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 극단의 시대 (4)
아직 세계가 로마 진군에 요동치고 있던 1920년 11월 4일.
무솔리니의 영향은 대륙 동쪽 끝 일본에까지 뻗쳤다.
다만 일본의 경우, 파시스트가 라이징하기 시작한 유럽과 달리 매우 직접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극단주의의 영향이 드러났다.
“시네(死ぬ)!”
“커헉?!”
“총리대신!!”
“의사! 의사를 불러!”
일본 총리대신이자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상징과도 같았던 하라 다카시가 부자만 잘사는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던 17살의 극우 청년 나카오카 곤이치(中岡艮一)의 칼에 쓰러졌다.
원 역사보다 1년 이른 죽음이었다.
“해군의 몇몇 놈들은 하라의 죽음에 환호성을 질렀다는 말이 있다더군.”
“그 물개 놈들은 그러고도 남지. 하라 때문에 피를 많이 봤으니까.”
하라의 죽음은 곧, 그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을 통해 해군과 육군의 밸런스를 맞추며 점점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던 문민통제가 다시 벼랑 끝 신세가 되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자네는 누가 다음 총리가 될 것 같나?”
“정우회 놈들은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를 밀고 있는 것 같더군.”
“대장대신(재무장관) 말인가?”
“음, 하지만 그는 총리대신 자리에 앉아 봤자 얼마 못 갈 거야.”
“하긴, 다카하시는 관료 체질이지 정치인 체질은 아니니까.”
실제로 일본 최고의 재정 전문가로서 군부의 억제기 역할을 했지만, 2.26사건 당시 황도파에게 살해당한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27년간 대장대신을 7번이나 역임한 것에 비해 총리대신으로선 1년도 버티지 못했다.
당내 장악력도 떨어졌고, 반대파도 많았던 데다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각 총사퇴까지 했지만, 정작 현 원로 그룹의 수장이자 제4대‧6대 총리대신인 마쓰다타 마사요시(松方正義)가 가토 도모사부로를 밀어주면서 도리어 총사퇴가 자충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 개인적으론 데라우치 각하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리되진 않겠지.”
친우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가 데라우치의 이름이 나오자 얼굴을 찌푸렸다.
작년 조선에서 일어난 ‘대폭동’으로 인해 총독에서 해임된 것은 물론, 데라우치의 정치적 입지가 많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아직 육군대신 직은 지키고 있었지만, 조선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마음대로 날뛰게 만든 책임은 무거웠다.
다만, 남자가 얼굴을 찌푸린 것은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무능 때문이 아니었다.
‘쯧, 아시아인들이 단결하여 현인신(現人神)이신 천황 폐하의 이름 아래 머지않아 다가올 최종전쟁 준비를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할 때 민족 간의 갈등을 일으키다니.’
저 막강한 서양 열강에 맞서기 위한 아시아연합국가의 꿈이 멀어지지 않았나.
정말이지 아시아인들끼리 손을 잡지 못할망정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독일 유학 잘 갔다 오게, 이시와라. 육군 상층부 내에서도 자네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있지 않나. 하긴, 명예로운 육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한 인재니 당연하겠지. 자기주장만 자제했으면 수석도 충분히 될 수 있었을 텐데…….”
“흥, 남의 평가 따윈 중요하지 않네. 앞으로 내가 해 나갈 일들이 중요한 것이지.”
훗날 원 역사에서 만주사변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몽상가, 그리고 국비장학생으로서 독일 제국 유학을 눈앞에 둔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 * *
한편 그 시각, 대서양 건너 미국에선 유럽과 달리 흥겨운 파티가 벌어졌다.
하라 다카시가 암살당하기 이틀 전인 1920년 11월 2일에 치러진 1920년 대선이 끝나며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후버! 후버! 후버!”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미국을 위해, 미국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휴즈 정부의 상무장관이었던 허버트 후버였다.
공화당 경선이 치러질 때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처음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활약한 외무장관 쿨리지 쪽이 더 유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버는 자신이 유능한 행정가란 점을 어필함과 동시에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 모든 차고에 자동차를(A chicken in every pot, a car in every garage)!’이란 표어를 내세우며 민생과 경제적 발전을 최우선 하겠다고 주장했고, 이게 잘 먹혀들어 갔다.
실제로 후버는 지금까지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왔으니까.
이에 반해 쿨리지는 나쁘진 않지만 뛰어나지도 않은 무난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해군 군축 회의에서 보여 주었던 외교관의 모습과 달리, 미국 내에선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일이 잦을 정도로 무뚝뚝하고 과묵하기로 유명했던지라 인간적인 매력도 후버와 비교해 떨어졌다.
이러한 차이 덕분에 후버는 유력 대선 후보 쿨리지를 경선에서 간발의 차로 꺾는 데 성공했고, 무사히 미국 30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참고로 부통령인 하딩도 경선에 얼굴을 들이밀긴 했는데, 그쪽은 얼굴만 번지르르한 사람이란 게 진즉에 밝혀졌기에 나가리가 되었다.
특히 하딩은 미국이 대금주법시대를 맞이했는데도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할 부통령이란 인간이, 그것도 금주법을 입안한 공화당 출신 부통령이 관저에서 술판을 벌이고 포커 게임 삼매경에만 빠져 있던 인간.
제정신이 아닌 이상 민주당에 도덕적으로 공격받을 여지가 넘쳐나는 하딩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할 사람은 공화당 내에 없었다.
“하, 또 졌네, 졌어.”
“이젠 텍사스에서도 공화당 놈들에게 지다니…….”
한편, 휴즈가 딸을 돌보기 위해 대선을 포기했단 소식에 기회를 엿보며 재기를 꿈꿨던 민주당은 또다시 쓰디쓴 패배의 고주를 마셔야만 했다.
1916년 대선에서 휴즈에게 패배한 뒤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한 제임스 M. 콕스가 또 큰 차이로 패배한 것도 모자라 이 당시엔 민주당의 표밭이었던 텍사스에서까지 후버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으로선 그저 여전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였던 윌슨이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후버 당선인님! 당선인님의 앞으로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한마디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대통령으로서 가장 우선시할 것은 대선 당시 국민 여러분께 약속했던 공약을 지키는 겁니다.”
“아,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 모든 차고에 자동차를!’ 말이군요.”
“하하, 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그리고 저는 이와 동시에 윌슨의 추태로 인해 중지되었던 미국의 개혁 또한 다시 시동을 걸 생각입니다.”
“대통령님의 치세가 벌써부터 화끈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네요.”
“전 서부 출신이라서요. 개척자들처럼 앞으로, 또 앞으로 나가는 법밖에 모른답니다.”
와하하하!
후버의 재치 있는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후버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각하, 각하께선 금주법 지지자로 유명하십니다만, 현재 금주법의 부작용과 폐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또한 궁금합니다. 100억 달러에 달하는 주세를 거두지 못하게 되어 정부 예산에 큰 타격이 있었고, 술의 원료인 보리, 옥수수, 사과 등을 재배하는 농부들 또한 심각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이뿐만 아니었다.
금주법 시행 후 오히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더 증가하며 밀주 산업이 대규모로 성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최근 시카고와 뉴욕 등지에서 점점 세를 불려 가는 마피아 등 범죄 조직도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다.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가 하루아침에 술을 금지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 그 자체였다.
괜히 금주법이 미국의 흑역사로 남은 것이 아니다.
“금주법의 부작용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법안에 으레 따라오는 일이죠.”
그러나 후버의 대답은 금주법 지지자들처럼 여전히 이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작 후버 그 자신은 맥주가 맛 좋은 독일 대사관이나 위스키가 맛 좋은 영국 대사관에 자주 들락날락했지만.
물론, 기자들에겐 비밀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고 미국이 금주법에 완전히 적응한다면 지금의 폐해는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기대하십시오, 여러분. 제 치세의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결하고, 그 어느 때보다 번영할 테니까요!”
지금까지 성공 가도만을 걸어왔던 후버는 진심으로 그리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 자신감 있게 외쳤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사라지는 날이 조금씩이지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 * *
후버가 자신의 포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을 때, 독일 또한 바쁘게 돌아갔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파시즘의 새싹들이 쑥쑥 자라기 시작한 것 때문이었다.
“프랑스 내에서 우익세력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장관님. 이미 유명한 극우 정치인인 샤를 모라스(Charles Maurras)는 물론 최근 프랑스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마르셀 뷔카드(Marcel Bucard), 피에르 샤를 태탱제(Pierre-Charles Taittinger), 그리고 얼마 전에 정치에 뛰어든 프랑수아 드 라 로크 등등…… 극단주의 성향을 지닌 이들은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역시 무솔리니의 영향 때문이려나요.”
“예, 로마 진군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나니까요.”
예상했던 일이었다.
프랑스 하면 코뮌으로 대표되는 극좌파들이 득실거리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왼쪽이 있다면 오른쪽이 있듯이 극우파도 극좌 못지않게 넘쳐나는 나라였으니까.
당장 공화국이 탄생한 지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왕당파(방금 나온 이름 상당수도 여기에 포함되었다)가 만만찮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봐도 답이 나왔다.
“앞으로 RND의 일이 많아지겠군요. 인력을 더 확충해야겠어요.”
눈을 심어 둬야 할 곳이 너무 많은 것에 비해 RND의 첩보 자원은 점점 한계에 달하고 있으니.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조직의 비애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어쩌겠어. 앞으로 위해 필요한 일인데.’
그리고 그걸 위해 내 몸과 정신을 야근에 바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루이제와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만.
후, 은퇴가 너무 마렵다.
“독일 국내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불행히도 우리 쪽에서도 극우 인사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부하의 다음 말을 듣자 그 바람이 더욱 마려워졌다.
“그중에 제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까?”
“에른스트 룀(Ernst Julius Günther Röhm)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은 송사리들이라서요.”
룀, 룀이라.
알고 있는 이름이다.
그야 나치 초창기 시절부터 히틀러랑 붙어먹던 놈인데, 내가 모를까.
뭐, 결국엔 토사구팽당해서 장검의 밤 때 쓱싹 당했지만.
‘히틀러가 없으니 별 시답잖은 놈들이 설치는구만.’
정작 내가 가장 크게 경계했던 우리의 아돌프 군은 미국에 가서 디즈니랑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는데.
“이 세계의 히틀러는 대체 무엇이 되려고 하는 걸까…….”
“장관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예. 다음은 전쟁성에서 온 보고입니다. 장관님이 제안하셨던 대전차 휴대용 로켓 병기 개발에 대해 군부가 만장일치로 찬성을…….”
똑똑─
“장관님, 베트만홀베크 총리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총리님이요?”
베트만홀베크가 지금 날 부를 이유가 있나?
딱히 짚이는 것은 없다.
“무슨 일인지 말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저 장관님보고 시간이 되면 국가수상부로 오라는 말만 있었습니다.”
“상사께서 오라니 가야죠. 나머지는 다음에 들읍시다.”
“예, 장관님.”
나는 고개를 숙이는 부하들의 인사를 받으며 집무실을 나섰다.
과연 무슨 일일지 의문을 품으며.
* * *
“총리님, 부르셨습니까?”
내가 국가수상부에 도착한 것은 제국외무청을 나온 지 정확히 30분 후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총리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베트만홀베크가 반갑게 맞이했다.
“아, 왔나? 생각보다 빨리 왔구만.”
“총리님의 호출을 거절할 정도로 급한 일은 없어서요.”
어깨를 으쓱거린 나는 곧바로 베트만홀베크를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외무장관이 나서야 할 일이 생긴 것입니까?”
“그건 아니네.”
다행이다.
무솔리니랑 파시즘 꿈나무 때문에 머리가 아픈 상황에 골치 아픈 일을 떠맡긴 싫으니까.
“내가 자네를 호출한 건 시킬 일이 있어서 때문이네. 외무장관 일과는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자네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는 겁니까?”
“쾰른에 가 줘야겠네.”
쾰른? 라인란트? 갑자기?
“제가 쾰른엔 왜…… 아, 혹시 그 사람 때문입니까?”
“그래, 맞네. 콘라트 아데나워.”
베트만홀베크가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말했다.
“우리 옛 친구를 슬슬 다시 베를린으로 불러들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