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 사랑과 전쟁 (1)
니즈네우딘스크 조약이 체결되고 며칠 후.
러시아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가 된 블라디보스토크는 여전히 철수하는 영국군과 일본군, 귀국하는 의용병들, 그리고 약속대로 사면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연해주도 이제 조용해지갔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을 도와 적군과 싸우며 전투 경험을 기른 홍범도 등을 비롯한 독립군과 임시정부 인사들은 귀향 인파에 섞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 남을 예정이었다.
연해주는 본래 한인들의 오랜 거점.
그 오랜 거점을 떠나게 만든 원인인 일본군이 아무것도 못 했다는 한숨과 함께 철수하는 이상, 연해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한스는 앞서 말했듯이 러시아 공화국을 통제하기 위해서 정부를 브란겔같이 친독파 인사들로 채울 예정이었고, 개중엔 한국계인 김인수나 최재형을 비롯한 임시정부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스에게 있어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고, 시베리아는 넓고 넓기에 독립군이 일본의 눈을 피해 힘을 기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으니, 미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박승환 장군이나 우성(박용만) 선생, 도산 선생은 그 남녘 어디로 간다고 했지비?”
“심프손하펜(Simpsonhafen)입니다, 장군.”
오늘날엔 라바울(Rabaul)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독일령 뉴기니의 중심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점령당해 라바울 본영이란 이름으로 군사 기지화된 그곳이었다.
대한제국군을 등지고 독립군이 된 박승환과 하와이에서 독립군을 조직하고 있던 박용만, 안창호는 임시정부의 거점을 만들 계획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이 벌어지면 아무래도 일본의 코앞에 있는 키아우초우는 바로 함락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스는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당장은 아니지만, 심프손하펜을 일본보다 먼저 요새화해 훗날 키아우초우를 대신할 거점으로 키울 생각이었고, 키아우초우의 임시정부 또한 전쟁 발발 시 심프손하펜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독립군 내에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비행학교도 세우는 것은 덤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은 태평양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해전과 항공전이 그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독일로서도 고급 인력인 조종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
“하여튼, 그쪽이나 이쪽이나 한동안은 바쁘겠구만…… 응?”
웅성웅성─
홍범도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이 인파, 특히 영국군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홍범도는 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야, 거 무슨 일인지 보고 오라.”
“예.”
곧 독립군 하나가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인파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홍범도에게 돌아왔다.
“아일랜드, 그러니까 애란(愛蘭)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장군. 독립 전쟁입니다!”
“애란이라면 쇼 사장네 고향 아닌가?”
“네, 거기 맞습니다.”
“하하, 쇼 사장이 좋아하겠구만기래.”
왜냐하면 중국에 기반을 둔 선박업&무역업 회사인 이륭양행(怡隆洋行)의 사장이자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조지 쇼(George Lewis Shaw)는 아일랜드계였기 때문이다.
그가 고향과 비슷한 처지인 한국의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를 지원한 이유였다.
참고로 쇼는 아일랜드 피가 흐르는 이답게 영국인을 싫어했는데, 일본인도 영국인만큼이나 싫어했다.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아내도 일본인(다만 쇼의 아내인 사이토 후미 또한 일본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조선 독립을 지지했다)인데도 그랬다.
“애란 사람들이 이겼으면 좋겠네요.”
“아아.”
홍범도와 독립군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동지의 나라가 독립에 성공한다면 그들 또한 더욱 힘을 낼 수 있을 테니.
* * *
“……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바이다!”
“아일랜드 공화국 만세! 아일랜드 독립 만세!”
“우리는 영국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1916년 1월 21일, 러시아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신 페인을 주축으로 한 아일랜드 공화국의 독립 선언과 함께 유럽에서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일랜드의 독립은 불법입니다! 불법! 우리 영국 정부는 결코 아일랜드의 분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옳소! 옳소!”
물론, 로이드 조지 내각과 영국 의회는 다른 곳도 아니고, 브리튼섬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독립 시도를 용납할 생각 따윈 없었다.
곧 영국은 부활절 봉기 때처럼 아일랜드에 군대를 파견해 아일랜드인들의 가당찮은 독립 시도를 저지하려 했다.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시작이었다.
타다다다다!!
“아일랜드는 자유다!”
“잉글랜드 새끼들은 꺼져라!”
그러나 작년 부활절 봉기 때처럼 아일랜드 반란군 따위는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을 거란 영국의 생각과 달리 독립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고 전투 또한 끝나지 않았다.
아일랜드 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IRA) 또한 영국군과 정면에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란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보어전쟁 당시 보어 게릴라들도 즐겨 썼던 게릴라 전술인 플라잉 칼럼(Flying Column) 전술을 사용하며 영국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콰왕!
커다란 폭음과 함께 군사기지, 보급기지, 경찰서, 관공서 등 영국인들의 건물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갔다.
영국군 장교와 정치인들 또한 길거리와 저택을 가리지 않고, 머리통에 총알이 박히기 일수였다.
“자자, 모두 후퇴! 후퇴!”
“헉…헉…… 거기서, 이 훌리건(Hooligan) 새끼들아!”
“하하하! 너 같으면 서라고 서겠냐!”
그때마다 영국군은 얼굴을 붉히며 아일랜드 게릴라들을 쫓았지만, 아일랜드섬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도망치는 게릴라들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는 못 참겠군. 아일랜드에 계엄령을 선포하시오!”
“예, 총리님.”
결국 분노한 로이드 조지와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영국군은 아일랜드 게릴라를 찾아내기 위해 아일랜드인들을 쥐잡듯이 잡기 시작했고, 게릴라와 상관없는 무고한 이들을 체포하는 것은 물론, 총살도 밥 먹듯이 저질렀다.
“집행하라!”
탕! 타탕!
아일랜드 반란군에 대한 보복은 이미 아일랜드의 일상이었다.
영국군은 게릴라 공격에 납탄과 불로 대답했고,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발브리건(Balbriggan) 같은 경우엔 50채에 달하는 집이 영국군의 보복으로 불타올랐을 정도였다.
화르륵! 화르르륵!
그러나 발브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발브리건이 불타오른 지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아일랜드 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인 코크(Cork)가 불타올랐다.
발브리건과 마찬가지로 IRA 게릴라에 대한 영국군의 보복이었다.
이에 소방관들이 번지는 불을 끄기 위해 출동했지만, 영국군은 도리어 그들에게 총을 겨누며 진화 작업을 방해했고, 불타는 집에서 도망치는 아일랜드인들을 폭행하고, 약탈을 저질렀다.
그리고 불이 다 꺼지고 잿더미만 남은 후.
방화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물론, 처벌을 받은 사람조차 없었다.
아일랜드인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발브리건을 기억하라! 코크를 기억하라!”
“영국인들을 죽여라!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이 학살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쾅! 콰광!
이제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영국 본토에서도 IRA의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노한 아일랜드 게릴라의 공격이 일어나면 영국의 보복이 이어지고, 영국의 반감으로 게릴라가 증가하는 언 해피 스파이럴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영국의 업보였고, 그들이 만들어 낸 지옥이었다.
* * *
“아빠, 아빠!”
“아이쿠, 아빠 여기 있어요!”
러시아 내전이 얼마나 끝나지 않아 아일랜드에서 피를 피로 씼는 증오의 연쇄가 일어났음에도 독일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프리데리케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며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집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라인하르트 또한 건강했다.
나와 루이제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역시 아이들이 느니 보기 좋네.”
물론 다행히 아닌 일도 있었다.
“마침 딱 셋째도 생겼고. 역시 굴이 남자에겐 좋긴 좋나 봐.”
“으, 으응.”
루이제가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자 내 눈동자가 나도 모르게 초췌해졌다.
한스 폰 초이 공작은 오늘도 빅토리아 루이제와의 의무 방어전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셋째였다.
하, 빌어먹을 20세기 가족관 같으니.
둘이면 충분한 것을 시대가 나에게 대가족을 요구하고 있다.
“그나저나 전쟁이 끝나고도 세계는 여전히 시끄럽구나. 러시아 문제가 끝나자마자 이번엔 아일랜드에서 전쟁이 터지질 않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결국 반란이 일어났다며?”
“응, 영국인들의 자업자득이지만.”
물론, 그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일랜드의 상황에 나 또한 동정은 가지만, 내 고향도 아직 못 구해 주는 마당에 독일 제국과 상관없는 아일랜드까진 신경 쓸 순 없는 노릇이다.
제국의 무덤임을 또다시 증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페르시아에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니, 로이드 조지 총리는 그야말로 머리가 돌 지경일 거야.”
다만, 페르시아의 경우엔 놀라운 사실이지만, 영국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현재 영국의 보호령인 페르시아는 지금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몰리고 있었는데, 유럽에선 소강상태에 접어든 프랑스 독감이 대규모로 유행했기 때문이다.
‘당장 프랑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체 인구의 8%에서 22%에서 추정된다고 하던가?’
당장 한국에서 5천만 인구 중 최대 천만이 죽었다고 생각해 봐라.
신의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나라가 크게 기우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페르시아에 닥친 전염병은 프랑스 독감만이 아니었다.
지금 페르시아엔 농담이 아니라 역병의 백기사가 직접 강림이라도 한 것인지 발진티푸스, 콜레라, 심지어 페스트까지 돌고 있다.
이도 모자라 가뭄까지 시작되면서 기근의 흑기사까지 신나게 달려오는 중이니, 페르시아는 한동안 페르시아 정부와 페르시아의 주인인 영국이 피똥 싸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페르시아가 터지면 영국의 소중한 페르시아 유전 또한 터진다는 소리였으니까.
덕분에 승리를 이끈 전시 총리로 전후에도 상당한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로이드 조지의 지지도는 빠른 속도로 급감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가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날도 머지않은 모양이다.
“조지 아저씨에겐 안된 일이네. 가뜩이나 에드워드의 혼담도 잘 안 풀리고 있다는데.”
“응? 타티야나와 혼담 말하는 거야?”
“어, 덕분에 조지 아저씨가 폭발 직전인가 봐.”
이유야 뭐,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 * *
니콜라이 2세의 차녀,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는 지금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언니 올가와 달리, 자매 중 가장 점잖고 순종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에게 있어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유는 그녀의 혼담 상대이자 육촌 오빠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 에드워드 때문이었다.
조지 아저씨의 거부할 수 없는 간절한 눈빛 때문에 큰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혼담에 나선 타티아나지만, 정작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던 조지 5세의 말 하곤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덕분에 당황한 타티야나는 에드워드에게 자신을 왜 이렇게 대하냐고 물어봤지만…….
-넌 얼굴은 반반한데 재미가 없어. 그리고 어렸을 때는 몰라도 그런 여자는 지금 내 취향이 아니거든.
-뭐, 뭐라고요?!
돌아온 대답은 조국에서 쫓겨나 황족이란 혈통 하나만 남은 타티아나를 비웃는 눈초리와 무례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물론, 타티야나는 참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번 혼담에 꽤 기대를 품고 있었고, 그녀의 성격상 이를 쉽게 배신할 순 없었으니.
하지만 에드워드의 행동은 타티야나조차 점점 참기 힘들 정도로 막 나가고 있었다.
당장 오늘도 어떻게든 두 사람의 사이를 가깝게 만들려는 조지 5세의 부탁으로 영국 왕실의 점심 식사 자리에 나왔건만, 정작 에드워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조지 5세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고 한숨 쉬는 메리 왕비, 그리고 중간에 끼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버티뿐이었다.
‘올가 언니, 아무래도 이 혼담은 망한 것 같아.’
타티야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올가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