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 세대교체 (4)
[한스 폰 초이 권한대행,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데 국민의 의견을 묻기 위해 총리 후보자에 대한 여론 투표를 시행할 것.]얼마 후.
임시로 정부를 맡은 한스의 입에서 베트만홀베크가 사임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차기 총리에 대해 아무 말이 없던 빌헬름 2세의 뜻이 전 독일에 전해졌다.
“여론 투표라고……?”
“아니, 말만 국민의 의견을 묻는다지 사실상 우리보고 총리를 뽑으란 소리 아니야?”
그리고 독일인들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다.
그야 독일 총리는 말만 총리지 사실상 재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의 손에서 뽑힌 적 없던 카이저의 대리인이었기에.
물론, 한스는 이번 일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조치’란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한 번 있는 일은 두 번, 세 번도 있는 법이다.
독일인들은 사실상 차기 총리를 결정지을 것이 분명한 여론 투표를 전제 제국에서 탈피해 진정한 의미의 입헌군주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적인 도전으로 여겼다.
“투표라…….”
“초이 장관의 생각인가? 재밌는 짓을 해 주는군.”
시민들이 지식인들의 환호성과 함께 독일 정계에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는 가운데 당사자들인 아데나워와 슈트레제만 또한 여론 투표 이야기에 흥미와 함께 머리를 굴렸다.
지금까지는 신궁전의 카이저에게 자신이야말로 총리감이라고 드러내야 했다면 이제는 국민을 그 대상으로 해야 했다.
“여론 투표는 언제 한다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입니다, 아데나워 의원님.”
“시간이 많이 주어지진 않다는 소리군. 지금 당장 사람들을 모아!”
“예, 의원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 날아다니는 선전 포스터와 함께 총리 자리를 걸고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유세전이 시작되었다.
“실적이 증명하는 가장 뛰어난 차기 총리 후보, 독일 중앙당의 콘라트 아데나워에게 한 표를!”
“아데나워! 아데나워! 아데나워!”
“베트만홀베트 내각의 성공에 그가 있다! 베를린의 아들,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을 라이히스칸츨라이로!”
“슈트레제만! 슈트레제만! 슈트레제만!”
한 달이란 짧은 기간 동안 독일인들의 마음을 최대한 많이 자신들에게 끌어모으기 위한 총성 없는 총력전이었다.
“이거 사민당에서 저에게 무슨 볼일인지 모르겠군요, 베른슈타인 의원님. 지금쯤 뮐러 당수와 함께 바쁘게 유세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아데나워 의원. 선수들끼리 괜히 말 돌리지 맙시다.”
“후…….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노동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주시죠. 그 대가는 뭐, 말 안 해도 알 것이라 믿습니다.”
“……일단 득실을 따져보는 것은 미루고 이거 하나만 물읍시다. 슈트레제만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습니까?”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쯧, 라이히스탁의 노괴들이란.”
그리고 그 그림자 뒤에선 비밀스러운 거래가 오갔다.
정치에선 일상이나 마찬가지인 일이다.
“여론 투표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한편, 다른 후보자들이 유세에 정신이 없을 때 누군가가 전혀 예상 못 한 여론 투표 소식에 경악 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카이저의 호감작에만 신경 쓰다 발등을 도끼로 찍힌 프란츠 폰 파펜과 그 일당들이었다.
* * *
“인제 와서 여론 투표라니, 평민 놈들이 총리 자리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나라 꼴 한번 잘 돌아가는군!”
괴르델러의 분노 어린 목소리에 파펜과 슐라이허, 룀이 공감한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당파, 파시스트, 군국주의자 등 이들의 성격이나 머릿속에 든 사상은 달랐지만, 민주주의나 자유 그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이들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카이저 폐하께서 이런 결정을 내리실 리가 없소. 한스 폰 초이 그놈이 옆에서 부추긴 게 분명해!”
극렬 왕당파답게 수구적인 괴르델러가 목에서 피가 날 기세로 외쳤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매우 크나큰 착각이었다.
이번 ‘여론 투표’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한스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결정을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편하게 살고 싶은 빌헬름 2세였다.
빌헬름 2세가 아랫것들에게 제국의 중대사를 맡기기 싫었으면 그냥 자기가 총리 뽑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막말로 한스가 딱히 투표하자고 프리데리케를 들고 옆에서 카이저를 협박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건 음모요. 황실을 영국처럼 장식물로 만들려는 간신들의 음모요!”
“그런가……?”
“왜 아니겠소, 파펜 의원. 정말이지, 빌헬름 대제께서 살아 계셨다면 가슴을 치셨을 것이오.”
“괴르델러 시장, 당신의 분노는 우리 모두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급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괴르델러가 입을 다물 생각 없이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귀가 아파진 슐라이허가 말했다.
“이 망할 여론 투표 때문에 우리 상황이 굉장히 불리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국민 중 파펜을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 아부만 잘하지, 무능력한 데다가 하딩처럼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파펜을 그 누가 좋아할까.
심지어 의회에서도 ‘저 새끼는 뭐지?’ 소리를 듣는 것이 파펜이었다.
여론 투표로 가면 100% 망한다.
물론, 파펜 일당의 책사를 자처하는 슐라이허도 파펜이 인기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괴르델러를 비롯한 수구파와 손을 잡고 요즘 온 유럽의 화젯거리인 파시즘 운동을 하는 룀을 데려오는 등 여러모로 대책을 강구했다.
장인이 손수 만든 비싼 고급 도끼까지 선물하며 카이저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한 것은 덤이었다.
그러나 슐라이허의 책략엔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
파시즘은 파펜만큼이나 독일에서 인기가 없었다.
파시스트 국가가 된 이탈리아나 이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극우들이 세를 불려 가고 있는 프랑스야 파시즘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독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야 파시즘은 혼란과 증오를 먹고 자라는데, 지금의 독일은 혼란스럽지도 않고 딱히 누구를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야 전쟁에 이긴 데다가 경제도 아직까지는 호황인데, 딱히 불만이랄 게 생길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그나마 먹힐 만한 반공조차 보수층을 양분하고 있는 중앙당&인민당은 물론, 사민당조차 허구한 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고 있는 바람에 차별화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을 지지하는 것은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몰락한 융커들이나 괴르델러 같은 수구파 같은 극소수의 극우들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여론 투표에서 이기길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나 다름없었다.
“답은 이제 하나뿐이요.”
여론 투표를 하면 최유력 후보인 아데나워나 슈트레제만은 고사하고, 사민당에도 밀릴 게 뻔한 답답한 상황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이 룀이 험상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솔리니의 예를 따릅시다. 사람들을 모아 신궁전으로 가는 겁니다.”
쉽게 말해 로마 진군의 독일판을 하자는 것이었다.
무솔리니의 성공을 보고 파시스트가 된 룀 다운 말이었다.
“대령, 미쳤습니까?”
“그건 좀…….”
“이 무슨 불경한!”
그러나 슐라이허, 파펜, 괴르델러의 반응은 어이없음, 두려움, 그리고 괘씸함이었다.
현역 장교인 슐라이허가 보기에 지금 무장봉기를 하는 것은 ‘나 죽여 줍쇼’ 하는 행위였고, 파펜은 봉기할 깜냥 자체가 없었으며 괴르델러는 신성한 황제 폐하의 궁전에 군홧발을 들이밀자는 소리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 봉기를 일으키면 높은 확률로 융커들처럼 될 것입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룀 대령.”
“쳇…….”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슐라이허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룀이 불만이 많은 얼굴로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무기를 빼돌리려다가 걸려 군대에서도 쫓겨난 그가 혼자서 뭘 해 볼 수는 없었다.
‘계집애 같은 놈들…….’
지금 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입을 다물고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속으로 씹는 것뿐이었다.
물론 동성애자, 그것도 15살쯤 먹은 소년을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적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던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슐라이허, 그래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다음 기회를 노려 봐야지.”
물론, 그 ‘다음 기회’가 과연 언제 올지는 슐라이허와 파펜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
1921년 12월 7일.
마침내 약속된 한 달이 지났다.
“모두 투표하러 가자!”
“넌 누구 뽑을 거야?”
“당연히 슈트레제만이지.”
“난 아데나워 뽑으려고. 내가 베를리너이긴 한데, 아데나워가 총리로선 슈트레제만보단 더 나을 것 같아.”
그리고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여론 투표 날이 도래했다.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두근두근 얼굴로 투표소로 향했고, 이는 비단 베를린뿐만이 아닌 쾰른, 뮌헨, 프랑크푸르트, 쾨니히스베르크 등등 독일 전역에서 보이는 광경이었다.
“방송 준비 5분 전!”
“자자, 독일 제국 사상 최초의 총리 선거다. 모두 집중해!”
한편, 베를린 베스트엔트(Westend)에 있는 방송의 집(Haus des Rundfunks), 즉 DRR 베를린 본부 또한 개표 중계를 맡아 바깥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지지 않겠다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괴벨스 군, 준비되었나?”
“예, 사장님. 제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 진 여전히 걱정입니다만…….”
“자신감을 가지게, 젊은 친구. 자네의 말재주는 내가 본 그 누구보다 뛰어나니까. 그러니 복잡한 건 잊어버리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게.”
“……네. 반드시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개표 방송의 진행자를 맡은 사람은 DRR의 떠오르는 신예, 파울 요제프 괴벨스였다.
“방송 5초전! 4! 3! 2! 1!”
찰캉!
“푸흡?!”
그리고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저택에서 여유롭게 카페 초이를 마시고 있던 한스는 갑자기 나오는 괴벨스의 이름과 목소리에 그만 커피를 뿜고 말았다.
그야 나랏일 하느라 바쁜 통에 브레도프에게 DRR을 사실상 일임한 상황인데, 괴벨스가 DRR에 입사했는지 안 했는지 한스가 알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전역에서 적극적인 투표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투표율 또한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놀란 한스가 사레가 들려 연신 콜록거리는 사이, 라디오에서 괴벨스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는 경험은 부족했지만, 악마의 재능은 어디 안 간다는 듯 유려한 언변을 뽐냈고,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독일인들도 그의 말에 절로 귀를 기울였다.
[괴벨스 씨,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DRR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중앙당의 콘라트 아데나워 후보가 인민당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후보에게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독일 내 가톨릭의 영향이 가장 강한 지역인 데다가 프로이센에 대한 반감이 강한 바이에른의 지지, 특히 사민당의 뮐러 당수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데나워 후보를 지지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 이 문제로 슈트레제만 후보가 아데나워 후보와 사민당에 큰 비난을 가하기도 했죠.] [네, 다만 이로 인해 아데나워 후보를 지지하던 보수층에서 이반이 일어나면서 슈트레제만 후보 쪽에 마냥 불리한 것만은 아니란 의견도…….]“호오호오…….”
그리고 그중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젊은 하인리히 힘러(Heinrich Luitpold Himmler)도 있었다.
다만, 힘러는 얼마 안 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멈춰야만 했다.
“아저씨, 여기 맥주 추가요!”
“예예, 갑니다!”
그는 현재 맥주홀과 치킨집을 결합한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러가 이 시기 본래 양계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원 역사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독일인들에게 치킨은 완전히 낯선 음식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상류층들이 18세기 때부터 바크헨들(Backhendl)이라고 해서 튀긴 닭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한스가 치맥의 민족답게 치킨을 포기 못 하고 적극적으로 치킨을 전파하면서 치킨은 독일 내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개표 결과가 스튜디오에 도착했습니다.]하여튼, 힘러가 정신없이 닭을 튀기는 사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투표가 끝나고 결과를 발표할 시간이 되었다.
“…….”
아데나워와 슈트레제만은 물론, 독일인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총리 자리를 두고 벌어진 경쟁의 결말을 기다리는 가운데 괴벨스가 심호흡하며 입을 열었다.
[개표 결과, 아데나워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50.5%, 슈트레제만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44.8%, 파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0.5%, 무효표가 4.2%로 여론 투표 결과 아데나워 후보가 총리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 다수였습니다.]그리고 그 결과는 콘라트 아데나워의 승리였다.
* * *
아데나워가 여론 투표에서 승리했다.
빌헬름 2세는 국민의 의견을 ‘참고’해 바로 차기 총리로 아데나워를 낙점했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아쉬움, 파펜 일당의 질시 속에서 아데나워 정부가 탄생했다.
“축하드립니다, 아데나워 의원님. 이젠 총리님으로 불러 드려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장관님.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쫄리는 선거였습니다.”
“하하, 이겼으니 된 거죠. 하여튼 서둘러 정부를 구성해 주십시오. 빨리 권한대행이란 직함을 벗어던지고 싶으니까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부총리 하실 생각 있습니까?”
“예?”
갑작스러운 아데나워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보고 부총리를 하라고?
“지금 절 외무장관에서 부총리로 교체하겠다는 겁니까?”
“아뇨아뇨, 외무장관은 그대로 하시고, 부총리도 겸직하시라고요.’
“???”
이 양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저…… 부총리가 내무장관이랑 겸직인 것은 아시죠?”
“네.”
“그러면 지금 저 보고 외무장관에 내무장관, 부총리까지 하라는 거네요?”
“장관님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만…….”
“…….”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는 아데나워.
아무래도 총리를 잘못 뽑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