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 극단의 시대 (3)
“속보다, 속보. 그것도 특급 속보야!”
“모두 빨리 움직여!”
한편, 모두가 실패할 것도 모자라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이 성공한 것도 모자라 소식이 독일에 닿자마자 DRR에선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은 최근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 중 특대 사건이다.
유럽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이자 가장 빠른 속도로 뉴스를 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DRR이 특급 중에서도 특급에 속하는 속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사장님, 외무청에서 보도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다만…….”
“그래그래, 이번 사건에 대해 비난하되 이탈리아를 너무 자극하지 말고, 독일 제국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보이게 하라 그거지. 내가 장관님을 모신 지 몇 년이나 되었는데, 그걸 모를까.”
부하의 말에 DRR의 사장, 한스 브라도프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가 한스 밑에서 일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런 기초적인 것은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보다도 아직 뉴스 대본 안 나왔어? 당장 30분 뒤에 방송 있는 거 몰라?”
“죄, 죄송합니다. 작가가 점심을 먹다 식중독에 걸리는 바람에 급히 사람들을 모아서 새로 쓰는 중이라…….”
“아니, 그 사람은 왜 하필 이럴 때……!”
“여기 대본 나왔습니다!”
분노한 브라도프가 한 마디 하려고 했을 때 마침 타이밍 좋게 대본이 도착했다.
다만, 사람들을 모아 급히 새로 썼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건지 대본이 하나가 아닌 여러 장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보아하니 인턴들까지 긁어 모아서 썼구만.’
브라도프는 제발 여기에 제대로 된 대본이 있기를 바라며 대본을 차례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너무 도발적이야.”
“너무 난잡해.”
“내가 중립적으로 보이게 쓰라고 했지, 언제 무솔리니를 칭찬하라고 했나?”
그러나 슬프게도 그의 손에 집히는 대본들은 전부 꽝, 꽝, 꽝이었다.
이러다가 아나운서가 대본도 없이 애드리브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코미디 방송도 아니고, 민감한 정치를 다루는 뉴스 특보에서 말이다.
DRR은 자화자찬 같지만, 유럽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방송이라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주인이 주인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방송 한번 잘못했다간 외교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엔 호주의 전설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인 넬리 멜바(Nellie Melba) 여사를 섭외해 유럽 방송계에서 매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인 BBC놈들에게 유럽 제일의 방송국이란 타이틀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세계 최고의 방송국을 일구었단 자부심이 있던 브라도프는 핏발 선 눈으로 부하들을 바라봤다.
“당장 다시 써 와. 이번엔 제대로 된 걸로!”
“저…… 아직 제 것은 안 읽으셨습니다만.”
얼굴 모를 젊은 청년의 소심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기겁했다.
그야 분위기를 보라.
여기서 나서는 건 만용을 넘어 눈치가 없는 거였다.
“허, 신입 같은데, 자신감이 있나 보지?”
“…….”
“좋아, 어디 줘 보게.”
엉망이라면 각오하라는 사장님의 흉흉한 기세에 청년은 긴장한 얼굴로 자신이 쓴 대본을 건넸다.
“……이거 괜찮은데. 아니, 좋아. 내 생각보다 아주 좋아.”
“감, 감사합니다?”
그러나 며칠과도 같던 몇 분이 지난 후.
브라도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호평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괴, 괴벨스.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입니다.”
“좋아, 괴벨스 군. 자네가 나를 아니, 우리 DRR을 살렸어. 방송이 끝나고 내 사무실로 찾아오게. 자네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네? 네, 넷. 사장님!”
자신을 중히 쓰고 싶다는 브라도프의 모습에 젊은 괴벨스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언론인을 꿈꿨지만, 장애와 궁핍한 생활, 실연, 망한 조국, 실업이란 비참한 현실로 인해 어둑한 증오에 완전히 잡아먹혔던 선전‧선동의 악마의 운명이 180도 바뀐 순간이었다.
* *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제 사촌보단 나으리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실망이로군.”
“동감입니다, 폐하.”
그것이 새롭게 이탈리아의 총리가 된 무솔리니에 대한 빌헬름 2세와 베트만홀베크의 짧은 감평이었다.
“애초에 무솔리니는 반란을 일으킨 작자가 아닌가. 그런 작자를 뭘 믿고 총리를 맡긴 건지.”
“폐하, 무솔리니가 총리가 된 것은 비단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국왕의 결정뿐만이 아닙니다.”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왕의 뜻도 뜻이지만, 근본적으론 우파 세력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진군 이전부터 무솔리니와 검은 셔츠단은 정치깡패답게 파업이나 좌파를 무자비하게 때려잡으며 우파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의 호감을 사 왔다.
어디까지나 쓰기 편한 도구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번 로마 진군에서도 우파들의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그것이 로마 진군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즉, 호구 같은 놈이라 선택받았단 소리구나.”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여담으로 이는 히틀러와 나치 또한 마찬가지였다.
히틀러 또한 길바닥 정치인에 불과했던 그를 쓸모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 우파들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솔리니 전의 이탈리아 총리는 온건 쪽이긴 하지만, 좌파는 좌파였던 프란시스코 니티였으니까요. 우파들로선 무솔리니를 대신 내세워서라도 그를 쫓아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국왕도 아마 이런 생각에 동의했기에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이 이번에도 성공한 것이다.
‘사실 무솔리니가 그렇게 만만한 인물인가 하면, 그건 아닌데 말이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가 워낙 병신처럼 굴어서 덩달아 무솔리니도 병신 같은 놈(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처럼 생각되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으로 만만한 인물인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에게 묻혀서 그렇지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까진 히틀러를 비롯한 파시즘 꿈나무들의 롤모델이 되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자랑하던 것이 무솔리니다.
능력은 둘째치더라도 적어도 대놓고 무시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니 경계해야 마땅할 텐데…… 어째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위기감이 들지 않아!’
오히려 무솔리니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스의 머릿속엔 푸니쿨리 푸니쿨라 노래만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21세기의 밈에 머리가 절여진 대가였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테오발트, 오늘 보고는 이게 전부인가?”
“예, 폐하.”
“그럼, 이만 가서 둘 다 일 보게. 바쁜 사람들을 잡아 놓을 순 없으니.”
카이저의 축객령에 나와 베트만홀베크는 인사를 올리고 그의 집무실을 나왔다.
“무솔리니의 등장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걱정이 되는군.”
“저 또한 마찬가집니다만, 오히려 전 무솔리니 본인보다 무솔리니를 따라 할 작자들이 더욱 걱정됩니다. 당장 극단적인 사상에 물든 자들, 물들만한 자들이 비단 이탈리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으음…….”
내 말에 베트만홀베크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로서도 짚이는 곳이 많을 테니까.
“하여튼, 앞으로 더욱 바빠지겠어.”
“언제나의 일이죠.”
“그래, 언제나의…… 쿨럭! 쿨럭쿨럭!”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쿨럭쿨럭……! 크흠, 괜찮네.”
갑작스러운 베트만홀베크의 기침에 내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묻자 베트만홀베크가 손사래를 쳤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모양이야. 환절기이지 않나. 으레 있는 일이지.”
“그렇다니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건강에 조금 더 신경 써 주세요. 과로도 웬만하면 삼가시고요. 요즘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 걱정해 줘서 고맙네. 자넨 먼저 가서 일 보게. 나는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
“예, 총리님.”
괜찮다며 미소 짓는 베트만홀베크의 얼굴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옮겼다.
“건강을 챙겨라…… 인가.”
혼자만 남은 베트만홀베크는 자기 손에 질척하게 묻어 있는 검붉은 선혈을 바라보며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너무 늦은 것 같네.”
* *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국왕,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 파격 임명.] [성공한 로마 진군. 무솔리니, 이탈리아의 혼란을 멈추고 로마 제국의 영광을 복원할 것!]“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군.”
한편 전쟁이 끝난 후, 상수시 조약으로 인한 장교단 축소로 인해 군에 남지 못하고 강제 예편해야 했던 프랑수아 드 라 로크는 신문에 실린 로마 진군에 대한 소식에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무솔리니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
대전쟁 직후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파시즘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내세우며 최근 세력을 급격히 불린 작자로 빨갱이들을 잘 때려잡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총리가 될 정도의 거물은 아니었고, 그가 ‘로마 진군’이라 거창하게 말하는 쿠데타 또한 실패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허술했다.
“그런데도 무솔리니는 성공했다.”
겉으로 보기엔 무솔리니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라 로크가 생각하기엔 이번 일은 그저 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무솔리니의 성공은 그만큼 이탈리아인들이 정부의 무능에 염증을 느낀다는 증거였다.
“어지러운 세상을 끝내 줄 영웅, 초인이 필요한 때인가.”
라 로크는 전쟁과 코뮌이 남기고 간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파리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래, 프랑스엔 초인이 필요하다.
작금의 혼란을 끝내고 과거 아니, 그 이상으로 프랑스를 강대하게 만들 수 있는 초인이, 대전쟁의 승리로 유럽의 패자로 올라선 독일 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는 초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그 초인이 된다.”
라 로크는 신문을 접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목표가 생겼다.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끝낼 때다.
“무솔리니 따위도 되었어.”
라 로크 자신이라고 못될 이유는 없었다.
프랑스라고 로마 진군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이유도 없었다.
“프랑스를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개 같은 게르만 놈들에게 지지 않는 강대한 국가를 만든다.
그것이 모든 것을 잃은 라 로크가 새롭게 품은 꿈이었다. 야심이었다.
“이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솔리니를 보라. 파시즘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그리고 무솔리니의 대박에 야심을 불태우는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솔리니의 성공은 유럽, 아니 세계 각지의 파시즘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으니.
한스의 우려대로 전 세계에 파시즘이 본격적으로 발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
“Nein, Nein, Nein!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전 세계가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으로 들썩이고 있을 때, 미국 뉴욕에선 독가스로 인해 변질한 신경질적이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거리 화가에서 애니메이터로 전직한 아돌프 히틀러의 목소리였다.
“월트 군, 내가 콘티는 최대한 간단하게 짜 오라고 했잖나! 단편 애니메이션에선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는 오히려 독이라고 독!”
“하지만 히틀러 씨, 여기서 이야기를 더 줄일 순 없어요. 스토리의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요!”
“자네는 빵 한 조각만으로 배가 차는 사람에게 빵 한 포대를 건네려고 하고 있어!”
히틀러의 일갈에 19살의 젊은 월트 디즈니(Walter Elias Disney)는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그는 견습 아티스트로 몸담고 있던 페스맨-루빈 광고제작사(Pesmen-Rubin Commercial Art Studio)에서 해고당한 뒤 일자리를 구하며 틈틈이 애니메이션 제작 강의를 들었는데,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고 있던 히틀러와 만났다.
월트 디즈니와 히틀러는 나이 차이는 꽤 났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으로 의기투합했고,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군인 연금과 가족 유산, 그림엽서를 팔며 모아 둔 재산이었다) 아예 히틀러와 함께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얼마 전 하청을 받아 본격적인 첫 작품 제작에 들어갔건만, 히스테리컬한 독일산 콧수염은 조금이라도 일을 잘못하면 자신에게 잔소리해 대기 일쑤였다.
‘더욱 짜증 나는 건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란 거야!’
디즈니가 화를 내지 않고 툴툴거리기만 이유였다.
히틀러는 짬은 허투루 먹지 않았다는 듯 자신보다 그림 실력도 뛰어났고(의외의 사실이지만 디즈니의 그림 실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의 방향성도 잘 잡고 있었으니까.
“월트 군, 자네는 재능이 있어. 그러니 편견에서 벗어나 그 재능을 발휘하게! 우리의 첫 작품이지 않나.”
“에휴, 다시 그려 오면 되잖아요. 그려 오면.”
언제나처럼 히틀러의 말발에 밀린 월트 디즈니는 투덜거리며 책상 위에 흩뿌려진 콘티를 주섬주섬 챙겼다.
그때 디즈니 또래의 젊은 청년이 옆구리에 신문을 끼운 채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신문 봤어요?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란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 총리가 되었대요!”
청년의 이름은 어브 아이웍스(Ubbe Eert Iwerks).
훗날 월트 디즈니의 구상을 바탕으로 오스왈드 래빗, 미키 마우스를 디자인한 장본인이자 초기 디즈니 스튜디오를 이끈 전설적인 애니메이터다.
물론, 지금은 페스맨-루빈 광고제작사에서 함께 해고된 처지이자 친구인 월트 디즈니의 제안으로 히틀러와 일하고 있는 애니메이터 유망주에 불과했다.
“지금 무솔리니인지 가솔리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네, 어브 군!”
지금 히틀러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탈리아인이 아니라 자신의 첫 작품, 첫 애니메이션이었다.
“배급사와 약속한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네. 그러니 어서 원화를 가져오게나!”
“네, 여기 있어요.”
어브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잔뜩 쌓인 원화를 건넸다.
결과물을 확인한 히틀러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브 아이웍스는 애니메이터로선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지 그림 그리는 속도도 매우 빨랐고, 실력 또한 날이 갈수록 출중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좋아, 이대로라면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히틀러는 씨익 미소 지으며 외쳤다.
대박의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