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 제2차 모로코 위기 (3)
“우리 스페인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영국은 지금 당장 멜리야에서 함대를 철수시키고, 아브드 엘 크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십시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산체스 게라 총리였다.
그는 정확히 밸푸어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자신의, 스페인의 요구를 밝혔다.
“아브드 엘 크림에 대한 지원이라니, 증거도 없고, 신빙성도 없는 사실무근을 너무 쉽게 입에 담으시는군요.”
물론, 이에 대한 밸푸어의 대답은 언제나 영국답게 뻔뻔 그 자체였다.
진실을 아는 나조차도 기가 막혀 조소를 참기 어려울 지경이다.
‘문제는 이 뻔뻔한 놈들이 우리 친구란 거지.’
영국이 독일의 친구가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물론, 당시엔 그것 말고 길이 없었고, 덕분에 갈리폴리라던가 하는 귀찮은 일 몇 개 빼곤 편하게 대전쟁에서 이겼지만.
“사실무근이라, 과연 그럴까요?”
“무솔리니 총리,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내가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사이, 무솔리니가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말했다.
“스페인과 우리 이탈리아가 공동 조사한 결과, 아브드 엘 크림이 아누알 전투에서 사용한 박격포탄은 틀림없는 영국제였습니다. 영국이 베르베르족을 지원했단 물증이 있단 말입니다!”
“호, 그것이 정말입니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데샤넬 대통령. 못 믿겠다면 여기에 그 박격포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관심이 집중된 탓인지 신난 무솔리니가 목소리를 높이며 대답했다.
뭐, 괜찮다.
이 정도는 나도, 영국도 예상했으니까.
나는 밸푸어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박격포탄이 영국제라고 한들, 정말 영국이 리프 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초이 장관! 장관은 명백한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이를 부정하겠다는 겁니까?”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 가능성이라니 무슨 가능성 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산체스 게라 총리님. 그 박격포탄이 영국에서 만들어졌을 순 있지만, 영국군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기나 탄약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요. 당장 남미나 중국에서 독일제 무기가 사용되었다고, 우리 독일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억측입니다!”
“스페인의 주장도 다르진 않지요.”
“뭐요?!”
밸푸어의 딜에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는 산체스 게라.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게다가 아브드 엘 크림이 영국령 모로코에서 박격포를 손에 넣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능성이라면?”
“부패한 식민지의 군인이 비리를 저질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무기가 필요한 아브드 엘 크림이 부하들을 부려 영국군 무기고를 털었을 수도 있죠.”
“확실히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베르베르족이 수송 중이던 우리 군사 보급품을 약탈해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엘 크림의 손에 박격포가 들어갔을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들이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판단할 수가 없는데.
“이…이익……!”
“…….”
덕분에 산체스 게라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고, 무솔리니 또한 박격포탄을 내세우는 것은 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젊은 친구, 와인 좀 더 주겠나?”
데샤넬은…… 아예 구경꾼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흥미진진한 얼굴로 와인 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데샤넬 쪽은 아직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어차피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는 지금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은 놔두자.
“묻겠습니다, 산체스 게라 총리님. 스페인은 영국이 아브드 엘 크림의 배후에 있다는 또 다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건…….”
“아니라면 확실하지 않은 억측은 자제해 주십시오. 이번 회의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멜리야와 그곳에 가 있는 영국 해군이니까요.”
그리고 이게 제일 문제였다.
솔직히 말해 아무리 잘 포장한다고 한들, 영국의 행동이 국제적 기준으로 매우 나쁜 행동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갈리폴리시치 이 새끼도 문제지만, 그걸 또 허락한 로이드 조지 당신은 대체…….’
“영국의 행동은 불법입니다. 세상에 대체 어느 나라가 남의 나라 항구에 멋대로 함대를 주둔시킨단 말입니까?! 이건 명백한 주권 침해입니다, 주권 침해!”
“큼큼, 나 또한 스페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말도 안 하고 이러는 건 외교적으로도 큰 실례인 것을 넘어 도의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이지, 암.”
덕분에 첫수에서 밀려 기세가 떨어졌던 산체스 게라와 무솔리니도 다시 생기가 돌아와 입을 쉬지 않고 영국의 불법적인 행동을 규탄하고, 비난했다.
욕먹을 짓 맞긴 하지만, 어쨌든 영국 편을 들어줘야 했던 우리로선 곤란한 일이었다.
“영국 측에선 이에 대해 반박할 말이 있습니까?”
“우리 영국이 멜리야에 함대를 보낸 것은 어디까지나 멜리야에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정과 생명을 위해서입니다.”
밸푸어가 말했다.
“국가란 자국민의 생명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스페인군은 수만을 동원하고도 고작 오 천도 안 되는 베르베르 군대에 만신창이로 당했습니다.”
“…….”
“우리도 스페인이 아브드 엘 크림과 그가 이끄는 리프 부족군의 위협을 막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페인군은 그러질 못했고, 그 결과 멜리야마저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로얄 네이비가 대신 나설 수밖에요.”
“그렇다 한들 영국의 행동이 우리 스페인의 주권을 무시한 행동이란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말대로요, 밸푸어 장관. 우리 이탈리아가 지브롤터나 몰타에 이탈리아 국민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말없이 해군을 보내도 영국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탈리아 해군에 배가 있긴 합니까?”
“뭐요?!”
오우, 이건 꽤 셌다.
얼마나 셌는지 침착함을 유지하던 무솔리니가 더는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가만히 있던 데샤넬 조차 스플래쉬 대미지를 입으며 헛기침할 정도로 센 한 방이었다.
그야 이탈리아나 프랑스나 대전쟁으로 인해 해군이 박살 났으니 그야 아플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긴, 무솔리니가 난놈은 난놈이지만, 국제 외교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고, 밸푸어에게 정치 경력도 외교 경력도 밀리니.’
밸푸어는 저래 봬도 빅토리아 시대 때부터 활발하게 활동해 온 영국의 노괴다.
그 짬은 나도 무시하지 못했다.
‘어쨌든 잘됐어.’
밸푸어의 한 방에 산체스 게라와 무솔리니에게 향했던 흐름이 끊겼다.
그러니 다시 흐름을 되찾기 전에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자.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 논의를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저 또한 동의합니다. 서로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봤자 아무런 소용 없으니 다들 머리를 식힙시다.”
“아니, 대통령은 아무것도 안 했잖습니까?”
“상황을 보았다고 말해 주시죠. 그편이 뭔가 있어 보이니까요!”
그럴 거면 왜 왔냐는 무솔리니와 산체스 게라의 불만 어린 표정에 회의를 방관하던 데샤넬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그런 데샤넬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툴툴거리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
“……흥!”
이윽고 산체스 게라와 밸푸어도 서로에게 등을 돌리며 나가자 회의실에는 데샤넬과 나, 단 두 사람만이 남았다.
“초이 장관. 이따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지금 저를 초대하시는 겁니까?”
“예, 내가 장관에게 관심이…… 참으로 많거든요.”
“그렇군요. 저도 마침 대통령님께 궁금한 게 많습니다.”
나와 데샤넬은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낮의 회의는 끝났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오갈 밤의 회의를 시작하자.
* * *
“대체 데샤넬 그자가 무슨 생각으로 취리히까지 간 건지 알 것 같은 사람 있소?”
“그걸 알면 우리가 아직도 이러고 있겠습니까?”
한편, 취리히에서 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때 극우 세력의 정치적 연합인 애국동맹은 샴페인 사업을 하는 태탱제의 샬롱에 모여 고민에 빠진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 이유야 당연히 스페인 문제에 관여 안 할 거라더니, 갑자기 취리히로 직접 발걸음을 옮긴 폴 데샤넬 때문이었다.
“드 라 로크 선생, 그쪽은 뭐 짚이는 거 있습니까?”
“송구스럽게도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다고만 말할 수 있겠군요.”
모라스의 물음에 원 역사보다 훨씬 빨리 창설된 극우단체인 불의 십자단(Croix-de-Feu)에 가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세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열띤 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수아 드 라 로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데샤넬.’
무엇을 꾸미길래 취리히까지 간 것인가?
자신을 비롯한 ‘애국자’들이 시민들을 끌어들이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처럼, 그리고 모로코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솔리니가 취리히에까지 간 이유처럼 것처럼 스페인 건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는 것일까?
‘아니, 아니다.’
자신이 아는 폴 데샤넬은 그렇게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정신 구조를 가진 미친놈이었지.
괜히 파리의 가십들이 틈만 나면 우리 대통령이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고 시끄럽게 떠들겠는가?
제아무리 근거 없는 소문이라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름대로 이유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폴 데샤넬은 그런 이유가 넘치도록 있는 작자였다.
“하여튼, 데샤넬 그 미치광이가 무슨 짓을 꾸미는지는 몰라도 다들 어느 정도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가 가져올 결과가 무엇이 되었든, 애국동맹에 결코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테니.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겠지.”
라 로크의 말에 초강경한 반독, 반유대, 반자유주의자이자 프랑스 극우 중 가장 세력이 큰 악시옹 프랑세즈 소속으로 사실상 애국동맹을 주도하고 있던 샤를 모라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랑스를 이번에야말로 잘못된 길이 아닌,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 * *
“처음 장관이 내게 보낸 전보를 보냈을 땐 참으로 놀랐습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뜬 어두운 밤.
나와 데샤넬, 둘만 있는 식사 자리에서 데샤넬이 스테이크를 칼로 썰며 말했다.
“그야 독일과 프랑스가 협력이라니. 프랑스의 대통령인 제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한스 폰 초이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 그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 반응도 비슷할 것이다.
수십 년 후라면 몰라도 아직 대전쟁 때의 공포와 충격이 기분 나쁜 악몽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지금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미친놈 소리를 충분히 들을 말이었으니까.
물론, 윌슨을 잡기 위해 프랑스 정부와 잠깐 손을 잡은 적이 있긴 한데, 그건 협력이라기보단 정치적 거래에 가까웠으니 예외다.
“저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편이지만, 외교에선 신중함을 벌이고 과감하게 나서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게다가 언제까지 독일과 프랑스가 원수처럼 살 순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호오…….”
내 말에 데샤넬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우리 두 나라가 완전히 화해하려면 갈 길이 참으로 멀겠죠. 화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다시 전쟁을 할 수도 있다.
비단 비오 10세의 예언까지 안가더래도 우리 독일은 몰라도, 대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인들이 우리 독일에 가진 원한은 그 높다란 자존심만큼이나 깊었으니.
“그러나 우리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 것이 운명이라고 한들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힘이 있는 자로서 끊임없이 발버둥은 쳐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끝이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고 해도 말입니까?”
“노력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법이죠.”
물론, 나 또한 무작정 평화만을 믿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다가올 두 번째 대전쟁을 준비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저 다음 세대를,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손을 놓기보다는 평화를 위해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푸훗! 그거 좋은 말이군요. 참으로 좋은 말이에요.”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데샤넬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 또한 장관의 생각에 백분 동감합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애초에 이 자리에 안 나왔을 테니까요.”
“그것참 다행이군요.”
“예, 보불전쟁이 끝나고 대전쟁이 끝났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프랑스와 독일이 만들어진 증오의 굴레 속에서 서로를 끝없이 원망해야겠습니까? 이러한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콩코르드 광장의 극단주의자들은 이를 철없는 이상에 불과하다고 여기겠지만요.”
“하지만 그 이상을 향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이겠죠.”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말아야 하는 이유였다.
꿈을 꾸지 않는 자들은 미래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법이니.
“저로선 부디 오늘의 대화가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득 없는 협력은 역시나 저로서도 곤란해서요. 특히 장관이 원하는 것은 우리 프랑스가 해적 친구들의 편을 드는 것이지 않습니까. 전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럼 서로 조건을 맞춰 보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선, 제가 첫 번째로 제시할 것은 프랑스의 국제 연맹 가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