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 세대교체 (1)
알렉산드르 줍코프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해 편지 한 장을 빅토리아 고모님에게 남기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직접 얼굴을 보고 이별을 통보하기엔 무언가가 무서웠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나의 빅토리아. 그대와 보냈던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나에겐 매우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시한부입니다. 러시아에서 얻은 병이 이미 손을 쓸 수 없이 잠식했죠.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상처입히기 싫었기에 이런 이별을 선택하는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사랑하는 그대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길.]“아아, 사샤! 사샤아아──!!”
줍코프가 남긴 편지를 발견하고 자신이 비련의 여인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진 빅토리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모님, 진정하세요. 줍코프 씨에게도 힘든 결정이었을 거예요.”
“네, 그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굳세게 먹어야 해요.”
“고, 고맙구나. 루이제, 체칠리에. 그래, 사샤를 위해서라도 일어서야지.”
빅토리아가 아무것도 모른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자 루이제와 체칠리에가 서로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빌헬름 2세는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손주들에게 목마를 만들어 주겠다며 나무를 베러 갔고, 빅토리아 또한 슬픔에 몸부림치곤 있긴 하지만, 적어도 추억(?)은 남긴 채 현실을 받아들였다.
미션 컴플리트였다.
“그래, 고모님 문제는 잘 끝났다고?”
“예,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던 모양이더군요,”
듣자 하니 자신은 고모님이 황족이란 것도 몰랐다고 주장했다고 하던가?
제 목숨 살리겠다고 뻔하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다니, 역시나 사기꾼이란 인종은 상종 못 할 작자들이다.
“한스, 네가 말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예?”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걸로 다시 황실에 평화가 찾아왔군. 수고했다, 한스야.”
한숨 돌렸다는 듯 빌헬름 황태자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후, 이걸로 빅토리아 고모님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물론, 줍코프와의 이별로 한동안 슬픔으로 시간을 보내겠지만, 적어도 믿어 왔던 사랑이 사기이자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루이제와 체칠리에 황태자비님이 빅토리아 고모님의 슬픔을 잘 달래 줄 거라 믿자.
“황태자 전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일세, 베트만홀베크 총리.”
나와 빌헬름 황태자가 일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안도감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사이, 베트만홀베크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빌헬름 2세에게 아침 정기 보고를 하러 가던 모양이다.
“장관도 좋은 아침일세.”
“좋은 아침입니다, 총리님.”
“음. 그나저나 황태자님과 외무장관이 함께 있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물론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을 빼고요.”
“하하, 잠시 가족끼리 일이 있어서 말이네.”
“일 말입니까?”
“그래, 꽤 복잡한 일이었지.”
“복잡한 일이었죠. 이젠 끝났지만요.”
나와 빌헬름 황태자의 말에 더는 캐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듯 베트만홀베크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이만 가 보겠네.”
“예, 전하. 살펴 들어가시지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빌헬름 황태자가 작별을 고하자 공손하게 인사하는 베트만홀베크.
이에 나도 외무청으로 가려는 찰나 베트만홀베크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마침 잘되었군. 나와 함께 폐하를 보러 가세나.”
“예? 제가 알아야 할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흠, 외교 쪽에서 내가 나서야 할 정도로 큰일이 생겼다곤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올해 일어나리라 예측했던 리프 전쟁도 영국이 아부드 엘 크림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그 여파로 늦춰질 모양이고.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방금 해결된 빅토리아 고모님 문제와 이해할 수 없는 개소리를 하루가 멀다고 편지로 보내오는(물론 오는 족족 난로로 향했지만) 이시와라 간지 때문에 일본 대사관에 항의를 준비 중인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 어쨌든, 아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하네. 그러니 질문은 잠시 목 안에 삼키고 같이 가세나.”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베트만홀베크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일 아니었다면 좋겠는데…….’
왜일까.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 * *
“어서 오게, 총리. 아, 우리 사위도 왔구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그런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내 말에 그거 다행이라는 듯 빌헬름 2세가 껄껄 웃었다.
땀을 흘린 흔적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새 나무를 베러 갔다 온 모양이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왔는가?”
“그 전에 아침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물론 폐하께서 걱정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만,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그건 다행이군. 내 치세에 제국이 이토록 평화로우니, 하늘에 계신 주와 선제들에게 감사드릴 일이야.”
“하하, 폐하께서 안 계셨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정치에 오래 몸을 담은 사람답게 표정 한 번 바뀌지 않고 나오는 베트만홀베크의 칭찬에 빌헬름 2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카이저 콧수염이 하얗게 세었다 할지라도 칭찬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했다.
“흐음, 확인했네. 토지개혁도 이젠 끝을 향하고 있고, 군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쁘군.”
“예, 지난 10년이 다사다난했으니, 앞선 10년은 평화로워야 저희도 일하는 보람이 있으니까요.”
“하하, 그런가? 우리 사위께서도 딱히 할 말은 없지?”
“예, 관세 동맹도 순조롭고, 외교적으로도 딱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오스만이 아라비아반도 내부로 진출하는 것을 여전히 버거워해서 좀 걱정입니다.”
오스만이 아라비아반도 내부에 영향력을 굳히고, 어느 정도 터를 잡아 놔야 우리도 석유를 파 먹으러 갈 수 있으니까.
“쯧, 오스만도 여전하군. 사막 유목민들 따위에 애를 먹다니. 어쨌든 제국에 큰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군.”
빌헬름 2세가 오늘의 보고가 만족스러운지 방긋 소를 지었다.
물론, 몇 년 안 가 이 평화도 필연적으로 찾아올 세계 대공황의 어둠 아래 끝날 테지만.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떨 때는 참으로 괴롭다.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불안한 앞날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으니.
‘그러니 더더욱 지금 평화를 즐겨야 하겠지.’
두 번째 인생을 경험 중인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인생은 짧고, 그것을 즐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는 법이다.
그러니 짧은 인생을 알차게 보내자.
사람 따위 뚜껑 따진 환타에도 한 방에 가는 연약한 존재니.
내가 경험해 봐서 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이 모습을 보냈어야 했는데. 아, 테오발트. 그러고 보니 할 말이 더 있다고 했던가?”
빌헬름 2세의 말에 베트만홀베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당히 길게 느껴진 침묵 끝에 담담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만 총리직에서 사임하고자 합니다.”
“……뭐?”
“예?!”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빌헬름 2세도, 그리고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야 갑자기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다니.
물론, 베트만홀베크도 나이가 있으니, 언젠간 찾아오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웠다.
“사임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빌헬름 2세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묻자 베트만홀베크가 총리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이에 기세를 얻은 빌헬름 2세가 말했다.
“어쨌든 허가 못하네. 테오발트, 자네는 앞으로 오랫동안 제국을 위해 일해 줘야 해. 애초에 아직 뷜로도 정정한데, 그보다 젊은 자네가 사임이 대체 웬 말인가?”
“폐하, 저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베트만홀베크가 입을 열었을 때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폭풍이 카이저의 집무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 * *
“죽, 죽어 가고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사가 말하길 폐암이라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폭탄 발언에 빌헬름 2세가 당황한 얼굴로 되묻자 베트만홀베크가 표정을 유지한 채 담담히 말했다.
“발견했을 땐 상태가 나빠져서 수술이 힘들다고 합니다. 짧으면 1, 2년 길어야 3, 4년밖에 살지 못하겠지요.”
“…….”
나와 빌헬름 2세는 베트만홀베크의 아련한 눈빛에 더는 그 어떤 말도 있지 못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야 자신의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위로? 동정?
그 어떤 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베트만홀베크 총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여 주는 것이 최선일 테니까.
‘그나저나 폐암이라.’
결과적으로 본래 주어진 수명보다 오래 살긴 했지만, 그 대가가 너무나도 끔찍했다.
원 역사에 비하면 독일 제국이 멀쩡히 남아 있고, 실패한 총리에서 성공한 총리로 남는 지금이 그에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죽으면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이니까.
‘원인은 보나 마나 개혁으로 인한 과로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지나친 흡연이겠지.’
그러니까 평소에 건강에 신경 좀 쓰라니까.
더 강하게 말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밉다.
“그러니 이만 제국 총리란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물러나 가족들과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십시오.”
“후우……. 알겠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픈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사람 된 도리도 아닐뿐더러 자네가 그동안 세운 공적을 모욕하는 것일 테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그저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기를 바라고 있을 때, 빌헬름 2세가 무거운 한숨과 함께 씁쓸한 얼굴로 베트만홀베크의 사직을 받아들였다.
빌헬름 2세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를 후두암으로 잃은 사람.
마찬가지로 암에 걸려 시한부를 선고받은 베트만홀베크에 대해 여러 의미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자네 후임을 고려해야겠군. 원치 않는 일이지만 말이야.”
“허허,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동감일세. 혹 추천하고 싶은 사람 있나?”
빌헬름 2세의 말에 베트만홀베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오, 설마 그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만, 전 아직 총리 할 생각 없습니다. 나이도 너무 어리고요.”
“성년이 되자마자 외무장관이 된 친구가 말은 잘하는구만.”
“장관이랑 총리랑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물론 나도 총리 자리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안 가 세계 대공황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건 무조건 독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제국 총리 자리에도 안 좋은 의미로 여파를 미칠 것이다.
그러니 총리가 될 땐 되더라도 대공황 이후에나 되고 싶다.
괜히 덤터기를 쓰긴 싫으니까.
“나도 한스는 아직은 국가수상부의 주인이 되기엔 이르다고 생각하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 제 후임으로 콘라트 아데나워를 추천합니다.”
베트만홀베크의 말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데나워를 데려오라고 할 때부터 눈치채긴 했지만, 역시 베트만홀베크는 아데나워를 자신의 후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데나워? 그 라인란트의 광견 말인가?”
“예, 그 아데나워 맞습니다.”
다만, 카이저의 표정은 경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평민인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폐하. 앞으로 제국을 이끌어 가기 위해선 혈통보단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아데나워가 마음에 들진 않으신다면 차선책으로 부총리인 슈트레제만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는 훌륭한 장관일 순 있지만, 훌륭한 총리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나 또한 슈트레제만 부총리보다는 아데나워 쪽이 능력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슈트레제만도 원 역사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까지 역임했던 만큼 능력은 있지만, 그 총리 자리가 100일 하고도 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쳤던 것을 생각하면 장관급이라면 모를까 총리로는 모자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의 업적이라 할 만한 일은 대부분 외무장관 시절에 이룬 것이니까.’
이에 반해 아데나워는 역사를 통해 총리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게 증명되었던 데다가 이미 대전쟁 때부터 뛰어난 실무 능력을 보여 줘서 이미 차기 총리로 물망에 오르고 있었다.
베트만홀베크가 괜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데나워를 후임으로 삼고자 데려온 것이 아니다.
“흐으음……. 아데나워와 슈트레제만이라. 아무래도 고민을 더 해 봐야겠네.”
다만, 빌헬름 2세는 아데나워는 물론, 슈트레제만도 딱히 끌리지 않는지 대답을 유보했다.
그러나 결정을 미룬 것이 어떤 폭풍을 독일에 불러올지 나를 비롯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