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 : 제2차 모로코 위기 (4)
“국제연맹 가입이라, 확실히 나쁘진 않은 제안이군요.”
데샤넬이 눈을 빛내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프랑스로선 국제연맹 가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유럽에 끼쳐 온 영향력과 체급도 있고, 우리가 딱히 주권을 빼앗은 것도 아니니 세상을 향해 목소리는 낼 수 있어도 그 목소리에 힘이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이 현재의 프랑스이니까.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프랑스가 스페인 위기에 끼는 것을 꺼렸던 이유기도 하지.’
물론, 그러면 똑같은 패전국인데 이탈리아와 무솔리니는 대체 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건데,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모두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지난 전쟁에서 병신 같은 모습만을 보여 줬고, 스스로 국왕을 쫓아내고 항복하기도 했기에 영토를 대거 뜯긴 대신 발에 찬 족쇄는 프랑스보다는 훨씬 가벼웠기 때문이다.
당장 프랑스는 국제연맹 창설 당시 가입을 거절당한 것에 비해 이탈리아는 국제연맹에 버젓이 가입해있었다.
사실 원 역사에서도 어그로를 가장 많이 끈 독일과 오스만 제국(참고로 이 세계의 오스만 제국은 우리 위성국이기에 국제연맹에 가입되어 있었다) 정도만 가입을 거절당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무솔리니도 말만 스페인을 돕는다고 하지만, 정작 영국이나 우리 독일을 직접적으로 적대하는 발언은 하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상식과 도의를 들먹이며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할 뿐.
이걸 가지고 나나 영국이나 이탈리아에 뭐라고 할 순 없었다.
딱히 조약 위반은 아니니까.
당장 바이마르 공화국도 베르사유 조약이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대놓고 폴란드랑 무역전쟁 벌이고, 중국에 군사고문단 보내고 할 거 다 했지만, 이걸 가지고 영국이나 프랑스가 바이마르 공화국에 뭐라고 하진 않았다.
물론, 루르 점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선을 넘으면 그땐 어림없었지만.
“프랑스가 국제연맹에 가입하면 국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독일과 영국이 찬성한다면 딱히 반대할 나라도 없을 테고요.”
다만, 이건 프랑스가 국제연맹에 가입한다고 한들 국제 사회 복귀 말곤 그리 큰 의미는 없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국제연맹은 역사 시간에 배웠겠지만, 훗날의 국제연합에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실패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도 없고, 소련도 없는데 이게 잘될 리가 없었다.
심지어 국제연맹을 가장 먼저 제안한 윌슨이 그 꼴이 되어서 원 역사보다도 힘이 더 없었다.
애초에 국제연맹에 힘이 있었다면 스페인이 영국을 국제연맹에 기소부터 했지, 내가 취리히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도 당연히 있겠죠?”
그것은 데샤넬도 잘 알기에 다음 제안을 물어 왔다.
패전의 상처를 회복해야 하는 프랑스 입장에선 국제연맹이 아무리 맥이 빠졌다고 해도 가입이 절실한 상황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것만으로 영국 편을 든다는 것은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다.
“제 두 번째 제안은 차관입니다.”
“!”
그렇기에 나 또한 미리 준비해 온 두 번째 패를 꺼내 들었다.
경제 복구가 시급한 프랑스로선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기도 했다.
“프랑스가 원한다면 독일이나 영국이 프랑스에 차관을 제공하겠습니다.”
아니면 미국 쪽과 연결해 줄 수도 있다.
공화당 정권과 내가 친하기도 하고 돈이야 언제나 흘러넘치는 나라니 딱히 거절은 하지 않을 것이다.
“흥미롭군요. 무척이나 흥미로운데…… 차관이란 것이 결국은 빚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차라리 배상금을 조금 조정해 주는 편이…….”
“어허, 알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우리 선은 넘지 맙시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일이 배상금까지 줄여 줄 정도의 가치는 없다.
“씁, 할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이 정도만 해도 ‘첫걸음’으론 충분하겠지요.”
그리고 데샤넬도 한번 말만 꺼내 본 것인지 별다른 미련 없이 수긍했다.
“그 대신 알제리의 안전 보장을 해 주십시오. 엘 크림 때문에 알제리도 여러모로 시끄러우니까요.”
“우리나 영국이나 엘 크림과는 상관없지만, 알겠습니다. 알제리엔 그 어떤 위협도 없을 것입니다.”
“크큭, 일단은 그런 걸로 치죠.”
“그럼, 이걸로 협상 타결이라고 봐도 좋을까요?”
“Oui!”
데샤넬의 쾌활한 대답과 함께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거래 성사였다.
* * *
“대통령 각하, 정말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그로부터 잠시 후.
방으로 돌아온 데샤넬은 보좌관의 불안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국제연맹 가입과 차관. 양쪽 모두 우리 프랑스에 절실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국민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 않습니까.”
“적어도 더 많은 것을 요구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군요.”
“예, 솔직히 말해 그것들을 우리에게 준다고 한들 독일이나 영국이 손해를 보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만, 지금은 이편이 적당합니다. 우리 프랑스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영국과 독일의 신뢰를 사는 것이 최우선이니까요.”
아까 그가 첫걸음으론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말한 이유였다.
괜히 욕심내고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간 얻을 것도 못 얻고 저들의 경계만 더 높인 채 끝났을 테니까.
당장 한스 폰 초이를 보라.
배상금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자마자 입꼬리를 비틀거리며 경고부터 날리지 않았나.
프랑스는 여전히 저들에게 신뢰받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은 오늘처럼 신뢰를 조금씩, 차근차근 쌓아 가야만 했다.
언젠가 상수시 조약에서 벗어나 다시 유럽의 당당한 한 축으로 서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려운 길이지만, 적어도 또다시 유럽에 대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단 훨씬 나은 길이기도 했다.
“각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간 이후가 저는 계속 걱정되는군요.”
누군가는 대통령의 성과에 기뻐하겠지만, 누군가는 불만을 표출할 것이다.
특히 콩코르드 광장에 죽치고 있는 애국동맹에 이르러선 화산과도 같은 분노를 터트리겠지.
“어쩌면 애국동맹이 일선을 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네, 그들이라면 그러고도 남겠지요. 아니, 오히려 마음껏 저질러 줘야 합니다.”
“예?”
데샤넬의 뜬금없는 말에 보좌관이 지금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러나 데샤넬은 진심이었다.
이는 한스의 편지를 받은 순간 시작된 데샤넬의 또 다른 계획이었으니.
“나는 이 기회에 공화국에 위협이 되는 애국동맹을 박살 낼 것입니다.”
애국동맹의 분노를 역이용해 공화국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우들을 프랑스에서 제거한다.
모든 것은 프랑스의 미래와 평화를 위하여.
* * *
“숙소에서 곰곰이 어제 있었던 회의를 회상해 봤는데, 이번엔 영국의 의견이 옳은 것 같군요. 물론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다음 날.
두 번째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회의실에 폭탄이 떨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데샤넬 대통령! 지금 영국의 편을 들겠다는 겁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프랑스가?!”
물론, 스페인과 이탈리아 쪽에만 피해가 가는 폭탄이었다.
“프랑스까지 영국이 옳다고 판단했다면 이 이상 회의를 더 진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스페인 쪽이 무언가 새로운 증거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장관! 이, 이건 음모입니다! 영국의 음모예요!”
“이것 참 산체스 게라 총리는 억측을 너무 즐기시는 모양입니다그려.”
“이이익……!”
이미 나에게 프랑스와의 물밑 협상에 대해 전해 들어 느긋하게 홍차를 즐기는 밸푸어의 모습에 목덜미를 붙잡는 산체스 게라.
그는 이 장소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인 무솔리니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쯧, 이번엔 당신들이 이겼습니다.”
“???”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정의의 눈은, 우리 이탈리아의 눈은 계속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
무솔리니는 그래도 세계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사람답게 프랑스가 영국과 독일에 붙은 이상 여기서 스페인 편을 계속 들어도 자신들만 불리해지리라 생각했는지 스페인을 손절했다.
물론, 끝까지 정의의 사자 코스프레는 잊지 않았다.
‘애초에 무솔리니는 스페인을 진심으로 도울 생각도, 우리에게 진심으로 대적할 생각도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저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무솔리니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건대 적어도 ‘영국의 횡포에 맞서 남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는 타이틀은 손에 넣었으니, 반쯤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물론, 내가 보기엔 정신 승리나 다름없었다.
이번 일에서 이탈리아가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없었는데, 그게 정신 승리지 뭐겠나?
“@#$#@!!”
한편, 무솔리니에게 버림받은 산체스 게라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온갖 욕을 내뱉었다.
내가 스페인어는 몰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외교회담에선 나와선 안 될 욕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얼마나 화가 나든 그가, 스페인이 할 수 있는 이제 없었다.
나로서도 살짝 동정심이 들긴 하지만, 이게 열강들이 다 해 먹는 국제 외교의 냉혹한 현실인 것을 어쩌겠나.
“스페인은 영국 함대의 멜리야 주둔을 인정하십시오.”
“아브드 엘 크림의 반란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페인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우리가 스페인 내부 문제까지 개입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원하신다면 아브드 엘 크림과의 협상을 중재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우리로서도 더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크윽…….”
내 최종 선고에 산체스 게라는 힘없이 어깨를 떨구었다.
짧지만, 굵직했던 취리히 회의의 끝이었다.
* * *
취리히 회담의 결과가 유럽 전역에 퍼지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태는 유럽도 아닌 지브롤터 해협 건너 모로코를 놓고 벌어진 일이었고, 스페인이란 나라가 몰락하는 것은 일상이었기에 유럽 국가 대부분은 ‘그래서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라는 반응이었다.
“고작 이딴 결과물이나 들고 오려고 나선 거야? 지금 장난하냐!”
“산체스 게라는 대체 뭐 하러 취리히까지 간 거냐?!”
“무능한 정부는 꺼져라!”
물론, 이번 제2차 모로코 위기의 주인공이자 유일한 피해자인 스페인은 폭발했다.
산체스 게라는 돌아오자마자 계란과 토마토, 오물 세례와 함께 총리 자리에서 사퇴했고, 알우세마스 후작, 마누엘 가르시아 프리에토(Manuel García Prieto)가 대신 총리로 취임했지만, 들끓는 혼란을 잠재우진 못했다.
“폐하, 왕실에 대한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의회 일부에서는 폐하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망할 놈들! 이것이 어째서 내 탓이라는 거냐! 산체스 게라가 무능한 탓이지!”
그 결과, 제2차 모로코 위기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또한 위기에 몰렸다.
20세기의 암군들이 흔히 그렇듯 독재체제를 세우려다 의회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국민의 불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충수를 계속해서 두어 온 알폰소 13세다.
그나마 지난 대전쟁 때 협상국과 동맹국,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한숨 돌렸지만, 이젠 더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의원 놈들을 어떻게든 치워야 해.”
궁지에 몰린 알폰소 13세는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스페인 왕실이 자신의 대에 끝장나고 말 테니까.
“이대로 모로코를 잃을 순 없다. 하지만 정부는 머리에 똥으로 가득 찬 이들로 가득하고 불충한 의회는 국왕 폐하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군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아니 그런가, 제군들?”
“Sí, señor(예, 각하)!”
스페인의 암담한 상황에 분노하는 동시에 알폰소 13세의 불안을 알아채고 이를 이용하려는 야심가 또한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Miguel Primo de Rivera y Orbaneja).
바르셀로나 사령부의 주인이자 스페인 군사 독재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장본인이었다.
“페탱 장군, 명장으로 이름 높은 장군이 우리를 도우니,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스페인군의 군사 고문으로서, 그리고 국적을 떠나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을 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스페인을 차지하려는 리베라의 음모엔 군사 고문인 페탱과 아누알에서 부하들과 함께 겨우 살아 돌아온 프랑코 또한 끼어있었다.
“리베라 대장님, 모로코를 지키신다는 말. 믿고 있겠습니다.”
“하하, 물론이네. 모로코는 우리 스페인의 정당한 영토일세. 베르베르와 영국 따위가 빼앗게 둘 순 없지. 내가 정권을 잡는 대로 아브드 엘 크림을 몰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네. 그러니 나를 도와주게.”
“Sí, señor.”
리베라의 다짐에 프랑코는 짧은 대답과 함께 경례를 올렸다.
‘물론 그때 가서도 상황이 여의찮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나 프랑코의 믿음과 달리 리베라의 약속은 스페인군의 최강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외인부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리베라는 권력을 차지한 이후에도 아브드 엘 크림을 몰아낼 여건이 안 된다면 쿨하게 북아프리카 식민지를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 지킬 수 없는 식민지에 집착하는 것보단 본토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막장으로 치달아 가는 스페인의 상황을 생각하면 일리가 넘치도록 있는 현실론이었지만, 프랑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군단 장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준비가 되는 대로 마드리드로 간다. 그때까지 무기를 닦고 허리띠를 꽉 조이도록!”
“Sí!”
스페인에 쿠데타란 이름의 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데샤넬, 이 매국노 새끼가아───!!!”
그리고 이는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였다.