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1
31화 : 시연회
“남작! 대체 나 몰래 무슨 짓을 한 건가?!”
“참모총장님?”
슐리펜 참모총장이 대뜸 그렇게 물었다.
이 양반이 갑자기 찾아오더니 갑자기 웬 뜬구름 잡는 소리일까?
“저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만?”
“숨기려고 하지 말게, 남작. 이미 다 알고 왔네.”
숨기고 자시고 난 정말 짚이는 일이 없다.
최근엔 정말 별다른 일 없이 조용하게 지냈단 말이다.
“얼굴을 보아하니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모양이구만.”
“예?”
“신무기 말일세. 신무기. 자네가 베르크만 조병창에서 만들고 있는 그거!”
“아, 그거요?”
슐리펜 참모총장이 알아버렸구나.
나중에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김이 팍 샌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네. 지금 그것 때문에 남작, 자네가 큰 곤경에 처하게 생겼어!”
“?”
곤경?
기관단총 때문에?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가 제 돈 써서 만드는 건데 문제 될 게 있습니까?”
“보통이라면 없지. 하지만 발더제 원수가 이걸 이용하려고 하고 있네.”
남작, 자네를 쳐내기 위해서 말이야.
슐리펜 참모총장이 심각한 얼굴로 그리 덧붙이며 말했다.
발더제가 기관단총으로 날 쳐내려 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원수는 시연회를 열려고 하고 있네.”
“시연회라면 제가 베르크만 조병창과 협업하여 개발하고 있는 총기를 군에서 시험하겠단 소리입니까?”
“그래. 그것도 카이저 폐하를 비롯한 모두의 앞에서 말이야.”
“공개 시연회라. 아무래도 절 망신 시킬 생각인가 보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의 무능을 증명해서 폐하와 자네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이라네.”
아무래도 발더제는 내가 기관단총을 개발하는 것을 어린아이의 장난쯤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나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리고 그건 슐리펜을 제외한 다른 장성들도 마찬가지겠지.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마음대로 하라고 하십시오. 전 제 ‘기관단총’에 자신 있습니다.”
“기관단총? 그게 자네가 만들고 있는 무기인가?”
“예.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개인화기이죠.”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어디 더 말해보게.”
나는 기관단총을 개발하려는 이유와 특징에 대해 슐리펜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슐리펜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흥미, 그리고 진지함으로 바뀌었다.
“권총탄을 사용한 완전 자동사격 무기라. 확실히 획기적인 생각이야. 시제품은 이미 나왔다고 했지?”
“물론입니다. 겉모습은 좀 그렇지만 성능은 뛰어납니다. 지금도 베르크만 조병창의 총기 장인인 슈마이서 씨가 아들들과 함께 열심히 개량하고 있죠.”
“시범 사격은 해봤나?”
“100m 앞에 있던 표적을 10여 초 만에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라면 믿으시겠습니까?”
“호오, 그것참···.”
탐나는 무기로군.
슐리펜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실망이구만. 남작. 이런 걸 나에게 꼭꼭 숨기고 있었다니.”
“흐흐, 크리스마스 선물은 원래 미리 열어보면 재미없는 법 아닙니까.”
물론 크리스마스 오려면 아직 20일은 더 남았지만 말이다.
“발더제 원수께서도 기관단총을 보면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으실 겁니다.”
“그것참 기대가 되는군.”
“아, 그러고 보니 시연일은 언제입니까?”
“일주일 후. 그때까지 준비할 수 있나?”
“예. 다만 그동안 조병창 보안을 더 강화해야겠습니다. 만일에 대비해서요.”
설마 그딴 치졸한 짓을 할까 싶지만, 발더제가 사람을 보내서 시제품을 망가 트리려고 할 수도 있다.
혹시 모르니 이에 대해 최소한의 방비는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제국 내무부(Reichsamt des Inneren)에 연락해서 비밀경찰들을 베르크만 조병창에 파견하도록 요청해두지.”
“발더제 원수라면 내무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점이라면 전혀 걱정할 것 없네. 내무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포사도프스키-베너(Arthur von Posadowsky-Wehner) 부총리는 발더제 원수와는 사이가 매우 안 좋으니까.”
부총리는 노동자들에게 상당히 유화적인 사람이거든.
슐리펜 참모총장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럼 걱정할 건 없다고 알고 있으면 되나?”
“물론입니다.”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일주일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연회 날이 되었다.
나는 시연회가 열리는 군 연병장에서 슈마이서 부자와 함께 긴장한 얼굴로 마무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 설마하니 군 상층부도 모자라 황제 폐하와 황실 가족분들 앞에서 제 총을 시연하게 될 줄이야.”
“저 때문에 괜히 곤욕을 치르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슈마이서 씨.”
“아닙니다. 남작님. 아직 완벽하게 다듬은 것은 아니지만 총의 성능만큼은 장인의 명예를 걸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들 후고 슈마이서가 한숨 쉬며 조병창에서 가져온 기관단총을 바라봤다.
기관단총은 아직 스텐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달이란 시간은 기관단총을 눈에 띄게 개량하기엔 적은 시간이었으니까.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충분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예산은 충분히 드렸잖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남작님.”
“어쨌든 총은 외견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능이 중요한 것이죠.”
시연회 전에 미리 기관단총을 확인한 슐리펜 참모총장이 자신의 눈을 비비며 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긴 했지만, 아무튼 괜찮다.
성능 하나 만큼은 확실하니까.
“한스 씨도 문제없죠?”
“맡겨주세요. 남작님. 오늘을 위해 일주일 내내 사격 훈련만 했다고요!”
기관단총의 시연을 맡은 한스 슈마이서와 군 경력이 있는 베르크만 조병창 직원들이 우릴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믿음직한 모습이다.
‘사람들도 다 도착한 모양이고.’
난 시연회를 위해 연병장에 설치된 객석을 바라봤다.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테 황후, 그리고 황태자를 비롯한 황실 가족들.
슐리펜 참모총장과 발더제 원수를 비롯한 군부 인사들.
그리고 관료들과 군수기업 관계자들로 추정되는 양복쟁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베르크만 사장도 저 사이에 끼어있군.’
연일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일이 잘못 흘러갔다간 베르크만 조병창의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걱정할 건 없어.’
모든 준비는 끝났다.
***
“추운 날에 굳이 뭘 이런 걸 보러 오라고 하는 건지.”
한창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빌헬름 황태자는 짜증 난다는 얼굴로 자신을 이곳에 원흉인 발더제 원수를 향해 눈을 찌푸렸다.
빌헬름 황태자에게 발더제 원수란 귀찮은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히 아버지가 오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그냥 바쁘다고 무시했을 거다.
‘게다가 하필이면 한스 녀석이 만든 무기의 시연회란 말이지.’
그 발더제 원수가 한스를 위해 이리 거창하게 공개 시연회까지 연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괜찮겠지. 한스 녀석도 의기양양한 얼굴이었으니까.’
그 녀석이 그런 얼굴을 할 땐 무언가 계획이 있단 소리다.
지금은 한스를 믿어보자.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윽고 시연회가 시작되자 한스가 앞에 나서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한스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어린이용 턱시도를 입은 상태였는데, 몇몇 귀부인들 사이에서 작은 펭귄 같다며 귀엽다는 반응이 나왔다.
‘나중에 놀려줘야겠군.’
빌헬름 황태자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사이 한스는 인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저 한스 폰 초이 남작과 베르크만 조병창이 협업해서 개발한 ‘기관단총’의 시연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한스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군부 쪽에선 어떠한 반응도 없이 여전히 묵묵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역시나 저들은 한스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그럼 우선, 제가 기관단총을 개발하게 된 배경에 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스는 저 정도에 기죽을 녀석은 아니었다.
빌헬름 황태자가 알고 있는 한스는 이럴 때일수록 더 뻔뻔하게 나오는 어떤 의미로 재수 없는 꼬맹이였다.
“···그래서 기관단총은 반동을 줄이기 위해 소총탄 대신 권총탄을 사용했습니다.”
“잠시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한스가 계속 설명을 이어가고 있을 때, 군부 인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성함이···?”
“제5보병사단 소속 참모인 에리히 루덴도르프 소령이라고 합니다.”
한스는 루덴도르프 소령의 자기소개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걸까?
“방금 권총탄을 사용하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남작께서 개발하신 기관단총의 유효 사정거리는 어느 정도입니까?”
“최대 150m입니다.”
군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쩌면 비웃음과 비아냥거리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루덴도르프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150m? 어이가 없군요. 권총 같은 보조 무기라면 모를까 대체 그걸 어떻게 주력 개인화기로 사용하란 것입니까?”
“그 점에 대해선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예?”
“왜냐하면 기관단총은 어디까지나 근거리 교전을 상정하고 개발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한스는 루덴도르프 소령의 빈정거리는 어투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 생각으론 앞으로의 전쟁에선 참호전이나 시가전 같은 근거리 교전 상황이 잦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소총은 길고 무거워서 그런 상황에서 사용하기엔 매우 불편하죠.”
“그럼 남작께서 개발한 기관단총은 다르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제 기관단총은 기존의 소총보다 짧고 가볍습니다. 좁은 참호에서 사용하기엔 안성맞춤이죠. 그리고 압도적인 연사력에서 나오는 화력까지 갖추고 있고요.”
상상해보십시오.
한스가 말했다.
“적이 가득한 참호로 돌격한 아군 병사들이 기관단총으로 총알을 분무기처럼 쏟아내는 모습을. 적군을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갈아버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단 1분.
“1분이면 충분합니다.”
웅성웅성
한스의 단언에 술렁이는 객석.
이에 루덴도르프 소령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살짝 당황한 모양이다.
“그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미래 전장에 핵심이 될 세계최초의 기관단총, ‘MP01’입니다!”
“오오······엉?”
한스가 기세를 몰아 베일에 감춰져 있던 기관단총을 공개하자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탄성은 곧 탄식으로, 그리고 탄식은 무거운 침묵으로 바뀌었다.
“저게 총···?”
빌헬름 황태자가 어이가 나간 상태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스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들고 있는 그 ‘기관단총’이란 물건은 파이프.
마치 파이프를 잘라다가 나무 총몸 위에 붙인 것처럼 생긴 무기였다.
빌헬름 황태자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도저히 멀쩡한 총으론 보이지 않았다.
‘한스, 정말 괜찮은 거 맞냐?’
황태자는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풋!”
그때였다.
“푸하하하하!”
발더제.
지금까지 인상을 찡그리며 조용히 앉아있던 발더제 원수가 웃음을 터트리며 폭소하기 시작했다.
“평생을 군에 몸담았지만, 저렇게 쓰레기처럼 생겨 먹은 총은 난생처음 보는군. 그거 총알은 제대로 나가긴 하나?”
“원수 각하. 이건 아직 시제품으로 외견은 이래도 성능은···.”
“듣기 싫다! 감히 그딴 잡동사니로 황제 폐하와 제국군을 우롱하다니. 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야!”
발더제의 엄포에 한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치 신호라도 받은 것, 마냥, 여기저기서 비웃음과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이거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저런 볼품없는 무기를 사용한다면 제국군의 평판이 대체 어찌 되겠습니까?”
“크큭, 애 따위가 군대와 무기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시간 낭비만 했습니다. 그려.”
한스에 대해 조롱과 비난을 일삼는 좌중을 발더제 원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쓰레기를 만든 자의 이름이 분명 슈마이서라고 했나? 장인이라고 불러주기도 아까운 자로다.”
“···!”
‘헉?!’
빌헬름 황태자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한스는 화를 내지도, 언제나처럼 뻔뻔하게 웃고 있지 않았다.
무감정.
지금 한스의 얼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철컥!
한스가 어떠한 빛도 비치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눈으로 발더제를 바라보며 기관단총의 총구를 하늘로 겨누었다.
‘한스?!’
그 모습을 본 황태자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한스가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더 빨랐다.
“폐하, 보십시오! 결국 저놈은 제 족속과 다를 바 없는······.”
타다다다다다다───!!!
그리고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총성이 하늘을 갈랐다.
아버지 카이저에게 뭐라 떠들던 발더제가 입을 다물고 경악 어린 눈으로 한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은 빌헬름 황태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조용해졌군요.”
한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시연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