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 카이저의 생일잔치 (1)
“아데나워 시장을 베를린으로 데려오는 것엔 저 또한 동의합니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원 역사에선 거절하긴 해도 1921년에 이미 총리직을 제안받는 아데나워다.
융커 대숙청으로 명성을 쌓은 여기선 충분할 정도로 무르익었다.
“다만, 그걸 총리님이 직접 말할 실 줄은 몰랐군요.”
“그런가?”
“예, 솔직히 말해 총리님은 아데나워에게 거리를 두시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타이밍도 뭐랄까 공교로웠다.
나조차도 조만간 아데나워를 데려올까 싶었지만, 지금 베트만홀베크의 행동은…… 무언가 조급함이 느껴졌다.
“후후, 그야 어쩔 수 없지 않나. 나는 어찌 되었든 융커 출신이고, 그 친구는 융커를 물어뜯는 라인란트산 셰퍼드니까. 나도 베어 버릴 수 있는 칼은 조심해서 써야 하는 법이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나도 이제 늙었네. 내 나이가 벌써 64살이야. 게다가…… 아니, 이건 때가 되면 말하지.”
내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베트만홀베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말끝엔 여전히 의문이 남았지만.
‘그래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야.’
본래대로라면 얼마 남지 않은 내년이 되자마자 폐렴이 악화하여 사망하는 베트만홀베크다.
여기선 안색이 좀 나빠 보이긴 해도 아직은 괜찮아 보이지만, 그도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데나워처럼 젊고 유능한 인물이 필요할 시간이네.”
“세대교체 말이군요.”
“자네야 아직 수십 년 동안 제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으니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말할 것도 없고 팔켄하인, 티르피츠, 퀸 등도 슬슬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할 때야.”
하긴, 팔켄하인도 본래대로라면 내후년에 죽고 티르피츠는 30년대까지 살지만, 해군 군축 조약 때문인지 기력이 없어 보이긴 했지.
퀸은 솔직히 전생에선 이름도 모르던 사람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다들 슐리펜처럼 작별의 때가 오고 있구나.’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언제나 슬픈 일이다.
나로선 그저 그날이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 * *
“오랜만입니다, 아데나워 시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물론입니다, 장관님. 장관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시간이 나자마자 바로 아데나워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보는 아데나워는 융커 대숙청 때보다 한층 성숙해지고, 중후해진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그의 나이가 내가 알기론 만으로 44세던가.
생일이 1월 5일이니 곧 45세이다.
정치인으로선 전성기인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전성기는 총리가 되는 5, 60년대지만.’
재임 기간도 길어서 대략 일흔다섯쯤에서 아흔이 다 될 때쯤까지 총리를 해 먹었다.
이 양반이 노괴라 불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나저나 장관님은 몇 년 전과 전혀 안 바뀌셨군요. ‘카이저를 구한 소년’은 현역이란 건가요?”
“그저 제가 동안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수염이라도 길러 볼까 고민 중이다.
그야 나도 내일 모래면 서른이다.
슬슬 연륜이란 것을 가지고 싶었다.
다만, 루이제는 벌써부터 중년의 위기라도 온 거냐고 살짝 질색하더라.
‘콧수염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댄디해 보이고 좋잖아.
물론, 카이저 콧수염이나 히틀러 콧수염 말고, 평범한 콧수염 이야기다.
나는 한스 콧수염 같은 특이한 콧수염으로 역사에 남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퀼른 시장으로서 평판은 익히 들었습니다. 시민들의 칭찬이 자자하던데요?”
“언제나 기본을 지키고자 했을 뿐입니다.”
“에이, 그것조차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한 것이 이 세상인데요. 그래도 이제는 큰물에서 본격적으로 노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를린으로 오라는 말입니까?”
나는 긍정의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말했듯이 아데나워는 정치가로서 이름도 충분히 알렸고, 시장으로 일하며 능력 또한 증명했다.
“그건 장관님의 뜻입니까? 아니면 베트만홀베크 총리의 뜻입니까?”
“우리 두 사람 모두의 뜻입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총리님이지만요.”
“호오, 그 베트만홀베크가 말입니까?”
내 말에 아데나워가 고민에 빠진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나 이미 이런 일이 올 줄 알았던 것인지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도 슬슬 때가 되었다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쾰른 시장은 제게 있어서 무척이나 의미 깊고,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저도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이란 야심 없이는 할 수 없는 법이죠.”
“역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아데나워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데나워는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내민 손을 꽉 붙잡았다.
융커의 피를 마시는 사냥개의 귀환이었다.
* * *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1920년이 순식간에 끝나고 달력의 날짜가 1921년 1월 27일로 바뀌었다.
이날은 독일 제국에, 그리고 내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1월 27일은 다름 아닌 우리 장인어른의 생신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매년 그리했던 것처럼 신궁전에선 빌헬름 2세의 62번째 탄신일을 축하하는 화려한 파티가 열렸고, 나 또한 루이제는 물론 7살이 된 프리데리케를 데리고 카이저의 생일잔치에 참석했다.
“할아버지, 생일 축하드려요! 여기 제가 어머니랑 함꼐 구운 쿠키예요!”
“어이쿠, 고맙구나. 프레디. 우리 프레디에게도 이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무엇이 좋을꼬?”
“전 여왕이 되고 싶어요!”
“하하, 그래? 그럼 이 할아버지가 군대를 보내 우리 귀여운 손녀에게 줄 나라를 찾아봐야겠구나.”
“농담이라도 무서우니까 그만둬 주세요.”
드레스를 차려입은 프리데리케의 포옹에 머리가 희게 세며 이젠 누가 봐도 노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빌헬름 2세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독일 제국이 멀쩡하다 못해 그 어느 때보다 강건하고, 무엇보다 요아힘이 자살하는 일이 없어서인지 본래 올해 사망하는 장모님도 여전히 건강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나에게 있어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우구스테 황후는 나에게 있어 어머니 같은 존재이고, 무엇보다 그녀가 땅으로 돌아간다면 루이제는 물론, 황실 가족 모두가 크게 슬퍼할 테니까.
그러니 베트만홀베크 때도 그랬지만, 부디 그날이 최대한 늦게 오길 바란다.
“우리 알렉산드리네와 체칠리에도 데려왔으면 아버지가 더 좋아했을 텐데, 둘 다 아직 어려서 아쉽게 되었군.”
프레디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이쁨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본 빌헬름 황태자가 나를 향해 아쉽다는 눈초리로 말했다.
“하하, 우리도 다른 아이들을 유모에게 맡기고 왔는걸요. 너무 어린아이들은 어쩔 수 없죠.”
“음, 그나저나 베트만홀베크 총리가 데려온 남자가 그 유명한 아데나워인가?”
“네, 직접 보시는 것은 처음이시던가요?”
“그래. 앞으론 자주 얼굴을 보겠지만 말이야.”
빌헬름 황태자는 황실 파티에 참석해 베를린 정치인들과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는 아데나워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미래의 황제답게 거물을 알아본다는 것일까?
“다만, 슈트레제만 부총리가 꽤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아.”
“경쟁자가 등장했으니까요. 의식할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아데나워는 다들 알다시피 라인란트 사람, 프로이센에 감정이 많은 독일 서부 출신이고, 슈트레제만은 그 프로이센의 중심지인 베를린 토박이였다.
종교적으로도 아데나워는 유명한 쾰른 대성당이 있는 쾰른 시장 아니랄까 봐 가톨릭이었고, 슈트레제만은 프로테스탄트였다.
게다가 속해 있는 정당도 라이벌 관계였다.
아데나워는 흔히 가톨릭 중앙당이라고도 하는 보수 정당인 독일 중앙당(Deutsche Zentrumspartei) 소속이고, 슈트레제만은 독일 인민당(Deutsche Volkspartei, DVP)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민당은 이름만 들으면 사회주의 정당 같겠지만, 실제론 기존에 존재했던 독일 국민 자유당, 자유 보수당, 경제연합이 슈트레제만의 주도 아래 연합해서 만들어진 중도 보수 정당이었다.
다만, 중도 성향 정당이 언제나 그렇듯 인기 자체는 어정쩡해 보수를 대표하는 중앙당이나 진보를 대표하는 사민당에 이은 제3당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친애하는 매제가 힘써 줘야 할 일이 생겼어.”
“또 축구 이야기군요.”
“하하, 한스 넌 이해가 빨라서 좋아.”
황태자의 웃음에 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거야 몇 년을 겪었는데, 그걸 모를까.
“이번엔 또 뭡니까? 리그라도 새로 만드시는 겁니까?”
“그보다 더 규모가 큰 이야기라네, 매제. 국제 대회, 그것도 오로지 축구만의 올림픽을 만들 거야.”
어…… 그거 월드컵 아닌가?
“얼마 전 FIFA의 새 회장으로 취임한 쥘 리메(Jules Rimet)가 꺼낸 이야기인데, 마음에 너무 쏙 들더라고. 프랑스인치고는 뭘 좀 아는 친구야.”
“그렇……군요.”
진짜 월드컵 맞았다.
그야 황태자의 입에서 나온 이름인 쥘 리메부터가 FIFA의 3대 회장이자 실제로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화려한 월드컵의 막을 연 장본인이니 모를 리가 없다.
‘실제로 FIFA컵의 원래 이름은 쥘 리메 컵이기도 하지.’
여기선 월드컵의 개최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왠지 모르게 빌헬름 컵이 될 것 같지만.
“난 우리 친애하는 매제가 세계 최대의 축구 경기를 후원해 주리라 믿고 있어.”
“거절이란 선택지가 있습니까?”
“있을 것 같니?”
그렇겠지.
언제나 그랬는데 이번이라고 또 다를까.
“폐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제국의 기둥이신 폐하께서 이리 정정하시니, 그야말로 제국의 큰 복입니다.”
“하하하하! 고맙네, 파펜.”
내가 툴툴거리는 사이, 빌헬름 2세를 향한 현란한 아부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프란츠 폰 파펜(Franz Joseph Hermann Michael Maria von Papen).
‘폰’자 들어가는 것 보면 알겠지만, 귀족(라인란트 태생의 서부 귀족 출신이라 융커는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서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 중 하나로 현란한 아부 실력을 발휘해 힌덴부르크의 마음을 사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물론 아부쟁이들이 늘 그렇듯 그 뒤론 무능, 무능, 그리고 무능만을 보이다 끝내 히틀러라는 악마를 총리로 만들어 버리는 나로선 도저히 좋게 평가하기 힘든 양반이기도 했다.
“저 친구는 오늘도 참 열심히군.”
“파펜이 폐하께 자주 접근합니까?”
“그보단 황실에 잘 보이려고 한다는 쪽이 정확하겠지. 당장 나한테도 저랬는걸. 저놈은 내가 보기엔 황실에 빌붙어 한자리 차지하려는 광대 놈이야.”
빌헬름 황태자가 마음에 만든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다만, 빌헬름 2세는 광대 같은 파펜이 재미있는 모양인지, 꽤 즐거워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쓰읍, 가까이하지 말라고 조언이라도 해야 하나?’
저러다 빌헬름 2세가 정말 파펜에게 한자리 주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우리 장인어른의 성향상 원래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요직에 앉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까다로운 빌헬름 2세에게 잘 맞춰 주었던 뷜로가 그랬고, 팔켄하인이 그랬으며, 나조차도 그렇게 출세했으니 말 다 했다.
‘근데 난 유능하지만, 파펜은 아니잖아.’
살짝 자뻑 같지만, 현실이 그랬다.
파펜은 원 역사에서 자신을 비스마르크(웃음)에 빗댔을 정도로 자만심이 강했지만, 정작 그가 보여 준 것은 비스마르크의 발톱 때만도 못했다.
‘그러다 결국엔 히틀러 조무사로 전락했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저딴 놈과 비교당할 인물은 아니다.
이건 파펜이 나한테 사과해야 한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즐기시게 놔두고 다른 날 한번 말해 봐야겠구만.’
모처럼 오른 흥을 깨트릴 순 없는 노릇이니.
“공작부인께서는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그야말로 독일 여성들의 귀감,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왕비가 현세에 재림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리고 공녀님 또한 그 기품을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아버지이신 한스 폰 초이 공작님에게서 물려받은 현명함이 절로 흘러나오고 있으니 이 파펜은 감읍, 또 감읍했습니다!”
나는 파펜이 마음에 안 드는지 똥 씹은 얼굴의 루이제도 모자라 우리 프리데리케에게까지 아양을 떨고 있는 파펜을 바라보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그만해, 이놈아.
애 버릇 나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