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 워싱턴 회의 (4)
“첫 번째는 영일동맹의 해체입니다.”
한스가 손가락을 펼치며 말하자 가토 도모사부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유능한 사람답게 평정심을 되찾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입니까?”
“예, 미국은 영일동맹이 자국의 안보에 해를 끼칠 크나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일동맹의 해체를 조건으로 내밀면 일본 측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다만 그 대신 일본은 영국이란 동맹을 완전히 잃게 된다.
외교적으론 크나큰 손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영일동맹이 계속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의 이야기지.’
다들 알다시피 상수시 조약에서 영국이 미국과 함께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전부 집어삼키는 것을 저지한 이래 영일동맹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이 망한 이후부터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영일동맹은 영국이 일본을 챔피언 삼아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이 망하고, 러시아 해군도 덩달아 망했으며 그 후신인 소비에트는 해군 양성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제 앞가림도 버거운 상태였다.
‘게다가 극동엔 러시아 공화국이라는 영국과 독일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사생아가 들어섰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과 일본의 동맹은 이미 그 목적을 완전히 상실했다.
물론 가토 도모사부로 개인적으론 영국과의 동맹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편이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낫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눈앞의 젊은 공작이 말한 대로 영일동맹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영국 또한 차후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영일동맹을 정리하려고 할 것이다.
이미 영일동맹의 해체는 시대의 흐름이었고, 그렇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찾아올 영일동맹 해체를 이용하라는 한스의 조언은 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유지를 못 할 바엔 이를 이용해 해군 군축 회의를 성사시키는 편이 일본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더 나을 테니까.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사실상 영일동맹 해체에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대답에 한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21개조 요구의 취소입니다.”
“푸흡?!”
다만 가토의 반응은 그저 미간만 꿈틀거린 아까와 달리 훨씬 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1개조 요구 취소.
이건 이미 해체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영일동맹과는 그 의미도, 가져올 여파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무리 가토가 21개조 요구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졌다 해도 말이다.
“놀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또한 21개조 요구에 큰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를 개정하지 않는다면 저들로서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엔 독일 제국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이미 독일이 일본 육군을 통해 중국 개입에 면박을 놓았다는 걸 파악하고 있던 가토가 살짝 비꼬듯이 말했다.
“우리 독일은 그저 더 이상의 분란을 막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론 21개조 요구는 분란을 일으킬 만한 요소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스는 표정 한 번 바뀌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뻔뻔하게 말을 포장해서 늘어놓을 뿐이었다.
여기서 초조한 쪽은 어디까지나 한스가 아닌 가토 쪽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가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는 한스와 달리 점점 격렬해져 오는 복통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끊임없이 회전시켰다.
‘21개조 요구의 취소. 이것이 본국에 전해지면 한동안 꽤나 시끄러워질 거야.’
그나마 하라 총리는 이를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는 가토 자신과 마찬가지로 21개조 요구에 반대한 사람이었던 것은 물론 군부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는 지나 진출 자체에 부정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육군 또한 별말 안 하겠지.’
지난 지나 개입은 어디까지나 해군이 중심이었고 해군의 ‘해’자만 붙어도 일단 반대하고 보는 육군 놈들의 못 돼먹은 성향을 생각하면 꼴좋다며 웃음을 터트릴 게 뻔했으니.
결국, 문제는 이번에도 가토의 친정인 해군이었다.
솔직히 이쯤 되면 영미보다 전우들이 발목을 더 잡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토로선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만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대로 고집을 피워 미국, 영국, 독일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단 낫겠지.’
그것만큼은 절대, 결단코,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야 이 세계의 정상에 서 있는 세 국가 중 하나라도 적으로 돌리는 순간 일본은 그날로 망할 게 뻔했다.
윌슨의 추태에 가려져서 그렇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력과 공업력을 지닌 국가다.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지만 기본 체급 자체가 미국에 뒤질 수밖에 없는 일본으로선 절대 미국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다.
영국은 늙은 사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자는 사자다.
그들의 해군력, 그리고 식민지에서 나오는 저력은 아직 일본이 정면으로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독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지난 세계대전의 주역이자 승리자로 우뚝 선 유럽의 지배자다.
독일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세계 최강의 독일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물론 독일이 거느리고 있는 유럽 국가들 전부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중화민국과 아국이 맺은 조약이 여러모로 부적절한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또한 일본은 필요하다면 이를 개정하기 위한 논의를 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토의 선택은 해군의 자존심보단 국익이었다.
알량한 자존심과 탐욕을 선택해 파멸만이 기다리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보단 평화가 일본에 더 도움이 될 테니까.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개념인 다운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후배들이 폭주 끝에 상식이 아닌 비상식을 택하겠지만 말이다.
“훌륭하신 선택이십니다, 가토 대신. 역시 위기의 세계를 구하는 촛불이라는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군요.”
“기자들의 호들갑일 뿐입니다. 다만 이대로 우리 일본 측이 양보만 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나가토가 걸렸다고 한들 말입니다.”
영일동맹까진 그렇다 치자.
하지만 21개조 요구 취소까지 들어가면 아무리 나가토가 살린다고 하더라도 해군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려웠다.
애석하게도 늙어 가는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머리가 녹슬어 가고 있는 도고 제독을 포함해 현 일본 해군에는 국익보다 자존심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으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나가토와 더불어 무츠의 생존을 보장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토가 생각하기에 해군을 납득시켜 워싱턴 회의를 성사시킬 수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나가토와 무츠.
일본 해군 모두의 숙원인 이 2척의 나가토급 전함들을 생존시킬 수만 있다면 해군은 21개조 요구보다 더한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눈앞의 비스마르크의 후계자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가토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한스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뭐, 좋습니다.”
“……?”
정작 한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토를 너무나도 맥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만 그 전에 세 번째 조건을 들어 보시죠.”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는 느낌에 가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한스가 말했다.
이에 가토는 귀를 기울이며 한스의 말을 경청했다.
“……허어.”
그리고 몇 분 후, 한스의 말이 끝난 순간, 가토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 * *
“나가토와 무츠를 생존시키는 대신 우리 미국과 영국, 독일이 16인치 전함을 2척씩 추가로 건조하고 보유하는 것에 동의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가토 도모사부로의 말에 쿨리지가 놀랍다는 표정을 나를 바라봤다.
그야 내가 말한 대로 정확히 이야기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
다만 이야기를 꺼낸 장본인인 가토의 얼굴은 찜찜한 얼굴이었다.
나가토와 무츠는 살렸지만, 그 대가로 영미도 16인치 전함 2척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일본 해군 상층부는 어차피 나가토는 곧 완성되고 무츠도 열심히 건조 중이라 최소 몇 년간은 일본이 우위에 설 수 있을 거라며 좋아하고 있지만, 가토는 그렇게 순진해 빠진 인간이 아니었다.
그야 어차피 몇 년 안에 영미랑 전쟁을 치를 것이 아닌 이상, 기껏해야 4, 5년 정도밖에 안 갈 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실상 일본 해군에게 득이 될 게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가토는 보다시피 첫 번째, 두 번째에 이어 내가 내민 세 번째 조건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영일동맹이든 21개조 요구 취소든 결국 해군 군축에 뒤따라오는 부수적인 것.
일본 해군 상층부를 설득해 해군 군축 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가토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즉, 알고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이 찜찜함으로 가득한 이유였다.
‘물론 일본 해군이 그의 발목을 잡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다른 방법을 마련했어야겠지만 말이야.’
그의 뿌리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해군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짝!
“좋습니다. 일본이 양보한다면 우리도 일본에 양보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미국은 일본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핼쑥한 볼이 한층 더 움푹 팬 것만 같은 가토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이, 쿨리지가 함박웃음과 함께 손뼉을 마주쳤다.
미국으로선 내가 약속한 대로 영일동맹 해체와 21개조 요구 취소라는 목적을 달성한 데 이어 일본에 대항에 건조 중이었던 콜로라도급을 폐기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야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밸푸어 전권대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영국도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밸푸어의 반응 또한 쿨리지의 반응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독일은 물론 미국과 일본도 16인치 전함을 건조하는데 막대한 유지비 때문에 돈이 없어서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던 영국이다.
군축으로 숨통이 트인 것은 물론 16인치 전함을 2척 건조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들로선 이득만이 가득한 이야기였다.
‘물론 결과적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우리 독일이지만 말이야.’
우리 독일은 이미 건조한 SMS 바이에른에 이어 2척을 추가 건조해 총 3척의 전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로 우리 장인어른이 도끼 들고 내 머리를 찍을 일은 없을 것이다.
“독일 측도 동의했으니 우리는 기나긴 회의 끝에 드디어 합의에 다다른 것 같군요.”
쿨리지의 말에 나와 밸푸어, 가토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 시간부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4개국은 10년 동안 주력함, 즉 전함이나 항공모함의 건조를 중지할 것입니다.”
또한 보유할 수 있는 주력함의 수나 배수량에 제한이 걸리면서 4개국은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고 전함 상당수를 퇴역시키고 스크랩하기로 했다.
그 어느 해전에서 침몰당한 것보다 훨씬 많은 주력함이 자신의 역할을 끝내고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전설 오브 레전드가 된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또한 포함되어 있었지만,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무장을 제거하고 기념함으로 남을 예정이었다.
내가 약속을 지킨 대가로 휴즈가 힘써 준 결과였다.
밸푸어 쪽도 결국 이번 회의가 결과적으론 영국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끝나서 어찌어찌 설득했고.
어떤 의미론 영일동맹 해체, 21개조 요구 취소보다 더 어려웠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 카이저께서 기념함으로라도 안 남기면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는데.
하여튼 이 밖에도 폐기하기로 한 전함들을 타 국가에 팔아치우거나 태평양 지역의 요새(다만 미국과 일본의 이야기라 우린 상관없었다)를 더 짓지 말고 현황을 유지하기로 하는 것, 타국을 위해 건조 중이거나 인도 예정인 함선을 전쟁에 쓰면 안 된다는 조항도 있었다.
마지막 문구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면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바로 오스만의 전함을 날름 먹은 끝에 기어코 오스만을 동맹국 편으로 참전시킨 윈스턴 갈리폴리 처칠 경 때문에 생긴 조항이니까.
여담으로 처칠이 오스만에게 뺏은 HMS 애진코트와 HMS 에린도 이번 회의에서 스크랩 처리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오스만은 폐기하지 말고 자신들에게 돌려주면 안 되겠냐고 의견을 타진했지만, 동맹국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케말에겐 미안하지만, 원망하려면 미스터 갈리폴리를 원망해라.
“그럼 이것으로 회의를 마무리 지읍시다.”
쿨리지가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조약문에 써넣으며 말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라는 듯 미소 짓는 밸푸어도, 여전히 찜찜한 얼굴인 가토도 차례대로 펜을 들고 서명했다.
“우리 시대의 평화가 드디어 도래했군요.”
“하하하! 우리 시대의 평화라! 그거 좋은 말씀이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체임벌린이 남긴 희대의 말과 함께 조약문에 내 이름을 써넣었다.
1918년 2월 6일, 회의가 시작된 지 석 달 만에 워싱턴 해군 군축 회의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