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 사랑과 전쟁 (3)
조지 5세의 차남인 알버트 왕자, A.K.A 버티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버티 아니, 알버트. 네가 에드워드 대신 타티야나와 혼인해야겠다.”
“????”
본래 형 에드워드랑 혼담이 오갔던 2살 차이 나는 육촌 여동생 타티야나가 갑자기 자신의 결혼 상대가 되었다.
버티로선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첫째의 혼약자가 둘째와 결혼하게 되는 것 자체는 흔치 않긴 했지만, 있을 수 없는 일까진 아니었다.
당장 버티의 부모님인 조지 5세와 메리 왕비부터가 그러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인 테크의 메리는 본래 아버지의 형(공교롭게도 버티의 형인 에드워드처럼 방탕하기로 유명했다)이자 버티에게 있어 큰아버지인 클래런스 공작 앨버트 빅터의 약혼자였다.
하지만 앨버트 왕자는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고, 어머니는 대신 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에드워드 형은 멀쩡히 살아 있잖아!’
죽었어도 떨떠름했을 테지만.
“아, 아버지. 그, 그, 그래도 이, 이건 너무 갑작, 갑작스러운 일이 아, 아닌지…….”
“후……. 네가 놀라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대로 혼담이 무산되면 네 형의 평판에 큰 영향이 갈 거다.”
아버지의 말에 버티는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빅토리아 할머니가 살아 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기에 대륙의 군주들보다 왕좌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낮은 영국 왕실이라도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다.
특히 나라가 여러모로 소란스러울 때는 더더욱.
게다가 여러모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자 눈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미모와 다정한 마음씨를 가졌기에 영국 내에서도 차기 왕세자비로 상당히 기대를 모으고 있는 타티야나다.
아무리 형인 에드워드가 자신과 달리 국민에게 인기가 많은 찬란한 아폴로라지만, 그놈의 여자 문제로 혼담이 끝장 났다간 상당한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너무 조급하게 행동한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버티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국왕의 책임은 무거운 법이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후계를 단단히 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물론, 형은 언제나처럼 그딴 건 모르겠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형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버티로선 형이 가끔은 왕세자에 어울리는 책임감을 좀 느꼈으면 했다.
“표면적으론 알버트 너와 타티야나가 더 잘 어울려서 네 형이 양보했단 식으로 발표가 될 거다. 그놈에게 미담을 만들어 주는 건 싫지만, 여론을 납득시키고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물론 네가 타티야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 그건 아, 아, 아니에요.”
조지 5세의 말에 버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타티야나가 좋으냐, 싫으냐를 따지면 버티는 확실히 ‘좋아’ 쪽이었다.
그야 예쁘고, 착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유부녀 취향인 데다가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일이 잦은 형은 그런 타티야나가 재미없다며 짐짝 취급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버티는 아니었다.
그저 형과 혼담이 오가는 사이이고, 형수님이 될지 모르는 사이이기에 이성적인 호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타티야나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냐, 없냐는 또 별개의 문제였지만.
“그래? 잘됐구나. 이걸로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 아, 물론 바로 혼약을 치르라는 것은 아니란다. 총리는 물론 니키에게도 설명을 해야 할 테고(이 대목에서 조지 5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너희도 가까워질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네, 네. 아, 아, 아버지.”
“그래, 알버트. 넌 네 형과 달리 착한 아들이라서 다행이야.”
조지 5세는 반항적인 장남과 달리, 내성적이고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는 큰 단점이 있긴 해도, 왕족의 책임감은 확실히 갖춘 차남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으득─
그리고 구석에 숨어 이를 몰래 지켜보고 있던 에드워드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 * *
“그러니까 에드워드 왕세자님이 아니라 알버트 왕자님과 타티야나 여대공을 혼인시키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데이비드. 이유는 굳이 묻지 말아 주게.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까.”
복잡한 감정이 담긴 국왕의 얼굴에 국정 보고를 하러 온 로이드 조지 총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야 어차피 웨일스 공의 화려한 여성 편력 때문일 것이 뻔했으니까.
“반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의회에서도 별말은 하지 않을 것이고요. 하지만 왕세자님의 혼담이 계속해서 무산되고, 결혼 또한 덩달아 늦어지니 총리로선 걱정이 안 들 수가 없군요.”
“나란들 어쩌겠나. 그저 왕세자가 하루라도 빨리 정신을 차려 주길 바랄 뿐이지.”
이번 일로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좋겠지만, 반응으로 보면 그마저도 꿈같은 일이었다.
“어쨌든 왕세자 이야기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세나. 아일랜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나?”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국왕의 물음에 로이드 조지가 착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영국군은 여전히 아일랜드 공화국군을 자처하는 아일랜드 게릴라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가뜩이나 식민지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로이드 조지 내각은 그 어느 때보다 크나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쯧, 계엄령만 통과되었더라면…….’
로이드 조지가 본토에서 관공서와 주요 인사들을 향해 테러 행각을 벌이는 아일랜드 테러리스트들을 막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 이어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도 계엄령이 발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회의 반대가 심했을뿐더러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해진 국민의 반발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로이드 조지로선 그야말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상황이었다.
만약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농담이 아니라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은 물론, 애스퀴스 내각의 몰락 이후 기세를 회복하고 있는 보수당에 완전히 밀려 자유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전승 총리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정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바라지 않는 결말인 것은 틀림없다.
“이러다가 정말 아일랜드가 연합왕국을 이탈하겠어. 그것도 내 대에 말이야.”
“송구합니다, 폐하. 다만, 아직 반란이 일어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저들도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천천히 말려 죽이는 방식으로 간다면 시간은 걸릴지라도 반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의 치세에 아일랜드가 독립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부디 안심하여 주십시오.”
“제발 좀 부탁하겠네, 데이비드. 자네를 위해서라도 말일세.”
조지 5세의 경고가 담긴 어조에 확신으로 가득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드 조지.
자신은 독일의 도움을 좀 받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영국을 세계대전에서 승리시킨 사람이다.
아일랜드 반란군 따위 골치 아프기만 하지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로이드 조지는 자신을 그리 다독이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식민지 문제인데…… 여기도 여전하군. 인도는 여전히 시끄럽고, 이집트도 여전하고, 아프가니스탄도 반란을 일으키고. 아주 사방이 난리야.”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 문제들 또한 곧 해결될 것입니다. 인도인들의 저항을 주도하던 간디도 체포했고, 이집트에도 조사단을 파견해 조치를 생각 중입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반란군은 서로 단결조차 안 되는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이미 우리 군대가 우세를 보이고 있으니, 다시 평화가 찾아오겠지요.”
로이드 조지는 그리 장담했지만, 이는 결국 그의 희망이 듬뿍 담긴 예측에 불과했다.
원 역사에서 간디를 체포했음에도 인도인들의 저항은 그치지 않았고, 이집트에 파견된 조사단은 ‘이집트인들은 영국의 보호를 반기지 않는다’라는 아주 당연한 보고를 보냈을 뿐이며 세 번째로 일어난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또한 영국이 우세했지만, 결국엔 전쟁을 계속할 여력이 없어 물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로이드 조지는 이를 몰랐다.
“다음은…… 또 해군 문제군. 또 건함 경쟁이야.”
보고서의 다음 페이지를 넘긴 조지 5세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큰 곤란에 빠지게 했던 건함 경쟁이 어떤 의미론 전쟁 전보다 더 과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제국이 건조 중인 16인치 주포를 탑재한 신형 전함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일본과 미국 또한 건함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2, 3위의 해군 전력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한 해군력을 상시 유지한다는 해군 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안보에, 그리고 전후 복구로 인한 빠듯한 재정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해군 예산이 없어서 수병들 봉급도 못 주고 있는 탓에 항명 사태까지 일어날 지경이라 아직 16인치 전함은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인데, 남들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니 그야 위협을 안 느끼려야 안 느낄 수가 없다.
“독일은 그나마 건조 중인 신형 전함 말곤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일본과 미국은 다릅니다.”
일본과 미국의 건함 경쟁은 영국에 대한 위협을 넘어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비약되고 있었다.
“앞으로 2, 3년 안에 미국과 일본의 전함 총량이 균형에 도달할 것이고, 그때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진다는 말이 있었지.”
조지 5세의 무거운 목소리에 로이드 조지 총리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일본이 중국에서 보인 확장 주의적인 행보를 생각하면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말이 아니었으니까.
“이제까지는 독일과의 동맹으로 급한 불을 껐다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야. 이 망할 건함 경쟁을 끝내야 해.”
하지만 누가, 어떻게 작금의 열이 잔뜩 오른 경쟁을 끝낼 수 있을까?
그것은 의외로 얼마 안 가 밝혀졌다.
* * *
“해군 군축 조약 회의를 개최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대통령 각하?”
“그렇습니다, 쿨리지 장관.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파국을 맞이할 뿐 누군가는 지금의 건함 경쟁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휴즈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자 원 역사에서 잠자다가 대통령이 된 인물로 유명한 캘빈 쿨리지(John Calvin Coolidge Jr)는 신임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일본과 미국이 엔과 달러를 조선소에 들이부으며 벌이고 있는 건함 경쟁은 지나치게 과열되었고, 미국의 안보에 크나큰 위협을 가져오고 있었다.
특히 독일 제국은 이미 작금의 전함들을 모두 압도할 수 있는 16인치 전함을 완성 직전이고, 이에 자극받은 일본 또한 나가토의 건조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상황.
그러나 미국은 윌슨 행정부의 혼란과 공백으로 인해 이들보다 한발 늦어지고 있었다.
“독일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당장 경쟁할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이대로 일본이 앞서 나간다면 무슨 짓을 할지 뻔해요.”
분명 제 버릇 못 버리고 확장 행보를 벌이려 할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엄연한 미국의 이권 지대인 태평양에서 말이다.
당장 지난 중국 사태의 중심에 있던 것이 다름 아닌 일본 해군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그러니 우리는 영, 독, 일과 해군 군축 회의를 열어 과열된 건함 경쟁을 멈추고, 일본의 확장 행보를 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일동맹 또한 이번 기회에 해체해 미국에 대한 위협 하나를 완전히 제거할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각하. 건함에 들어가는 막대한 소요를 줄일 수 있다면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 그리고 윌슨으로 인해 실추된 국가 위신을 회복할 기회도 되겠죠.”
미국에서 재무장관을 가장 오랫동안 역임한 인물인 앤드루 멜런(Andrew William Mellon)과 상무장관인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 또한 연달아 찬성하자 휴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만, 해군장관인 에드윈 덴비(Edwin Denby)는 벌써부터 군축을 반기려야 반길 수가 없는 제독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듯 영 표정이 좋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 반대의견을 내놓진 않았고,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좋습니다. 국무장관은 바로 영국, 독일, 일본에 해군 군축 조약에 대한 참가 의사를 타진하세요.”
“예, 각하. 일정은 언제쯤으로 잡으면 좋을까요?”
“적어도 일본이 나가토를 완성하기 전에 개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올해 10월이나 11월이 괜찮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군요.”
“부탁합니다.”
휴즈는 의욕을 보이는 쿨리지를 믿겠다는 듯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얼마 전 독일 제국이 취임 축하 인사와 함께 보낸 밀서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