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 극단의 시대 (2)
나폴리 전당대회에서 무솔리니의 야심으로 가득한 선언으로부터 닷새가 지난 1920년 10월 27일.
밀라노의 중심인 두오모 광장에 검은색 셔츠를 갖춰 입은 2만여 명의 남자들이 무솔리니의 부름을 받고 집결했다.
이들의 정체는 국가안보 의용민병대(Milizia Volontaria per la Sicurezza Nazionale, MVSN).
흔히 ‘검은 셔츠단(Camicie Nere)’이라 부르는 국가 파시스트당 산하 정치깡패들이었다.
오늘 이들이 밀라노에 모인 목적은 로마로 가서 이탈리아를 차지하는 것.
단지 그것 하나뿐.
그들의 위대한 두체인 무솔리니가 말한 것처럼 이탈리아의 혼란을 잠재우고, 옛 로마 제국의 영광을 부활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엄마, 저 사람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쉿! 알베르토,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지 말렴.”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쿠데타였다.
빨갱이 잡는 무솔리니가 드디어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제 뭐가 좀 바뀌려나?”
“한번 해 보라고, 무솔리니!”
다만, 로마로 진군하기 위해 모인 검은 셔츠단을 바라보는 이탈리아인들의 불안 어린 시선엔 일말의 기대감도 섞여 있었다.
자신을 두체라 자칭하는 무솔리니란 남자가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를 바꿀지 모른다는 기대였다.
“끌끌, 그래. 남자로 태어났으면 가능성이 작아도 뛰어들 때가 있어야지!”
“예, 이렇게 된 이상 어디 갈 데까지 가 봅시다!”
이러한 시민의 혹시 모를 기대감은 검은 셔츠단에 용기를 주었고,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도 참전한 노장인 에밀리오 데 보노(Emilio De Bono) 소장과 훗날 이탈리아 공군 원수가 되었다가 팀킬을 당하는 이탈로 발보(Italo Balbo), 체사레 마리아 데 베키(Cesare Maria De Vecchi) 같은 국가 파시스트 간부들도 투지를 불태웠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국가 파시스트당은 이 순간 이탈리아 정부를 정복하려는 쿠데타군이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죽느냐 사느냐 단 두 가지뿐이다.
“씨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나 로마로 가면 이탈리아를 얻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부하들과 달리 정작 무솔리니는 두오모 광장에 없었다.
그는 전등 빛을 반사하고 있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호텔 방을 계속 어지럽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로마로 가서 이탈리아를 차지하자!’라고 말은 했는데, 막상 진짜 이걸 하려고 하니 겁에 질린 것이다.
그야 지금 국가 파시스트당이 벌이는 짓은 제대로 된 계획이랄 것도 없는 도박이었다.
말만 쿠데타지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어서 검은 셔츠단 태반이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었던 데다가 현 이탈리아 총리인 프란시스코 사베리오 니티는 좌파라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하면 어디로 도망치지? 가까운 스위스로 가야 하나?”
진지하게 목숨을 위기를 느낀 무솔리니는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남들 앞에선 이탈리아를 구할 초인처럼 행동하는 무솔리니지만, 그 실상은 마시멜로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로 물러터진 인간이었다.
“아냐, 아직 기회는 있어. 이봐, 밖에 누구 있나?!”
“예, 두체. 부르셨습니까?”
“당장 보노 장군이랑 발보한테 전해. 일, 일단 로마로 가는 건 취소하고 기다려 보라고!”
“네? 알,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계획 취소에 비서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일단 한시름 놓았다.
물론, 당원들은 불만을 터트리겠지만, 대충 상황이 바뀌었다며 나중에 더 좋은, 더욱 치밀한 방법으로 이탈리아를 차지하자고 말하면 다들 수긍할 것이다.
“후, 극장에나 가야지.”
가서 연극을 보며 놀란 가슴을 좀 달래야겠다.
무솔리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호텔을 나섰다.
“가자, 로마로!”
“비바 이탈리아! 비바 무솔리니! 에비바!”
그러나 무솔리니는 몰랐다.
그의 전언이 닿기도 전에 이미 검은 셔츠단은 이미 밀라노를 떠났다는 것은.
그렇게 전 세계에 파시스트란 이름을 각인시킬 무솔리니 없는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의 시작은 일견 황당하게 시작되었다.
* * *
“뭐? 쿠, 쿠데라라고?”
“예, 총리님! 조금 전 밀라노에서 베네토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당과 검은 셔츠단이 로마로 진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 무솔리니 그 대머리 새끼가 기어코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보군!”
대전쟁 전쟁을 끝내기 위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몰아낸 인물 중 한 명이자 현 이탈리아 총리인 프란시스코 사베리오 니티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혀를 쳤다.
무솔리니가 최근 몇 년 사이 세력을 급격하게 불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정부 전복을 시도할 줄이야.
공화주의자이자 중도좌파 정당인 급진당 출신이기에 평소에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솔리니를 경멸했던 니티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무솔리니의 행동에 그야말로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총리님, 그 쓰레기들을 로마에 들여서 안 됩니다. 서둘러 군을 파견해 쿠데타를 진압해야 합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난 지금 바로 국왕 폐하께 계엄령을 내려 달라 청하러 가겠네. 자네는 전쟁장관과 내무장관에게 가서 로마 수비를 강화하고, 경찰을 총동원해 로마로 통하는 철도, 도로를 모두 봉쇄하라고 해!”
“옛, 총리님!”
힘차게 대답하며 밖으로 나가는 비서의 모습에 니티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쿠데타라 해서 쫄 것 없다.
국가 파시스트당의 무력 집단인 검은 셔츠단은 군인이 아닌 깡패 무리, 경찰 병력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병신들이다.
그러니 경찰들이 길을 막으며 시간을 끄는 사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규군을 동원해 무솔리니의 가당찮은 짓을 짓밟으면 그만이다.
‘이참에 파시스트란 사회의 오물들을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제거해 주마!’
그리고 무솔리니 그 대머리 새끼는 목을 매달아 버릴 것이다.
그 광대 놈의 쿠데타에 동참한 검은 셔츠단 그 깡패 놈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니티는 그리 다짐하며 국왕이 기다리고 있을 퀴리날레 궁전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 *
“불가하오.”
“예? 폐, 폐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이탈리아 국왕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니티의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여기서 군대를 동원하면 바로 내전이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지.”
“하지만 폐하, 무솔리니와 그 끄나풀들을 이대로 방관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놈들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란군이오, 역적들입니다!”
“알고 있소. 그렇기에 우선 무솔리니와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이오. 잘만 한다면 피가 흐르지 않고 이번 일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 그건…….”
국왕의 말에 니티가 말을 제대로 안 나온다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그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의 말에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와 달리 이상주의적인 말을 늘어놓으며 쿠데타를 일으킨 무솔리니와 대화해 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국왕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솔리니나 검은 셔츠단이나 말만 거창하지, 결국엔 시정잡배에 불과한 놈들이다.
실제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은 로마에 닿기도 전에 수백 명밖에 안 되는 경찰에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렇기에 군대만 동원하면 순식간에 끝날 일을 왜 굳이 쓸데없이 그런 놈들과 협상한단 말인가.
무슨 꿍꿍이가 따로 있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이번 일을 잘만 이용하면 나에게 큰 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니티의 짐작대로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에겐 정말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현재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자신의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탈리아의 상황에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기껏 외국으로 망명한 아둔한 난쟁이 사촌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되었거늘 이놈의 정치인들이란 것들은 자기 말을 듣기는커녕 서로 멱살 잡고 싸우길 바빴다.
덕분에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왕좌에 앉은 보람조차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 의욕을 잃어 가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 베네토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이 로마 진군을 시작했단 소식이 국왕의 귀에 들려왔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에겐 기회였다.
무솔리니는 겉으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실제론 변변찮고 만만한 작자다.
그 말인즉슨 자신이 제 입맛대로 움직이기 쉬운 인물이란 것이다.
‘게다가 반공도 그렇고 무솔리니가 떠드는 말이 꽤 괜찮아 보이기도 한단 말이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군인 출신답게 정치 성향이 상당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실현 가능성은 둘째치더라도 이탈리아를 로마 제국처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무솔리니의 사상은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무튼 계엄령도, 군대 동원도 없소. 그러니 총리는 무솔리니를 여기로 데려오시오. 내 그와 긴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으니.”
“……제가 사직할 수도 있음에도 말입니까?”
그딴 짓 하면 나 그만둘 거란 니티의 최후 포고에 국왕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애초에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공화주의자인 니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니까. 이미 국왕처럼 무솔리니를 만만히 보고, 그를 자신들 마음대로 써먹으려는 보수파들과는 이야기를 마쳤다.
더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국왕의 부름이 밀라노에 있던 무솔리니의 귀에 닿았다.
“와, 이게 되네.”
로마 진군이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작된 것도 모자라 군대도 아니고 경찰에 가로막혔단 사실에 헐레벌떡 짐을 싸고 있던 무솔리니의 반응은 그가 무심코 내뱉은 말로 전부 설명이 되었다.
* * *
“와아아아~!!”
“무솔리니! 무솔리니!”
“여기 좀 봐 주세요!”
1920년 10월 28일.
정장조차 갖춰 입지 못한 채 검은 셔츠 차림으로 서둘러 밀라노에서 달려온 무솔리니와 국가 파시스트당 주요 간부진이 로마에 입성했다.
로마 진군의 성공이었다.
검은 셔츠단은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살다 살다 이렇게 어이없게 쿠데타가 성공하는 것은 처음 보는군.”
총리에서 은퇴한 뒤 로마에서 유유자적 여생을 보내고 있던 베른하르트 폰 뷜로는 새가슴이란 것을 숨기고 싶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을 활짝 펴고 대로를 걷는 무솔리니의 모습에 혀를 찼다.
듣자 하니 뒷짐 지고 하품하며 막을 수 있었을 정도로 엉망인 쿠데타였다고 했다.
아마 융커들의 쿠데타 시도가 더 계획성 있고, 현실성 있었을 거다.
이탈리아 국왕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이 바보 같은 쿠데타를 진압하긴커녕 무솔리니를 로마로 불러들이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말로는 내전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그건 상대가 그만한 급일 때 이야기이지 않은가.
“겁에 질린 건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건지.”
어쩌면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와 무솔리니가 짜고 친 연극이 아닐까도 싶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웃기지도 않는 로마 진군이 성공할 리가 없다.
“그나저나 대사, 난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적어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진 참아 주십시오, 각하. 각하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간 외무장관께서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한스 녀석도 참. 젊은 사람이 걱정은 노인네보다 더 많다니까.”
뷜로는 툴툴거리며 다시 시선을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 무솔리니를 향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그의 도박은 성공했다.
그리고 로마에 부는 바람은 어떤 식으로든 유럽에 영향을 일으킬 것이다.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총리로서 그의 감과 경력이 말하고 있었다.
무솔리니가 내세우는 파시즘이 국가 권력에 이토록 가깝게 접근한 적은 없었으니.
“뭐, 뒷일은 젊은이들에게 맡겨야지.”
“각하?”
“건배하세나, 대사.”
앞으로 고생길이 훤할 우리 외무장관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