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 극단의 시대 (1)
“쑤카! 쑤카! 쑤카!”
1920년 여름의 어느 날.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에서 술 냄새가 잔뜩 풍겨 오는 러시아어 욕설이 고함과 함께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레프 트로츠키.
정치적 입지를 되찾기 위해 중국 혁명을 직접 지도하고 이끌겠다며 호기롭게 러시아를 떠나온 레프 트로츠키였다.
“저… 트로츠키 동지, 그쯤 마시는 것이…….”
“어째서 일이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왜 나는 행복할 수 없는 거지?!”
측근들의 식은땀 섞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가 술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들이 부었다.
그만큼 그는 지금 자신의 신세를 한탄, 또 한탄하고 있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비록 본국에선 지원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중국을 포함한 러시아 밖에서 트로츠키의 명성은 여전히 드높았고,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리더인 천두슈에 이르러선 자신의 열성적인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트로츠키와 천두슈를 중심으로 탄생한 중국 공산당은 첫걸음을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력 하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태어나는 혼돈의 중화민국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일궈 낼 수 있었다.
트로츠키는 정치가로선 잘 쳐줘 봐야 이류에 불과했지만, 혁명가로선 확실히 일류였으니까.
게다가 천두슈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쑨원의 국민당과의 협력 또한 수월하게 진행했다.
쑨원은 중국 공산당과 힘을 합쳐 소비에트로부터 지원을 받아 중화민국을 다시 통일하고자 했고, 트로츠키는 국민당과의 협력을 통해 공산당의 세력을 넓히고자 했다.
쑨원은 트로츠키와는 공산주의와 삼민주의라는 사상의 방향성은 다를지라도 혁명가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공산당이 손을 잡을 만한 세력이 국민당 말고는 딱히 없기도 했다.
소위 중국 군벌이란 작자들은 차라리 코르닐로프가 더 나아 보일 정도로 막장의 끝을 달리는 이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며 국공합작을 결성한 트로츠키와 쑨원은 최우선 목표로 중화민국의 수도이자 심장인 난징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 움직였다.
일본군이 철수한 것도 모자라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21개조 요구까지 폐지되는 바람에 완전히 끈이 떨어진 바람에 리위안훙의 괴뢰정부는 버티다 못해 스스로 무너져 내렸지만, 수도인 난징은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는 마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자고로 도시, 그리고 도시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경험으로 그리 믿어 의심치 않던 트로츠키가 보기에 난징은 현재 중화민국에서 그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었다.
다른 곳은 쑨원과 국민당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고, 대륙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도시인 상하이 같은 경우엔 열강의 조계지가 있는 곳이기에 혁명의 거점으론 부적절했으니.
그리하여 작년, 국민당과 공산당은 모든 전력과 동맹을 끌어모아 방해하는 군벌들을 돌파하며 난징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트로츠키가 지금 난징에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성공적으로 난징을 되찾는 것 자체는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쑨원과 국민당은 난징을 되찾자마자 중화민국 정부가 제자리(다만 직접적인 영향력은 난징과 그 일대에 그쳤고, 군벌들 또한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를 찾았다며 선포했다.
이와 동시에 중화민국, 정확히 말하면 국민당에 대한 영·독·미의 제재와 압박이 시작되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뻔했다.
-한스 폰 초이이이이이!!
한스 폰 초이, 항상 자신의 앞을 막지 못해서 안달인 빌어 처먹을 방해꾼이었다.
덕분에 국공합작은 난징을 되찾자마자 크나큰 곤욕에 빠졌다.
가뜩이나 월계군벌의 천중밍 등 한때 난징을 되찾기 위해 협력했던 군벌들이 국민당을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에 이어 북쪽의 청 또한 몽골의 칸을 자칭하던 세묘노프와 바이칼 카자크를 무너트리고, 슬슬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독·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국민당은 외교총장 탕사오이와 후한민(胡漢民, 호한민) 등을 보내 제재를 풀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트로츠키와 공산주의자들과의 관계를 끊으시오.
돌아온 대답은 국민당보고 트로츠키, 그리고 공산당과의 관계를 끊고 내쫓기 전까진 어림없다는 소리뿐이었다.
한스 폰 초이 그놈다운 얄팍한 분열책이었지만, 트로츠키에겐 불행히도 그 얄팍한 분열책이 통하기 시작했다.
국민당, 특히 후한민을 중심으로 한 우파 쪽에서 이러다 우리만 독박 쓰겠다며 공산당을 난징에서 내쫓자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공산당 측에선 인제 와서 토사구팽이냐고 반발했다.
트로츠키와 중국의 빨간맛 친구들이 보기에 저들의 주장은 국민당 내에서 공산당의 영향력이 커지니까 서방의 협박을 빌미로 자신들을 쳐 내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특히 장제스 그 망할 놈…….”
트로츠키는 생각만 해도 열불이 난다는 듯 이를 갈았다.
쑨원의 측근으로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민당 내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늘려 가고 있는 장제스(蔣介石, 장개석)는 트로츠키를 향해 대놓고 소련 내에서도 버림받은 자(틀린 말은 아니었다)라며 트로츠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제스는 공산당과 손을 잡아 봤자 빈털터리인 소련의 지원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고, 얻을 것은 영·독·미의 분노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국민당 내부에서도 이에 공감하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국공합작 또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트로츠키로선 소비에트에서 동지들에게 배신당한 트라우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식과 폭음을 반복하는 이유였다.
다만, 국민당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은 트로츠키의 탓도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트로츠키는 중국에서도 그 오만한 성정을 버리지 못했고, 꽌시(关系)로 대표되는 중국 특유의 인맥 문화에 적응하긴커녕 무시로 일관했다.
중국 공산당이야 사상도 사상이었고, 지도자부터가 트로츠키의 추종자였기에 겉으론 별문제 없었지만, 다른 중국인들이 보기엔 트로츠키는 여포의 의리를 가진 양수(계륵으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나 다름없는 작자였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한 채 돌아갈 순 없어!”
이제는 사람 좋은 쑨원마저 자신을 향해 은근히 난징을 떠나라 압박을 넣고 있었지만, 트로츠키는 이대로 소련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 봤자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또다시 실패했냐는 배신자들의 모욕적인 언사와 비난뿐.
최악의 경우엔 중국에서의 실패를 빌미로 당적이 박탈되고, 소련에서 아예 추방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 그리고 스탈린 그 배신자 놈에게 복수할 때까진…….”
절대 죽을 수 없다.
트로츠키는 이제는 보드카보다 익숙해진 고량주를 들이키며 다시 한번 그리 다짐했다.
“쯧, 언제까지 저 술주정뱅이를 돌봐 줘야 하는 거야?”
“참아, 마오(毛). 지금 당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나면 국민당 놈들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꼴이야.”
“나도 알고 있어, 둥비우(董必武, 동필무). 하지만 이대로 저 마우재 샌님을 끼고 있는 것은 도움은커녕 짐만 될 거야.”
하지만 오호통재라, 트로츠키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배신의 칼날은 다시 트로츠키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 * *
부우우웅~
1920년도 어느새 여름이 지나며 하반기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오랜만에 프로펠러와 엔진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한 비행장을 방문했다.
육군 소속이었던 독일 제국 항공대가 마침내 루프트바페(Luftwaffe), 즉 공군으로 독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Bf109나 슈투카까지 있으면 완벽할 텐데 말이지.’
물론, 복엽기가 3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고 루프트바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 기체는 1930년대 중반에야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시간과 예산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어림없는 소리였지만.
하여튼, 원래는 더 빨리 항공대를 독립시켜 공군을 만들고 싶었는데, 육군에서 항공대 독립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
아무래도 제국 항공대가 대전쟁 당시 쏠쏠한 전과를 올린 탓인지 항공대를 이대로 놓아주기 싫어했다.
거기다 전쟁 중 SMS 오토 릴리엔탈의 활약과 항공모함박이 하인리히 왕자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제국 항공대에서 별개로 독립한 해군 항공대는 규모상 당연한 소리이긴 한데, 여전히 해군 소속으로 남아 있어서 더 그런 것도 있고.
덕분에 내가 직접 나서서 군부를 설득하느라 꽤 진땀뺐다.
본래 나서야 할 전쟁장관 팔켄하인은 아무래도 설득보단 명령을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이라 도리어 불난 집에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어서…….
“전원, 외무장관께 경례!”
척!
내가 이걸 가져가면 우리 뭘 먹고 사냐는 얼굴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버티던 육군 장성들과의 회의를 회상하는 사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루프트바페 장병들이 나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친숙한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만프레트.”
“한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제국 항공대의 전설에서 새롭게 창설된 루프트바페의 중역이 된 나의 친구였다.
“얼굴 좀 비쳐라. 뭔 사람 얼굴 하나 보기 이렇게 어렵냐.”
“미안하지만, 여러모로 바쁜 몸인지라.”
기존의 외교 업무와 RND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엔 미국의 휴즈 대통령이 갑자기 재선에 안 나온다고 발표해서 그쪽도 신경 써야 했다.
듣자하니 딸인 헬렌이 결핵이 걸린 바람에 재선을 포기했다고 하더라.
나 또한 딸 가진 아버지로서 백악관보다 가족을 선택한 그의 결정이 충분히 이해되는 바였다.
시간이 나면 나중에 편지로라도 위로를 전해야지.
“게다가 오스만 쪽에서도 아라비아반도에서 아랍인들이 말썽을 부린다며 무기 좀 더 팔아 달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어. 정말이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야.”
“그래, 낮에도 밤에도 말이지. 나랑 동갑인데, 벌써 애가 다섯이라니.”
“닥쳐, 이 자슥아.”
셋째 크리스티안이 태어난 이후, 루이제가 언제나 그렇듯 밤의 전쟁에서 승리해 작년에 네 번째 출산했는데, 무려 쌍둥이를 낳았다.
그야말로 일타쌍피였다.
이걸 순수하게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더블 육아에 한숨을 내쉬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다.
최소 목표였던 다섯 명도 전부 채웠고, 루이제도 적어도 당분간은 자제하겠지.
하여튼, 넷째와 다섯째는 여아 쌍둥이(덕분에 우리집 손녀 바보 카이저가 난리가 났다)로 각각 빅토리아 아우구스테 아말리와 마리 엘레오노레 테레지아란 이름을 붙였다.
아이들 이름 지을 때마다 매번 하는 고민이지만, 왕족과 귀족들은 이름이 길다 보니 아이들 이름 짓는 것도 참 고생이다.
‘이젠 레퍼토리도 거의 떨어졌어…….’
여기서 아이가 더 생겼다간 내 건강도 포함해서 감당을 못할 것 같다.
“어쨌든, 잘 지내니 보기 좋다.”
“만프레트 너도. 그럼 새롭게 단장한 공군 구경이나 천천히 해 볼까.”
“하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공작님. 자, 이쪽으로 오시…….”
“장관님~! 장관니이이임!!”
“???”
멀리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마이 비서의 목소리에 말이 끊기자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리히트호펜.
물론, 나에겐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젠 비행장 한복판에서도 출몰하는구나.
“후우……. 또 무슨 일입니까?”
“쿠, 쿠데타…… 이탈리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한숨 쉬며 묻자 비서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이런 씨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했기에 나는 욕으로서 대답을 대신했다.
* * *
“형제들이여!”
시간을 살짝 돌려 1920년 10월 22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검은색 셔츠를 입은 한 사내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일색으로 물든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정치깡패 집단에 불과했던 전투 파쇼의 지도자에서 최근엔 원내에도 진출한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의 지도자로 진화하며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파시즘의 대표 주자가 된 베니토 무솔리니였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숫자는 고작 1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주변을 보라. 우리의 숫자는 이제 70만을 넘어 80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탈리아의 그 누구도 막지 못할 정도로 강성해진 것이다!”
“와아아아아~!!”
“두체! 두체!”
무솔리니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수십만의 목소리.
이에 더욱 자신감을 얻은 무솔리니는 좌중을 진정시키고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 갔다.
“과거 사보이아 왕가는 우리 강령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의 강령은 단순하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통치하고 싶을 뿐이다!”
“와아아아아!!”
모두가 마음에 담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이 드디어 무솔리니의 입에서 나오자 다시 한번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다만, 국가 파시스트당 간부 몇은 이를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지만, 흥분한 당원과 그보다 더 흥분한 무솔리니는 그들은 안중에도 조차 없었다.
“이탈리아를 손에 넣자. 우리의 선조들이 로마의 이름과 명성을 전 세계에 떨쳤던 것처럼 이탈리아의 이름을, 명성을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손으로 떨치자!”
“이탈리아 만세!”
“이탈리아를 통치하자!”
추종자들의 광신적인 목소리, 열기가 점점 고조되며 연설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것이 정점에 달했을 때, 무솔리니는 주먹을 하늘 위로 치켜올렸다.
“로마로 가자! 이탈리아의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
파시즘이란 이름의 광기가 마침내 역사의 정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