 일이 생겨서 실례하겠습니다. 곧 돌아올 테니 그동안은 하딩 부통령 당선인과 이야기를 즐기고 계시죠.”
“누구, 저요?”
술에 취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하딩에게 귀찮은 인간들을 떠넘긴 휴즈는 파티장을 떠났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푹신한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후~ 이제야 좀 살겠군. 인사하느라 계속 서 있었더니, 다리가 후들거려 죽는 줄 알았어.”
“후후, 그만큼 사람들이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에겐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지만 말이야.”
이게 다 윌슨 때문이었다.
전임인 윌슨이 대사고를 친 탓에 미국 정부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한 대행인 마셜은 이를 해결하지도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했고.
덕분에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운데도, 더 나아가 그 여파로 미국의 이권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런 행동도 못 한 채 그저 세월아 네월아 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차기 대통령인 휴즈에 기대를 보내며 그가 윌슨이 남기고 간 상처들을 해결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그걸 알면서도 대선에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나왔지. 그리고 당선까지 되었으니,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휴즈는 천장을 향해 한숨을 푹 쉬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윌슨이 무너트린 미국의 위신을 다시 바로 세우는 것이지만…….’
어디 위신이란 것이 세우고 싶다고 싶어지는 것인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먼저 눈앞에 산적한 이들을 해치워 나가며 그 과정과 결과를 바탕으로 천천히 위신을 회복해 나가야 했다.
그리고 휴즈에겐 다행히도 뉴욕이 몇 년 안에 런던을 뛰어넘을 것이 예상될 정도로 미국 경제는 전후 발생한 일시적인 침체를 딛고 유례없는 호황으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그가 윌슨과 달리 올바르게만 행동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개인적으론 러시아 내전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역시 이건 힘들겠지.”
“예, 개입하기엔 너무 늦었을뿐더러 우리 국민 또한 러시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테니까요.”
휴즈에겐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만약 그가 더 일찍 대통령이 되었다면 군사적 개입까진 못하더라도 독일과 영국에 편승해 극동 러시아의 이권 몇 개라도 챙겨올 수 있었을 테니까.
특히 최근 마르크스주의자인 알프레드 웨이건크넥트(Alfred Wagenknecht)와 러시아 혁명을 다룬 르포르타주 ‘세계를 뒤흔든 열흘’로 유명한 언론인 존 리드(John Silas Reed) 등이 미국 공산당을 창당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붉은 마수가 일렁이고 있는 통에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 내전에 발을 들이밀기라도 했다면 공산주의 확산 방지에 이바지했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위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이제는 이미 때를 놓친 이야기이지만.
게다가 미국엔 그것 말고도 아니, 그보다도 더 시급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세계대전이 한참 전에 끝났음에도 판초 비야 등 국경을 어지럽히는 멕시코인들, 남미에서 미국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바나나 전쟁, 미국 전국에 금주법을 적용하기 위한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의 통과 또한 신경 써야 했다.
사실 휴즈 자신은 금주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진 않았지만(그렇다고 딱히 반대하지도 않았다), 출신 당인 공화당이 금주법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하하하하하!
뭐, 파티장에서 풍겨 오는 술 냄새만 보면 저들이 정말 금주법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이 술만 금지하면 세상이 더욱 나아질 거라며 금주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니, 휴즈로서도 최소한이라도 노력을 기울이긴 해야 했다.
“그리고 일본, 이 건방진 잽스들을 어떻게든 해야 해.”
일본은 88함대 계획이란 이름으로 예산을 끝도 없이 파먹는 총력전을 시도하며 미국의 태평양 이권에 중대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페리 제독의 함대에 벌벌 떨던 것들이 말이다.
이에 반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의 건함 계획은 힘없는 정부, 그리고 건함을 주도하던 해군장관 대니얼스가 윌슨과 함께 몰락하면서 속도를 제대로 못 내고 있었다.
‘그나마 독일 제국이 나선 덕분에 일본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으니 망정이지.’
물론, 16개 조 요구가 남아있었기에 마음 놓긴 아직 일렀다.
일본이 중국에 남기고 간 그 족쇄를 제거하지 않는 한 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에 찝쩍거리며 미국의 이권에 가운데 중지를 치켜세울 테니까.
“게다가 영일동맹도 아직 남아 있단 말이지.”
“상수시 조약 이후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긴 하지만요.”
그렇다고 한들 이대로 영일동맹의 존재 그 자체를 간과할 순 없었다.
가뜩이나 일본이 미국의 적성국으로 떠오르는 상황에 영국이 일본을 돕는다면 미국은 크나큰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겠군.”
벌써부터 고생이 예상된다는 듯 휴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윌슨 탓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킬 군항 게르마니아베르프트 조선소.
“하하! 어떤가, 공작. 웅장하지 않나?”
“예, 크고…… 아름답네요.”
나는 티르피츠 제독의 자랑스럽다는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만큼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건조되고 있는 전함은 대단하고, 또 그 내가 봐 온 그 어떤 전함보다도 거대했다.
“세계 최초의 16인치 전함! 크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니까!”
“네. 역시 RMA, 역시 제국 해군청이네요.”
카이저의 편애 속에서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진적인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 최고의 군함 설계자들이 모인 곳답다.
대전쟁이 일어나기 직전부터 과도한 해군 예산을 줄이기 위해 실시된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인해 그 기세는 예전만큼 못해졌다지만, 설계 실력 하나만큼은 아직 제대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정말 최대한 빨리 건조하라고 해서 건조하긴 했는데 정말 군축 이야기가 나와도 지킬 수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티르피츠 제독님. 그러니 서둘러 완성만 해 주시죠. 그래야 저도 약속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머지않아 열리리라 예상되는 해군 군축 회의 때 티르피츠가 입을 다물게 만들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거라도 입에 물려주지 않으면 분명 온갖 지랄을 떨게 분명하니까.
‘게다가 어차피 16인치 전함을 만들긴 해야 해.’
군축은 군축대로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군 발전을 아예 도외시할 순 없는 법이니 말이다.
특히 유럽의 바다가 안전해졌다 한들 키아우초우와 태평양 식민지들의 존재 때문이라도 향후 태평양과 아시아에서 일본과 마찰을 빚게 될 테니 더더욱.
그리고 지금 안 만들면 당분간은 못 만든다.
워싱턴 해군 군축 회의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앞으로 10년에서 15년까지는 주력함 건조 또한 금지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건조를 완료했다면 예외로 빠지는 사례도 있었다.
나가토급 1번함 나가토(長門), 그리고 콜로라도급 2번함인 USS 메릴랜드(USS Maryland)가 딱 그런 이유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만 하면 1척을 더 건조할 권리를 얻어 낼 수도 있을 거야.’
원 역사에서 워싱턴 회의가 열렸을 때 일본은 거의 완공 직전이었던 나가토급 2번함인 무츠를 지키기 위해 영국과 미국이 16인치 전함 2척을 추가로 건조하는 것을 허락해야만 했다.
어차피 자신들은 처음부터 전함을 건조해야 하는 영미와 달리, 나가토급 2척을 즉시 전력화할 수 있으니 향후 몇 년간은 해군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언제나의 일본답게 병크였다.
이미 메릴랜드의 존속을 인정받았던 미국은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일본과 영국보다 1척 더 많은 16인치 전함 3척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흔히 빅 세븐이라 일컫는 워싱턴 회의에서 살아남은 일곱 척(나가토급 2척, 넬슨급 2척, 콜로라도급 3척)의 16인치 전함들의 탄생 비화였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것도 그 부분이었다.
현재 일본은 나가토급 1번함 나가토의 건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참이고(물론 원 역사보단 훨씬 빨라졌긴 했다) 미국의 경우엔 이제야 막 콜로라도급의 첫 삽을 뜬 상태였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선수를 쳐 16인치 전함을 먼저 만든다.
그리고 해군 군축에 관심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미국에 언질을 주든 아니면 직접 손을 쓰든지 해서 해군 군축 회의를 열어 이를 이용한다.
어차피 우리로선 나가토의 건조를 취소시켜 일본에 빅엿을 날려도 좋고, 이를 빌미로 1, 2척 더 건조할 권리를 받아 와도 결과적으론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걸로 카이저와 티르피츠, 두 배박이 콤비의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내가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해군 군축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면 진짜 가만 안 둘 거다.
“실례하겠습니다, 장관님.”
하여튼, 내가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티르피츠와 원 역사에서 독일이 가지지 못했던 16인치 전함을 구경하고 있을 때, 비서가 살짝 다급한 얼굴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표정과 목소리의 고저를 따져 봤을 때 우리 독일에 해가 되는 일은 아닌 사건이 일어났나 보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젠 나도 척하면 척 알아들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RND에서 보내온 첩보입니다. 조금 전 크론슈타트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오.”
그래도 비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오래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좋은 소식이었다.
러시아 내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